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241화
“또 다른 흑인이 버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체포당했습니다. 이런 일은 반드시 중단되어야만 합니다! 흑인들이 타기에 버스 회사는 운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우리를 마치 개새끼처럼 취급합니다.”
“옳소! 옳소!”
공산당의 행동은 신속했다. 짐 파크스가 잡혀간 보안관서 앞에는 순식간에 열댓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었고, 집에서 저녁을 차리던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수정헌법 제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미국 시민이며 법의 동등한 보호를 받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흑인이 동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까?”
“아니오! 아니오!”
“저 깜둥이들 당장 체포해!”
워렌 목사는 그 광경을 보고 놀라 자빠질 뻔했다. 그는 사실 방금까지도 자신과 통화한 공산당원은 백인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외치고 있는 이는 흑인이었다. 아까의 명랑하고 경쾌한 목소리는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을 싣고 사람들 사이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더더욱 놀라운 점은 따로 있었다.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시대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붉은 스카프를 매고 다 같이 팔짱을 낀 채 인터내셔널을 목청껏 불러 젖히는 당원들은 흑인과 백인이 다 함께 섞여 있었다.
흑인은 백인과 같은 식당도, 학교도 쓸 수 없는 남부의 심장 앨라배마에서 그 광경은 도발적이기 이를 데 없었다. ‘빨갱이’ 노래를 소리높여 부르는 것보다, 흑인과 백인이 손을 잡고 있는 것이 더 강력한 충격을 주고 있었다.
개를 산책시키던 백인 노부인은 그 광경을 보고 신을 찾으며 길거리에 주저앉았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람?”
“이봐! 이봐! 다들 입 닥쳐!”
탕! 탕! 보안관서에서 보안관과 그 조수가 총을 들고 걸어 나왔다. 하늘을 향해 샷건을 두 번 발사한 보안관은 한껏 짜증 난 목소리로 공산당을 향해 외쳤다.
“이 친구는 석방이다!”
애초에 유색인종 좌석에 앉아 있던 그를 잡아 두는 게 껄끄러웠는지, 보안관은 짐 파크스의 어깨를 거세게 밀치며 보안관서 밖으로 쫓아냈다.
공산당원들은 환호를 터트렸다.
“와아아아아! 차별 철폐! 차별 철폐!”
“환영합니다, 형제여!”
워렌 목사는 파크스에게 달려가 그의 두터운 손을 잡았다. 손목에는 벌겋게 부어오른 수갑 자국이 역력히 남아 있었다.
“괜찮나? 리자가 자네 걱정을 얼마나 했는데….”
“죄송합니다, 목사님. 그런데 이 사람들은…?”
“반갑습니다! 민중의 벗,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 미국 공산당 앨라배마 지역당 서기장 존 레닌입니다.”
스스로를 레닌이라 밝힌 청년 흑인은 활짝 웃는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별로 아는 게 없다 해도 레닌이라는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워렌 목사와 파크스는 떨떠름한 얼굴로 악수를 받았다.
“이름이… 특이하시군요.”
“하하하하! 종종 그렇게들 이야기하더군요. 저희 공산당에는 이런 식으로 개명한 사람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존 레닌은 껄껄 웃으며 주변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다.
“우리 흑인들의 기원인 아프리카에서 조상들이 쓰던 이름과 성은 아마 따로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다 잃어버리고 백인 노예주들의 이름을 받았지요. 리틀, 스튜어트, 존스 같은.”
“그래서…?”
“예, 그래서 개명을 했지요. 내 스스로 선택한 혁명가의 이름, 레닌. 어떻습니까? 하하하하!”
딸 캐롤은 친절하게 말을 거는 낯선 아저씨들이 재미있는지 꺄르르 웃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공산당원의 절반 정도는 흑인이고 나머지 절반은 백인이었지만, 그들은 피부색 따위에는 아랑곳 않고 스스럼없이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자, 그래서 파크스 씨.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예? 어떻게 하다니….”
“앞으로 버스를 타고 다니실 수 있겠습니까?”
“….”
존 레닌의 그 질문은 예리했다. 백인 버스 기사들과 회사 사장들은 이런 소동을 일으킨 그를 곱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보안관은 그를 석방했지만, 당장 오늘이라도 백인 폭도들이 횃불과 총을 들고 몰려와 그를 매달아 버릴 수도 있었다. 공산당은 앨라배마가 어떤 곳인지, 행복한 망상을 하지는 않았다.
“워렌 목사님,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 음….”
“계속 참으실 겁니까? 이런 압제를 견디면서? 이런 세상을 캐롤에게도 물려주실 생각입니까?”
“….”
다른 당원들도 이 말을 듣고 웃고 떠들던 모습을 싹 감추고 진지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린, 그냥… 그냥 깜둥이 아닙니까?”
짐이 그렇게 말하자, 존 레닌은 씩 웃음을 지었다.
“함께할 때, 우리는 강합니다.”
그의 내민 손을, 파크스는 얼떨결에 잡아 들었다.
* * *
“그 빌어먹을 깜둥이 새끼. 어디서….”
기사는 낮은 욕설을 내뱉으며 버스를 몰았다.
어제 그의 버스에서 깜둥이 하나가 소동을 부려 그까지 보안관서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다.
빨갱이들이 날뛰는 바람에 그냥 그 깜둥이가 풀려났다는 소리를 들은 그는 한껏 짜증이 난 상태였다.
“엉…?”
그런데 오늘은 유달리 승객이 적어 보였다. 원래 대여섯 명씩은 서 있던 버스 정류장은 오늘따라 아무도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버스에 타는 사람은 백인뿐. 그들조차도 버스가 텅텅 빈 것에 의아해하고 있었다. 빈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던 그들은 그러나, 팻말 하나를 발견했다.
“버스 보이콧…?”
“엥? 무슨 소리유?”
“저기, 저기 저 팻말에….”
승객이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팻말이 하나 서 있었다. 움켜쥔 채 하늘로 치켜든 주먹 아래엔 선명한 붉은색 글씨가 쓰여 있었다. 버스 기사는 글을 읽는데 별로 실력이 없었기에 얼굴을 한껏 찌푸린 채 천천히 글씨를 읽어 내려갔다.
“인종… 차… 차별의 온상… 몽고메리시 버스를… 보이콧하라? 미국 공산당? 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나도 모르겠수. 무슨 빨갱이들이 설치는지….”
세상 참 말세다. 버스 기사는 혀를 차면서 다시 엑셀을 밟았다. 주제도 모르는 흑인들이 빨갱이들과 손을 잡고 날뛰다니!
‘클랜’이 나서야 했다. 저 건방진 검둥이들에게 주제를 가르쳐 줄.
아마 오늘 밤 열릴 집회를 생각하며 버스 기사는 한껏 엑셀을 밟았다.
* * *
도로는 흑인들로 가득했다. 지역의 수많은 흑인들은 공산당과 NAACP가 내놓은 버스 보이콧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하하하! 버스를 보이콧하라!”
거기에 붉은 스카프를 왼쪽 팔뚝에 맨 백인 노동자들이 합세했다. 그들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흑인 동료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서 공장으로, 직장으로 향했다.
남들보다 좀 더 여유가 있는 이들은 자기 차로 카풀을 해서 이웃들을 실어날랐다. 흑인 택시 기사들은 10센트 요금만 받고 흑인들을 차에 한가득 태워 직장으로 데려다주었다. 간간이 있는 백인 공산당원 택시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조직된 보이콧은 보이콧에 동참한 사람들마저 얼떨떨하게 만들었다.
“여어! 자네도?”
“하하, 부장님도요?”
일부러 무언가 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뭔가를 하지 않는것은 쉬웠다.
버스를 타지 말자! 이 간단한 주장은 사람들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전단지가 돌고 전화통이 몇십 번쯤 울린 후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너도? 너도? 하는 인사들이 몇 순배 돌고 나자 사람들은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게 되었다.
앨라배마 공산당 서기장 존 레닌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함께할 때 우리는 강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옆의 동지가 당신과 함께합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백인 권력기관들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사태파악에 급급해 있었다. 물론 실제 길거리에 나와 거리를 가득 메운 흑인들의 인파를 보았더라면 충격을 받았겠지만.
<피부색과 관계없는 선착순 좌석 착석>
<흑인도 버스 기사가 될 수 있다>
보이콧의 요구사항은 크게 두 가지였다.
기존 버스 운송체계에서는 인종에 따라 앉을 수 있는 자리를 구분했고, 흑인은 무조건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이 조항을 철폐하라는 것이 한 가지였다.
또, 버스 기사는 무조건 백인만 될 수 있었으나 이것 역시 철폐 요구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백인 버스 기사들의 횡포에 당했던 흑인들은 요구조항에 열광했다.
“그래! 빌어먹을 버스 기사 새끼들…. 우리라고 못 할 게 뭐냐!”
“우리도 똑같이 앉아서 버스를 탈 권리가 있다!”
감히 검둥이들이 조직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데 경악한 백인들은 물론 각종 탄압을 시작했다.
“45센트 이하로 요금을 받는 택시 기사는 무조건 해고하겠다!”
가장 먼저 택시가 타겟이 되었다. 몇 주간 10센트, 버스 요금 수준만 받고 흑인 승객들을 태워다 주었던 택시 기사들이 본보기로 해고당했다.
겨울이 오며 차가운 눈보라가 몰아닥치자, 택시나 버스가 없이는 흑인들이 돌아다니지 못할 거라 생각한 백인 지도부들은 콕 집어서 흑인들의 운송수단을 공격했다.
“자넨 해고일세.”
“예? 말도 안 됩니다! 나는 규정대로….”
“자네가 10센트 요금만 받고 사람들을 태웠다는 신고가 들어왔어! 빌어먹을 빨갱이 새끼들하고 붙어먹었다는 것도. 우리가 그걸 그냥 두고 볼 줄 알았나?”
여덟 명의 흑인 택시 기사와 두 명의 백인 공산당원 택시 기사들이 해고당했다. 버스 보이콧으로 막대한 적자를 떠안게 된 버스 회사들은 출혈을 감수하고 로비를 벌여 흑인들의 조직행동을 분쇄하고자 했다.
택시 회사들 역시 회사에 손해를 입히며 흑인 운동을 지원하는 기사들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하, 해고라고? 그럼 우리도 방법이 있지.”
하지만 악에 받친 사람들을 찍어누를 수는 없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내리나 흑인들은 이를 악물고 직장까지 걸어 다녔다.
그리고 공산당은 뜻밖의 우군을 얻었다.
* * *
“뭐? 버스 보이콧 운동이라고?”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의 몽고메리라는 곳에서….”
크루글로프는 미국 지도까지 보여 주며 내게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실제 역사의 50―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을 촉발시킨 사건이 바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여기에 참여해 보이콧 운동을 이끌었고, 흑인 민권운동의 대명사로 떠올랐는데….
“앨라배마의 공산당 조직에서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허허허, 거참….”
주 정부당국은 치졸한 방식으로 흑인운동을 탄압하고 있었다. 통근로를 틀어막고, 흑인들을 싸게 태워 주는 택시 기사들을 해고하고, 공산당원들을 박해하고….
대부분 가난한 노동자들이나 흑인들이 당원인 공산당으로서는 대처할 수 있는 여지가 적었다. 돈이라도 있으면….
아니, 돈이 필요 없지?
“그럼 그거, 그걸 잔뜩 보내 주면 되겠군.”
“예? 그거라면….”
“왜, 그거 있잖나!”
내 말을 알아들은 크루글로프는 아, 하고 감탄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