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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57화 (257/300)

# 257

257화

분명히 내가 노벨상을 타는 것은 소련에 매우 유익했다.

‘반공에 미쳐 날뛰며 세계를 침공하는 미국에 대비되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 스탈린이라….’

그러나 이런 식의 수상은 너무 조작 같았다. 딱 음모론자들이 이용하기 좋은 느낌으로.

“소련이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봐라! 스탈린이 노벨상을 타지 않느냐?”

안 봐도 이런 말이 나올 것이 뻔했다. 소련이 국제사회를 조종해서 겨우 한다는 짓이 노벨상 수상인 것은 어쩐지 초라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음모론자들에게 무슨 말이 들리겠나?

문제는 저런 허접하고 말도 안 되는(?) 음모론도 생각보다 잘 먹힐 상황이란 것이다.

아닌 말로 스탈린 같은 독재자가 노벨 ‘평화상’을 타는 게 말이나 되나? 노벨상이란 물건이 아무리 정치적인 목적으로, 특히 평화상은 더욱 정치적인 목적으로 수여되는 상이라고 하지만.

스탈린은 이미 수백만을 죽인 독재자였고, 세상은 미국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전대미문의 무기인 핵폭탄을 십수 발이나 지구상에 떨군 전력이 있었다. 여전히 소련은 21세기인인 내 눈으로 보기에는 결함 많은 유사민주주의 국가였고.

처칠조차 그렇게 바라는 평화상을 못 타고 고작 문학상만 타고 죽었는데 스탈린이 평화상이라고?

“저… 서기장 동지? 노벨 위원회는 우리 소련의 전 세계적 질병 박멸을 위한 노력을 높이 평가한 것 같습니다. 소크 박사가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보면….”

“아, 그랬지. 그런데 그게 별건가?”

끽해야 WHO에 세계 프롤레타리아 의과대학 졸업자 몇백 명쯤 보내서 아프리카, 동남아, 남미 같은 데 보내고. 미국이 맥아더 취임 이후 분담금을 체납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공백 좀 동맹국들이랑 메워 주고.

소아마비 백신 생산설비 만들어서 넘기고, 한센병(나병) 치료약 칵테일 레시피 개발해서 세계 나환자촌에 좀 뿌리고.

소련의 서기장, 지구의 절반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자가 되어서 한 일이라곤 고작 저런 것들밖에 없는데 노벨 평화상?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입을 싹 다물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왜? 뭐가 문젠가?”

“…서기장 동지, 객관적으로 그 정도면 충분히 위대하신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스탈린 동지의 인류애와 전 지구적 공헌을 따라올 사람은 고금을 통틀어 보아도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앞의 말은 몰로토프, 뒤의 것은… 말하지 않아도.

“닥치게, 빌어먹을 대머리 자식.”

후우. 안 그래도 내 손에 파이프가 들려 있는 것을 본 흐루쇼프는 깨갱 하며 쫄아들었다. 담배빵을 당한 이후 개인숭배에 열중하도록 흑화한 것을 보니 어쩐지 가슴이 아팠다.

아무리 보아도 나중에 스탈린을 격하할 수 있을 만큼 대담하고 배짱이 있는 자들은 없어 보였다. 보로실로프 말대로….

‘네가 다 숙청했잖아!’

스탈린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용기 있고 명분도 있는 고참 볼셰비키들은 다 20년대, 30년대를 거치며 죽었거나 죽였다. 살아남은 당원들은 팔꿈치까지 피를 묻혀 가며 스탈린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에 협조했던 이들.

그렇게 충성했던 이들마저 숙청당한 이후, 스탈린의 철권에 대항할 수 있는 인간은 단 하나도 없어졌다.

하물며 이 세상이면 어떨까? 스탈린 사후 바로 태세를 바꾸어 서방에 유화적 태도를 보였던 베리야는 잔혹하게 숙청당했다. 흐루쇼프는 담배빵을 당한 이후 아부에 열중하게 변해 버렸다. 그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거기에 노벨상을 더한다면?

“이것은 우리 소련에 주는 독약이나 다름없네. 지금 우리의 승리를 선전하기는 좋아 보여도, 곧 반소주의자들이 소련의 배후조종이라며 비난 책동을 하겠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스탈린의 권위가 신적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 것이고.

스탈린은, 스탈린주의는 반드시 사라져야만 했다. 1920년대에 성공적이고, 1940년대에 적당히 잘 먹혔을 스탈린주의는 70년대, 80년대까지 흘러가며 소련을 고이고 썩은 물로 만들어 버렸다.

내가 어떻게 그걸 예방하고자 했는데, 그런 결말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 그러면 노벨상을 거절하시겠습니까?”

“그것도 고려할 수는 있지.”

이 한 몸의 영광을 위해 소련의 미래를 스탈린주의의 구렁텅이에 처박는다고? 생각해보면 이 몸이 사실 내 몸도 아니었다. 스탈린 거지.

문제는 또 거기에 있었다. 이렇게 이미 영광이 돌아온 이상, 받든 안 받든 명예로운 일이 된다는 것이다. ‘노벨상을 받은 스탈린 동지’와 ‘노벨상조차 거절하신 스탈린 동지’에 그리 큰 차이가 있을까?

서방 놈들이 내게 엿을 주었다. 당장 먹기엔 달지만 속에는 맹독이 든.

“아무튼 크루글로프. 이런, 이런… 끔찍한 사태를 예방하지 못하다니. 자넨 곧 문책이 있을걸세.”

“송, 송구합니다 스탈린 동지!”

“몰로토프! 자네도. 미연에 이런 사태를 감지했어야 하지 않나? 후보자 명단에 올랐을 때 미리 알리고 멈췄어야지!”

“죄송합니다, 서기장 동지….”

아마 밖에서 보면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을 것이다. 한 명이라도 타면 국가와 가문의 영광이라는 노벨상을 타게 내버려 뒀다고 혼나는 꼴이라니.

“으음…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소련의 승리를 선전하면서도, 스탈린에게는 최소한의 영광이 돌아올 만한… 그런 방법이 없을까?

문득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소련에는 영광을, 미국에는 빅 엿을 돌려줄 만한 방법이.

* * *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소련의 이오시프 V. 스탈린입니다! 청중 여러분 힘찬 박수 부탁드립니다!”

“와아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

“우라! 우라! 스탈린 우라!”

노벨위원회의 대변인이 평화상 수상자를 발표하자, 우레와 같은 힘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적지 않은 지식인들은 20년대, 30년대의 참상을 보고서도 40년대의 바뀐 소련 덕분에 소련을 지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고’, ‘집무로 바쁜’ 서기장을 위하여 대신 수상할 사람이 걸어 나왔을 때, 박수는 더욱 힘차게 바뀌었다.

“안타깝게도 스탈린 서기장은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소련에서 수상을 대신하고 소감문을 대독하기 위해 한 청년이 도착했습니다. 맬컴 스틸 씨!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맬컴 스틸! 맬컴 스틸! 맬컴 스틸!”

이번에는 미국인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도 환성이 터져 나왔다. 미소 관계의 경색으로 미국인이 스탈린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하지만 스탈린을 대신하여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 나온 사람은 바로 미국인이었다. 앞서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여 단상 위 자리에 앉아 있던 소크 박사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단상에 올라온 젊은 스틸 군과 악수를 하고 포옹을 했다.

둘이 악수를 할 때, 플래시라이트가 펑펑 터지기 시작했다. 그 누가 보기에도 그림이 되는 구도였으니.

소크와 스틸 둘 다 미국인이었지만 소련에서 활동해 왔다. 험악해진 옛 친구, 미국과 소련의 평화와 관계회복을 상징할 수 있을 만한 인물들인 것이다.

또, 흑인과 백인이 서로 꺼리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고 포옹하는 것은 현재 미국의 흑백 간 갈등에 대해 충격을 줄 만도 했다. 미국 내 흑인들에 대한 매독 실험사건을 들어 아는 사람들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는지 한두 마디씩 감탄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 갈등의 봉합을 상징할 만한 광경이로군요.”

“대단합니다. 스탈린 서기장의 선택은, 정말 절묘하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치고, 젊은 맬컴 스틸은 마이크를 잡았다. 그저 대리로 수상을 하러 나왔을 뿐인데 쏟아지는 관심이 과분하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 환호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것 같지만… 모든 영광을 제게 이런 기회를 주신 스탈린 동지에게 돌리겠습니다.”

유창한 영어로 그가 말하자 관객석 곳곳에서 휘파람이 들렸다. 휘이이이익! 멋지다 멋져!

그들을 향해 씨익,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은 맬컴은 그에게 주어진 소감문을 읽으려 했지만, 먼저 사회자가 잠시 그를 제지했다.

“잠깐, 스틸 씨. 혹시… 본인이 어떻게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아… 알겠습니다. 먼저, 저는 미국에서 태어난 흑인입니다. 보시다시피.”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이야기하자 관중들은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곧 물을 끼얹은 것마냥 숙연해졌다.

“하지만 ¼ 정도는 백인이지요. 제 외할머니를 외할아버지가 강간했고, 그렇게 태어난 딸이 제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제… 약간 붉은 머리털을 보면 아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흑인처럼 생겼기에, 저희 학교 선생님은 제게 그러셨습니다. 흑인이… 변호사라고? 맬컴, 다시 생각해 보렴. 목수는 어떻겠니?”

“예, 그분은 좋은 분이셨습니다. 미국 땅에서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갇힌 흑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으니까요. 목수는 아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이후, 저는 학교를 뛰쳐나가 강도가 되었죠.”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맬컴의 연설을 들었다. 어쩐지 울분에 차 있는, 그러면서도 새삼스러운 감회가 느껴지는 그의 말에 사람들은 노벨상 수상자 스탈린의 편지는 아예 잊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제게 구원이 도착했습니다! 미국 공산당은 제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저는 그를 강도질하려 했지만, 그는 제게 반대쪽 뺨까지 대주었습니다. 저는 공산당의 돈으로 공부하고, 그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배워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소련의 세계 프롤레타리아 의과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스탈린 서기장 동지가 의료계에 끼친 기여 덕에 그분을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세계 프롤레타리아 의과대학에 입학했기에 제가 이렇게 대독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청중 여러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면, 맬컴 스틸 군은 올해 세계 프롤레타리아 의과대학의 수석 입학생입니다.”

사회자는 그렇게 추임새를 넣었다. 맬컴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사람들은 환호했다.

“저는 소련에서 새 삶을 찾았습니다. 강도질을 하다가 총에 맞아 죽었을 저를, 마약에 쩔어 살다 골목길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을 수도 있는 저를, 소련은 구원해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스탈린 서기장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이 상에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공산당은 소련에서 보내 준 돈으로 저를 비롯해 수많은 청년들을 학교에 보내 주었고, 새 삶을 주었습니다. 그밖에 소련이 살려 낸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시아의 결핵 환자들, 유럽의 결핵 환자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나환자들!”

스탈린의 주요 업적이 나열되자 소련인들이 환호했다. 스탈린의 소감문은 사실 짧고 겸손한 내용이었지만, 어느새 맬컴의 연설은 사람들을 휘어잡았다.

“이것이야말로 승리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유입니다!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가난으로부터의 자유! 무지로부터의 자유! 드디어 자유가! 드디어 자유가!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우리가 마침내 자유로워졌습니다!”

그의 연설이 열변으로 끝나자 사람들은 다 같이 기립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자유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이자 자랑을, 이제 소련이 이어받았다.

“자유여! 평화여! 평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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