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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62화 (262/300)

# 262

262화

포르투갈은 가장 먼저 대항해시대를 이끈 국가로서 전 세계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다. 남미, 아프리카, 인도, 그리고 멀리 중국의 마카오까지 한때 포르투갈 식민제국의 손아귀에 들어 있었다.

물론 그 시대의 영광은 멀리 가고, 가장 거대했던 브라질 식민지가 제국을 자칭하며 독립하면서부터 포르투갈은 서서히 2류, 3류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남아프리카의 앙골라, 모잠비크 일대나 인도의 고아 등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들을 유지해 보고자 발버둥쳤지만, 시대의 흐름을 어쩔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세계의 한구석에서 조용하게 살아가고 싶을 따름입니다.”

포르투갈의 총리이자 독재자, 안토니오 살라자르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해 오던 것처럼, 본국과 식민지에서 목가적인 농업국가를 유지하며 세상의 큰 풍파에 끼어들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살라자르가 바라는 바였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독재를 하기는 했어도, 바로 옆 스페인의 살벌한 프랑코 독재보다 훨씬 온건하였으며 2차대전에도 최대한 끼어들지 않으려 했다. 독일과 스페인의 협박 때문에 아조레스 제도를 임대해 주기는 했어도, 살라자르는 근본적으로 중립노선을 추구해 왔다.

하지만 시대는 그에게 중립을 허락하지 않았다. 최소한, 식민지를 내려놓거나, 혹은 끝없는 전쟁 속으로 빨려들어가거나 양자택일을 강요했을 뿐.

“좋습니다. 그렇다면 포르투갈에게 허용된 ‘세계의 한구석’을 차지하시지요. 나머지는 그 땅에서 살아가는 민중을 위해 내려놓으시고.”

“….”

한때 아조레스를 내놓으라던 히틀러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몰로토프가 와서 살라자르를 윽박질렀다.

인도의 고아 식민지는 이미 인도인 게릴라들의 공세로 아슬아슬한 지경이었다. 미국은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영국의 거점을 지원하는 데 그나마 들어오는 보급의 대부분을 공급해 주었다.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묶여 있는 포르투갈군은 인도에서만 해도 막대한 소모를 겪고 있었다.

여기에 북아프리카에서 내려오는 혁명의 붉은 물을 맛본 앙골라인들이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을 구성하고 반체제 운동을 시작했다. 본국보다 12배는 넓은 이 거대한 땅을 통치하기 위해 고작 800만밖에 안 되는 인구를 쥐어짜기 시작한 포르투갈은 이미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어찌하란 말입니까! 우리가 투자한 모든 것이 다 식민지에 있습니다. 그걸 다 포기하란 말입니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쩌겠습니까?”

외교적인 결례 따위는 잊어버리고 분통을 터트린 살라자르에게, 몰로토프는 무뚝뚝하게 응답했다.

식민지들은 말 그대로 식민(植民)지였다. 본국의 생산성, 본국의 기술력을 담당할 인구들이 식민지에 나가 농장을 만들고 공장을 짓고 투자를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포기한다면 나라의 경제는 어찌 되는가? 포르투갈의 수많은 항구마다 오랫동안 살아온 고향을 잃은 난민들이 넘쳐날 것이다. 내 고향, 내 살던 터전을 돌려 내라고 외치는!

그들을 모두 수용할 일자리도, 공간도, 능력도 없는 살라자르 정부는 도무지 식민지를 포기할 수 없었다. 내버리자니 국가가 붕괴할 것이고, 끌어안자니 그래도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

“프랑스의 사례를 보면 우리 소련이 무엇을 권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반대로 프랑스 공산당 정권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식민지들을 독립시켰다. 수많은 식민지 출신자들이 귀환명령에 반발했고 식민지 해방에 반대하여 쿠데타까지 일어났지만, 반항을 철권으로 찍어누른 프랑스 정부는 구 식민지배국들과 함께 ‘프랑스어 사용국 기구’를 출범시켰다.

그리하여 서아프리카나 알제리, 인도차이나 같은 구 식민지들은 여전히 프랑스의 자기장 안에 남아 있었다. 프랑스는 여전히 그들의 모범이고, 최대 교역 상대국이었으며, 수많은 유학생들이 프랑스로 유학해 프랑스를 배우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본토의 경제력이 식민지들을 압도할 수 있는 프랑스나 가능한 것. 그동안 목가적인 농업국가를 지향해 온 인구 800만의 포르투갈은 프랑스의 선례를 따라 하기 어려웠다. 몰로토프는 그러게 누가 농업 하랬냐는 표정으로 살라자르를 응시했다.

“안 되오. 절대 안 되오. 내가 죽기 전까지는 절대 안 되오.”

“좋습니다.”

할 테면 해 보라. 얼굴로 말하는 몰로토프는 일어섰다. 살라자르는 꽉 움켜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미, 미국에 빨리 연락하게. 빨리!”

“예! 총리 각하.”

몰로토프가 나간 자리에서 살라자르는 발작적으로 고함을 쳤다. 소련이 이렇게 협박한다는 것은 분명 무언가 준비된 수가 있을 터. 포르투갈 혼자서는 답이 없었다.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최대 물주이자 후견인인 미국을 불러야만 했다.

“저… 각하, 급보입니다.”

“…뭔가.”

그러나 외교 비서관이 후다닥 달려가기가 무섭게 식민지 진압군 사령부의 연락관이 달려와 알렸다. 철렁한 가슴과 차갑게 소름이 끼치는 등골을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하며 담담하게 물어본 살라자르는 다리가 풀려 휘청거렸다.

“앙… 앙골라에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 * *

“만세! 만세! 독립 만세!’

“포르투갈인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미국이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소속의 제국주의 국가를 후원하는 것처럼, 소련 역시 아프리카와 남미의 혁명운동을 후원했다.

그중에서도 앙골라는 약간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앙골라는 혁명을 위한 기반 여건이 무르익은 상태면서, 지리적으로도 혁명을 전파하기에 최적의 위치에 있었다.

남으로는 끔찍한 흑백 차별,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계속되는 남아프리카 연방. 북으로는 잔학한 통치로 유명했던 벨기에령 콩고. 동으로는 영국 식민지배의 상징인 세실 로즈의 이름을 딴 로디지아가 자리했다.

앙골라의 분리독립 선언은 세계적인 탈식민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제국주의의 아성으로 남아 있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대대적인 메시지를 주기에 충분했다.

“사하라 이북의 우리 형제들은 이미 식민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알제리의 형제들, 서아프리카 연방의 형제들, 이집트와 수단의 동지들까지!”

바로 위, 불과 100km 남짓 떨어진 구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가 식민지에서 독립한 것은 가까이 있는 앙골라인들에게 대대적인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찬가지로 동아프리카, 맞은편에 있는 포르투갈령 모잠비크 역시 마다가스카르의 독립을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지켜볼 수 있었다.

프랑스는 강대국이지만, 소련은 그보다 더 강력해서 프랑스 식민지들을 독립시켜 줄 수 있었다. 이제 소련이 포르투갈령 식민지들에게 접촉해 오자, 명백히 포르투갈이 프랑스만도 못하다는 것을 아는 식민지인들은 열광했다.

“제국주의는 종이호랑이에 불구하다. 그들이 어떠한 형태로 우리를 위협하여도, 결국 인민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허물어지리라!”

이들을 진압해야 하는 포르투갈군 역시 그다지 의욕이 높지 않았다.

“씨발, 이번 달 봉급도 또 밀렸는데 싸우라고?”

“좆까. 어차피 저쪽 봉기 지도자들이 유혈충돌이 없다면 평화적인 철수를 보장한다는데 왜 싸우냐?”

‘장교 봉급을 주기가 어려우니 부유한 집안의 여인들과 결혼하라’ 같은 말을 국가 지도자가 공공연히 하는 나라에서 군대의 사기가 높을 리 없었다. 이 상황을 간파했다기보단 아무튼 소련의 지령을 받았지만, 앙골라 봉기 지도자들은 군부 장교들과 접촉했다.

“우리가 서로 싸울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무익한 싸움에서 왜 무능한 지도자와 그 정권을 위해 죽어야 합니까?”

“하하, 여기 받으시지요. 저희의 자그마한 성의입니다.”

설득을 당했건, 매수를 당했건, 장교들이 싸우는 것을 반쯤 포기한 이상 식민지 관료들이 별 수가 있을 리 없었다.

* * *

“최대한 빠르게 루안다항을 확보하게. 그곳을 확보해야 남대서양에 우리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지.”

“예! 서기장 동지!”

미국과 세계를 놓고 벌이는 대국에서 앙골라는 솔직히 말해, 고작 졸에 불과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했고, 중동처럼 엄청난 자원의 산지 역시 아니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앙골라는 소련에게 막대한 행동의 자유를 부여했다.

수도인 루안다는 포르투갈인들이 16세기부터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서아프리카 최대의 항구였다. 해양으로 나갈 거점이 지극히 부족한 소련으로서는 도저히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이제 루안다항에는 곧 창설될 ‘소련 대서양 함대 남부전단’이 배치될 것이다. 곧 마다가스카르에 배치될 ‘인도양 함대 남부전단’ 과 함께,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지역의 영국령 식민지에 들이댄 칼.

“후, 멋지군. ‘인도양 함대’, ‘대서양 함대’, ‘지중해 함대’라….”

물론 배치될 전력들은 위풍당당한 전함이 아닌, 고작 미사일을 대량 탑재한 순양함에 불과했지만 금방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요지는 거점을 차지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하나하나 식민 제국주의의 굴레를 벗어던진 국가들은 소련의 영향권 내로 들어왔다. 그만큼 남아 있는 식민지들에 가해지는 압력은 더 강력해졌다.

분할되고 공산화된 독일과 공산화된 프랑스 사이에 낀 벨기에는 지금도 계속 정권을 위협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손목 발목을 자르면서 콩고인들을 악랄하게 착취하던 벨기에는 다수 병력을 아프리카로 차출해야 했는데, 이제 벨기에령 콩고가 위아래로 공산정권에 둘러싸였으니 더 난감해질 것이다.

영미는 이집트 및 아랍 의용군들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치르며 수에즈를 놓고 싸우며, 희망봉을 돌아 인도 주둔군을 보급하고 있었다. 이제 그들 앞에는 지상 발진 소련 전투기들과 미사일 순양함들이 왔다 갔다 할 것이다.

그나마 중동에서 확실히 영미 편에 붙어 있는 사우디는 남쪽 예멘에서 소련의 지원을 받는 예멘 독립주의자들을 탄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예멘마저 소련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면 말 그대로 포위당하는 사우디는 지금 잔뜩 겁을 먹고 이집트 침공마저 저어했다.

여기에 한창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일본과 북중국 정벌 의욕을 불태우는 장개석까지!

“오, 이래도 재정지출이 견디나 보군? 역시 미국이야….”

“그…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세계 곳곳에서 분란이 터지고, 적극적 개입노선을 천명한 미국은 스스로의 말에 신뢰를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개입해야 했다.

인도에서, 중동에서, 극동에서, 아프리카에서! 소련은 뒤에서 현지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독립세력들을 배후조종하며 정보를 넘겨주는 방식으로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미국을 견제했지만, 이 모든 곳에 군사개입을 해야 하는 미국은 얼마나 고달플까.

“지금 맥아더의 표정이 어떨 것 같나?”

“모르긴 몰라도… 웃고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 하하하하하, 사람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웃는다던데….”

물론 나는 어찌할 수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 더 추가해 주지.”

영원히 미국이 자기네들의 앞마당일 거라 생각할 중남미에서 쫓겨나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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