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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83화 (283/300)

# 283

283화

“…빌어먹을 빨갱이 새끼들….”

오벌 오피스(Oval office, 미 대통령 집무실)는 너구리굴마냥 파이프 담배의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맥아더는 트레이드마크인 콘파이프를 질겅질겅 씹으며 요새 하던 짓을 계속했다. 매카시에게 옮기라도 한 것인지 무언가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그는 빨갱이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의 핵심 심복들은 갈수록 떨어지는 지지율 때문에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밤에 쉬지도 못하고 호출되었건만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다들 선글라스를 쓴 채 파이프를 뻑뻑 피우는 대통령 때문에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기에.

미국이 하는 모든 대외원정은 실패로 돌아가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재선을 담보할 수 없을 정도로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솔직히 빨갱이들 탓이라기보다는 본인의 삽질 때문에 그런 것이 더 컸지만, 맥아더는 실책을 끝까지 인정하지 못했다.

전임 월리스 시대보다 전쟁 때문에 경제 성장률 자체는 낮지 않았지만 국민의 삶의 질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군비 지출에 국가 예산을 꼬라박으니 쓰는 총액은 많지만, 군사무기를 많이 소비한다고 삶이 윤택해지지는 못했다.

“어디 방법 없나! 왜 다들 묵묵부답인가! 왜!!!”

“….”

심복과 참모들은 알고 있었다.

말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지도자에게 괜히 간언이며 충언이라고 하다가 찍혀 나가는 꼴을 보느니… 정권 말에 적당히 다른 누군가로 갈아타면 되는 것 아닌가!

끝까지 이 전쟁을 반대하던 마셜 원수와 그 ‘계파’(실제로 실존했는지는 모르겠지만)의 숙청은 사람들의 그런 인식을 강화하기만 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떨군 참모들 사이에서 씩씩대는 맥아더와 오늘도 밖에서 빨갱이 타도를 외치는 매카시 사이에서 크리스마스는 흘러만 갔다.

* * *

뎅, 뎅, 뎅, 뎅.

성탄절을 알리는 성당의 종이 치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성탄 미사를 위해 성당 안으로 모여들었다.

살라자르의 3F 정책(Futebol, Fadu, Fatima. 축구―음악―종교를 통한 우민화 정책)에 따라 신앙심은 항상 강조되었다. 대부분의 인구가 가톨릭 신자인 포르투갈에서 신앙심은 곧 로마 가톨릭 신앙이었으며, 사람들은 남들의 눈치가 보여서라도 성탄 미사에는 빠질 수 없었다.

그것은 앙골라와 모잠비크, 인도의 고아 일대에서 분쟁을 피해 본국으로 도망치다시피 한 사람들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미사에 나와야만 했다.

국가 재정의 수십 퍼센트를 식민지 전쟁의 전비(戰費)로 쏟아붓는 와중에 이들에게 제공할 복지란 별다를 게 없었다. 고향에서, 살던 터전에서 쫓겨난 이들에게 뭔가를 나누어 주고, 정신적 위안이라도 제공해 주는 것은 교회밖에 없었다.

하여 사람들은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성당으로, 성당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의 절규를 듣기 전까지는.

“내 아들! 내 아들을 돌려주십시오!”

“!!!”

검은 베일을 쓴 노파 하나가 바닥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었다. 성당에서 미사를 올릴 때 일반적인 여신도들은 흰 베일(미사보)을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장례식이나 과부일 경우 검은 베일을 썼다.

아들을 잃어서일까? 아니면 과부여서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몰랐다. 물론 이 시대, 저러한 광경은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이었기에 사람들은 측은한 눈빛으로 노파를 쳐다보았다.

“휘이이이이이익!”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모두가 측은지심이라는 인간 본연의 감정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거리 저편에서 일단의 경찰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왔다.

크리스마스에 추운 거리에서 한참이나 서 있었던 것이 굉장히 불쾌했는지 그들은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혹시나 모를 소요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경찰당국은 다수의 인력을 시가지에 배치했지만, 마찬가지로 신앙심이 깊은 일선 경찰들은 성탄 미사도 못 가고 근무하는 것을 고까워했다.

“자, 자, 일단 가시지요. 어머님, 이런 데서 이렇게 하시면….”

“내 아들을 돌려 내라! 이 도적 떼들아! 바리새인들, 독사의 자식들!”

“…뭣들 하나? 끌고… 아니, 모시고 가게.”

건장한 체격의 젊은 경찰 둘이 양옆에 달라붙자 노파는 악을 쓰기 시작했다. 경찰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노파를 연행할 것을 명령했다.

“거 좋은 날에… 왜들 그렇습니까? 젊은 친구들, 당신들도 말이야! 어르신한테 이러면 되나 안 되나! 나 젊었을 때는 말이지….”

“선생님, 지금 이러시면 공무집행 방해로 체포되실 수도 있습니다.”

“날 지금 협박하는 겐가?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너희 경찰서장이랑 어, 어!”

사람들 속에서 백발이 희끗희끗한 노신사 하나가 지팡이를 짚고 걸어 나왔다. 딱 보아도 점잖고 품위 있어 보이는 노신사의 모습에 중년 경찰은 정중하게 대하려 했으나 지팡이를 면전에서 휘두르며 성을 내는 것까지 참지는 못했다.

“아 그러십니까? 그럼 서에 가서 알아보도록 하지요. 지금부터 방해하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공무집행 방해로 체포하겠습니다. 이… 자도 연행해!”

“예!”

“뭐? 이, 이거 놔! 젊은 놈들이….”

“아버지!!!”

소란을 피우는 노파를 끌고 가려던 것이 갑자기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조용히 노파만 잘 달래서 끌고 가려 했는데, 사람들이 웅성이며 몰려드는 것을 본 중년 경찰은 뒷목에 식은땀이 흘렀다.

노신사를 아버지라고 부른 청년은 아예 장교 정복까지 입고 있었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신사를 연행하는 경찰의 멱살까지 잡은 그는 악을 쓰며 고함을 쳤다.

“빌어먹을 새끼들! 인도에 가서 뒈질 뻔하다가 돌아왔는데 하는 짓이 이건가? 우리가 너희들 개새끼야?”

그걸 왜 말단 경찰을 붙들고 묻고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젊은 장교의 불만은 경찰에게 쏟아지고는 있었지만 사실은 그 뒤의 국가권력을 겨냥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다. 노파는 엉엉 통곡을 하며 아들이 앙골라에서 무슨 꼴을 당했는지를 호소했다. 노신사의 아들인 젊은 장교는 아예 경찰들과 몸싸움을 시작했다. 그의 친구들인지 뭔지 군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저만치에서 우르르 몰려와 실랑이에 끼어들었다.

‘망했다….’

경찰들이 진정시켜야 했던 소요는 진정되는 게 아니라 폭동 비슷하게 커져 나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돌을 던졌는지 경찰 하나가 퍽 하고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인근 가게 유리창이 깨졌는지 쨍그랑하는 소리가 났다.

“살라자르 물러가라! 전쟁을 멈춰라!”

그리고 그 와중, 정치구호가 터져 나오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무익한 전쟁을 거부한다!!!”

“꺼져라! 살라자르의 개새끼들아!”

인근 성당에서 이미 미사에 참례하던 사람들까지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하나둘씩 빠져나와 무엇인지 지켜보기 시작했다.

끽해야 한 줌에 불과한 경찰들은 수십 명의 분노한 청년들이 달려드는 꼴에는 도무지 손을 쓸 수 없었다. 주변 지역에서 동료 경찰들이 증원을 와도 안 될 판에, 휴일인지라 애초에 근무하는 경찰부터가 많지 않았다.

“만세! 만세! 자유 포르투갈 만세!!!!”

* * *

인도와 아프리카의 식민전쟁에서 별달리 나토의 도움도 얻지 못하고 끌려다니던 포르투갈에서 성탄절을 끼고 대규모 시위가 발발했다.

“갈수록 나빠져 가는 생활수준과 막대한 전비지출로 인한 불만이 정권에 대한 반발심리와 겹쳐 폭발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시위의 주축은 젊은 장교들이었는데….”

“조금 더 봉기를 일찍 터트려도 되겠나?”

“…예. 가능할 것 같습니다.”

포르투갈의 젊은 장교들은 불만이 많았다. 사실상 군부가 박살 나고 유사 마피아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한몫씩 해먹는 남이탈리아나, 군부가 정권을 잡았기에 군인에 대한 대우만큼은 괜찮았던 스페인에 비해 포르투갈 장교들의 처우는 그닥 좋지 않았다.

어디나 그렇듯 젊고 가난하지만 총명한 인재들은 무료 교육과 취직이 보장되는 사관학교를 꽤 많이 선택했다. 하지만 전비 부담과 애초에 가난한 국가였기에 포르투갈은 이들에게 적절한 대우를 해 주지 못했다.

‘가난한 장교들은 부르주아 여성과 결혼하라!’

생활의 궁핍을 호소하는 장교들에게 실제로 포르투갈 정부가 한 말이 저것이었으니, 그들의 불만이 오죽할까?

무능한 정부와 고급 장성들이 인도에서 참패하기까지 했으니, 이들의 불만은 위험수위를 넘어 비등하기 시작했다. 장교단 내부 비밀 공산주의 서클들은 접근한 소련 NKVD 요원들에게 자금 지원을 받아 동료들을 포섭해 쿠데타를 준비했다.

근본적으로 문민 정권의 수반이며 경제학자인 살라자르는 경제성장을 통해 정부를 장악했을지언정 군부를 장악하고 무력으로 찍어누르는 데는 능숙하지 못했다.

이웃 스페인의 프랑코가 피비린내 나는 통치로 반대파를 수백 명씩 처형하며 정권을 잡았던 것을 경멸한 그는, 자기 손에 들려 있어야 할 가장 강력한 무기인 군권이 발등을 찍으려 하는 것을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좋네. 그럼… 그들의 자체적 판단을 신뢰해 보기로 하지.”

“예!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혁명을 이끌어 갈 요소들은 이미 포르투갈 안에 팽배해 끓어 넘칠 지경이었다. 체제에 불만을 품고 더 나은 세상의 건설을 원하는 대중, 마찬가지로 현 상태에 비판적인 사회주의 성향의 지식인들, 거기에 실제 군사력을 장악한 이들까지!

단순히 군인뿐만 아니라 그들을 뒷받침할 만한 대중들 역시 존재했다.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박살 난 노동조합들은 호시탐탐 때를 노리며 재건을 갈망했다. 낮은 임금과 없다시피 한 복지에 분노한 이들은 노동조합 결성,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정권의 전복을 통한 처우 개선을 원했다.

“맥아더 놈은 불*도 잡혔는데… 이제 하나하나 손발이 떨어져 나가는 꼴을 두고 봐야겠군. 흐흐흐흐흐….”

“푸흡, 푸흐흣….”

맥아더의 *알, 캘커타에 붙들린 수만 명의 미군 병사들은 조여 오는 포위망 때문에 하나둘씩 죽어 나가거나 투항하기 시작했다.

우리 측에서 만든 노래인 ‘All I need in Christmas is You’는 그들의 감성을 심각하게 자극한 것 같았다. 그걸 듣고 투항한 사람들만 백 단위는 된다나?

아무튼 관대한 처우를 해 주며, 적당한 수용소에 송치하면서 나토를 쥐락펴락하는 미래가 엿보였다. 미국은 옴짝달싹 못 하며 유럽 동맹국들이 자체적인 정권 붕괴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포르투갈과 대단히 유사한 정서나 국민성을 지닌 스페인, 남이탈리아 지역들에서도 비슷한 소요사태가 벌어지고 있으니….

“저… 서기장 동지? 영국 쪽에서 급보가 도착했습니다.”

“음? 뭔가?”

회의장으로 조용히 들어온 NKVD 요원에게 뭘 받아 보더니 속삭인 크루글로프는 자랑스럽게 내게 이야기했다.

“영국 총리 앤서니 이든이 캘커타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 그게 정말인가! 아주 좋군!”

지금이 전시상태임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앤서니 이든은 반쯤은 어거지로 몇 년간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2차대전 종전 이후 고 처칠의 휘광에 기대 대승을 거둔 보수당은 그 정도 힘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났다.

다만 진짜 좋은 점은 따로 있었다.

“이제 맥아더도 비슷한 소리를 듣겠군.”

포르투갈에서 남유럽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퍼져 나갈 이 폭풍들이 진심으로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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