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
266화
세계가 전쟁의 불길에 휩쓸리는 와중, 중국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중국은 총과 대포를 쏘아대는 전쟁 말고도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더러운 전쟁’을.
“으드드득… 개자식들….”
장개석은 이제 슬슬 닳아 없어질 때도 된 이를 갈며 또 한 번 복수를 다짐했다. 그가 저지르지도 않은 모택동 암살에 복수한답시고, 중공의 빨갱이들은 수백 명의 암살자들을 중화민국 내에 투입했다.
국방부 기밀정보국장이자 그의 최고 심복인 대립(戴笠, 다이리)마저도 간악한 중공의 암살자들에게 흉탄을 맞고 죽고 말았다.
“천지 사방에 믿을 놈이 하나 없어! 제기랄! 자라 새끼들 같으니라고….”
사실은 이게 중공 내부에서 꾸민 자작극이 아닐까? 권력을 찬탈하려 한 주은래가 모택동을 암살해 놓고 자기한테 덮어씌우는 게 아닐까? 장개석은 잠 못 드는 밤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울분을 삭였다.
그의 심복들이 벌써 몇 명이나 암살당했다. 백숭희(바이충시), 이종인(리쭝런), 대립 같은 핵심 심복들부터 시작해서 산서왕 염석산 같은 거물 군벌까지!
물론 그 보복으로 중화민국 측에서도 자객들을 대거 투입해 제법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저 더러운 놈들을 몰아내고 발해만 앞바다에 모조리 처박아도 모자랄 판에, 고작 몇 놈 죽인 걸로 성이 차지는 않았다.
“일본 측에서는 뭐라고 하던가? 더 매물을 구할 수는 없나?”
“예, 총통 각하! 그것이… OSS 측에서 준비되는 대로 전해주겠다고 합니다.”
후우, 땅이 꺼질 듯한 긴 한숨을 토하고 소파에 기댄 장개석은 눈을 감았다.
그가 중공에 대한 반격으로 준비한 것은 바로 마약이었다. 남일본의 미친 전쟁광들은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양귀비를 대량 재배해 아편과 헤로인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충격적이게도 미국의 OSS가 이 작업에 적극 협조했다. 산동의 청도(칭따오)나 북경 옆 천진 같은 항구에는 여전히 불법 범죄조직들이 판치고 있었고, 이들은 남의사를 통해 넘겨주는 마약 매물을 희희낙락하며 받아먹었다.
중공 놈들은 항일전쟁 시절 자기네들이 아편을 팔아 치워 전비를 벌었던 주제에 아편 등 마약범죄는 사형으로 엄히 단속했다.
하지만 단속하면 어쩔 건가? 단속하는 그놈들조차 뇌물을 받아먹고, 아편을 사 피우는데.
“주은래, 그놈은 모가만큼의 카리스마가 없어. 부드럽고 관대하지만….”
“….”
장개석은 주은래를 높이 평가했다. 장개석 본인이 황포군관학교 교장이던 시절, 정치위원이던 주은래와 매일 아침을 같이 들던 이야기를 요새까지도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로서의 평은 냉정했다.
“흐, 흐… 잡았으면 싸그리 다 처형해야지, 뭘 그런 놈들을 살려 두나?”
“감사합니다, 각하.”
피식,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장개석은 앞에 쌓여 있던 서류를 잡아 쓱 보더니 휙휙 사인을 하고 비서에게 넘겨주었다.
비서는 공손히 인사하며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나갔다. 마약 유통에 관련된 공산당 간첩들과 범죄자, 그리고 상해 조계지에서 설치는 깡패들까지 총 503명의 처형 명령서를 소중히 가슴에 품고.
“주치의! 주치의 들어오라고 해! 제기랄, 양키 개자식들은 다른 건 몰라도 약 하나는 정말 잘 만든단 말이야.”
“부르셨습니까?”
“그래, 그, 대통유산(對痛柳酸, 현대 중국어로 파스) 좀 가지고 와서 붙여 주게. 이게…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쑤시는 데에는 제일이란 말이야? 자네들도 좀 붙여 보겠나?”
“아, 감사합니다!”
체통 없이 부하들 앞에서 등허리를 쭉 까고 드러낸 장개석은 주치의가 붙여 주는 진통제 패치(patch)를 붙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주치의는 안경 뒤의 눈을 빛내며 어제 붙인 패치를 떼고, 새것을 하나 붙였다. 그러고는 흰 가운의 주머니에서 한 뭉치씩을 꺼내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 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통증과 불면, 불안 증상에 대단한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허리나 무릎 같은 곳이 쑤실 때 그곳에 붙여 주면 아픈 게 사르르 사라지고….”
“오, 그럼 나 하나 줘 보게. 우리 어머님이 좋아하시겠군.”
“나도 요새 허리가 영….”
장개석이 붙이며 미소를 짓는 것을 본 부하들은 하나둘씩 손을 들고 약을 받아갔다. 중년, 장년이 되다 보면 허리나 무릎이 아프기 마련. 본인은 괜찮더라도 아내나 부모님이 그러곤 했으니 이런 귀한 약을 싫어하는 자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각하!”
“이런 은혜를… 역시 총통 각하께서는 대인이십니다!”
희희낙락하며 약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는 부하들을 보며 장개석은 끌끌 웃었다. 이게 참 뭔지는 몰라도 좋단 말이야….
개중 영어를 할 줄 아는 자는 포장지에 붙은 영어를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펜타닐(Fentanyl)… 페인 킬러…?”
으음, 기묘한 이름이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집에 있는 마누라를 위해 주머니에 총통께서 하사하신 귀한 약을 집어넣었다.
* * *
“자, 작전은 간단하다. 이걸 저기 파시스트 놈들 초소 근처에 파묻고… 적절한 시점에 폭파시키면 된다. 알겠나?”
“예!”
대륙을 가로지르는 중공과 중화민국 간의 ‘국경선’에는 수천, 수만 개에 달하는 감시초소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해 양자는 서로를 국가로 인정한 적이 없었고, 국제연합조차 제대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에 ‘국경’은 아니었지만.
황해부터 감숙의 사막지대까지! 수십만의 중국인들이 동포를 향해 총을 겨누고 밤을 지새웠다. 서로 넘어오지 않을까, 공격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며.
물론 실제로도, 지금 주룩주룩 비가 오는 와중에 우비를 뒤집어쓰고 폭탄을 들고 잠입하는 이들이 있었다.
“흐으, 여름비인데도 이렇게 차다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들어가면 뜨끈한 물에 몸이나 담그면….”
한창 두 중국 간의 외교적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있었지만, 상대방을 향한 적의를 직접적인 군사행동보다는 뒷공작으로 풀고 있었기에 군사분계선에서의 긴장 상태는 생각만큼 높지는 않았다.
물론 그 틈을 타서 일선 부대장들은 전공을 세우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특히, 서주 근처에 주둔한 인민해방군의 한 대대장은 이번에 내린 비로 설치한 국경 구조물들이 넘어진 것에 대단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맡은 구역에 이런 일이 벌어져서 저 파시스트 놈들이 이쪽으로 기어든다는 게 말이나 되나?’
재설치하는 과정에, 언덕이라기에는 좀 민망한 흙무더기 하나가 중화민국 지배 영역으로 편입되어 버렸다. 대대장은 자기가 없는 사이에 어리버리하게 일 처리한 부하들을 질책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적법한 판도’를 수복할 것을 명령했다.
작전은 간단했다. 중화민국을 참칭하는 파시스트들의 초소를 폭파시키고, 저 당나라 군대 놈들이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언덕 저편으로 국경 구조물들을 새로 설치한다!
혹시나 파시스트 군대가 반격해 올 경우, 철저하게 준비된 부대를 이끌고 반격하는 파시스트들을 섬멸해 전공을 세우는 것이 대대장의 노림수였다.
“제기랄, 나도 빽이나 있었으면 이 야밤에 이런 삽질은 안 할 텐데….”
“하, 하, 하….”
이런 독단을 저지를 수 있는 것도 사실은 빽이 있기에 가능했다. 대대장은 북경의 고위급이 누구와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서, 기회만 생기면 금방 연대장, 사단장이 될 거라 거들먹거렸다.
그래야 하는 몸인데, 본인의 ‘커리어’에 이런 일로 누가 생겨서는 안 된다면서 반쯤은 자살에 가까워 보이는 작전을 부하들에게 명령한 그는 아늑한 관사에서 탱자탱자 놀고 있을 것이다.
삽질을 해서 땅을 파헤치고, 초소 근처에 폭탄을 묻은 병사들은 몸을 바짝 낮추고 초소를 바라보았다.
“저, 저 잡것들. 크흐흐….”
국민혁명군의 군기는 아닌 말로 개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군기문란이며 횡령이며 하는 방식으로 처벌당했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다른 멍청하고 부패한 놈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 꼴을 보고 병사들 역시 개판을 치곤 했다. 징집당해서 복무하는데 무슨 의욕이 있을까? 특히 지금처럼 비 오는 날에는 어디에 짱박혀서 경계는커녕 잠도 안 깨고 드르렁거리며 숙면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걸 감시해야 할 윗대가리들도 근무태도가 개판이기는 마찬가지요, 일만 안 터지면 된다는 복지부동(伏地不動)에 일이 진짜 터지면 빽과 뇌물을 써서 무마하곤 했다.
그것을 어떻게 인민해방군이 아느냐 하면, 인민해방군도 그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인민해방군이 아직도 안 쓸려나간 이유는 오직 적군인 국민혁명군도 똑같기 때문.
잡것들이라 욕하는 자기네들도 거울에 비친 듯 똑같은 잡것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시킨 일에 성공한 이들은 희희낙락하면서 물러나 폭파를 준비했다.
“하나, 둘… 셋!”
쾅! 의외로 초소 안에 적 병사들이 있었는지 초소가 허물어지는 안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수십 명이 초소로 기어가는데도 몰랐던 걸 보면 초소에 나와서 잠이라도 자고 있었는가 보다만.
“자, 이제 후퇴한다!”
“어, 그런데….”
부르르릉, 부르르릉. 어디선가 낮은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트, 트럭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제기랄, 대위는 낮게 욕을 뱉었다. 저 자식들이 왜 야밤부터 난리지? 기습을 했는데 이렇게 빨리 반응이 나타날 리 없었다. 분명 뭔가 준비한 게 틀림없다.
병사들은 벌써부터 겁에 질려 있었다. 국민혁명군의 미제 트럭들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정예 차량화사단들은 전 병력이 트럭이나 장갑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지만, 국경경비 사단은 그 정도는 아니었고 각종 중화기를 트럭에 싣고 다녔다.
중기관총, 박격포, 유탄발사기. 보병의 사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필살의 장비들이 국민혁명군의 트럭에는 한가득 실려 있었다.
“후, 후퇴하자!”
물론 쉽게 후퇴할 수는 없었다. 당나라 군대라고 아예 방비란 것에 손 놓고 있지는 않는 법. 허둥지둥 후퇴하던 병사들은 지뢰를 밟고 비명을 질렀다.
“으, 으으으….”
“아아아아악! 어머니!”
“제기랄, 버려! 다친 놈은 버리고 간다!”
몰래 잠입작전을 벌이며, 인민해방군 군복을 그냥 입고 온 것 자체가 문제였다. 뭐, 원체 군대가 가난해 옷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만.
잡아떼려면 저들의 입이라도 막아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어 중대장은 다친 놈들은 버리라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격포의 발사음. 곧 고폭탄이 터지는 폭음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물론 박격포에 맞는 사람은 없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훈련 상태가 개판인 것은 똑같았으니. 부패한 군납업자들은 정량에 미달하는 화약을 넣고, 불량품 탄약을 잔뜩 만들어 뇌물을 먹이며 군부에 납품했다.
그것 때문에 사격훈련 같은 것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가라에 익숙한 장교들은 했다고 거짓으로 보고하고 군납업자들이 입막음으로 주는 뇌물을 받아먹었다.
“제기랄, 살았다!”
지뢰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부하들을 끌고 분계선을 넘어온 중대장은 환호했다. 몸에 파편이 박히면서도 따라온 부하들은 사나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