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282화 (282/300)

# 282

282화

[이번 주의 차트 1위는… 역시 크리스마스답군요. 크리스마스 캐럴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빌리 홀리데이가 부릅니다, ‘All I want in Christmas is You’.]

[I don′t want much for Christmas

There′s only one thing I need

I don′t care about the gifts…

…Make my dream come true

All I want in Christmas~ Is you]

빌보드 차트 1위, ‘All I want in Christmas is You.’

재즈 가수로 유명한 빌리 홀리데이가 특유의 우수 어리고 갈라질 것만 같은 목소리로 부른 캐럴은 경쾌한 리듬 때문인지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뽐냈다.

가사만 들으면 연인들이 보고 싶어 부르는 연가(戀歌)에 가까웠지만, 세계 각지에 수십만에 이르는 청년들이 파병 나간 상태라는 시대상과 맞물려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

‘돌아오라, 크리스마스에는!’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남편이며, 누군가의 아들인 우리 장병들. 그들이 없는 성탄절이 무슨 명절이고 어찌 행복한 날이겠는가!

빌리 홀리데이가 이 노래를 발표하면서 그런 고려를 담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수많은 대중들은 아들이, 남편이 전장에서 돌아오길 바라며 캐럴을 불렀다.

중독성 있고 경쾌한 멜로디 때문에, 그리고 빌리 홀리데이의 폭발적인 가창력 덕분에 유행을 탔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노래는 반전(反戰) 가요로 전유되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금지되어야 합니다! 염세, 반미국 사상을 퍼트리는 이 노래는 극히 위험하며 우리 위대한 미국을 안으로부터 좀먹어 나갈 것입니다!”

매카시는 여느 때처럼 이것은 공산주의자의 음모다, 흑인―빨갱이들이 미국을 장악할 계획을 꾸몄다며 광분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그런 것에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 캐럴을 흥얼거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평소 매카시를 싫어하지 않던 사람들도 캐럴까지 빨갱이 선동으로 몰아가는 그의 행동엔 진절머리가 난 것 같았다.

“제기랄, 매카시 말대로 이게 소련의 배후 공작이면 한 가지는 확실하지.”

“음? 그게 뭔가?”

“그 새끼들, 노래 하나는 기차게 잘 만든다는 거.”

* * *

한편 미국을 강타하고 있는 반전주의의 폭풍은 다른 곳에서도 스믈스믈 체급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연방의원 존 레닌을 배출한, 이제는 ‘미국 진보정치 1번지’로 등극한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인근에서는 행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주 정부는 공산당과 흑인들이 떼거리로 뭉쳐서 뭘 하는 것만 보면 기겁을 하며 딴지를 걸고 탄압하려 했지만 그들이 ‘좋은 일’을 하겠다는 것조차 막지는 못했다.

조직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후원과 어디서 오는지 모를 막대한 규모의 재원을 바탕으로, 미국 공산당은 새로운 사업 하나를 조직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전국구 스타로 등극한 레닌은 조촐한 행사장 안에서 쏟아지는 박수를 받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연설을 할 때만큼은 중후하고 폭풍처럼 쏟아져 나오는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작은 건물 안에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은 일제히 조용해졌다.

“먼저… 이 자리에 모여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사업이 이렇게까지 진행될 수 있던 것은 전적으로 여러분들의 후원 덕이었습니다.”

“와아아아아!!!”

“뭐, 길게 말할 것 있겠습니까? 자… 밴드 입장!”

맨 앞자리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다양한 나이대와 피부색과 성별의 청소년들이 우르르 일어나 레닌이 있던 단상 위로 몰려나왔다.

각자 악기 하나씩을 들고 있는 이들은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올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것도 같았지만, 눈빛만큼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인터내―셔널 깃발 아래 전진 또 전진!!!!”

온갖 음색의 악기들이 연주되며 현 소련의 국가이자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래 인터내셔널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웃음을 참을 수 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청소년들은 재즈풍으로 편곡된 인터내셔널을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들 뒤로 현수막 하나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미국 공산당의 마크 위에는 붉은 글자로 적힌 이 모든 사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변혁을 위한 음악교육>

소련에서 처음 기획되고 배급된 이 사업은 청소년들에 대한 무료 음악교육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빈곤, 비행 청소년들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특히 미국같이 공교육 등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들에서는 더더욱. 학생들에게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피로에 쩐 교사들은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뭘 하고 다니는지 관심을 전혀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들은 점점 절도, 폭력 등 범죄 속으로 엮여 들어갔다. 범죄가 일종의 생활양식이 된 청소년들은 결국 그렇게 살다 감옥이나 약물 중독 같은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말았다.

<변혁을 위한 음악교육> 사업은 그 굴레를 끊고자 고안되었다.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다고? 그럼 우리 센터로 오라!

미국 내에만 해도 공산당 당세가 강한 곳을 중심으로 하여 백수십 개,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1천 개 이상의 작은 센터들이 세워졌다. 돈 한 푼 내지 않고 음악을 배울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낀 청소년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고, 이렇게 센터들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인터내셔널 이외에도 다양한 소그룹들이 주로 재즈풍의 다양한 음악들을 연주하면서 몇 곡이 지나자 작은 음악회는 끝나버렸다. 존 레닌은 박수를 치며 단상 위로 올라왔다.

“어떻습니까! 우리 미래들의 연주가 멋지지 않았습니까? 다시 한번, 힘찬 박수 부탁드립니다!!”

“만세! 만세! 와아아아아!”

“멋지다! 멋져!”

이제 막 연주를 마친 아이들은 다들 일어서서 제법 멋들어지게 청중들을 향해 인사를 해 보였다. 레닌은 그들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본 뒤 청중들의 박수에 한참 동안이나 동참했다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예, 여러분. 여러분들의 후원이 이렇게나 멋지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다시 탄생했습니다. 우리 사업의 성과를 알려드리기 위해 한 분을 모셨습니다. 보안관님?”

“아, 예….”

얼떨떨한 표정으로 백인 보안관 한 명이 앞쪽 구석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로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지 묻는 듯한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숨죽인 웃음을 터트렸다.

“에… 이,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신 점 감사드리며… <변혁을 위한 음악교육>은 우리 앨라배마주, 특히 이 몽고메리시 인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려 달라고 의원님이 요청하시더군요.”

아마 그것만 없었으면 절대 나오지 않았겠지만, 아무튼 완고한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반공주의자마저도 이 사업은 인정하고 있었다.

“사업이 시작된 이후 청소년 범죄가 급속도로 감소했고, 시의 치안 유지에 공헌한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이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에 쓰이는 것은 대단히 아니꼬워 보였지만, 보안관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공산당이 청소년들을 홀린다고 이를 갈며 감시하던 주 정부나 경찰당국은 센터가 세워지면서 청소년 범죄가 급감하고, 딱 꼬라지만 보면 나중에 범죄자가 될 것 같던 아이들의 눈빛부터가 바뀌는 것을 보고 사업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존 레닌과 악수까지 하면서 보안관은 대단히 기분이 나빠 보이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허허허, 이렇게 자리를 빛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 하… 그… 그러면 저는 다른 일정이 있어 이만….”

조수와 함께 부리나케 센터 내의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보안관의 뒷모습은 너무도 즐거워 보였다. 더러운 흑인들이나, 붉은 뭔가가 옮을 것 같은 빨갱이들과 한자리에 있는 것도 싫었던 것일까?

하지만 레닌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었다.

지금 하는 작당은 이제 저 친구들이 알면 딱히 좋아하지는 않을 만한 것이었기에. 비밀을 숨기는 자의 미소를 지으며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 어린 동지들의 노력을 보고 감동한 몇몇 음악가들이 앨라배마 근처에서 곧 열릴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오…?”

지역당의 몇몇 핵심 간부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놀란 눈치였다. 물론 이 일을 처음부터 진행해 온 간부들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몇몇… 음… 반동이라고 할까요? 반동들의 방해 때문에 부지를 구하는 것이 조금 어려웠는데, 여기 몽고메리에서 남동쪽으로 25마일(40km)쯤 떨어진 곳에 다행히도 행사부지를 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반동이라는 표현에 사람들은 한 번 더 웃음을 터트렸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레닌은 그러거나 말거나 발표를 이어갔다. 어차피 후버의 끄나풀들이 형식적으로 들어 있기야 하겠지만 그들은 왠지는 몰라도 공산당을 상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하드어웨이(Hardaway)라는 곳입니다. 행사명은 그래서 하드어웨이 페스티벌로 짓기로 결정했는데… 크흠, 제 작명 센스를 너무 탓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하하하하.”

“좋습니다! 좋소!”

“감사합니다! 우리 공산당은 음악을 통해서, 이 세상에 평화가 도래하길 바랍니다. 자유여! 평화여! 평등이여!!!”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성과 함께 레닌은 이제 미국 흑인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해진 구호를 외쳤다.

자유여, 평화여, 평등이여.

그토록 갈망해 온 새로운 세상이여. 사람들은 노래 속에서 좀 더 나은 새로운 세상을 찾고 싶어 했다.

* * *

“아, 서기장 동지. 그… 인도에서의 승전 말입니다. 단장 대리로 임명되어 작전 수립을 총지휘하고 기갑부대를 이끈 준장….”

나는 손을 내저었다.

“나는 준장 따위가 뭘 했고 같은 사소한 일을 보고받는 사람이 아닐세, 크루글로프.”

“죄, 죄송합니다 서기장 동지….”

“그러니까 그 친구는 이제 소장으로 만들어 주지.”

“예? 아, 알겠습니다!”

미국인만 해도 자그마치 3만 명이다! 3만 명!

이제 인도혁명군은 미국 정계 맥아더의 목숨줄을 틀어쥔 꼴이 되었다. 베트남 전쟁 동안 미군 POW(Prisoner of War, 전쟁포로)와 MIA(Missing in Action, 작전 중 실종)를 합쳐 5천 명 전후였다.

실제 역사의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기나긴 전쟁 동안 잡은 미군 포로가 대충 3만 명쯤 되었다. 그렇게 비교하면 이번 한 전투에서 수만 명이 포위당해 항복하기 직전으로 만든 것은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

“우린… 맥아더의 불*을 쥔 셈이지. 맥아더가 비명을 지르게 만들고 싶으면 우리는 *알을 움켜쥐면 되네.”

내가 주먹을 쥐면서 우스꽝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척을 하자 사람들이 다들 웃었다.

“그걸 뜯어 온 친구한테 특진 정도는 시켜줘도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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