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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81화 (281/300)

# 281

281화

맥아더는 캘커타에서 최종 공세를 펼쳐,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인 인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짜잔!

“적의 주력군 1개 군단은 이로써 캘커타 시내에 완벽히 포위되었습니다. 아군의 물자 지원은 현재 포위망을 완성하고 이를 돌파하려는 적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방어선을 구축 중인 인도 혁명군에게 지원되고 있습니다.”

“푸훗… 푸흐흣….”

아, 뭔가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국과 나토군 입장에서는 있는 병력 없는 병력 다 끌어모아서 일제히 한타 공세를 펼쳤는데 그게 다 잡아먹힌 꼴이 되었다.

안 그래도 점점 흔들리는 미국의 장악력에 결정타를 입힐 만한 일격이었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시절, 프랑스 정규군 2만 명을 포위섬멸한 1954년의 디엔비엔푸 전투는 실제 역사의 프랑스가 식민지를 연쇄적으로 독립시키는 데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번에는? 그야말로 다국적군이 캘커타시 안에 갇히고 말았다.

“미국, 영국, 벨기에, 포르투갈, 남이탈리아, 스페인… 제국주의 파쇼 놈들이란 놈들은 모조리 쓸어 담았군! 대단하네! 대단해! 으하하하하하하!!!”

적의 6군단은 일단 주축은 미군이었지만, 연대나 대대급 규모의 다국적 제대들이 덕지덕지 붙어 증강된 상태였기에 1개 군단치고는 5만에 육박할 정도로 규모가 커진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면, 지휘편제가 붕괴되며 아군이 있는 쪽으로 쓸려 들어간 포르투갈군을 포함하면 대충 포위된 규모가 그 정도.

포위망 밖의 미 4기갑사단은 어, 어, 하며 포위망을 돌파해 아군을 구출하려 했지만 아군 기동예비의 자로 잰 듯 정밀한 역공에 휘말려 후퇴해 버렸다.

미국 정부는 극히 당황한 듯 싶었다.

[4기갑사단의 분투로 인도 원정군은 후글리강 하류의 다이아몬드 하버를 확보했으며….]

쭉쭉 밀리다가 강물에 다 빠져 죽지 않고 거점 하나를 지켜 낸 것을 가지고 저들은 아예 대대적인 승전인 것처럼 프로파간다를 치고 있었다.

“흐음… 뭐, 우리 쪽이 자금줄을 쥐고 있는 신문들을 좀 흔들어 보게. 표제는 대충 이렇게 뽑으면 되겠군. <왜 그 자그마한 땅덩이를 위해 미국의 아들들이 죽어야 하나?>”

“예!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다시 한번 역공의 기회를 잡기 위해, 나토군은 피해를 감당하면서도 저 무슨 다이아몬드 하버인가 뭔가 하는 조그마한 항구마을을 붙들고 있었다.

이제 그 위에, 우리는 한번 쭉 묵직한 세례를 끼얹어 줄 것이다. 반전주의의 세례를.

* * *

[투항하라, 투항하라. 너희는 포위되었다.]

사람이 살던 곳이건만 순식간에 전투로 폐허가 된 삭막한 폐허 위로 마찬가지로 감정이라고는 없는 항복 권고문이 울려 퍼졌다.

구식 복엽기를 가지고 저만치에서 날아다니며 인도 억양이 짙게 섞인 영어로 항복권고를 뿌려 대는 인도혁명군을 향해 포위당한 미군 병사들은 탕, 탕, 단발로 총을 쏘아 댔다.

“…씨발!”

“그만하게. 탄약을 아끼도록.”

“….”

보이지도 않다가 포위를 당하니 갑자기 나타나 앵앵 울어 대기 시작하는 선전기들을 병사 하나가 핏발선 눈으로 노려보았다. 장교가 툭 내뱉듯 탄약을 아끼라 명령하자, 그들은 벌겋게 붉어진 눈을 장교를 향해 돌렸다.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집에 갈 수 있다고 했지 않습니까?”

“있을 수도 있다고 했지. 전장에 확실한 것은 없네.”

[All I want in Christmas is you~~]

자기도 지친 듯 짧게 대답하는 장교를 노려보던 병사들은 명랑한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오자 휙 하늘을 쳐다보았다.

가사부터가 병사들에게는 애절하기 이를 데 없는 저 캐럴은 병사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집에 갈 수 있다는 꿈이 좌절되어 미칠 것 같은데, 집에, 고향에 기다리고 있을 가족 친지와 연인이 ‘크리스마스에 너만 있으면 된다’라니!

“흑, 흐끅… 흐끄윽….”

어린 병사 하나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태평양에서 잽스들을 때려잡던 동네 형은 전장이 험난한 곳이지만 전우애가 살아 있고 남자가 되어 돌아올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도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보급품은 부족해서 고참병은 하급병에게 눈치를 주며 삥을 뜯기 일쑤였고, 병신같이 기합을 외치며 돌격하는 잽스들이 아니라 온갖 창의적인 부비트랩을 깔아 놓는 인도인 게릴라들이 가득했다.

어린 병사를 달래주고 이끌어야 할 고참병들은 자기들도 스트레스 때문에 미쳐 버릴 지경에 초를 치는 하급병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초급장교들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앞에 서다가 제일 먼저 저격당해 죽어 버렸다.

“아! 비행기가….”

투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타!

미군 색으로 도색을 칠한 비행기 편대가 날아다니며 낙하산으로 물자를 투하했다. 대부분 제멋대로인 바람 때문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거나, 대공기관총 때문에 화들짝 놀라 대충 던져 놓고 가 버렸지만.

사령부라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포위된 병사들을 위해 항공 수송으로 보급품을 투하하기는 했다. 건물 사이에 군데군데 숨은 대공포와 기관총들은 그런 노력을 심각하게 저해했다.

또, 오랜 게릴라 투쟁으로 점점 약아지기 시작한 인도인들은 다른 창의적인 방식들도 사용했다. 예컨대, 미군 보급품 상자들을 입수하면 내용물은 다 홀라당 까먹어 버리고, 안에 온갖 폭발물을 가득가득 쟁여놓고 굶주린 미군들이 눈이 뒤집힐 만한 데에 가져다 두었다.

섣불리 보급품을 주우러 가던 동료가 어디선가 날아온 기관총탄 세례에 그대로 찢겨 버리거나 위장된 폭발물 때문에 부대째로 터져 버리는 꼴을 본 이들은 말 그대로 정신적인 붕괴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씨발… 제기랄… 엄마….”

“이봐, 존스 일병, 이봐!”

“….”

아직 전장 경험이 많지 않은, 그러나 너무 많은 격전에 투입된 병사 하나는 총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쉘 쇼크’. 미국의 정신의학계에서는 그렇게 부르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은 이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부르는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소대장은 병사의 이름을 몇 번 불러보아도 답이 없자 조심조심 병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총을 빼앗아야 한다.

몇 번이고 미쳐 날뛰는 병사들에 의해 상관살해나 병영 내 총기난사를 겪은 미군이 배운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일단 총부터 빼앗고, 정신병원이든 어디 창고든 가두어 놓아라. 총부리를 뒤통수에 디밀 수 있는 것은 매복한 적군뿐만은 아니었으니까.

“자, 토미, 착하지? 잠깐… 총 좀 줘 볼래?”

“안 돼애애애!! 안 돼! 안 돼! 씨발! 인도 새끼들이 온다!”

병사들은 기겁하며 엎드렸다. 다행히 총기가 안전 상태로 되어 있었고, 병사의 정신상태가 그 정도로 망가진 상태는 아니었는지 소대장의 면상에 그대로 총알을 꽂아버리지는 않았다.

“토미! 제기랄! 나 제임스야! 소대장!”

“…아? 아아아악! 싫어요, 나 이제 그만, 그만할래요!”

“자 그래, 알았다. 일단 총부터….”

“인도 놈들!!!! 인도 놈들이 온다! 으아아아아악!”

자기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 인도인 저격수들의 관심을 더 끌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하는지, 병사는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옆에서 지켜보던 병사들이 그를 말리려 달려들어 팔다리를 붙들고 입을 막자 토미는 자기 입속에 파고든 두툼한 손바닥을 꽉 물어 버렸다.

“악! 내 손! 아아아악!”

“빼! 빼! 그냥 빼 버려!”

“살려 줘! 살려 줘!”

아수라장이 된 진지 위로 인도군의 구식 비행기가 흥겨운 캐럴을 틀어 주며 날아다녔다. 간간이 울리는 총성만이 이곳이 고향의 명절이 아니라 전장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시궁창 같은 전장의 생활만 뺀다면.

* * *

“각하, 저희 부대는 현재 공세를 위한 물자가 극히 부족합니다. 공세에 나서려면….”

“자네는 어제도 그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래서 안 될 것 같으면 물자를 다른 부대에 일부 넘기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면….”

“그러면 저희 부대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말꼬리를 잘라먹고 따박따박 말대꾸까지 하는 휘하 사단장을 보면서 프레데릭은 관자놀이가 지끈거려왔다.

대부분의 부대는 없는 무기며 탄약을 나누어 가지고 캘커타로 쾌속 진격했다. 그 상태에서 보급이 끊겨 버리자,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기가 가진 물자들을 꼭 틀어쥐고 내놓지 못하겠다고 악을 썼다.

‘나는 살아 나가야겠다! 이 포위망을 돌파할 수 있다!’

딱히 전우애라곤 없는 타국 출신의 부대가 돌파작전을 하도록 물자를 넘겨주었다가 저들만 살아 나가는 꼴은 다들 보고 싶지 않아 했다. 물자를 모아 넘겨주었다가 습격을 당해 큰 피해를 입는다면 자기 모가지가 위험할 걸 아는 하급 지휘관들은 병사들의 탄약 사용을 통제하면서도 꼭꼭 모아서 보신을 준비했다.

“끄응….”

그사이에 오염된 물을 마신 병사들에게는 이질이 돌기 시작했다. 무슨 열병 같은 것도 돌아 건장하던 병사들이 픽픽 쓰러져 나갔다.

빌어먹을 약 몇 종류만 있었더라면 웬만큼은 치료를 할 수 있었겠지만, 그마저도 어려웠다. 초반의 잔학한 반란군 처형과 포로에 대한 가혹행위에 대한 복수로 인도군 역시 소위 말하는 ‘룰’을 지키지 않았다.

여기서 항복한다면? 과연 저들은 손에 넣은 귀중한 미국인 포로들을 어떻게 사용할까!

나치 독일이 포로들을 가지고 무슨 짓을 했었는지 기억한 프레데릭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안 그래도 전쟁에 진절머리가 나 있던 국민들에게 자기 아들들이 머나먼 땅의 수용소에서 시름시름 앓으며 죽어 간다는 소문들이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까.

책상 위의 두 장의 전문을 내려다보자 이가 갈렸다.

[항복은 불가하다. 구원군이 올 때까지 저항하라. 공수물자 보급은 증가될 것이다.]

나토군 총사령부,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미 정부는 이렇게 명령했다. 절대 항복하지 말라.

여기서 6군단이 항복한다면 인도에서의 향후 활동이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소련의 눈치가 보여서라도 추가 파병이 어려운데 1개 군단이 통째로 증발한다면 아무리 현지 병력들의 협조를 받는다 하더라도 반군과 싸우겠는가?

저들은 6군단을 살려 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럴 방법이 없었다.

포위망 밖에는 구원하러 올 병력이라곤 소수의 패잔병들밖에 없었고, 점점 겹겹이 방어선을 둘러치기 시작한 인도군은 산발적인 게릴라 습격으로 포위망 안의 병사들을 지치게 하며 조여들었다.

반면 다른 전문은 조금 더 부드러웠다.

[인도 혁명군은 공식적으로 나토 6군단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바입니다. 귀 군대는 아군의 포위망을 풀어낼 여력이 없으며 무익하게 병사들의 피해를 늘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내용만큼은 충격적이었지만.

수백 년의 식민지 역사상, 서구의 정규 군대를 회전에서 이긴 식민지 군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6군단 5만 명이 항복한다면 역사상 최초이자 최악의 참패가 될 것이다.

다만 병사들의 처우를 보장한다는 점만큼은 매력적이었다. 그만큼 믿을 수도 없었지만.

‘이게 알려진다면 병사들의 사기는….’

“각하! 각하! 급보입니다!”

“…또 뭔가.”

“인도 반군이 선전방송으로… 투항할 경우 병사들에 한하여서는 언급한 관대한 처우를 유지한다고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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