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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46화 (24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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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화

“이란의 우리 측 정보원은… 연락이 없습니다. 군 내에서 숙군 작업이 있었다고 했는데….”

“끄응… 큰일났군.”

영미의 봉쇄에 대한 이란의 반응은 신속했다. 소련을 비롯한 선진 산업국가에 유학 가 있던 자국 유학생들을 발 빠르게 불러들여 영국 기술자들이 떠난 석유화학단지에 배치하는 한편, 채굴한 석유를 팔아치울 새 판로까지 확보했다.

마지막 방안으로 군부 내 친서방 성향 장성들을 움직여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까지 논의가 되었으나, 정부는 한발 앞서가 군부 내의 친서구 인사들을 싹 직위해제하는 등 숙청해 버렸다.

“대통령 각하께서 가만히 안 계시겠는데요….”

“제기랄, 그렇다고 이란을 침공할 수는 없지 않나?”

현지에 믿을 만한 우호 세력도 없이 무작정 쳐들어가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웬만큼 작거나 미개한 나라가 아닌 이상에야.

그리고 쳐들어간 이후도 문제였다. 바로 위에 있는 소련이, 코앞에 있는 이란에서 미국과 영국이 설치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지금 이란의 국유화와 산업시설 압류의 배후에는 소련과 그들이 강조하는 ‘자원 민족주의’가 있다는 것을 미국 정보부가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맥아더의 호언장담과 달리 소련과의 전면적인 충돌은 미국에게 너무 부담이 되었다.

이란이나, 혹은 거기서 조금만 가면 있는 인도나 소련 입장에서는 코앞이지만, 미국에게는 세계를 반 바퀴 빙 돌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명분도, 역량도 없군… 제기랄!”

“저… 그런데, 급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뭐? 또 얼마나 나빠지려고?”

“잠시….”

국무성의 분위기는 초상집에 가까웠다. 맥아더 독트린으로 촉발된 거센 외교적 격랑은 압도적인 업무량을 만들어 냈다.

소련을 비롯한 외국들은 대체 미국이 무슨 헛짓거리를 하려 하는지 불안해했다. 무엇을 하려 하든지 간에 적대행위일 가능성이 높기에, 국무성은 애써 그들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급보라니? 또 누가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한 것일까?

야심차게 발표한 맥아더 독트린이 벌써 와르르 무너지는 꼴을 생각하니 국무성 관료들은 자기네들이 지지하지 않았음에도 억울한 느낌이 들어 왔다.

문제는 위신이었다. 이미 반제국주의의 챔피언인 미국의 입지는 와장창 무너졌다. 차라리 강력한 제국으로서의 위신이라도 챙겨야 하겠지만….

“이집트에서….”

이집트? 이집트도 맥아더 라인의 일부였다. 무능하지만 확실한 친영파인 파루크 왕이 집권하고 있었고. 여차하면 독일이나 반서구파로 넘어갈 수 있는 팔레비 샤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이집트에서 뭔가?”

“쿠… 쿠데타입니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 * *

“지난 수십 년간, 우리 국민들은 듣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로 인해 고통받았습니다. 국민들은 정부에 간절히 바라는 것이 많았지만 정부는 국민을 외면했습니다. 부패로 얼룩진 25년! 재앙으로 가득 찬 25년!”

“와아아아아! 혁명 만세! 만세!”

전차 위에서, 혁명군의 장교 하나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대중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었다.

유난히 초롱초롱한 눈에 열정 가득한 목소리. 나세르 중령은 주먹을 꽉 쥐고 하늘로 쳐들었다.

“저들은 이집트의 풍요로운 대지와 우리에게 주어진 신의 선물을 그저 자기네들의 장난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국민들에게 이 선물을 돌려줄 것입니다. 이제 저들의 발악은 더더욱 맹렬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밤이 가장 어두운 것은 여명이 가까워 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중이여! 사랑하는 내 조국 이집트의 민중이여!”

“민중 만세! 혁명 만세! 만세! 만세!”

“사랑하는 내 형제들이여, 무기를 쥐십시오. 무기가 없다면 주먹이라도 쥐십시오. 해방의 날이 다가옵니다. 굴욕적으로 살기보다 싸우다 죽읍시다. 우리는 우리 조국을, 역사를, 미래를 건설하는 중입니다. 나는 여러분과 그 길을 함께 가겠습니다. 이집트 만세!!!”

카이로의 거리는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진압군은 감히 대중의 환호 앞에서 혁명군에게 발포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꽃가루가 휘날리고, 민중은 왕궁으로 향한 전차포의 포구에 장미꽃을 꽂아 주었다. 혁명군의 주요 장교들은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꽃다발과 꽃목걸이 속에 파묻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저항은 없네. 파루크는 항복하고 목숨과 재산의 일부만이라도 보전해 준다면 정권을 승인하고 망명하겠다고 하는군.”

“하! 그 빌어먹을 뚱뚱보 새끼!”

심약한 파루크 국왕은 제 앞가림을 하기에도 바빴다. 뭐, 혁명군의 기세가 그만큼 높기도 했다.

사방에서 수도 카이로에 진입하는 데도 단 한 번의 저항조차 없었다. 경찰조직 내부에서도 반왕정 반서구 저항조직이 생겨났을 정도니 오죽할까!

정확히 말하면 저항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진압부대들이 모두 혁명군과 마주치자마자 합류했을 뿐.

나세르는 부됸늬 전차 위에서 잠시 멈추었던 연설을 이어갔고, 사다트는 들어오는 무전들을 분석하며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혁명은, 아니 군사반란은 일단 성공했다.

이것을 사수하는 것이 문제가 될 뿐. 성공한다면 혁명이 될 것이고, 실패한다면 반역이 될 것이다.

이집트는, 정확히 말하면 수에즈 운하는 제국주의자들의 목숨줄이나 다름없었다. 숨통을 콱 틀어 잡힌 제국주의자들이 어떤 반격을 취해 올지, 자유장교단은 도무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소련은 그들에게 ‘핵우산’을 제공해 줄 것을 물밑에서 제안했지만 과연? 앞으로 어떠한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을지. 정권을 갈아치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과연 저 거대한 제국주의 열강들이 이집트를 가만히 내버려 둘까?

나세르는 부됸늬 전차를 한번 쓸어내렸다. 소련 군사고문단이 훈련시킨 정예 기갑부대들은 이번 혁명의 주축이 되었고, 제국주의자들이 침공할 경우 맨 앞에서 싸워야 할 것이다.

사막의 태양 빛에 달아오른 전차에서 전해지는 뜨끈한 열기는 그에게 왠지 모를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 전차 안에서 그는 제국주의자의 앞잡이인 유태인들을 거꾸러트렸고, 앞으로도 승리할 것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듯 벌떡 일어나 우렁차게 외쳤다.

“이집트 만세! 민중 만세! 혁명은 승리했다!”

* * *

이란의 영국―페르시아 석유회사 국유화와 이집트의 쿠데타는 중동 정세를 단박에 뒤흔들었다. 각국 정부들은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를 놓고 고심했고, 결국 조심스레 하나둘씩 입장을 정했다.

중동 각 국가들은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 반응을 보였다.

“불법적인 쿠데타는 즉각 멈추어야 한다! 정당한 자산에 대한 침탈 행위는 평화로운 발전의 전제조건인 재산권의 보호라는 대원칙을 산산이 부서트렸다.”

‘정당한 자산에 대한 침탈’이라는 단어로 이란의 석유 국유화와 이집트 쿠데타를 가장 먼저 비난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였다. 동으로는 걸프만을 건너 이란과, 서로는 홍해를 건너 이집트와 접한 사우디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집트의 자유장교단이 가장 먼저 선언한 것은 ‘아랍 사회주의’였다. 이 대원칙은 아랍국가들의 반제국주의를 위한 단결과 민족주의, 그리고 부의 재분배를 주장했다.

바로 그 ‘제국주의자’들과 결탁해 자원이 주는 부를 독점한 아랍의 왕정국가들로서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라크 등 친영 왕정이 유지되는 국가들에서는 이집트와 이란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고 원상 복귀(status quo ante bellum), 그리고 관련자 처벌을 주장했다.

반대로 독립 과정에서 아랍민족주의자들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 국가들에서는 이집트와 이란의 변화를 ‘승리’로 해석했다.

“작금의 승리는 아랍 민중이 제국주의 열강을 상대로 거둔 위대한 전과이다!”

시리아―알제리―레바논 3국은 연합하여 즉각 이집트와 이란의 ‘승리’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자원은 누구의 것인가? 어머니 지구가 준 선물은 그 누구의 것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최소한 그 땅 위에 살아가면서도 대지가 주는 풍요를 누릴 수 없는 수많은 인민들을 위하여 쓰여야 한다는 것만큼은 명백하다.”

“가난에 신음하는 저 민중의 울음소리를 들으라! 런던과 워싱턴의 금융가에서 부른 배를 두드릴 때, 민초들은 끝없는 무지와 절망 속에서 신음한다. 우리는 이 막대한 부의 일부라도 저들을 위해 사용할 작정이다.”

“잃을 것은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우리의 정당한 몫이라. 아랍이여, 단결하라!!!”

너희의 가난은 너희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약탈당한 부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 없이 하루하루 고된 노동 밑에서 신음해야 했던 민중에게 선언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개 같은 인생을 바꿔 준다면 그게 악마라도 나는 지지하겠다! 퉷!”

“하, 하, 우리가 그렇게 일했어도 안 되는 게 다 영국 놈들 때문이라고?”

그동안 낮은 임금과 끔찍한 착취, 그리고 멸시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던 이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좌우로 아랍 국가들이 갈리면서, 국민들은 복잡한 이데올로기보다도 어느 쪽이 더 잘 사는지를 들여다보고 어느 쪽이 더 좋은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시리아와 레바논, 알제리의 발전은 아랍 민중에게 직접적인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니, 저기가 저렇게 됐다고…?”

새로 태어난 사회주의 국가들이 가장 먼저 선언한 것은 ‘3무 정책’이었다. 지주가 없는,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른 토지 분배. 교육비가 없는, 최소 중등교육까지의 전면 무상화. 의료비가 없는, 필수의료의 무상화.

소련은 ‘사회주의 발전노선’을 채택하고 경자유전―무상교육―무상의료를 선언한 국가들에 대해서 지원을 해 주었다. 수백 명의 유학생들이 매년 소련으로 건너가 고향을 위해 필요한 학문을 배울 수 있었다.

또, 다마스커스, 베이루트, 알제를 비롯한 수도에는 소련의 돈으로 대학이 지어졌다.

아랍 국가들의 소득 수준은 사실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의료나 교육에서의 차이는 국민들에게 강력한 충격을 주는 데 성공했다.

“저기에 가면 살 수 있는데, 우리 아버지는 왜 죽었단 말입니까? 국경만 넘어가면 공짜로 의술을 베푸는 의사가 있는데….”

“정말요? 여자도, 여자도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요? 소련에 가면 여자도 대학에 다닌다고요? 거짓말이죠?”

영국인이나 미국인 거류민들을 위한 비싸기 짝이 없는 외국 병원들은 가난한 현지인들을 위해서는 결코 열리지 않는 철옹성이었다. 하지만 옆 나라에서는 가장 가난한 마을에 무료 진료소가 열렸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일을 돕고, 또 먹고살기 위해서 열두어 살만 되면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 하지만 국경만 넘어가면 아이들은 의무적으로, 공짜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똑똑한 아이들은 국비로 유학도 갈 수 있었다.

그 차이를 만든 것이 ‘아랍 사회주의’였고, 민중의 지지는 점점 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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