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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73화 (273/300)

# 273

273화

역시, 소련의 문제는 바로 군부였다.

군비라는 막중한 짐 덩어리들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근본 체급부터가 다른 미국과 한 판 붙어 보려 한 실제 역사의 소련이 차라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혼자서 막대한 군비를 지출하며 전쟁을 치르는 미국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졌다.

반대로, 미국이 막대한 군비를 지출하고 소련은 상대적으로 적게 지출하며, 생산력 발전에 올인하자 격차는 생각보다도 빨리 줄어들었다.

“드디어 우리 인민들의 생활 수준이…!”

“서기장 동지의 영명하신 인도 덕에…!”

평소라면 그 입 좀 닥치라고 했겠지만, 인민 생활수준의 향상에 흐루쇼프가 세운 지대한 공을 생각하면 이번 한 번 정도는 봐줄 만도 했다. 숙청을 애써 참는 내 마음도 모르고 흐루쇼프는 연신 아부를 했다.

“역시 서기장 동지의 영도야말로 우리 소련의 번영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빨리 모스크바를 스탈린다르(스탈린의 선물)로….”

“자네….”

물론 파이프를 몇 번 까딱여 주는 걸로 충분했다. 합죽이처럼 입을 다문 흐루쇼프는 겁에 질린 눈초리로 파이프를 쳐다보았다. 고르바초프처럼 머리에 한반도가 한번 새겨져 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뭐, 실제 역사에서도 이렇게 충실한 딸랑이 노릇을 하다가 태세전환을 한 것이니 괜찮을까? 문제는 ‘내’가 너무 잘하는 바람에 감히 격하하기 어려운 절대적 위치에 올랐단 것이지만.

후. 알아서 잘하겠지. 고급, 선진 교육을 받은 시민들은 알아서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진보, 그리고 더 많은 발전을 요구할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내 사후 흐루쇼프의 지도가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알아서 무너지겠지.

지금은 우리의 승리를 자랑할 때다.

“헛소리 말고, 머리에 땀 닦고 따라오게. 그 친구 얼굴 보는데 꼴이 그래서야 되겠나?”

“예!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정치국원들은 다 각자 제일 좋은 인민복을 빼입고 나름대로 멋을 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촌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대체 몰로토프는 왜 가슴팍에 저 커다란 꽃을 꽂고 있는가? 포마드를 잔뜩 발라 머리를 넘기고, 코끝에 안경을 걸치고, 가슴팍에 촌스러운 꽃을 꽂은 몰로토프는 마치 제비인 척하려는 아재 같았다.

눈치 없는 보롱… 보로실로프는 폼을 잡는다고 훈장을 주렁주렁 매달았는데 머리에는 흰 맥고모자를 쓰고 바지도 빽바지에 빽구두까지 흰색으로 깔맞춤을 했다.

“….”

이미 우리는 패션에서 패배한 게 아닐까? 역시, 사회주의 국가는 자본주의에게 패배하는 이유가 있었다.

* * *

“하하하하! 반갑소. 반갑소.”

“하, 하, 하… 예, 서기장 씨. 만나 뵈어 아주 반갑습니다.”

만면에 웃음을 띤 나에 비해 미국 측 대표는 결코 말하는 만큼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해빙’을 위한 첫 수순으로 미국과 소련 간의 문화 교류를 위한 박람회에 미국 측 대표로 참석한 이는 바로 부통령, 매카시였다.

그동안 소련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하다가 미국 대표로 소련에 오게 된 매카시는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아 보였다. 정치인의 기본 덕목인 표정관리조차 안 될 정도로.

반대로 나는 표정관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매카시가 소련 국기와 성조기 사이에서 소련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는 것은 너무 꿀잼이었거든.

“오느라 불편하지는 않으셨소?”

“아… 배려해 주신 덕분에… 아주 편안했습니다.”

“그렇소? 우리 소련은 미국에서 배워 온 기술 덕에 아주 좋은 항공기를 만들 수 있었소. 소련과 미국의 우정이 이처럼 영원하기를!”

흐흐흐흐. 미소 우호를 언급할 때마다 움찔거리는 것을 보면 절로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매일같이 까던 그놈과 하하호호 웃으며 환담을 주고받기에 매카시의 정치 단수는 너무 낮았다.

맥아더 본인이 왔다면 그 정도 쇼맨십은 있었으려나? 물론 루즈벨트처럼 얄타로 날아와 회담을 할 정도의 배짱이 맥아더에게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루즈벨트와 달리 소련을 적대했기도 하고.

아무튼 박람회장에 들어가며 나는 연신 매카시에게 친한 척을 했다. 미국 부통령이라는 직무를 떠맡으면 참으로 힘들지 않으냐, 자기 생활이라는 게 없다, 그게 다 정치인의 짐이다.

‘선배 정치인’으로서 막 정계에 입문한 후배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늘어놓는 척하는 나를 보며 매카시가 부들거리는 게 딱 느껴졌다. 아니, 공산주의 국가의 숙청 대마왕이 나름 민주주의 정치인인 자기한테 선배 노릇 하는 게 꼬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여기는 우리 홈그라운드. 아무리 막 나가는 매카시라도 여기서 혓바닥을 마구 놀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 증거로, 이마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다소 과할 정도로 친한 척을 하는 날 받아주고 있지 않은가?

“하하하하하! 역시, 매카시 부통령은 유머 감각도 뛰어나시오! 이거, 내가 한 수 배워야겠구만! 으하하하하하!”

“하, 하, 하… 감, 감사합니다.”

“무얼! 우리 사이에 감사하고 어쩌고가 있겠소?”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이인가 하면 솔직히 아무 사이도 아니고 적에 가깝지만, 아무튼 그 말을 하자 매카시는 말문이 막힌 듯 컥컥댔다.

역시, 내 윙크가 먹힌 것인가? 다른 정치국원들도 그 모습을 보며 경악한 듯 혀를 내둘렀지만, 진정 경악스러운 것은 댁들 패션이다.

“그나저나, 매카시 부통령. 혹시 부인분은… 함께 오지 않으셨소?”

“아… 저는 아직 미혼입니다.”

당연히 알고 있다. 실제 역사에서 53년에 자기 사무실에서 일하는 연구관과 결혼한 매카시는 57년 죽기 직전에 갓난아기 딸을 입양한다.

난 매카시가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깜짝 놀라는 척을 했다.

“허어, 그렇구려! 역시, 가정과 국가를 둘 다 감당하는 것은 진실로 어려운 일이지. 나도 이미 부인과 사별한 터라 이해가 가오. 허허허허, 이런 면에서 또 공통점이 있었군!”

마음에 안 드는데 자꾸 친한 척을 하는 윗사람을 연출하는 이유는 있었다. 심리적으로 당황해야 무언가 실수가 나오는 법.

지금 이 대화는 십수 개의 방송국 카메라들에 의해 녹화되고 있었다. 매카시가 실수한 내용은 악의적이고 의도적으로 편집되어 전 세계에서 방송전파를 탈 것이다.

이렇게 매카시를 곯려 주는 동안 우리의 걸음은 박람회장에 이르렀다. 이 박람회의 주제는 바로 ‘소비에트 가정’이었다.

“자! 와서 보시오. 우리 소련의 ‘평범한’ 노동자 가정이 어떤 것을 누리며 사는지. 뭐, 미국 역시 부유를 누리고 있겠지만….”

이제 미국의 수많은 가정 속으로 프로파간다를 때려 줄 시간이다. 감사하게도 매카시는 어버버하며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다른 수행원들은 당황하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권한이 없었고.

박람회장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체 회장은 하나의 가정이었고, 각 관별로 거실, 주방, 침실, 화장실 등에 비치할 수많은 가정용 가구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련의 ‘표준적 노동자 가정’, 요새 말로 하면 ‘5만 루블 가구’가 대략 이 정도 생활수준을 누린다! 이것이 우리 소련이 미국에 보여 주고 싶은 것이었다. 약간의 조작이 더해지기는 했지만 그 정도 노동자 가정은 실제로도 이 정도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자… 미국 역시 요사이 우리 텔레비전을 많이 수입하고 있지 않소? 우리 소련은 이제 7년 내로 모든 가계에 텔레비전을 보급할 것이오!”

“….”

매카시는 이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확 나빠진 표정으로 내가 자랑하는 소련의 수많은 가전제품들을 둘러보았다.

“이 제품, 우리가 개발한 텔레비전 중에서 제일 화면이 큰 사양인데 이게 그렇게 미국에 잘 팔린다고 하오. 매카시 부통령, 혹시 하나 들고 가시겠소? 모처럼 혈맹의 지도자가 오셨는데 그 정도도 대접을 못 해 드려서야 어디 소련의 인심이 좋다고 하겠소이까? 하하하하하!”

“크흠… 미국도 일이 년이면 저런 제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국산품을 사용하도록 하지요.”

“호오, 그렇지만 대중에게 보급할 때까지는 아마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 같구려. 아니, 가난한 유색인종들은 버스도 제대로 타지 못한다니! 나는 미국인들은 다 매일 허쉬 초콜릿을 먹고 코카콜라를 마시며 사는 줄 알았다오!”

“…하, 하, 하. 소련인들은 반대로 제대로 뭘 먹지 못해서 미국에서 막대한 식량을 수입하고 있지요?”

매카시도 지지 않겠다는 듯 발끈해서 맞받아쳤다. 얼굴이 벌써 벌게진 게, 대중선동가면 몰라도 정치인이자 논객으로서는 2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하하하하, 그렇소. 좋은 친구 미국 덕에 우리는 농업 대신 더 발전된 산업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었지요.”

“끄응….”

결국 너희는 후진 농업국이고 우리는 선진 공업국인데 뭘 식량만 많이 수출하는 걸 자랑스러워하냐는 말이다. 자충수를 둔 매카시는 이를 빠득빠득 갈며 바로 화제를 돌린 나를 따라 눈을 돌렸다.

“아! 에어컨! 이 역시 효자 상품이오. 우리 소련에서는 딱히 많이 쓸 일이 없으나 알제리나 이집트, 베트남의 동지들이 많이 수입해 가고 있소.”

“하하, 저 에어컨은 우리 미국에서 발명한 게 아닙니까?”

“하지만 너무 비싸서 웬만한 사람들은 사용하지도 못한다지요? 아니 못사는 사람들에게 무슨 전기세를 그렇게 많이 물린답니까?”

한 방 더 먹였다. 소련은 대전 당시 발전시킨 원자력기술을 이용해 에너지 생산에서 원자력의 비중을 15% 가까이 늘리는 데 성공했다. 안 그래도 광열비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소련의 특성을 생각해서 가정용 냉난방비만큼은 웬만큼 써도 거의 돈을 안 내게끔 낮추었고.

매카시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아 하기사… 크흠. 우리 국영 에너지공사에 원전을 수주할 생각은 없소이까? 역시, 우리 소련이 원자력기술 하나만큼은 뛰어나서….”

“우리도! 원자력 발전소를 지을 계획에 예산까지 다 있습니다! 서기장 동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아! 그것도 사실 알고는 있었다. 아직 내가 알기로 미국의 원자력 관련 원천기술들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을 텐데 부득불 체제경쟁의 수단으로 짓는다나?

맨해튼 프로젝트를 독자완료하지 않고 소련이 양도한 핵폭탄을 받아먹고, 상당한 수의 핵물리학자들이 매카시즘 때문에 소련 혹은 제3국으로 망명하는 바람에 미국의 핵물리학 기술은 상대적으로 뒤처진 상태였다.

하필이면 그 위치가 스리마일섬, 실제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있었던 곳이라는 점이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스리마일섬은 하필 뉴욕이 220km, 워싱턴 DC가 135km 거리 안에 있는 동부의 핵심 요지였다.

후쿠시마 원전부터 도쿄까지가 200km 남짓이니 그 정도는 괜찮다 볼 수 있을까? 체르노빌 폭발 같은 사고가 터진다면 뉴욕도 DC도 안전하지 않겠지만….

“허허허허, 그렇소? 아직도 못 짓고 있길래 내가 좀 급했구려!”

급하게 짓다 체할라. 우리는 모조리 끌고 온 독일 지멘스사의 기술력도 빌려다 안전에 ‘과도할 정도로 집착하며’ 짓고 있었지만, 미국은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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