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250화 (250/300)

# 250

250화

“멍청한 육군 놈들. 자기들 혼자 흥분해서 달려들었다가 나가떨어지는 꼴이란….”

스프루언스 제독은 함교에서 나직한 욕설을 퍼부었다. ‘미친 카우보이’ 패튼의 전차부대가 이집트군에 피해를 입고 퇴각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굉장히 양면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다 육군이 대통령이 돼서 그런 거야! 제기랄! 신이시여.”

“각하! 그… 듣는 귀가 많습니다.”

“들으면 어쩔 텐가? 후… 개자식들. 그나마 좀 낫군. 그놈들이 제 주제를 알게 될 테니!”

재수 없는 맥아더와 육군이 엿을 먹었다는 사실은 즐겁지만, 맥아더가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았다는 게 그를 열받게 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맥아더를 겪어 본 모든 해군 제독들은 맥아더를 혐오했다. 해병대와 해군, 항공대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쇼맨쉽을 위해 수많은 병사들을 사지로 밀어 넣는 그의 악랄함에 다들 혀를 내두르곤 했다.

그 전공을 포장해 대통령까지 올라간 데에는 미국 국민들의 지적 능력을 의심하는 발언들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당장 대량의 항명사태가 터지지 않은 것은 오직 맥아더의 대규모 군병력 증강 때문이었다. 그나마 백악관은 해군을 장기말처럼 마구 들이붓기는 했어도, 그만큼 해군이 필요하다는 사실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정통 수상함대파인 스프루언스는 맥아더가 추진하는 신규 전함전력 증강 사업만큼은 호의적으로 바라보았다.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고속전함이 필요하다! 순양함만큼 많은 고속전함이!’

영국이 세계 방방곡곡에 원정함대와 해군기지들을 유지하고 자기네 영향력 확산을 위해 사용했던 것처럼, 미국이 한때 대영제국이 누렸던 입지를 온전히 미국의 것으로 유지하려면 영국이 가지고 있던 기지들을 손에 넣고 함대를 주둔시켜야 했다.

그 과정에서 한때 전우였던 소련과 이렇게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결코 좋지 못했다만, 이왕 이렇게 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술군이라는 특성상 해군은 육성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소련이 감히 따라올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해군 격차를 만들어 내는 방향으로 전쟁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고.

보라! 이 막강한 함대 앞에 감히 누가 미국의 패권을 의심하겠는가?

위풍당당한 아이오와급 전함전대를 신규 취역한 알래스카급 대형순양함들이 뒤따랐다. 영국 지중해함대가 초라해 보일 정도로.

공장에서 찍어 내듯 생산되는 순양함과 구축함들이 미국 해상패권의 상징인 전함들을 보좌했다. 이 막강한 함대를 총지휘하는 제독인 스프루언스는 잠시나마 분노를 잊고 흐뭇해할 수 있었다.

이 거대한 힘을 풀어낼 상대가 고작 초라한 이집트군이라는 게 약간 아쉬울 따름.

“각하, 이집트군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뭐? 그래? 뇌격기들인가?”

휘하의 통신장교가 보고를 들고 가져오자 참모진들은 다 같이 고개를 홱 돌려 반응했다. 이집트군이 선제공격을 가할지는 몰랐지만, 함대에 대한 공습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던 미 함대는 기다렸다는 듯 반응했다.

그러나 문제는 공습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각하. 공습으로 보기에는… 적 비행… 체들이 너무 많습니다.”

“비행체?”

* * *

“그냥 싸그리 다 날려! 발사! 발사!”

콰르릉하는 굉음과 함께 해안포대에서 수많은 미사일들이 날아올랐다.

실전에서 미사일을 써 보는 것은 처음인 이집트군 장교는 아연한 표정으로 수백 개의 미사일들이 발사되는 장관을 바라보았다.

“허….”

“실전에서는 처음이지만, 우리 소련에서는 충분한 시험을 통해 안정성을 확보했습니다. 걱정 마시지요.”

“그, 그렇습니까?”

일단 미사일들의 카탈로그 스펙들만 보면 위력은 충분했다. 500kg에 육박하는 작약량은 세계 최대, 최강의 전함으로 등극한 미국의 신형 아이오와급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소련군이 긴급 파견한 기술장교는 빙긋 웃으며 은근히 신무기를 자랑했다.

물론 함대의 방공체계가 미사일들을 일부 막아 낼 수도 있겠지만, 여러 개의 해안요새에서 순식간에 수백 발씩을 쏟아붓는데 모두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대함 미사일’의 위력은 아이오와급의 16인치 함포 한 방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전함이 대응방어를 상정하고 만들어졌다 해도 정통으로 맞으면 심각한 타격을 입는 위력. 전함 이하의 다른 군함들은 박살 내버릴 수 있었다.

거기에 단가마저 저렴했다. 함포 한 발의 단가와 비교하면 당연히 미사일이 비싸겠지만, 주포 한 문이 끽해야 300발가량 발사하고 포신을 교체해야 하고, 전함이라는 발사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고, 또 그것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까지 생각해보면 미사일의 단가는 거의 거저먹는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해안 곳곳에서 미사일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소련이 이집트군에 긴급 공수해 준 수천 발의 미사일을 다 쏟아붓겠다는 것처럼.

또 수천 발의 미사일을 ‘실전 시험료’라는 명목하에 거액을 공제하고 구입할 수 있게 된 이집트 정부는 아낌없이 미 함대를 향해 미사일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낭보가 도착했다.

[적 전함… 1척 피격! 중파 이상으로 보입니다!]

[순양함 1척 대파!]

정찰기들이 분주하게 날아다니며 적의 피해를 보고했다. 쏟아지는 미사일 세례 속에 미국 함대는 한 척 한 척 피해를 입고 선회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으로 막강한 미국 함대가 후퇴한다는 소식을 들은 장병들은 환호했다.

“와아아아! 만세! 만세!”

이집트군의 공군력을 저평가하고, 끽해야 잠수함이나 어뢰정, 혹은 허접한 해안포대의 포격 정도나 상정한 채 접근한 것이 패착이었을까?

물론 미국의 해군전력은 압도적인 격차로 세계 1위를 달릴 만큼 막강했고, 다음 공격까지 막아 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집트군 장교는 환호하는 병사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영미연합의 합동공세를 한 번은 격퇴했어도 몇 번이나 그럴 수 있을까? 이 모습을 본 소련 기술장교는 뜻 모를 웃음을 지으며 그를 격려했다.

“너무 걱정 마시지요. 뭔가… 대책이 있지 않겠습니까?”

* * *

“실전에서도 성공적이었나?”

“예! 서기장 동지. 미 해군의 신형 아이오와급 전함이 대파되는 피해를 입고 결국 미국 함대는 퇴각했습니다.”

“그것참….”

다행일까? 아니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것일까?

이미 수에즈 국유화 선언을 하고 미국 육군의 침공을 격퇴한 상황에서 미국의 추가 전력 투입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설마 알렉산드리아로 향한 해군마저 이렇게 당할 줄은 몰랐겠지만.

뭐, 어느 정도 시간을 끌었으니 우리 쪽도 사용할 수 있는 수가 몇 가지 더 생겼다.

“아무튼 우리 해군의 방향은 이렇게 정해진 것 같군. 그렇지 않나?”

“저희는 서기장 동지의 식견에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미국은 어찌 생각했을지 모르나, 소련은 결국 미국과 갈라설 것을 대전기부터 상정하고 있었다.

소련이 대전을 훨씬 적은 피해로 이겨 내고, 쾌속한 경제성장을 통해 미국을 따라간다 쳐도 이미 격차는 압도적인 상황. 정상적인 수상함대 전력 경쟁으로는 결코 미국을 이길 수 없었다.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 경험에서 상륙전을 보조하기 위한 다수의 전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전함전력 위주의 해군력 증강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어째 군사전략 관련한 말이 나오면 정치국에서 매번 프레젠테이션을 담당하는 것 같은 바실렙스키는 평소처럼 지휘봉을 꺼내 들고 미국의 함대전력 증강을 표시한 도표를 짚어 내려갔다.

“또한, 잠재적국인 우리 소련이 수상함대 전력에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대응방어가 불가능하고, 주포화력에 더 많은 투자를 한 이런 ‘대형순양함’을 추가적으로 건조했습니다.”

그의 지휘봉이 ‘알래스카급 대형순양함’을 가리켰다.

대응방어 같은 단어가 나오자 군사전략에 무지한 칼리닌이나 즈다노프 같은 정통 정치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바실렙스키는 친절하게 그들을 위한 설명까지 덧붙여 주었다.

“즉… 어차피 우리가 그들을 때릴 함포가 없으니, 방어력에 투자를 덜 했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이 대형순양함들은 순양함을 효과적으로 요격 가능하면서, 지상 화력지원 능력도 준수하고, 대공화력이 우수하며 속도와 항속거리 면에서 구식 전함들보다 훨씬 우월합니다.”

“그… 그래서 우리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수상함대 전력에서 밀린다면….”

이번엔 그는 휙 하고 지휘봉을 휘둘러 페이지를 넘겼다.

“비대칭 전력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붉은 함대 해군전력 증강사업 계획이라는 큼직한 글자가 떡 박혀 있었다. 잠수함, 항공모함, 그리고 미사일 전력.

“이번 중동전쟁에서 미사일 전력은 대함전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게 증명되었네.”

실제 역사의 ‘에일라트 쇼크’처럼.

그 당시의 이스라엘 해군은 5천 톤짜리 구축함을 잃었지만, 이번 미군은 최신형 전함이 중파당했다는 게 차이일까?

“즉, 전함만이 전함을 상대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지. 이젠 미사일을 탑재한 작은 고속정이 전함을 파괴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일세!”

물론 단순히 고속정들을 다수 배치하는 청년학파식의 전략은 아니었다.

소련은 결국 세계 수준에서 미국과 겨루어야 했다. 지금은 지중해와 인도양에서, 나중에는 전 세계의 바다에서. 원양항해가 불가능한 고속정들을 배치해 봐야 잘해야 연안방어나 가능할 것이고 잘못하면 그마저도 돌파당한다.

미국이 ‘빨간 버튼’을 누르는 것을 억제할 전략잠수함은 별개로 하더라도, 미국이 다수 배치할 전함―대형순양함 함대를 상대하기 위한 수단이 반드시 필요했다.

“예. 그렇습니다. 일단 우리 해군은 전함에 대해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플랫폼들을 주력으로….”

‘대함 미사일’은 결국 향후 수십 년간은 해상을 지배할 것이다. 이지스함을 수십 척씩 취역시킨 21세기의 미국조차도 대함미사일을 완벽하게 방어할 수는 없었으니.

바실렙스키는 어떤 플랫폼들이 미사일 투발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를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잠수함, 함재기, 구축함, 순양함 등….

이들의 최대 장점은 일단 싸다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해안포대에서 발사할 수 있는 미사일들은 전함의 포탄과 비교할 정도의 가격이었지만, 국가재정을 휘청이게 할 수 있는 전함을 잡아낼 수 있었다.

잠수함 한 척, 비행기 한 대, 1만 톤이 안 되는 헬기구축함이나 그 전후인 미사일순양함 정도는 소련이나 그 이하의 가난한 나라들도 얼마든지 보유할 수 있었다. 이런 것으로 최강대국 미국의 전략병기, 전함에 대한 억지력까지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코룔로프 동지에겐 훈장이 몇 개쯤 더 필요할 것 같군.”

이번 미사일도 코룔로프가 총괄한 설계국의 작품이었다. 그의 천재적 두뇌에 미국의 돈과 독일에서 ‘모셔 온’ 기술자들이 더해지자 소련의 로켓/미사일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인민영웅 훈장 위에 ‘위대한 서기장 스탈린 대훈장’ 같은 걸 만들면….”

“닥치게 대머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