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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39화 (239/300)

# 239

239화

북일본이 남쪽에서 무슨 난리를 치건 독자행보를 할 수 있는 데에는 한 가지 배경이 있었다.

“남일본이 독자 침공을 한다고? 미국이 가만두겠어?”

남일본의 최대 스폰서인 미국은 일본이 극우적으로 설치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았다. 미국인들은 일본의 선제공격에, 그리고 그 광기에 이미 한 번 호되게 데어 본 적이 있었다.

미국은 국민 통제가 용이하도록 국체를 반드시 입헌군주정으로 해야 한다는 보수파들의 주장은 용납하기는 했어도, 그 이상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일본 내 보수파들은 차마 자기네들도 공산당을 쓸 수는 없으니 가져다 쓰는, 일종의 필요악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은 저 야쿠자들도 단속을 하라고 하는데….”

“그놈들이 뭘 알겠어? 하던 대로 빨갱이들이나 잡아 족쳐.”

그러나 미군은 결국 극동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낮추기 위해 철수했다. 이 기회를 틈타 경찰, 검찰 등 제대로 물갈이되지 않은 일본의 권력기관들은 모든 것을 도로 원상복귀시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가 피해자라니까요?”

“어허! 이쪽에서 먼저 소동을 일으켰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어디서 발뺌인가?”

“시끄럽다! 경찰서로 따라와!”

관료 권력은 철저하게 상부의 입맛에 따라 자의적으로 움직였다.

경찰들은 실제로 선빵을 친 사람이 누구든, 누가 더 큰 피해를 입었든 개의치 않고 ‘불온분자’들을 우선해서 단속했다.

야쿠자들은 낄낄 웃으며 풀려날 수 있었지만, 공산당원들은 며칠이고 차가운 유치장에 갇혀 있어야 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이오?”

“법? 법이라고 했나? 너희 빨갱이들 때문에 법이 정해지는 게 늦어지고 있어서 너희들이 피해를 보는 거야. 정 꼬우면 너희들 윗선에나 가서 따져라!”

“허, 허, 이런 제기랄….”

북일본에서는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최소한 법률을 강제할 정부를, 그 과정이 어떻건 간에 선출해 놓고 떠났다.

하지만 남일본에서는 헌법 제정에 관한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미군은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선거를 주관하지 않고 훌쩍 떠나 버렸다.

여기에 더해, 남아 있던 권력기관들의 전횡까지 시작되자 점점 국가는 막장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농촌에서는 무장한 좌파조직들과 우익 준군사조직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충돌을 벌였다. 도시에서는 야쿠자들의 백색테러와 공산당원의 적색테러, 그리고 사법기관들의 전횡으로 피가 튀었고.

“일본을 반드시 재건해야 합니다! 강력하고 번영하는 일본! 만세! 만세!”

“폐허에서 불사조가 날아오르듯 일본은 재건될 것입니다!”

모두가 재건과 번영을 외쳤지만, 재건은커녕 남아 있는 것들마저 좌우익의 극한 대립 속에서 부서져 가고 있었다.

* * *

“그래, 일본 내에 혼란을 조장하는 작업은 잘 되고 있나?”

“예! 서기장 동지. 현재 미국 국무성에서는 시시각각 남일본 문제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는 중입니다.”

“손을 떼도 좋고, 손을 안 떼도 좋고. 어느 쪽이나 우리는 상관없지.”

우리 손에 들어올 것이라면 고스란히 가져오는 게 낫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숴 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일본의 분할점령은 이미 합의된 사항이었다. 웬만큼 무리를 해서는 남쪽 절반까지 우리 손에 넣을 수 없었고.

그렇다면? 그냥 미국의 충실한 종속국이 될 남일본을 혼란 속에 빠트려 네 것도 내 것도 아니게 만들어 버리는 게 낫다.

그리고 미국의 대외노선에도 상당한 부담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놈은 우리 개새끼지.’

루즈벨트는 니카라과의 독재자인 소모사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무성에게 그렇게 촌평을 남겼다.

미국의 앞마당인 중남미에서, 미국은 여지없이 제국주의 패권국으로의 혐오스러운 면모를 드러냈다. 미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독재정권들을 후원하고, 민중의 불만을 찍어누르는 것을 도와주고 군부 내에 끄나풀들을 심어 정상적인 정권들을 군부 쿠데타로 엎어 버렸다.

소모사도 비슷한 중남미식 독재자였고, 미국은 미국에게 충성한다면 독재자도 ‘우리 개새끼’ 정도로 용납해 줄 수 있었다.

물론, 이게 대놓고 알려질수록 미국이 자처하는 ‘자유의 수호자’로서의 이미지에는 금이 가겠지만.

“미국이 자기 손으로 파시스트들을 꺾어 놓고선 다시 파시스트들, 독재자들, 정치깡패들을 후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겠나?”

“그… 그렇다 해도 실제로 외교관계에서 이득이 된다면 미국 편을 들지 않겠습니까?”

흐루쇼프는 손을 들고 우려가 된다는 듯 조심스러운 반론을 내놓았다.

으음, 아직 서기장이 되기에는 단수가 낮았다.

물론 소련은 대외적으로 제3세계 국가들, 피식민지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며 이러저러한 이들을 하고 있었고, 그게 실제로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미국은 좀 이야기가 다르다.

“미국은 외교가 문제가 아닐세. 내부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려는 거지.”

“…아!”

많은 나라들이 그렇지만, 미국은 단일한 이해관계로 뭉친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이리저리 뒤얽혀 움직이는 복잡한 관계망이지. 그 안에는 무자비한 군산복합체나 석유 재벌들도 있었고, 동부의 정치 엘리트나 남부의 보수적인 의원님네들도 있었지만 급진적인 대학생들, 노동조합들, 혹은 미국 체제에 불만을 품은 소수인종들도 있었다.

군산복합체나 석유재벌 같은 이들은 미국의 부도덕함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할 것이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군사력을 빌려 제3세계인들의 피눈물과 기름을 짜내어 제 배를 불리는 데 혈안이 된 자들이니.

하지만 미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진정으로 미국이 자유의 수호자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파시스트 정권을 후원하는 제 나라 정부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면, 조금 더 빨리 깨달을 수 있겠지 않나? 자본주의가 어떻게 제국주의로 변질… 아니, 진화하는지에 대해.”

실제 역사의 베트남 전쟁이 그랬다. 2차 대전은 파시스트들의 침략에 맞서 유럽과 태평양을 수호하기 위한 성전이었고 한국전쟁은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전쟁이었지만, 베트남 전쟁은 그저 ‘더러운 전쟁’이었다.

부패한 수뇌부들을 지켜 내고, 프랑스 식민제국들의 잔재를 지켜 내는 전쟁. 나라 돌아가는 꼴에 불만을 품고 무장봉기를 일으키는 국민들을 학살하는 정부와, 그 정부를 지키기 위해 남의 나라에 가서 민초들을 죽이고 폭격하는 전쟁.

인도차이나반도, 그리고 아시아가 공산화당하는 것을 막는 성전으로 포장하는 것도 한때. 전쟁의 진상이 밝혀지자 미국 내부에서는 반전―반정부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그리고 이 세계의 소련은 실제 역사와 달리 적색 제국주의로 빠지지 않은,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실망한 그들의 눈에, 우리의 번영과 평화가 일종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겠나?”

* * *

동독의 노동자 봉기를, 헝가리 혁명을, 프라하의 봄을 전차로 짓밟은 소련은 68 운동의 대안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민중혁명을, 인도의 반제투쟁을 후원하는 소련은 폭압적인 제국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이제 미국에게는 시시각각 선택의 순간이 가까워져 올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머지않았네. 그리고 전 세계 각지에서는 미국의 개입을 요구하는 사건들이 터져 나올 것이고. 그 친구들은… 위선의 가면을 벗을지, 아니면 계속해서 무리를 할지 선택해야 하겠지.”

“….”

월리스 행정부는 좋은 파트너였다. 월리스는 이상론자였으며, 도덕주의자였다. 그는 미국이 세상을 위해 더 많은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또 그대로 실행하고자 했다.

하지만 더 많은 시장과 더 싼 원료를 요구하는 자본주의는 식민지들이 인간적인 삶으로 도약하는 꼴을 눈 뜨고 보지 못하고 있었다. 영국이 먼저 식민지 전쟁에 뛰어들었고, 거기에 따라 들어가냐 마느냐를 두고 미국 역시 내홍을 겪고 있었다.

맥아더가 당선될 경우, 아마 미국은 전 세계의 피식민지 국가들을 다시 시궁창에 처박아 버리기 위한 전쟁에 뛰어들 것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순을, 소련은 낱낱이 까발려 세계에 알려 줄 것이고.

* * *

“철거를 시작하라!”

“예!”

폐허가 된 도쿄 중심부는 한창 철거와 재건이 진행되고 있었다. 남일본 구역이나, 북일본 구역이나 그것 하나만큼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여길 어떻게 그렇게 철거한단 말인가! 중지하라!”

“무시하고 진행하도록!”

황거가 있던 자리를 기준으로 그어진 남북의 경계선은 무신경했던 만큼 여러 문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야스쿠니 신사였다.

황거 기준으로 북쪽에 있었기에 북일본 관할로 들어간 이곳은 남쪽에 있는 우익 세력들에게는 성지나 다름없었다. 황국을 위해 싸우다 신이 된 이들이 합사된 곳이 바로 성지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북일본 정부는 폭발에 휘말려 무너진 신사를 재건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신사? 철거하고, 위패는 불태우게. 애초에 국립묘지를 만들면 되는데 그런 시설이 왜 필요한가?”

일본 제국의 공식 이데올로기던 국가신토를, 북일본 공화국은 철저하게 배격했다. 개인의 종교는 자유지만 굳이 전범을 추종해야 하나? 가 바로 공화국의 주요 논지였다.

태평양 전쟁의 전범들이 처형당한 이후 그들을 신사에 배향한 이들은 최소한 북일본에서는 ‘평화에 관한 죄’로 처벌당했다.

“제국의 과거를 속죄하고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다시 평화로운 내일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과거사 청산이 필요하다!”

미야모토 켄지 총리는 그렇게 주장하며 사회 각계에 있는 ‘제국주의적 색채’를 제거할 것을 명령했다. 국가신토 역시 그 일부였고.

하지만 남일본은 그런 북일본의 ‘과격 반달리즘’에 치를 떨었다.

“국가에 공헌한 이들을 그렇게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는 국가가 유지될 수 있는가!”

“야스쿠니 신사는 복원되어 문화유산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야스쿠니 신사가 있던 자리를 밀어 버리고 세계인을 위한 평화박물관을 짓겠다는 일본공산당의 주장에 우익들은 발작하듯 반응했다.

“평화? 차라리 이 끔찍한 원자폭탄에 희생된 일본인들을 기리는 원폭희생자 기념관을 지어라!”

“우리도 피해자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강점된 피해자!”

미국이 들으면 기겁을 하며 때려잡으려 들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미국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다. 야스쿠니 철거현장에는 경계선을 넘어 모여든 수백, 수천 명의 시위대들이 집결했고, 공사하던 인부들은 겁에 질려 장비를 놔두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썩 꺼져라! 너희는 모두 체포다!”

“헤헹, 순순히 물러날 줄 아냐?”

“바닥에 엎드려라! 엎드리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사시미칼이나 일본도를 꺼내 든 야쿠자들은 총구 앞에서도 겁먹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그들이라고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막대한 보상과 협박이 뒤에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쏴 봐! 멍청한 놈들, 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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