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0
270화
<민주당 총선 하원에서 압승, 여소야대 정국으로>
<맥아더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 중간선거 참패, 공화당의 대선후보는?>
2년마다 치러지는 하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은 여론조사에서의 근소한 우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참패를 거두었다.
월리스와 친소정책에 대한 비토 여론으로 공화당이 차지했던 하원은 단 2년 만에 뒤집혀 민주당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만세! 만세! 미국 공산당 만세!”
“와아아아아! 레닌! 레닌! 레닌!”
그리고 가장 고무적인 일은 미국 공산당이 최초로 전국의석을 획득한 것이었다. 앨라배마 제7선거구에서 당당히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주 공산당 서기장 존 레닌은 단숨에 전국구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1877년, 연방을 깨고 반란을 일으킨 남부에 대한 군정이 끝난 이후 남부 각 주에서는 ‘짐 크로우 법’ 같은 끔찍한 인종차별 법안이 제정되었다. 흑인을 분리하고, 참정권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하기 시작하자 남부에서는 더 이상 흑인 의원이 나올 수 없었다.
535명의 국회의원들 중 흑인은 단 2명. 그마저도 북부 일리노이와 뉴욕 출신의 민주당 인사들이 전부였다.
“이제 우리는 인종차별의 심장, 깊은 남부(Deep South)에서 평등과 혁명의 깃발을 들어 올렸습니다!”
남부 주들은 흑인의 투표를 봉쇄하기 위해 각종 기상천외한 방법을 사용했다. 흑인들이 투표를 하려면 ‘문맹자를 거른다’는 목적하에 만들어진 각종 괴상한 질문에 답해야 했다. 백인들은 그런 걸림돌을 뚫고 투표장에 나타난 흑인들을 린치했다.
구불구불하게 재단된, 게리맨더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선거구는 전적으로 흑인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레닌과 공산당은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흑인들이 똘똘 뭉쳐 몰표를 주고, 가난한 지역에 사는 백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지령에 따라 레닌에게 서슴없이 투표했다.
그 결과 당선된 존 레닌은 맹렬하게 사자후를 토했다.
“우리는 묻습니다. 왜 미국에 사는 1천 5백만 흑인 인구 중 의원이 된 자는 3명뿐입니까? 왜 우리는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눈 감고 입 닥치고 귀 막은 채 살아야 했습니까! 이 나라의 영혼 안에 숨 쉬는 제국주의! 제국주의는 우리 모두를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다른 누구를 노예와 같은 상황에 처박으면서 무제한의 사익추구를 권장하는 미친 자본주의는 간신히 자유를 누리기 시작한 수많은 사람들을 나락에 처박았다. 국내의 흑인들은 값싼 노동력이자 말을 알아듣는 가축처럼 취급당했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흑인들은 그만한 지위마저도 누리지 못했다.
“미국은 해외 침공을 중단하고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공공의 발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더 이상의 침략전쟁은 중단합시다!”
침략전쟁 중단, 인종 간 평등, 사회복지의 대폭 확대 같은 공약을 내건 공산당의 의원 당선은 상당한 이슈가 되었다.
물론 맥아더 정부는 참으로 꿋꿋하게도 반공노선으로 일관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거대한 적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파멸하느냐 파멸시키느냐의 싸움이며, 저는 우리 미국과 미국의 아이들, 그리고 미국의 미래를 위해 후자를 선택하겠습니다!”
지금 와서 경계를 내려놓는 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호시탐탐 미국을 파멸시킬 기회를 노리는 소련과의 친선?
미국의 대외 전쟁이 어려워질수록 소련 개입설은 힘을 얻었다.
“위대한 미국이 이렇게 고전하는 것은 친한 척하면서도 미국을 무너트릴 기회를 보는 소련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미국의 추악한 면모들이 하나하나 까발려지는 것은 다른 주장을 가능케 했다.
“위대한 미국? 내 생각에는, 별로 위대한 미국이 아닌 것 같은데.”
미국이 선하고 옳다는 전제를 깔고 생각한다면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고난은 외부의 악한 누군가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미국이 딱히 선해 보이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공화당 온건파들은 실리가 아니라 선악 대결의 구도를 만들어 놓고 끝끝내 스스로가 선이라고 빡빡 우기는 맥아더에게 분노했지만 이미 판세는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초대형 폭탄이 한 발 더 떨어졌다.
* * *
[삐― 삐― 삐― 삐―]
[인민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우주에서 들려오는 우리 소련의 승리를 듣고 계십니다. 기뻐해 주십시오!]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전파통신을 통해 들려오는 삐 삐 삐 하는 전자음을 들을 수 있었다. 모스크바의 방송국에서는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와 지구궤도 안착에 성공했음을 선포했다.
“결국… 성공했군.”
코룔로프 설계국에서는 이번 발사를 기념해 만든 특제 라디오를 정치국까지 가지고 와서 스푸트니크가 송출하는 전자음을 들려주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단순한 전자음을 안테나로 쏘다가 짧은 수명이 다하면 내려오는 것이었지만, 그 영향이 작지 않았다. 우주경쟁에서 몇 발짝씩 앞서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승리에도 불구하고 내 표정이 그렇게 좋지 않자, 정치국원들은 다들 약간씩 긴장한 듯했다.
“크흠… 아무튼 코룔로프 박사는 진정 대단한 천재입니다!”
“옳소! 옳소! 이 모든 것은 박사와, 박사를 발탁한 스탈린 동지의 영도력… 흡!”
이제 내가 노려만 봐도 흐루쇼프는 꾹 입을 닫았다. 코룔로프는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절부절못하면서 내 기분을 맞출 준비를 했다.
“아니, 아주 잘 했소. 박사의 노고에 대해서 우리 정치국은, 그리고 전 소련 인민은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소. 다만 박사의 안전을 위해 공개적으로 시상을 못 할 뿐이지….”
경호원 하나가 뒤에서 묵직한 상자를 하나 들고 왔다. 코룔로프는 직감적으로 훈장임을 깨닫고 벌떡 일어나 경례를 붙였다.
“감사합니다 서기장 동지!”
“무얼? 내가 감사할 따름이네.”
상자 안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인민영웅 훈장이 들어 있었다.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나. 흐루쇼프의 아첨처럼 ‘스탈린 대훈장’ 같은 것을 제정하느니 혀를 씹고 죽겠다.
아무튼 우리가 줄 수 있는 최고등위의 훈장이었기에 불가피하게 사유를 만들어서라도 2개를 수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코룔로프 박사, 박사는 각종 로켓 병기의 개발을 통해 소비에트 인민의 생명을 지킨 공로가 있기에 인민영웅 훈장을 수여하오. 또한, 이번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를 통해 소련 과학기술계에 끼친 긍정적 영향이 크기에 그것까지 더하여 인민영웅 훈장을 수여하기로 했소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박사가 소련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헌신해 주기를 바라고 있소.”
그러니 건강 관리 열심히 하시게. 내가 인자하게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하자 코룔로프는 황망한지 몸둘 바를 몰라 했다.
하지만 내 기억에 따르면 코룔로프는 수용소에서 얻은 여러 병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대장암에 걸려서 일찍 죽었다. 미리미리 건강관리도 좀 시켜서 이런 희대의 천재가 50대에 급사하는 일은 없게 해야 했다.
이미 코룔로프에게 전담 주치의 팀을 붙여 주었기에 좀 더 오래 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내가 아는 최고의 유명한 학자들, 코룔로프, 쿠르차토프, 란다우나 바빌로프, 소크 같은 사람들은 이런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건강을 관리해서 결코 조기은퇴를 할 수도 없도록 만든 후 쪽쪽 뽑아 먹는 게 목적이지만.
“그럼… 나는 오늘 회의에선 이만하도록 하겠소.”
코룔로프에게 훈장 두 개를 손수 달아주고 내보낸 이후, 정치국 회의를 끝냈다.
스푸트니크와 관련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할 내용이 많았다. 우리 국민들이나 우방국들에게야 소련이 얼마나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진 엄청난 국가인지를 자랑하면 되겠지만, 나머지 세계에는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불충분한 정도가 아니라, 무시무시하게 위협적일 것이 뻔했다.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기술은, 반대로 말하면 미사일 사거리도 엄청나게 늘려 놓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미사일에 인공위성 같은 평화적인 물건이 아니라 핵폭탄을 단다면?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이 된다.
맥아더와 미 공군은 소련의 중폭격기는 미국의 방공망을 돌파하지 못한다고, 소련의 과학기술은 열등하다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이제 뉴욕이 얼마 안에 소련 핵미사일 사거리 안에 들어오게 생겼으니 얼마나 소름이 끼칠까?
* * *
뜬금없이 들려오기 시작한 이상한 전자음이 대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알아보던 미국 공군은 쇼크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삐― 삐― 삐― 삐―]
[우리 소련 정부는 우주과학기술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제안합니다. 하나. 미소 양국은 상호 합의하에 전략병기, 즉 열핵병기를 감축하고 추가적인 핵탄두 실험을 중단한다. 둘. 우주과학기술의 개발을 위한 공동 기구를 설립하고 개발한 기술을 공유하여 인류 공통의 발전을 위해 사용한다. 셋…]
“저, 저, 뭐… 뭐라고 하는 건가?”
“…핵무기를 만들지 말자고 합니다. 이게 무슨….”
항상 표정을 숨기기 위해 옥수숫대 파이프를 질겅거리고 짙은 선글라스를 쓰는 맥아더조차 입을 쩍 벌리느라 파이프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불씨가 튀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사소한 것에는 신경 쓸 수도 없었다.
소련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얼마 전, 소련의 열등한 과학기술 운운했던 미 정부에 대한 신뢰를 극적으로 하락시켰다. 핵무기를 선제 개발하기까지 했는데, 몇 발짝씩 앞서 나가고 있다는 것을 왜 알아내지 못했을까?
“OSS 국장 데려오게… 제기랄….”
“크흠… 알겠습니다, 대통령 각하.”
OSS는 세계적으로 첩보활동을 펼친다는 명목으로 수천만 달러의 예산을 쓰면서 제대로 된 첩보 하나 건져오지 못했다. 당장 소련이 인공위성을 발사한다는 첩보만 가져왔어도 이 꼴은 안 났을 것 아닌가?
그나저나, 스탈린이 하는 말이 의미심장했다. 핵병기 감축? 공동 우주개발연구?
“그래서 저 개새끼들은 대체 왜 저런 소리를 씨불인 건가?”
“…실제로 소련은 우리와 핵전쟁을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일 수ㄷ… 헉!”
와장창! 맥아더가 집어 던진 종이뭉치 때문에 뒤편 창가의 꽃병이 떨어져 산산조각났다.
“그런 개소리 말고 다른 의견을 제시해 보게.”
“하지만 각하, 소련은 우리를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기술을 공유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는 실제로 평화가 아니라면….”
“저 기술이 블러핑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소련이 핵미사일을 발사할 때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고, 그걸 단축하기 위해 우리 돈을 끌어다 쓰려 한다던가….”
“왜 굳이 우리와 그걸 공유하려 하겠소? 공동연구한 내용을 몰래 빼돌려 따로 개발을 하려 한다면, 우리도 그럴 수 있을 텐데!”
갑론을박이 오가고 맥아더는 심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제기랄!
소련은 이제 미국의 머리통에 핵을 겨누고도 결코 우리는 이걸 쏠 생각이 없다는 대승적인 면모를 한껏 과시하고 있었다. 이것이 국내의 순진한 평화주의자들, 특히 그 레닌이라는 검둥이 놈이 얼마나 설치고 다니게 만들지 상상하면 머리가 아팠다.
거절하면 미국은 이제 본격적인 핵전쟁의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소련의 인내심을 자극하지 말고 어서 협상에 나서라고 민주당과 온건파들이 설칠 것이고.
반면 수락하면? 그건 그것대로 정권을 끝장낼 것이다. 소련 위협론을 떠들어 대며 공포를 선동해 온 맥아더 정권이 소련과 손을 잡는다? 유권자들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더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스탈린에게 전하도록 하지.”
“예! 대통령 각하.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좆 까라고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