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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77화 (27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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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화

한 발, 앞으로 디딘 그는 지도의 병력 배치도를 내려다보았다. 인도인 장교는 새로 온 고문단장을 위한 설명을 시작했다. 마카로프는 니콜라이의 한 발 뒤에 붙어 낮은 목소리로 통역을 해 주었다.

“적군은 보병사단 2개와 1개 차량화사단으로 구성된 6군단을 앞세워 캘커타로 진격 중입니다. 이를 후속하는 좌익의 포르투갈 3사단, 이탈리아 원정사단, 우익의 미 4기갑사단이 이렇게 배치된 상태입니다.”

“흠, 정보력만큼은 우리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것 같군?”

“그렇습니다. 병력의 이동만큼은 우리 측에서 침투시킨 스파이들이….”

좋다. 한 가지만큼은 좋았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험하지 않다. 프룬제의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에서 본, 선쭈(Sun tzu, 손무=손자)라는 사람이 했었던 말인데 니콜라이는 그 말이 마음에 쏙 들었다.

미군의 전력 역시 인도 혁명군 측은 상당한 수준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공중전력은 적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합니다만, 나쁜 기상상태, 비행장 시설의 미비, 그리고 아군의 방공포병 전력 덕분에 그럭저럭 전선을 유지할 정도는 됩니다.”

“미군 파일럿들은 몇 번의 전략폭격 시도에서 손실을 입은 후 철저한 호위하에 제한적인 작전만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부 첩보에 따르면 파일럿들이 상부에 대거 항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적군의 무장상태는 균일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기밀 첩보입니다만, 이탈리아는 미군이 공여한 장비를 일부러 고장 내 손실처리한 후 본국으로 보내 수리한 후 다시 써먹는다고 합니다. 포르투갈 역시 비슷한 수법을 사용해 아프리카의 진압부대에 보내다가 미군에게 발각되었는데, 그 때문에 두 나라 군대는 상태가 상대적으로 나쁩니다.”

니콜라이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아니, 이런 건 다 어떻게 알아낸 거요?”

“예? 귀국 정보부에서 매주 알려 주고 있습니다만….”

세상에나. 이제 전략지도가 어쩐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적아 부대를 상징하는 체스 기물들은 각자 종이쪽지 하나씩을 깔고 있었다.

“보유한 전력을 의미합니다.”

“이걸 좀 번역해 줄 수 있겠나? 나도 알아볼 수 있어야 할 테니. 그리고….”

“옙!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니콜라이가 한동안 전략지도를 고심하면서 들여다보자 사람들은 오오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만, 니콜라이가 고심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지형의 배치나, 적군의 규모, 그리고 놓인 상황도 달랐다. 그가 겪어 본 것은 모의전이었으니까.

‘중앙에는 적군이 노리는 전략적 목표물. 그것도… 엄청난 고가치 표적.’

오기 전까지는 캘커타가 세상의 어느 구석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지만, 오면서 이곳의 정치적, 군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다. 제국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인도의 혁명을 남쪽에 가두어 버리고 포위할 수 있는 요지.

그리고 혁명군 입장에서는 소련 및 바다와 연결을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통로였다.

휴전 전까지 연합군이 이곳을 차지하고 싶어 하는 의도가 적군의 배치와 기동에서 너무 뻔히 엿보일 정도이니, 장군들은 얼마나 몸이 달아 있을까?

그러니 전력을 중앙에 집중해 최대한 빠르게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시가전을 치르기 위해 보병사단을 잔뜩 배치한 적의 주력 6군단이 얼마나 피로할지는 안 봐도 뻔했다. 니콜라이도 라스푸티차가 막 끝난 상황에서 공세에 참가해 봤었으니.

“일단… 지형 정찰을 해 보아도 되겠습니까?”

“예! 예! 좋다! 아니, 좋… 좋다!”

어쩐지, 이 인도인들은 니콜라이가 무슨 대단한 작전을 세워 줄 것처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설픈 러시아어로 요청을 수락한 인도인들은 니콜라이를 향해 엄청난 기대가 섞인 부담스러운 눈빛들을 팍팍 쏘아 보냈다.

하지만 솔직히 니콜라이는 딱 기본만 하고 싶었다. 딱 전술의 기본만. 적의 장군들이라고 바보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그가 아는 것은 기본이었으니까.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지형을 숙지해야만 했다. 공중정찰을 위해 사령부를 걸어나오자, 마카로프 중령이 잰걸음으로 그를 따라와 물었다.

“역시! 페트로프 대령님이라면 뭔가 준비된 게 있을 줄 알았습니다!”

“아니, 난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소리인가? 일단 지형부터 봐 두어야 뭘 알 수 있겠지.”

“하하하하하, 그런 말 마십시오. 대령님이 그 ‘철벽’ 여단장을 상대로 얼마나 선전했는지 프룬제 동기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음?”

마카로프는 어디서 이상한 것을 주워듣고 왔는지, 니콜라이의 지휘력이 어쩌느니, 역시 대단하다느니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떠들어 댔다. 거기에 사실이라고는 미인 사모님을 낚아챈 능력자라는 것 정도일까.

지도 한 뭉치를 품에 안고, 대조국전쟁 초반기에나 간신히 현역이었을 복엽기에 탄 니콜라이는 나침반과 망원경을 들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각종 축척의 지도들에 표시된 온갖 지형지물들을 지금 숙지해야 했다. 지금 놓치고 지나간 한 가지 때문에 아군의 피가 한 방울 더 흐른다면 니콜라이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사관학교 출신들처럼 전략전술에 대해 뭘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 누군가? 그 외눈 장군 이래로 전략전술의 기본은 망치와 모루라고 하더군?”

“한니발 말입니까?”

“아! 그래. 그런 이름이었나?”

제국주의 군대 역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좁고 아군의 배치가 허술한 우익의 전면에 강력한 기갑제대를 투입해서 일점돌파를 노린다. 다만, 캘커타라는 대도시에 배치된 수많은 게릴라들을 너무 가벼이 보는 것 같았다.

수많은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레닌그라드 같은 곳은 아니더라도, 무질서하게 스프롤링(Sprawling)을 거듭한 시가지와 슬럼가의 혼합물은 아군의 모루가 되어 줄 수 있었다.

“흠, 저 강 이름이 뭔가?”

“예? 아… 아마 후글리강인가 하는 이름일 것입니다.”

“도시 이남, 즉… 아군 좌익에 있는 모든 교량을 파악하게. 폭파 전문가들은 데리고 있겠지?”

갑자기 따따따따 명령을 쏘아 대기 시작한 니콜라이를 보고 마카로프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병사 출신으로 특진에 특진을 거듭하고 수많은 훈장을 쓸어모은 것 치고는 니콜라이는 딱히 비범해 보이는 것이 없었다.

프룬제 시절에도, 도서관에서 제일 열심히 공부를 하고 아내가 미인인 것 빼고 탁월해 보이는 점은 그다지… 그다지 없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명령을 내리는 페트로프 대령은 거역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교량의 설계하중을 알아내고, 45톤 이상인 것은 언제든지 폭파할 수 있도록 준비하되, 가급적 그 밑으로는 건드리지 말게.”

“예? 45톤 말입니까?”

“미국 4기갑사단이라고 했나? 미군 기갑사단의 주력 전차들은 45톤 정도 되는 퍼싱 중전차들일세. 우리 부됸늬에 못지않은 거구들이지. 반면, 우리 T―34 전차들은 30톤대가 아닌가?”

“…아!”

기갑장교답게 니콜라이는 적군이고 아군이고 전차들의 제원 정도는 달달 외우고 있었다. 마카로프는 그제야 니콜라이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즉, 저 강을 아군 T―34들은 넘어 다닐 수 있고, 적군 퍼싱은 넘어 다닐 수 없게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것일세!”

이미 전략의 얼개는 나오고 있었다. 인도 혁명군은 장비 자체는 빈약하지만, 도시와 강이라는 강력한 모루를 끼고 있었다.

반대로 소련군 역시 수는 적지만 나름의 망치는 가지고 있었다. 일단 확인된 전력으로는, 포르투갈군이나 이탈리아군이 가지고 있는 대전차 병기들은 부됸늬를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솔직히 말해 주게. 자네가 보기에, 인도인 게릴라 소부대 지휘관들의 역량은 어느 정도인가? 내 말은, 음… 후퇴하면서 부대가 와해되지 않도록 붙들어 놓을 수준은 된다고 보는가?”

“예? 으음… 예. 가능할 것입니다. 일단 여기까지 버텨 온 게릴라들의 사기 하나만큼은 대단히 높습니다. 후퇴하면서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 부대 전체가 붕괴되는… 그런 수준은 아닙니다.”

“아주 좋아. 잘 됐군. 없을 것은 없는데, 있을 것은 다 있군.”

이만큼의 환경을 마련해 준 사령부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비전투 물자로 위장해서 잔뜩 실어 보냈을 트럭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니콜라이가 세운 계획이 가능하기는 했을까?

머나먼 타향에서도 해는 똑같이 붉게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정찰기는 이제 기수를 내리고 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에서 꾸물대는 어두운 안개는 몰려오는 적군을 암시하는 듯했다.

‘성공할까?’

한 번도 확신을 가지고 전장에 임해 본 적은 없었다.

전장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그와 같은 일개 졸병이 살아남아 대령이 되기도 했고, 그 누구보다 영웅적이고 용맹한 부됸늬 원수와 같은 이도 흉탄에 전사하는 곳.

단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전장에서 확신은 오히려 교만을 불러오는 적이라는 것을 전장에서 체득하기는 했다.

과연 운명의 여신은, 그에게 한 번 더 웃어줄까?

* * *

지상에 착륙하자 인도 혁명군 사령부에 있던 고위 장교들이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마카로프는 니콜라이가 알려 준 명령들을 고문단의 다른 장교에게 알려 준 후 니콜라이를 바짝 따라붙었다.

“어느 정도 계획의 얼개가 잡혔습니다. 일단… 일선 부대들과 연락이 유지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소련이 보내 준 무전기들 덕분에….”

“좋습니다. 그럼… 좌익에서는 빠르게, 우익에서는 천천히 후퇴를 명령해 주십시오. 제가 살펴보니, 다수의 작은 하천들이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것들을 천연 방어선 삼는다면 적의 보병부대가 진격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 아, 음… 예! 예!”

맹해 보였던 젊은 대령을 내심 우습게 생각하던 인도 혁명군의 장교들은 순식간에 달라진 니콜라이의 태도에 화들짝 놀라 제안, 아니, 명령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우리 우익이 상대할 포르투갈군은 적의 세 방향 중 가장 약체입니다. 이들이 담당해야 할 방어 전면을 최대한 늘리면서 부대 간 간격을 이격시키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차량화부대는 우익에, T―34 기갑여단은 좌익에 배치하고, 공병들도 좌익 방면에….”

사령부 안의 전략 배치도 위를 니콜라이의 손이 휘젓고 다녔다. 이곳저곳으로 부대를 옮긴 이후 나온 결과물은 제법 기묘한 모양새였다.

우익에는 부됸늬 중전차대대와 차량화부대들이, 좌익에는 기갑여단과 포병대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된 모습. 어느 쪽에서 무얼 할는지, 짐작이 되지 않는 모양새였다

“이것은… 대체….”

“개요는 이렇습니다. 여기, 중앙의 캘커타는 모루가 됩니다. 좌익의 기갑여단들이 적의 강력한 기갑사단을 맞아 싸우는 동안… 우익에서는 부됸늬 중전차대대를 앞세우고, 차량화부대를 운용해 적의 중앙 주력을 배후에서 찌르면….”

“…!”

“여기서 캘커타에 배치될 부대들이 잘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은 지금 어떻게든 도시를 빨리 점령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습니다. 도시 안으로 끌어들이십시오. 시가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대항군 여단장, 마카로프가 ‘철벽’이라고 불렀던 그자는 이런 운용을 굉장히 좋아했다. 미끼를 던지며 적을 끌어들인 후, 미끼를 문 적을 포위기동과 포병의 집중운용으로 분쇄해 버리는.

그 수법에 수많은 프룬제 출신의 엘리트들이 얼마나 낚여 퍼덕댔던가!

“예! 시가전이라면….”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방어진지 구축을 감독하러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카로프 중령! 날 따라오도록!”

니콜라이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하나라도 스스로 더 보고 산적한 문제들을 찾아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혁명군 장교들은 다른 모습을 그의 뒷모습에서 보고 있었다. 희미한 희망 비슷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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