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9
279화
“적이다! 적의 공습이다!”
“대공포! 총원 위치로!!”
시간은 흐르고 연합군은 캘커타에 육박했다. 그들의 공세는 늘 그랬듯 공중에서의 공습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현지에 만든 비행장 상황은 전장에서 급조한 것이 늘 그렇듯 변변찮았고, 공습 역시 많이 가해질 수 없었다. 적어도 수백만 명이 사는 대도시의 민간인들 머리 위에 폭탄을 끼얹는 것은 군사적인 부담보다도 정치적인 부담이 더 심했다.
어쩌면 정치적인 부담과 군사적인 부담이 동의어일 수도 있었다. 한때 인도 혁명군의 해방구로 선포되었던 바라나시에 전략폭격을 퍼붓고 부쩍 늘어난 게릴라 습격을 받은 연합군은 둘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휴우… 다행히 소이탄은 쓰지 않는군?”
“그것 하나만큼은 다행입니다.”
영국인들이 지어 둔 석조 건물들과 인도인들이 몰려들며 지어진 목재 판자촌이 어지럽게 뒤섞인 대도시에 소이탄을 쏟아붓는다면 적어도 수십만의 사상자가 날 게 뻔했다.
연합군은 저놈들이 민간인을 방패막으로 쓴다고 툴툴대면서도 어쩔 수 없이 어려운 방법을 선택했다.
“아니! 그걸 왜 불태운단 말이오!”
“안 불태우고서 어떻게 점령을 하겠습니까?”
“불태우면 대체 왜 점령을 할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미 공군의 폭격 능력 자체는 강력했다. 하지만 인도를 다시 점령하고자 하는 영국의 의지는 그것보다 더 강력했다.
불만을 품은 게릴라들이 수백만 명 정도 설치고 다니는 폐허를 떠안을 생각이 없던 영국은 미국의 무차별적인 전략폭격만큼은 온몸을 던져서라도 제동을 걸었다.
“미친 미국놈들! 온 인도를 다 부숴 놓을 셈인가?”
“영국 새끼들은 정신이 나갔어! 남의 돈과 남의 목숨으로 전쟁을 하는 주제에 이래라저래라 바라는 건 왜 저렇게 많지?”
서로 욕을 하면서, 연합군은 진군했다. 얼마나 많은 적군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캘커타로.
짧은 공습이 지나간 이후, 우익이자 선봉 격인 4기갑사단은 캘커타를 끼고 흐르는 후글리강 도하를 시도했다. 어차피 저 대도시의 모든 병력과 친 게릴라 거주민들을 죽일 수 없다면, 일단 도시의 물자유통을 봉쇄한다!
그것이 연합군 사령부가 세운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기갑사단은 완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어? 이게 무슨….”
[적이다! 적 전차다! 2시 방향에 매복….]
“매, 매복이라고? 여기엔 아무도 없긴 한데… 교량이 끊어졌다!”
도하를 위한 교량을 탐색하던 기갑사단의 선두 제파는 사단의 중핵인 퍼싱 전차가 도하할 수 있는 교량들이 거의 다 폭파당했음을 발견했다.
물론 폭파당하지 않은 교량도 있었으나, 교량을 넘어 적지를 정찰하려던 수색소대들이 전차부대의 매복에 의해 격파당하자 사단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적 전차가 얼마나 있는 건가!”
“…적의 추정 전차전력 전부가 4기갑사단 전면에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현재 보고되는 규모만 해도 1개 사단 이상…!”
“소련 T―34 전차로 1개 사단? 제기랄! 말 그대로 모조리 몰려왔군. 저놈들도 이쪽 방향이 주공이란 걸 아는 건가?”
나토군도 눈먼 장님, 귀 막힌 귀머거리가 아닌 만큼 인도 반란군의 전력에 대해서는 최대한 탐색전을 펼쳤다. 이게 민간인인지 게릴라인지 구분할 수 없는 대부분의 보병전력은 그렇다 쳐도, 기갑이나 포병 정도는 파악해야만 했다.
인도 반란군은 나토군의 정규 기갑부대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전력인 2개 여단, 혹은 1개 사단 규모의 기갑부대를 끝까지 뒤로 빼면서 전력을 보존했다. 그러나 마지막 격전지가 될 수 있는 캘커타에서까지 전력을 보존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기갑부대가 대거 투입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제길! 어차피 우리가 성능에선 훨씬 우수해! 매복만 잘 찾아내고….”
[수색대는 교전 후 후퇴합니다. 현재 파괴되지 않은 교량 근처에는 적어도 연대급의 기갑부대가 주둔한 듯합니다.]
“괜찮아! 공병부대를 불러서 도하용 부교를 설치하지. 공군 지원을 요청해 저들의 발목을 붙들고, 부교를 통해 도하해서 우월한 화력으로 격멸하면 되는 거야! 포병이든 공군이든!”
보고를 듣는 사단장은 차라리 안심이 되었다.
‘적은 더 이상의 여유가 없다.’
추정되는 적 기갑전력 전부가 우익의 전면에 배치되었다면, 여기서 패배하는 순간 적은 모든 기갑전력을 상실한다.
아무리 지뢰나 로켓포 같은 수단이 있다지만 여전히 전차는 전차였다. 인도 반란군 같은 경무장, 저숙련 보병이 퍼싱 같은 중전차를 저지할 수단은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다.
캘커타를 봉쇄하고, 적을 천천히 정리하면서 남인도 지역의 게릴라 세력들이 첨단 무기에 손을 대지 못하고 점점 고사하도록 하는 것이 전략 목표. 이쪽도 피해를 감수하면서 인도군의 기갑전력을 박살 내버리면 그 이후가 편해진다.
“우리의 승리가 대전을 결정한다! 한 번만 승리하면 그 이후에는 고향이다!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보내자!”
[!!!!!]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사단장은 병사들이 어떤 걸 듣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 개 같은 땅에서 모두들 떠나고 싶어 했다. 사단장 그 자신까지도. 이곳에 배치되어 인도인 게릴라들을 상대로 도시 봉쇄와 치안유지를 해야 할 이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솔직히 그들은 너무 지쳐 있었다.
“이제는 6군단 몫이지…?”
적의 기갑부대를 격멸하고 캘커타 후방으로 진출하는 것으로 기갑사단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어차피 저 파리가 들끓는 지옥의 구덩이 같은 곳으로 전차들을 집어넣을 게 아닌 이상, 그 이후부터는 보병이 해야 할 몫이다.
“잇!”
빌어먹을 모기 새끼가 윙 하고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단장은 욕설을 퍼부으며 모기를 때려잡기 위해 팔을 휘휘 내저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 * *
니콜라이는 저들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있었다. 휘황찬란한 훈장을 가슴팍 가득 매단 젊은 대령은 이제 젊은 대령이 아니라 젊은 장군이 되었다.
대체 어디서 났는지, 계급장을 바꿔 달아 준 마카로프는 어제까지 니콜라이의 것이던 대령 계급장을 달고 인도인들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뭐라뭐라 말하자 인도인들은 껄껄 웃으며 박수를 쳤다.
“뭐라고 했나?”
“아, 이번 전투가 승리로 끝날 거라 미리 특진했다고 하니 저렇게 좋아하더군요.”
“끄응… 자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더 부담이 되지 않나?”
“하하하하, 농담입니다. 사기진작 차원에서 준 거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장군이라면 장군을 놀려먹는다며 면박을 줄 만도 했지만, 니콜라이는 아직도 스스로가 장군에 어울리는 인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 딱 대위나 소령 정도를 하면서 기갑중대의 중대장 정도라면 알맞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수만 명의 인도군을 이끄는 지휘관 내지는 참모장이 되어 있었다. 어깨에 붙어 있는 견장은 날로 갈수록 불편해졌다.
‘빨리 전역을 하든지 해야지….’
다만 그 전역이 무덤으로 가는 것은 아니길 바랐다. 니콜라이는 앞으로 태어날 아들딸들을 위해 이런저런 이름들을 준비해 두었다.
다 붙일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카티아가 들었으면 기겁했겠지만, 니콜라이 자신같이 별 볼 일 없는 사람도 인민영웅인데 카티아도 모성영웅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군의 기갑부대들은 우세한 전력의 적 기갑사단을 맞아 분전 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적군은 공병부대를 동원해 부교를 설치하고 도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포병세력을 동원해 처리하게. 마카로프 대령, 포병에 대해서는 자네에게 맡기지.”
“예! 알겠습니다. 그다음으로는….”
계획은 세워진 바로 다음 순간부터 엇나가기 시작한다지만 아직까지는 무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적군은 캘커타를 빠르게 취하겠다는 생각으로 좌익이 길게 신장되는 것을 무시하고 진군했다. 그리고 그 무시는 인도군의 거의 유일한 기갑전력이 반대편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고 확신이 될 것이다.
기갑여단 2개와 프룬제 출신의 엘리트 포병장교, 마카로프가 한 손에 쥐고 통제하는 포병전력들까지 더해지면 아무리 미군의 기갑사단이라고 해도 발을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전면의 미 기갑사단은 부됸늬 전차에도 못지않은 중전차로 무장한 3개 기갑연대에 기계화연대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포병 전력이 부족한 전차부대는 직사포로 박살 낼 수 있는 토치카 이상의 목표물이 나올 경우엔 발이 묶였다. 그래, 참호는 뭉개버리고 토치카는 박살 낸다 치자. 하지만 지형지물을 끼고 매복한 적 전차 같은 것은 곡사화력의 도움 없이는 답이 없었다.
저들은 공군을 공중 포병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스탈린 동지께서 교시하신 대로 ‘포병은 전장의 신’.
모든 게 부족한 이 개판 속에서 지속적인 화력 지원이 가능한 것은 오직 포병뿐이었다.
“게릴라 부대들 중 정예 부대들은 전면으로 나서 적 중앙의 6군단을 계속 도시 쪽으로 유인하는 중입니다.”
“…알겠네. 그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하도록 하지.”
그리고 니콜라이가 던진 ‘미끼’는 바로 인도 혁명군의 정예부대였다.
전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후퇴하는 것이었다. 후퇴하면서 박살 날 수밖에 없는 사기와 편제는 전장에서 하루아침에 재건할 수 없었다.
정예부대의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혁명군은 니콜라이의 제안을 수락했다. 가능한 방법이 그것 외엔 없어서일까?
게릴라 부대들은 선이 아니라 점 형태로, 마치 구축하다 만 방어선의 잔해처럼 배치되었다. ‘철벽’ 대항군 여단장이 풋내기 프룬제 장교들을 낚기 위해서 자주 사용하던 수법이었다.
적이 진격해 올 경우, 반격하다가 도망치면 저들은 교리대로 전과를 확대하기 위해서 추격했다. 그 와중에 아군 피해가 작을 수는 없었지만, 점점 적 6군단 병력은 ‘곧 격멸할 수 있는’ 적군을 찾아 진격했다.
이제 도시는 늪지대처럼 천천히 적의 발목을 묶을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자니 끝없이 펼쳐진 슬럼가와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현지에 익숙한 게릴라 병력들. 뒤로 물리자니 근질근질할 뒤통수 때문에라도 들어갈 때처럼 후다닥 빠져나올 수 없다.
그리고 시가전이 되면?
그때부터는 막강한 함대와 공군을 자랑하는 미국의 시간이 아니라, 대조국전쟁 시절부터 파시스트들과 피 튀기는 싸움을 겪어 온 소련의 시간이다.
“반격 작전은 내가 직접 지휘하도록 하지. 내가 총체적으로 입안을 하기는 했지만… 여기까지 끌고 와 놓고 미안한 말이네만 난 솔직히 자신이 없어.”
“예? 준장님만 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어디 있기는. 솔직히 니콜라이는 자신이 없었다. 사관학교도 안 나온, 속성 임관한 기갑장교 주제에 군 규모에 비하면 적다지만 증강된 여단 규모의 포병화력을 적시에 척척 운용할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군사고문단의 ‘진짜’ 엘리트 장교들이라면? 니콜라이는 스스로를 믿느니 그들을 믿는 쪽을 선택했다.
“자네가 나보다 포병에 대해선 더 잘 알아. 목적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고… 나는 내 주 전공을 맡으러 가지.”
“…알겠습니다, 각하!”
“각하는 무슨.”
마카로프는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경례를 붙이고는 임시 편성된 포병단을 장악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니콜라이에게는 다른 젊은, 인도 말에 능한 장교 하나가 통역으로 붙여졌다.
니콜라이는 스스로 되씹어 보았다.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반격작전, 돌파작전의 선두에서는 대담한 결단이 필요했다. 초급장교이던 시절, 여단장이며 사단장 같은 전술제대 지휘관들이 결단을 내리지 못해 할 수 있었던 돌파가 돈좌되던 게 한두 번인가?
최소한 일선에 가까운 곳에서, 가급적 일선에서 그의 눈으로 보고 판단을 내리고 싶었다. 빈말로라도 인도 혁명군의 병사들은 정예병이라 할 수 없었고, 그들의 보고를 통역까지 거쳐서 이해해 가며 정확한 명령을 내릴 자신도 없었다.
가장 필요한 곳에서, 인민을 위해 싸울 뿐. 그것이 그가 아는 장교의 덕목.
‘나 없이도 카티아는 잘 살 수 있을까?’
전장 속에서도 명랑했던 그녀라면 어쩌면, 그가 죽은 이후에도 잘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워낙 미녀고, 음, 스타스는 아직 어리니 어쩌면, 만에 하나, 재혼을 할지도…
“씨발, 내가 뒈지나 봐라.”
갑작스럽게 장군님이 욕설을 내뱉자 두 발짝 뒤에서 따라오던 통역장교는 흠칫 놀랐다. 하지만 니콜라이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살아남는다. 혼자만 살아남을 수는 없으니, 병사들과 장교들도 최대한 많이 살려서 돌려보낸다. 지금까지 전장을 헤쳐나온 것처럼, 어떻게든 될 것이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