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
240화
“자… 히틀러가 잡히면 어떤 벌을 받아야 할까요? 어떤 벌을 주는 게 맞을까요? 어디 말해 볼 친구?”
“…저요!”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국제법과 전쟁에 관해서 가르치는 시간이라지만, 초등학생에게 이런 내용이 적합한가 고민하던 사회 선생은 그래도 대답이 나온다는 것에 내심 기뻐하며 손을 든 아이를 지목했다.
“그래, 마이클. 한번 말해 볼래?”
“히틀러를 흑인으로 만들어서, 미국에 살게 하면 돼요.”
* * *
“이봐, 깜둥이 형씨. 일어나지 그래?”
“….”
전직 미군 중사 제임스 ‘짐’ 파크스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의 눈앞에서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지껄이는 백인 쓰레기는 히죽히죽 웃으며 버스의 창문을 탕탕 두드렸다.
그의 뒤에 앉은 어린 흑인 소년들은 잔뜩 겁을 먹은 듯했다.
“깜둥아, 일어나라고! 여긴 버스 안이야!”
“그렇소, 여긴 버스 안이고 나는 요금을 내고 탔지.”
버스 안의 모든 승객이 그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파크스는 군대에서 하던 대로, 전방 15도를 주시하며 꼿꼿하게 허리를 폈다. 가슴팍에 항상 그가 달고 다니는 훈장이 더 잘 보이기를 그는 바랐다.
지난 대전에서 그는 이등병으로 시작해 중사로 전역할 수 있었다. 용맹하고, 성실하며 총명함. 항상 그의 근무 평가에 따라붙는 코멘트였다. ‘흑인이지만’이 앞에 붙어 있었지만.
그를 높게 평가한 대대장 바틀리 중령은 흑인인 그가 중사까지 승진할 수 있도록 도왔고, 공적을 인정받아 훈장까지 수훈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도왔다.
그러나 네 개의 훈장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후의 군 감축에서 군대를 떠나야 했고, 대령이 된 전 대대장 바틀리는 아쉬워하며 파크스의 고향 근처에 아는 인맥을 총동원하여 꽤나 괜찮은 일자리를 알아보아 주었다.
버스로 한 시간씩 걸리는 출퇴근 거리에도 불구하고 파크스는 직장에 감사했다. 항상 잘 다린 정장을 입었고, 가슴에는 그가 받았던 명예 훈장을 달았다. 일은 고되지만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견딜 수 없는 것은… 굴복하는 것이었다.
“깜둥이! 법―에 따르면 거기는 너는 일어서야 해! 내 버스에서 내리고 싶지 않으면 당장 일어서!”
“연방 헌법에 따르면 흑인은 백인과 동등한 자유인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소. 내 말이 틀렸소, 기사 양반?”
“깜둥이가 글깨나 배웠다고 기고만장해서 백인을 알아보지도 못하나 본데…!”
버스 기사가 진한 남부억양으로 파크스에게 외쳤다. 뒤에 앉은 흑인 아이들이 이를 딱딱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앨라배마에서, 남부 인종차별의 심장에서 그 아이들은 백인이 뭔가를 말하면 겁을 먹는 것부터 배워야 했다.
겁먹고, 굴종하고,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 노예의 후손! 대를 이어 벗어날 수 없는 증오스러운 굴레! 술 취한 백인 승객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훈장이 흙투성이 버스 바닥에 떨어졌다.
“호오, 이건 뭐야? 깜둥이가 저기 군대에 다녀오기라도 했나 보지? 총 잡고 노란 원숭이들에게 총질 좀 해 보니 백인 주인님들이 만만해 보이시나?”
“나는 미합중국 육군 중사 제임스 E. 파크스요! 의회 명예 훈장과 은성무공훈장을 수훈했고, 이 나라를 위해 태평양의 섬들에서 싸우다 돌아왔소. 훈장에서 손 떼시오!”
“하하하하하! 깜둥이가 훈장이래!”
백인 승객들은 왁―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에게 흑인이 군대에 가서 명예 훈장을 탔다는 것은, 아마 저질 코미디언의 농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남북전쟁 시대부터 남부인들은 검둥이들이 제 주인을 공격할까 봐 흑인들에게는 무기를 쥐여 주지 않았다. 흑인들에게 합당한 것은 채찍과 농기구라며.
세월이 흐르고 노예제는 철폐되었으며 흑인 대령과 장군이 탄생했다. 현재 미합중국 군대에는 두 명의 흑인 장군이 있었고 병사와 부사관, 장교들 중에는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도 흑인이 백인만큼 잘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이오지마에서 가장 먼저 잽스들의 방어선을 돌파해 기관총이 설치된 벙커를 폭파했을 때 상급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흑인이 백인들을 제치고 최고 공훈을 세울 수 있지?’
바틀리 중령은 악을 쓰고 그들과 싸웠다.
“흑인, 백인이 아니라 빌어먹을 내 병사, 내 새끼가 공을 세웠고 난 그것을 분명히 보고했다고!”
목격한 병사들의 공통된 증언으로 파크스 병장이 가장 먼저 방어선을 돌파했음이 확인되었다! 상부는 결국 그의 공훈을 인정했다.
그리고 바틀리 중령은 예비역 대령으로의 ‘승진’이 결정된 이후 그에게 말했다.
“빌어먹을 개새끼들. 하지만 그 개새끼들하고 물고 뜯어서 이긴 개새끼는 나다!”
그야말로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대대장에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대대장님. 왜?”
그의 마음을 읽은 듯 바틀리 중령은 그의 눈을 노려보았다.
“물러서지 마라. 저 개 호로잡놈의 새끼들 앞에서. 나는 지는 게 너무 좆같아.”
“짝!”
얼굴이 얼얼했다. 훈장을 집어 희롱하려는 백인 쓰레기의 팔목을 콱 틀어잡자, 바이스 같은 악력에 놀란 쓰레기 놈은 그의 뺨을 때렸다. 술에 취한 채 얼떨결에 날린 일격이라 아프지는 않았다. 굴욕적일 뿐.
지지 마라! 물러서지 마라! 바틀리 중령의 호령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 *
몽고메리시 보안관은 흑인이 백인에게 대들 수 있다는 것에 경악한 듯했다.
“하느님 맙소사, 빌어먹을 깜둥이 새끼들이 이제 곧 폭동을 일으키겠군.”
하지만 온갖 모욕에도 불구하고 수갑을 차고 보안관서에 끌려온 파크스는 의연했다. 그는 여전히 군대에서 배운 꼿꼿한 태도로 유치장 안에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물론 그도 아버지가 늦게 돌아온다는 것에 의아해할 그의 어린 딸이 잠이나 설치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이 당시 전화기를 가지고 있는 가정은 대략 절반이나 그 미만 정도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난한 흑인들은 교회를 통해 연락을 받곤 했다.
“예. 워렌입니다. 예? 짐 파크스 말입니까?”
항상 착실하고 성실했던 젊은 청년이 보안관서에 가 있다는 전화를 들은 흑인 교회의 목사 샘 워렌은 기함했다. 내가 아는 그 짐 파크스? 명예 훈장을 수훈한?
짐 파크스는 몽고메리 흑인들의 영웅이었다. 군대에서 결국 전역해 돌아왔을지언정 그는 흑인이 얼마나 영웅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산증인이었으며, 지난 대전에 단 3천여 명밖에 받지 못한 명예 훈장을 탄 최고의 군인 중 하나였다.
[그 검둥이 맞을 거요. 가족들에게 그자가 유치장에 있다고 전하시오.]
“이게 무슨… 무슨 일로 끌려간 겁니까?”
보안관은 퉁명스럽게 아마 그 검둥이가 맞을 것이라고 대답하고 홱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하느님 맙소사…!”
누군가에게 알려야 했다. 일단 짐 파크스의 아내 리자와 딸 캐롤에게 가야 했다. 집에 전화기도 없어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불안하게 기다리고 있을 모녀에게 먼저 알려야 했다.
워렌 목사는 옷을 갈아입고 장화를 꺼내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다음엔?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아마 백인 판사와 검사는 노발대발할 것이다. 배심원들 역시 길길이 날뛸 것이다.
앨라배마주의 인구는 대략 삼 할이 흑인이었지만 흑인들은 ‘읽고 쓸 줄 모른다’는 이유로 배심원으로 선정되지 못했다. 변호사나 검사, 판사가 된다고? 그야말로 언감생심이었다.
저기 북부의 자유로운 주들에서는 흑인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제 권리를 찾을 수 있었겠지만, 투표를 하려 하면 포플러에 매달리기 십상인 이 지옥 같은 남부에서는 그러기조차 어려웠다.
NAACP(전국 유색인종 연합)의 저명 인사들에게는 뭔가 방법이 있을까?
“에드 닉슨!”
그 이름이 퍼뜩 떠올랐다. 몇 년 전, 에드 닉슨은 몽고메리시에서 무려 800명이나 되는 흑인들을 모아 투표권을 요구하는 행진을 조직했다. 물론 입법자들은 검둥이들이 무슨 소리를 하건 들어줄 마음이 없었기에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전화번호부를 뒤지는 목사의 손이 빨라졌다. 주님, 주님의 양 떼를 지키소서….
NAACP, 몽고메리시 참전용사 전우회 등 짐 파크스의 편을 들어줄 만한 조직들에 하나하나 전화를 걸었다.
[예? 아 우리는 그런 일에 관심… 제임스 파크스 중사 말입니까? 그 친구… 아니, 그분이 왜 끌려갔답니까?]
“우리도 잘 모르겠습니다.”
참전용사 전우회는 처음에는 시큰둥하다, 명예 훈장을 수훈한 제임스 E. 파크스 중사라는 말을 듣고 태도가 급변해 얼마든지 도와주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스트 마지막의 번호에 이르렀을 때 워렌 목사는 잠시 고민했다.
<미국 공산당 앨라배마주 지역당> : **―****―***
“….”
공산당, 그 이름은 여전히 남부 사람들에게는 악마보다 조금 낫고 개새끼들보다는 조금 못하며, 대충 흉악범죄자 비슷한 무엇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또 어디서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공산당에서는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장학금을 주고, 무료 병원을 알선해 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제기랄, 악마의 손이라도 빌려야겠지.”
보안관들은 아마 기함을 할 것이다. 공산당 놈들이 남부에서 설치고 돌아다닌다니!
하지만 검둥이가 백인과 문제를 일으킨 것부터가 보안관들에게는 충분히 문제적인 현상이었다. 공산당이 더해진다고 그들을 더 분노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예! 민중의 벗,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 미국 공산당 앨라배마 지역당입니다.]
의외로 맑고 경쾌한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제법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받은 이는 귀찮아하는 기색 하나 없이 응대하는 것에 워렌 목사가 놀랄 지경이었다.
“아, 예, 저, 그 음… 청년 하나가 보안관서에 잡혀갔는데….”
[그렇군요! 무슨 일인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대뜸 체포 이야기를 한 것은 실수였다. 다른 곳에서는 반드시 이야기의 대상자가 얼마나 성실하고 착하며, 범죄 경력이 없고, 명예 훈장까지 수훈한 영웅이라는 점을 먼저 이야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공산당은 체포라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경청했다.
‘자기네들도 많이 잡혀가서 그런가….’
“예, 예. 저희는 흑인입니다. 물론 거렁뱅이 부랑자 같은 이들은 아니고, 저는 목사이고 잡혀간 친구는 전직 군인으로 훈장도 많이 타고… 아무튼 착한 친구인데 이 친구가 무슨 시비에 휘말렸는지 보안관서로 끌려갔고….”
[그렇습니까? 대단히 걱정이 되시겠군요.]
전화를 했던 그 어떤 조직보다도 살가운 태도에 워렌 목사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사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가 이 도시에서 목사 일을 하는 동안 수많은 흑인들이 경찰, 보안관, 혹은 백인들이 손아귀에 쥔 권력기관들과 시비에 휘말려 왔다.
그리고 그 모든 정부기관들은 결코 가진 것 없는 깜둥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 준 적이 없었다. 해결해 줄 테니 닥쳐라, 어디서 감히 난리냐, 죽고 싶냐?
백인 ‘자경단’은 흑인을 린치해서 나무에 매달아 버리는 것을 일종의 유희처럼 즐겼고, 권력기관들은 자기네들을 귀찮게 하는 흑인을 얼마든지 이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렇습니다… 제발… 제발 도와주십시오….”
[얼마든지요! 그럼 세 시간 후 몽고메리 보안관서에서 뵙겠습니다. 저희 측 변호사를 불러야 해서 시간이 조금 지체될 수도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예? 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럼 여기까지 민중의 벗,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 미국 공산당 앨라배마 지역당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엔딩 멘트와 함께 전화는 끊겼다.
세 시간 후? 세 시간이면 파크스 네 식구들을 데려간다면 빠듯하게나 맞출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런, 빨리 가야겠군.”
그렇게 빨리 도와주러 온다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악마 비슷한 이들이라 그런가? 아무튼 아무 도움도 없이 고압적인 보안관 앞에 서는 것보다는 낫겠지. 워렌 목사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