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
249화
수에즈를 다시 확보하기 위해, 영국은 신속하게 연합군을 결성했다.
“이라크 왕국은 연합군에 합류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사우디 왕국 역시 합류한다고 합니다!”
나세르가 외치는 아랍사회주의는 왕정국가의 신민들을 자꾸 국민국가의 국민으로 만들려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국왕에게 충성하고 직분에 충실해야 할 사람들에게 계속 뭔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주는 나세르는 아랍 왕정들에겐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다.
이라크, 사우디, 요르단을 비롯한 아랍 국가들에 영국, 미국군까지 합류한 연합군은 이집트군을 박살 내고 수에즈를 탈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개새끼들하고 손을 잡으란 말입니까?”
“끄응….”
“이렇게 할 거면 우린 나가겠소! 알아서 잘해보시오.”
요르단―이라크를 지배하는 하심 왕가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배하는 사우드 가문은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였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이자 하심 가문의 당주였던 후세인은 영국의 독립 약속을 받고 장남을 메카를 수도로 한 헤자즈 왕국의 왕에, 둘째를 트랜스요르단의 왕에, 셋째를 이라크의 왕에 앉혔다.
하지만 사우드 가문의 공격을 받은 하심 가문은 메카―메디나의 두 성지를 빼앗기고 쫓겨났다.
이처럼 철천지원수인 두 세력도 대이스라엘 전쟁 당시에는 같은 무슬림 형제를 돕는다는 기치하에 불편한 동거를 할 수 있었다. 대중이 그것을 원했고,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도하는 침공에 한 손 거들며 점수를 따는 정도였으니.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요르단군의 군사 고문인 영국 장군 존 바고트 글럽(John Bagot Glubb), 통칭 ‘글럽 파샤’는 방방 뛰며 성을 내는 왕자를 말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반대로 사우디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당신네들이 무능해서 두 성지를 빼앗긴 주제에 무슨 말이 그렇게 많소이까?”
“아니, 저… 그….”
영국은 지은 죄가 있어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1차대전 당시 아랍인들의 통일 왕국을 세워 주겠다고 하심 가문을 선동해 오스만에 반기를 들게 했지만, 영국은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사우디를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엄연히 물주인 미국이 사우디를 후원하고 있는데 어찌 감히!
“장군, 이 샌드 니거들이 뭐라고 씨불이는 거요?”
“예?”
그 와중에 미국 측 장군은 귀족적인 생김새에 걸맞지 않은 걸쭉한 욕설을 한 바가지 뱉으며 영국군 장군의 뒷목을 잡게 했다.
“저 씨부럴 빨갱이 새끼들이 저기 있는데 왜 그놈들을 박살 내러 가질 않고 여기서 우리끼리 삽질이나 하고 있냐 이 말이오.”
“….”
이자가 미국 신임 대통령의 총애를 받고 있는 장군이란 말인가? 영국군 참모들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영어를 알아듣는 아랍인들도 저게 무슨 무례한 짓인가 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미국 중동원정군 사령관 조지 S. 패튼 중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며 호언장담을 했다.
“미군 기갑사단들만 동원해도 저 샌드 니거들은 박살 낼 수 있소. 영국군은 전함 끌고 와서 함포 지원사격이나 하시오.”
“이집트군은 시나이반도의 사막지대에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부됸늬 중전차와 T―34로 이루어진 현대식 기갑여단을 두 개나 가지고 있고….”
“그건 영국군 당신네들이나 두려워하는 거고. 우리 미군만 가도 나세르의 모가지를 뽑아서 나일강에 처박아 줄 수 있소.”
“….”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서 패튼을 바라보았다. 미군은 다 저런가? 하고 속삭이는 사람들에게 패튼은 다리를 꼬고 일갈했다.
“태평양의 지옥도도 못 보았으니 그럴 수도 있겠군. 겁먹은 자들은 빠지시오!”
* * *
“공, 공습입니다!”
“모두 위치로! 훈련한 대로만 하면 된다!”
연합군은 먼저 이집트군이 겹겹이 전개한 방어선에 공습을 가했다. 결국 사용 허가를 받는 데 성공한 요르단의 비행장에서 날아오른 미군의 폭격기들은 수백 개의 항공폭탄을 이집트군의 방어선에 떨어트렸다.
물론 이집트군이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지상의 방어구조물들을 타격하기 위해 저고도까지 내려온 폭격기들은 의외로 조밀한 방공화망에 화들짝 놀라 고도를 높였다.
[뭐야, 이 자식들! 완전히 미개한 토인들이라며?]
[그러게요. 무슨 대공포대들이 이렇게….]
프랑스와 체코슬로바키아는 신나게 제3세계 국가들에게 무기를 팔아치웠다. 소련과 합작 개발한 이 무기들은 거의 원가나 다름없는 가격에 원조처럼 팔려 나가 빈약했던 군대를 무장시켰다.
이집트군이 펑펑 쏘아 대는 대구경 대공포 때문에 폭격기들이 몇 대씩 추락하자 미 공군은 기수를 돌렸다.
“거기에 왜 소련제 대공포들이 있습니까?”
“소련제가 아니라 프랑스제일 겁니다. 빌어먹을 바게트 새끼들이 막 팔아먹는 바람에….”
영미 정보국은 중동의 사정에 대해 완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정보부가 가져온 첩보에 따르면 이집트군의 무장 수준은 정예 2개 여단을 제외하면 완전히 잡졸 수준이라고 했으나, 공습에 대처하는 그들의 훈련도는 전혀 낮아 보이지 않았다.
패튼 장군은 정보부의 보고를 철석처럼 믿고 공군이 걷어 낸 방어선 사이로 돌파하겠다며, 이미 일선에 나가 있었다.
“패튼 장군에게 알려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빌어먹을 카우보이 새끼가 엿을 먹는 꼴은 보고 싶지만….”
그렇다고 전쟁에 질 수는 없었다. 패튼의 콧대가 깨진다고 진짜 전쟁에서 지기야 하겠냐만, 앞으로 미국과 엮일 일이 많을 텐데 벌써부터 신뢰가 깨지는 것은 좋지 못했다.
이집트 하나를 밟는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미군 전차부대로부터 급보입니다!”
“뭐? 안 그래도 우리가 연락을 해야 했는데 잘 됐군. 뭐라던가?”
뛰어 들어온 통신장교는 우물쭈물했다. 영국군 사령부의 장교들과 담소를 나누던 요르단 아랍군단의 사령관 글럽 파샤는 한숨을 푹 쉬었다.
‘보나 마나 욕설을 씨불였겠구만….’
차마 그대로 옮길 수 없는 말들이 워낙 많아서 통신장교도 당황했으리라. 그는 그렇게 추측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미군 기갑사단이 이집트군의 매복에 걸려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뭐?!”
* * *
패튼은 1차대전 당시 미군 최초의 기갑부대 지휘관이 되었고, 그 이후 기동전을 입에 달고 사는 신봉자가 되었다.
불같고 모난 성격에 정치력 빵점인 그가 미 원정군 사령관까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반쯤은 거기에 있었다.
“패튼만큼 전차를 잘 아는 자가 누가 있나?”
맥아더는 패튼을 사령관으로 낙점하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대공황 시절 함께 시위대를 진압한 인연만이 발탁 사유는 아니었다.
망망대해와 같이 넓은 사막의 전장에서 전차는 반쯤 필수품이었고, 미군 지휘관들 중 태평양의 전장에서 상륙전으로 단련된 이는 있을지언정 전차전에 능한 이는 드물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패튼은 안 된다고 진언했다.
“각하, 패튼 장군은… 죄송하지만 너무 독단적입니다. 영국군과의 연합작전에서 뭘 할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차라리 육군은 영국에게 맡기고 함대를 동원하는 것도….”
물론 맥아더는 그런 말 따위는 듣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드는 해군 놈들을 갈아치우지는 못할망정 공을 세울 기회를 주다니!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패튼은 기동전의 전문가였을지언정, ‘현대’ 기동전의 전문가는 아니었다.
“돌격! 돌격! 진지는 그냥 전차포로 갈겨 버려!”
미 제2기갑사단은 공습이 가해진 이집트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패튼의 명령대로 돌격했다.
“방어선이 있어도 그냥 우회해 버리라고. 어차피 뒤따라 오는 우리 부대들이 청소해 버릴 테니! 전차는 무조건 앞으로 가라!”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는 했어도, 패튼은 그저 돌격만 아는 미친 전쟁광은 아니었다. 이집트군의 방어선이 더 보강되기 전에 돌파하여 군대 자체를 마비시킨다! 그것이 패튼이 구상한 전략이었다.
사막의 전장은 넓었고, 진지에 고정된 보병들은 전차의 기동성을 따라오지 못했다. 기갑부대가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유기적인 연계가 끊어진 이후에는 그저 앉아서 항복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바로 그가 1차대전에서 터득한 기갑전술이었다.
“적이 반격합니다! 로켓, 로켓이 날아옵니다!”
“제기랄! 무슨 매복이….”
그러나 그것은 이미 독소전쟁을 거치며 구시대의 전술이 된 지 오래였다.
보병의 화력이 전차를 도무지 잡아낼 수 없던 시절에는 전차가 돌파하면 보병은 눈 뜨고 바라보며 뒤에는 전차, 앞에는 적 보병을 두고 싸워야 했다.
하지만 대전차화기의 발전으로, 특히 소련제 휴대용 로켓포의 보급으로 이집트 보병은 전차를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전차의 직사포로는 낮게 엄폐한 보병부대를 도무지 잡아내지 못했고, 겹겹이 쌓은 진지에 숨어 로켓포를 겨냥한 보병들은 미군 전차들을 하나하나 파괴했다.
우수한 전차의 성능과 속도만 믿고 돌격한 미군 기갑부대들은 이집트군의 방어선에서 허우적대다가 이집트군의 정예 기갑여단을 동원한 반격에 결국 후퇴하고 말았다.
“후… 이게 무슨 꼴인가! 하느님 맙소사….”
미군이나 영국군이나 42년 이후로는 딱히 기갑전을 겪어 볼 일이 없었다. 태평양에서 미군이 운용한 전차는 사실 상륙을 지원하는 고정식 토치카에 가까웠고, 대전 이후에도 전차 대 전차가 이렇게 대규모로 맞붙을 전장은 없었다.
“소련 놈들에게 배운 수작인가 봅니다….”
이집트군은 독소전이라는 혈전을 거친 소련군 군사고문단의 훈련을 받았다. 그걸 깨달은 연합군 사령부의 참모들은 신음을 토했다.
‘소련이 이렇게 강력하단 말인가….’
* * *
“으음, 그래서 격퇴하는 데 성공했나 보군.”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이집트군은 연합군의 기습적인 공세를 한 번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패튼이 이끄는 미군 기갑부대는 이집트군이 더 철저하게 방어선을 구축하기 전에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으나 결국 패퇴했다.
“그래. 이집트 쪽에도 첩보들은 다 전해 주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우리 소련이 개입해 있었다. 방공망 구축, 프랑스와 체코슬로바키아를 통한 우회적 무기 판매, 거기에 연합군 사령부 내부의 작전계획까지!
이집트는 지금 영국이 취하는 수를 하나하나 다 들여다보며 싸우는 꼴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패배할 수가 있겠나?
패튼은 그런 와중에도 이집트군의 정예부대에 예상보다 많은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실제 역사에서 서부전선을 호령한 광전사다웠다.
“아! 영미 연합군은 자기네들의 함대를 끌고 알렉산드리아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그 무기가 공개되어도 괜찮겠습니까?”
크루글로프가 추가적으로 입수한 첩보를 보고해 왔다. 보고서에는 새로 편성된 영국 지중해함대의 전함전대와 미국 대서양함대 예하 전단이 이집트 나일강 하구의 알렉산드리아로 향하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미국은 아직도 전함 건조 중인가?”
“그렇습니다. 대전 중 발주한 전함들을 기어이 완성시키겠다고….”
소련이 해상 패권 쟁탈전에서 한발 물러나 수상함대 대신 잠수함대 위주의 전략으로 선회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계속 전함 위주의 함대를 유지했다.
태평양에서 지겹게 상륙작전을 반복하며 전함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일까? 지속적인 포격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함은 분명 상륙전에는 필요했다. 대륙에 거점이 거의 없으니 상륙작전을 고려하여 건함계획을 세우는 것은 합리적이었다.
계획은 항상 엇나가는 법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