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255화 (2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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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화

“그 내용은 전달했나?”

“예, 서기장 동지. 미국측 카운터파트들도 소식을 듣고 경악했습니다.”

솔직히 경악할 만도 했다. 어찌 되었건 미국은 자유의 나라임을 자임했고, 국민들은 원칙적으로 평등했다. 최소한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추악한 면모는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었다.

독립을 요구하는 식민지인들을 군홧발로 짓밟고, 제국주의를 배후지원하는 한편… 국내에서도 이런저런 악행들을 저질렀다.

단순히 못 배우고 몰상식한 국민들이 저지르는 일상적인 차별 수준이 아니라.

* * *

“아야! 아니, 왜 그렇게 아프게 눌러요?”

의사는 흰 가운을 입고, 얇은 장갑까지 낀 채 흑인 청년의 온몸을 구석구석 진찰했다. 손발 바닥을 쿡쿡 찔러보기도 하고, 입을 아 하고 크게 열게 시키기도 하고.

한참을 그렇게 해 보던 의사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스탈린 동지 맙소사, 이들은….”

“확실합니까?”

“내 면허와 내 경력을 걸고 장담하지. 확실하네.”

앨라배마주 공산당 서기장 존 레닌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어안이 벙벙한 젊은 흑인 청년은 절레절레 머리를 흔드는 의사와 서기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 이게 뭡니까?”

“피터. 유감이지만… 자네는 매독에 걸렸네.”

“에? 매… 뭐요? 그게 뭡니까?”

앨라배마의 주도 몽고메리 근처에 위치한 메이컨(Macon) 카운티 출신의 피터는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가 다니던 흑인 전용 중학교는 예산 부족으로 가끔 전기와 수도가 끊기는 곳이었고, 의욕 없고 나태한 교사들 때문에 학교에 진절머리를 내던 피터는 그런 꼴을 보고 학교를 때려치웠다.

앨라배마주는 대부분 가난한 흑인들이 사는 메이컨 카운티의 공교육에 딱히 자금을 투자하고 싶지는 않아 했기에 많은 흑인들이 학교를 때려치우고 생계전선에 투신했다.

가족들과 같이 소작농으로 농사를 지으며 그냥저냥 살던 그에게 매독(Syphilis)이라는 단어는 너무 어려웠다.

“성병이야. 그러니까… 쉽게 말해 섹스를 하면 전염되는 거지.”

“예? 에… 예전에 온 의사 선생이 말하길, 나는 그 뭐시기냐, ‘나쁜 피’라는 병에 걸렸다고 했는뎁쇼. 가끔 어지럽고 피곤하고… 다 피가 나빠서 그런 거랍니다.”

“아니네, 피터. 그게 아니야. 저 개자식들은….”

빠득, 존 레닌은 이를 갈았다. 의사는 피터에게 매독에 대해 쭉 설명을 해 주었고, 피터는 경악하며 부정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난 군대까지 다녀왔다구요! 군대에 입대할 때도 그런 말이 없었는데….”

“…이 나라가 총체적으로 사기를 친 거지.”

“아니, 그럼 우리 로라하고 진하고 빌리 그 녀석도 매… 뭐시기냐, 그 매둑이란 말입니까?”

의사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서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치료받지 않은 매독의 자연 경과를 관찰하기 위한 실험. 해당 대상자들이 방문할 수 있는 의료기관에 미리 공문을 보내어 매독임을 통보하지 말 것.]

미 공중보건국은 1932년부터 지금까지 이들을 속여 왔다.

수백 명의 ‘흑인’ 매독 환자들을 모집한 이들은 ‘나쁜 피’라는 병에 걸린 것이라고 속이고는 매독에 대해 아무 치료도 하지 않고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내버려 두었다.

1942년 소련은 페니실린이, 특히 벤질페니실린이 매독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약제임을 국제 의학계에 밝혔다. 그러나 공중보건국은 그것을 알면서도 ‘죽음에 이르기까지 매독의 경과를 관찰’하기 위해 흑인들에게 제대로 치료를 해 주지 않았다.

지역 보건소에서는 그냥 아스피린과 철분제를 주면서 거짓말을 했고, 심지어 군대까지 이 거대한 사기극의 일부가 되었다.

충격적인 설명을 들으며 부들부들 떨던 피터는 울분을 토했다.

“그럼 우리 부부가 몇 번이나 유산을 한 것도….”

“그렇네. 매독 때문일 가능성이 상당하지.”

피터는 대단히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정부에서는 ‘특별 치료’랍시고 몇 번이나 그의 허리에 주사를 찔러 뇌척수액을 뽑아 갔다. 그게 치료가 아니고 인체실험이었다니!

장례지원금을 줄 테니, 대신 사후 시신을 해부하겠다는 제안에도 돈 때문에 피터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장례지원금은 가난한 그가 그의 선조들처럼 대충 묻혀서 썩어 없어질 것을 가엾게 여겨서가 아니라 병에 문드러질 그의 몸을 해부해서 샅샅이 탐구하기 위해서였다.

“잠깐만? 유니스 아줌마도 그럼 이 일에 개입되어 있는 겁니까?”

잔혹하게도 공중보건국은 인간의 호의를 악랄하게 악용해 왔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그들은 유니스 리버스(Eunice Rivers)라는 흑인 간호사를 채용했다. 환자들이 의료진과 유대감을 쌓고, 무익한 검사들을 계속 따라와 추적관찰이 가능하도록. 보건소에서 빼낸 비밀 문건에는 인건비를 책정하며 그런 내용들이 다 쓰여 있었다.

이야기가 이쯤에 이르자 피터는 화가 나는지 의사의 책상을 쾅 내리쳤다.

“이,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미국인에게, 미국 시민에게 이런 걸 해도 되는 겁니까? 난, 난… 아니, 섹스를 했으면 우리 와이프도. 치료가 가능하기는 합니까?”

“당연히 법적으로 절대 안 될 일이지!”

분노한 존 레닌 역시 고함을 쳤다. 이런 흑인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메이슨 카운티, 터스키기 주변에 사는 수백 명의 흑인들이 공통적으로 매독 증상을 호소했다. 상부에서는 믿을 수 있는 의사를 몇 명 보내 주며 사건을 조사해 볼 것을 명령했고, 지금까지 의사가 매독으로 판단한 것만 수십 건은 되었다.

공중보건국의 인체실험 대상자는 전원 남성이었지만, 그들끼리 옮기는 게 아닌 이상 몇 명의 여자들이 감염이 되었을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정부에서는 성병을 박멸하기 위한 대대적인 치료사업을 한 적이 있네만… 이따위로 연구를 하다니!”

의사 역시 잔뜩 화가 난 것 같았다. 미 정부는 페니실린이 매독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수백, 수천 명을 동원해 성병 박멸작업을 했었다.

하지만 보건소에 공문까지 보내 가며 흑인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것을 막아 왔다. 환자는 무슨 이상한 ‘수성(Mercury=수은)’ 연고 같은 것을 발라 본 적은 있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치료들은 잘해 봐야 약간 정도밖에 효과가 없었으며 기본적으로 맹독성이었다. 그래서 소련이 페니실린이 매독을 치료할 수 있다고 발표했을 때는 ‘인류사의 진보’라더니… 공중보건국이, 나아가 미 정부가 저지른 천인공노할 만행에 치가 떨렸다.

군대까지 끼어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이자들을 치료하지 말라는 공문을 받고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군대라면 당연히 규정에 따라 치료하거나 제대시켜야 할 것을, 미합중국 시민을 지키는 방패인 군대마저 시민을 저버린 것이다.

존 레닌은 탄식했다.

“다음엔 뭔가? 우리도 일본놈들처럼 굴라그에 처박고 머리 위에 핵폭탄이라도 떨어트릴 셈인가?”

루즈벨트 정부 당시 진주만에서 기습공격을 당한 미 정부는 일본계 미국 시민권자들까지도 끌어내서 중서부 사막이나 록키산맥의 수용소, 통칭 ‘굴라그’에 수감시켰다.

거기에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는 소련과의 핵 격차를 줄이겠다는 일념하에 비싼 돈을 주고 핵무기를 사 오고, 남은 핵무기들은 싹 일본에 떨어트리게 했다.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미국은 백인의 나라였지 유색인종의 나라가 아니다.’

독일은 베를린에 한 발로 정리한 것을 일본에는 수십 발이나 떨어트렸다. 사회 곳곳에는 대놓고 인종차별이 만연해 있었고, 링컨이 죽은 지도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흑인은 노예나 다름없는 취급을 당했다.

“일본인들이 생체 실험을 해서 핵폭탄을 맞았다고? 그럼 제일 불타야 할 곳은 워싱턴 DC군! 이 추악한 나라… 이 더러운… 퉷!”

* * *

“나는…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 정부는 그런 허위 신고로 미국과의 외교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증거를 가져오십시오! 증거를!”

[당신 눈앞에 있는 증거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습니까?]

“…이게 위조되지 않았다고 어떻게 확인합니까! 당신네들이 위조했을 수도….”

[더 많은 증거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습니다.]

“….”

그 말에 정부 관료는 싹 입을 닫았다. 그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대체 왜 미군과 의사들이 감옥을 붙들고 몇 년씩이나 있어야 하나? 그들의 출입국 수속을 담당했기에 관료는 대충 뭔가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문서의 내용이 사실이면? 사실이면 어찌할 것인가. 그 미국과 무슨 대립각을 세운단 말인가?

당장 입이라도 뻥끗하면 미국이 조종하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미국 기업들이 철수하면 국민들은 모두 굶어야 했고, 식량을 자급할 수단도 없었다.

이자… 미국 공산당 소속이라 주장하는 괴 인물의 말도 솔직히 터무니없었다.

‘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매독을 가지고 생체실험을 했다고?’

과테말라는 멕시코 바로 아래 붙어 있는 자그마한 나라였다. 한때 다른 중앙아메리카 소국들과 연방을 이루었다가 독립한 이래로, 미국은 과테말라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United Fruit Company)는 과테말라에서 수백만 에이커에 이르는 대 플랜테이션을 소유하고 수십만의 과테말라인들을 노동력으로 부렸다.

이들 없이는 국가 경제가 지탱될 수조차 없는 것이 중남미 소국들의 현실이었다. 중남미의 수많은 국가들이 한 종류 작물만을 키우는 다국적 기업의 대농장들을 지탱하기 위해 돌아가고 있었다.

그 누구도 감히 그들의 이권에 손댈 수 없었다. 철도, 교통, 항만까지 집어삼켜서 모든 수송 일정은 다국적 기업들 위주로 돌아갔고, 산업화에 필요한 인력을 빼내려 치면 농장을 싹 갈아 버리겠다고 협박을 했다.

미국인들이 싼값에 과일을 먹기 위해 작은 나라들은 나라 전체가 휘청여야 했고, 그 와중에 정부 공무원으로 그 꼴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그에게는 다행이었다. 정체불명의 괴인은 낮고 분명한 영어로 이야기했다.

[미국이 두렵습니까?]

“두렵고 말고요! 미국 국적 회사 하나도 우리나라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정부는 어떻겠습니까?”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지? 하지만 관료는 오래전 사라진 마음 한구석의 양심이 저려 오는 것을 느꼈다. 입은 반대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깟 죄수들, 그깟 가난한 고아들 몇몇이 매독에 걸리면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다른 병에 걸리든 굶어 뒈지든 뒈질 텐데 말입니다. 그들이 국민? 개돼지라고 하는 게 더 편하겠군요. 수백만 명의 목숨을 개돼지들을 위해서….”

[…소련이 배후에 있다면 어떻습니까?]

소련? 그 단어를 말할 때 괴 인물의 발음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관료는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소련이라니! 미국의 맥아더 대통령은 소련이라면 진절머리를 내며 세상 위에서 그들을 지워 버리려 하고 있었다.

“이… 이 일은 제 소관이 아니라….”

[알고 있소. 그럼….]

딸깍. 전화가 끊겼다. 관료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과테말라에서도 이런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아르벤스 국방장관이라던가….

하지만 미국이 가만히 내버려 둘까? 유나이티드 프루트 사의 농지를 배고픈 농민들이 밀을 경작하도록 나누어 주면 이권을 침해당한 그들이 가만히 있을까? 자기네 소유 농지를 휴경시킨답시고 수십만 에이커를 굶주린 사람들 앞에서 내버려 두고 출입조차 못 하게 하는 자들이?

대양 저편에서 오가는 소란은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남미는 영원히 신께서 미국인들과 자본가들에게 점지해 주신 그 모습 그대로일 줄만 알았다.

그러나 관료는 오랜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무언가…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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