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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80화 (280/300)

# 280

280화

“…크리스마스가 문제가 아니로군 이제.”

폴 프레데릭 군단장은 빈말로라도 휘하 사단장과 연대장들 같은 일선 지휘관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기 어려웠다.

[군단장 각하, 저희 부대는 현재 조우한 적 부대를 전부 격파하고 승승장구 중입니다. 다른 부대를 예비대로 돌리심이….]

[저희는 저희 상부로부터 일선의 판단을 존중할 것임을 미리 확인받았습니다.]

‘북대서양 조약기구’는 표면적으로 회원국 공통의 이해관계를 위해 설립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연맹체는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 같은 공통의 거악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회원국 간의 단결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적잖은 수의 고위 지휘관들은 ‘중대장도 안 해본 백면서생 참모’가 자기네 상관이라는 걸 상당히 고까워했다. 또, 화려한 전공을 세워 귀국해야 할 판에 저 꼰대가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진군을 방해하는 것에 짜증을 냈다.

“뭐 제대로 된 게 하나가 없어!”

군단장이 그렇게 투덜거리며 휘하 지휘관들의 폭주를 사실상 방조하는 동안, 6군단은 이미 캘커타 시내로 빨려 들어간 지 오래였다.

‘형편없는 시스템, 형편없는 지휘관들, 형편없는 병사들….’

마셜 원수가 구축했던 미군의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은, 그가 끌어올린 인재들이 대부분 군문에서 쫓겨나며 점점 제 덩치를 이기지 못하는 둔중한 공룡마냥 무너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있었더라도 상황은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세계 각지에 몇 개씩이나 되는 전선들을 아무리 미국이라도 어떻게 만만하게 감당하겠는가? 사실상 유럽 전선은 물자를 보내는 것 빼고는 소련이 혼자 맡은 만큼 일본과의 전쟁은 거대했을 뿐, 복잡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미국이 빠진 진창은 정통 참모인 그의 눈에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방에서 전쟁을 하고, 수십만 가지 잡스러운 것들을 온 세상에 퍼 보내고. 계획 같은 것은 세울 수조차 없고…!’

‘태평양의 섬/바다’라는 단일한 전장이 아니라, 피를 말리는 더위가 내리쬐는 중동의 사막부터 인도의 정글과 온갖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아프리카에서 필요한 물건은 전부 달랐다. 그런 것들을 적지에 알맞게 보급해 주는 것은 극한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수요와 공급 역시 계획된 공세나 적의 습격이 예측 가능한 정규군과의 접전이 아니라 비정규군과의 싸움이다 보니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웠다.

“후우….”

지휘관들 역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끽해야 아프리카에서 토인들 상대로 총질이나 좀 하다가, 내전에서 아마추어 공화파들을 상대로 싸워 이겨 계급장을 딴 스페인 장교들. 그것만도 못한 포르투갈이나 이탈리아 장교들.

그들은 마치 양 떼를 이끄는 돼지 새끼들 같았다. 그나마 영국이 좀 낫다고는 하지만 육군의 기둥뿌리가 박살 났던 이후로 골골대는 것은 매한가지.

사실 미군이라고 훨씬 나은가 하면 그것은 또 아니었기에 프레데릭은 투덜댈 수밖에 없었다.

본인을 포함해, 미군 지휘관들도 자격미달이기는 매한가지. 지난 대전에서 맥아더와 갈등을 빚었던 적잖은 수의 지휘관들이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반강제로 예편당했다. 남은 이들은 예스맨, 비주류, 아니면 계급에 비해 경험은 일천하기 짝이 없는 허술한 이들.

그런 자들은 위기가 오면 대처하는 능력이 명백하게 떨어졌다.

“각하! 각하! 급보입니다!”

“뭐, 뭔가!”

“좌익 방면으로 규모 미상의 적 기갑병력이 대거 출현했다고 합니다!”

“!!!!”

* * *

“오는가? 아군의 피해도 너무 크다는 게 안타깝지만….”

“…장군 동지의 전략은 성공할 것입니다.”

나도 확신 못 하는 것을 자네가 어떻게 아나? 그렇게 반문하려 했던 니콜라이는 그냥 입을 꾹 닫고 있는 쪽을 선택했다.

장군이 한마디를 하면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많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병사이던 시절 사단장이며 연대장이며 높으신 분들이 시찰을 나오신다는 그 하나 때문에 얼마나 뻘짓들을 많이 했는가?

인제 와서 본인이 그런다면 질 나쁜 코미디밖에 안 된다. 모든 면에서 제대로 교육받은 장교들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는 니콜라이 자신이 그나마 다른 이들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졸병으로서 군 생활을 겪어 보았다는 점이다.

하나쯤 더 있다면, 장군이라는 계급장을 내세우며 가장 안전한 자리보다는, 적확한 지시를 내리고 효율적으로 지휘가 가능한 일선을 택할 깡 정도는 있다는 점?

“전군… 준비!”

[!!!!!]

무선상으로 흥분된 고함소리와 구호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전차전력은 강력한 미군 기갑사단과 맞서기 위해 시 남부에 가 있지만, 여기에는 인도 혁명군의 가장 막강한 부대, 부됸늬 중전차대대가 와 있었다.

쿠르르르릉, 콰과과광! 적막한 벌판에 천지를 진동시킬 것 같은 엔진음이 울려 퍼졌다.

“전차대 전진! 차량화부대는 각 부대를 후속하여 진군한다.”

각 대오의 선두에는 중대전투단 단위로 나누어진 중전차대대의 구성제대들이 있었다. 이들은 포르투갈군과 이탈리아군이 펼쳐놓은 형편없는 방어선을 짓밟고 차량화부대들이 통과할 틈을 만들어줄 것이다.

기갑―기계화 부대의 압도적인 기동성을 앞세워 너무 깊이 들어간 적의 배후를 강타하고 시 안으로 몰아넣어 포위섬멸한다. 이것이 니콜라이가 노리고 있는 기본적인 작전 구상이었다.

대부분의 제대 지휘관들은 니콜라이가 내린 명령을 다 이해하고 있어 딱히 더 붙일 말이 없었다. 하지만 뭔가, 뭔가 한마디가 더 하고 싶었다.

“…인민을 위하여, 승리하자.”

[만세! 만세! 만세!]

인도 말은 모르지만, 세계 어디서나 환호하는 목소리는 비슷했다.

이 전투가 끝난 이후에도 그럴 수 있기를.

* * *

인도혁명군의 우익, 즉 캘커타시 북부 방면에 제대로 된 기갑전력이라고는 부됸늬 전차 단 1개 대대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T―34 전차들은 남부에서 미 4기갑사단을 상대하느라 일진일퇴의 혈전을 벌이는 상태. 니콜라이는 이 상황에서 사기가 낮은 적을 상대로 좀 더 허장성세를 펼쳐 보기로 결정했다.

공세 전면의 창끝에는 돌파를 담당할 중전차 중대전투단이 하나씩 배치된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 수많은 트럭들에 철판이며 마분지를 덧대 붙이고 120mm 박격포 포신을 주포처럼 붙여 놓아 전차처럼 위장했다.

지금과 같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시간에는 천지를 진동시키는 기갑부대의 굉음과 섞여, 저것이 전차인지 아니면 허술하게 위장된 트럭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으아아아악! 전차다!!!”

“후퇴하라! 후퇴!”

“항복! 항복한다! 나 항복한다고!”

물론 저게 무슨 전차인지 알아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너지기에 바쁜 적군에게 그다지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개중에 정신줄을 잡은 통신장교 하나는 그래도 벌벌 떠는 손을 부여잡고 무전기에 현재 상황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아… 아군 전면에 적 중전차 출현! 적어도… 적어도 1개 대대, 아니, 전차로만 연대급이다! 무수히 많은 수의 차량화부대들이 후속하는 중!”

[뭐? 다시 보고하라. 적의 전차전력은 그렇게 많지 않다. 연대급 전차 병력이 맞는가?]

“연, 연대급 혹은 그 이상이다! 적이 중전차를 모조리 아군 방면에 투입한 것으로 판단된다. 증, 증원을….”

[증원은 불가능하다! 현 위치를 사수하라!]

사령부는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졌다. 연대급 중전차부대가 곳곳에 투입되었다는 보고들이 올라왔다.

그들이 아무리 믿기 어렵고 질적으로 낮은 수준인 포르투갈 부대들이었다지만, 없는 전차를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라고 사령부는 믿었다. 그러니 확실히 전차가 출현하기는 한 것 같았다.

“적의 전차전력은 우리가 파악한 수준입니다! 어디서 새로 전차들이….”

“소련이 증원을 보낸 것일 수도 있소. 그들에게 항의를 해야….”

“지금 항의를 해 봐야 무슨 소용입니까? 당장 우리 병력이….”

“4기갑사단 전면에서 빼 온 게 아닙니까? 지금 잠시 후퇴한 김에 반대 측으로 병력을 빼돌린 게 아닐지….”

연합군 사령부의 내로라 하는 지휘관들은 한마디씩 하면서 갑론을박을 펼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여론은 소련이 막대한 전력을 지원했다기보단 인도 반란군이 병력을 돌려 배치했다는 데 기울었다.

“상식적으로 그 무거운 것들을 수백 량이나 티베트 고원을 넘겨 여기까지, 그렇게 빨리 배치했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아마 4기갑사단을 상대로 투입한 2개 여단 중 하나를 우익으로 분산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포르투갈인들이나 이탈리아인들이나 전장에서 겁 많기로는….”

“뭐요? 지금 우리를 모욕하는 거요?”

“솔직히 내가 틀린 말 했소? 아니지, 전장에 남아 있지도 않으니까 전장에서 겁이 많다는 건 틀린 말인가?”

개판 2분쯤 전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다시 갑론을박을 벌이기 시작했다. 일단 한 가지는 합의가 되었으니.

“4기갑사단 전면이 비었다면 4기갑사단이 진격해서 적의 배후를 찌르도록 하면 될 것 아니오? 6군단 병력을 일부 후퇴시켜 보강하든지 하고… 아니, 그만 좀 싸우시오! 제발!”

“이자가 이탈리아를 먼저 모욕했소! 결투를 신청한다!”

“사실을 말하는 것도 모욕이오? 제기랄! 이래서 파스타들이란….”

“그만! 그만!”

사령부의 그 누구도 진심으로 인도 반란군들, 지금 6군단에게 무력하게 짓밟히는 게릴라들이 전차 한두 대가 있다고 해서 유럽 군대의 정규군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4기갑사단 측도 마찬가지였다.

“각하, 사령부에서 진격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래? 마침 보고는 받았네. 도하용 부교들도 완성되었다고 하니 저놈들의 머리통을….”

육중한 M26 퍼싱 전차들이 도하하기 위해서 설치해야 하는 부교들은 작업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미군 공병대는 최대한 신속한 작업을 통해 사단 진격로에 부교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마침 저놈들의 전력도 반 토막이 나서 위쪽으로 돌려 찌르기를 시도했다고 하는데, 6군단이 그들을 붙들어 놓는 동안 기갑사단이 진격해서 적군을 박살 내면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원래 계획대로 맞아떨어지는 꼴이다. 중앙과 좌익이 방패가 되는 동안 우익의 4기갑사단은 망치가 되어 진군해 적을 박살 낸다. 저들이 무슨 잔수작을 부리든지 간에….

“저놈들도 꼴에 전략전술을 배웠답시고 망치와 모루니 양익기동이니 해 보려나 본데… 망치가 쇳덩이를 때리는 동안 모루가 빠개지는 꼴을 보면 허탈하겠군그래!”

그가 듣기로도 6군단에서는 계속 소부대로, 산발적으로 덤벼 오는 게릴라들을 밟아 버리고 승리했다는 소식만이 들려왔다. 제일 강한 저항에 부딪힌 바람에 공이 퇴색될 것을 두려워하던 차에 희소식을 듣자 일단 진군명령부터 튀어나왔다.

사실 소련의 스탈린이 마술사처럼 소매 속에서 뭔가 수를 뽑아내 던진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런 게 있으려면 일단 항공기나 수송철도라도 도착해야 했다.

그런 가능성들이 다 봉쇄된 상황에서 인도군은 할 수 있는 수가 별로 없었다. 사단장은 스스로의 판단에 확신이라도 내리려는 양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제 놈들이… 뭘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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