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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38화 (238/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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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화

물론 극동의 모두가 미소경쟁 사이에서 때아닌 특수를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갈 수 있던 것을 왜 못 가게 한단 말입니까?”

“거 안 된다면 좀 안되는 줄 아쇼! 나라고 뭐, 무슨 사달이 났는지 알 게 뭐람?”

“아이고… 저기를 지금 못 가면….”

대전이 끝난 후, 미국과 소련 점령지대로 양분된 일본은 남북 간에 서서히 차오르는 긴장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한때 제국의 수도였던 도쿄는 남북으로 반분당했다. 미군과 소련군은 폐허가 된 황거를 기준으로 지도상에 도쿄를 반분하는 일직선을 쭉 긋고, 이를 연장해 북일본 소련군 점령지와 남일본 미군 점령지 사이의 경계선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경계선은 고조되는 긴장 속에서 계속 두터워지고 있었다.

* * *

발단은 국체(國體) 문제였다.

“소련은 결코 전범인 일본 덴노가 계속 국가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 하지만….”

소련은 자기네 점령구역에 전쟁범죄자를 ‘현인신’이며 ‘국가통합의 상징’으로 놔둘 생각이 없었다.

“천황제야말로 일본 군부의 폭주를 방기하고 문민내각이 정착되지 못하도록 막아 세운 최악의 원흉이나 다름없습니다. 새로이 세워질 일본은 무조건 공화정이어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남일본에 남은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전 천황, 히로히토는 이제 죽고 없습니다! 그의 죄를 자녀에게 연좌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국민적으로 입헌군주제 지지여론이 훨씬 높습니다! 신헌법은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초하며….”

“누구 맘대로 일본 국민의 총의를 운운합니까?”

분단된 두 일본에서는 향후 국체 및 헌법 제정에 대한 대논쟁이 발생했다. 각 구역의 정치인들은 각자의 소신을 주장하며 어떤 식으로 새로운 일본을 건설해야 할지를 가지고 다툼을 벌였다.

물론 북일본 지역의 전권을 소련 군정으로부터 이양받은 일본공산당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천황제를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평화―공화의 새 시대로! 일본공산당과 함께]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 공산당이 만들어갑니다]

공산당이 내세운 신헌법은 소위 ‘평화―공화 헌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두 가지를 핵심 조항으로 하고 있었다.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오직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무력만을 보유할 것입니다. 또한, 구시대적인 군주정을 폐기하고 국민이 오롯이 국가의 주권을 가지는 공화정으로 이행할 것을 천명합니다.”

일본공산당 서기장 미야모토 켄지는 공산당의 공식 제안으로 신헌법을 내놓으며 그렇게 밝혔다.

물론 이는 열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반역자들! 배반자들이다! 소련에 부역하여 일본을 국제공산당에 팔아넘기려는 개수작이다!”

이것이 가장 온건한 표현에 가까웠다. 온갖 욕설과 비난이 쏟아졌다.

“무력을 포기하는 것은 국가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침략을 위해서가 아니라 방위를 위해서라도 적절한 수력의 무력은 갖추어야 하며….”

“천황제는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일본의 전통이다. 맹목적인 외부체제에 대한 맹종으로 전통을 포기하는 것이 어찌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 유익할 수 있는가?”

자유당이나 민주당 같은 우익계 정당들은 점잖게 논평을 내면서도 절대 ‘평화―공화 헌법’은 용납할 수 없음을 선언했다.

이들의 배후에 있는 미군정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은… 여차하면 중국의 방파제가 되어야 합니다. 중화민국을 미국과 연결하는 징검다리로 일본열도는 가치가 있습니다.”

중공과 중화민국은 회하를 경계선으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으며, 중화민국이 만약 공산국가들에게 포위당해 무너질 경우 극동의 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미국에 손을 뻗고는 있어도 소련과 미국 사이에서는 중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어쨌든 손안의 남일본 점령지를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만약 일본공산당이 제안하는 신헌법, 평화헌법이 받아들여진다면? 충분히 고기방패로 내몰 수 있는 수만 명의 군대를 그냥 눈 뜨고 버려야 하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북일본, 소련군 점령지역을 장악한 공산당은 초유의 강수를 두었다.

“좋다! 그러면 국민이 어느 헌법에 동의하는지 국민투표로 결정하자!”

“아니, 헌법안이 제대로 제안된 것도 없는데 무슨 국민투표란 말인가?”

“왜 없는가? 공산당이 제안한 평화헌법이 있지 않나?”

남일본 측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북일본은 독자적으로 제헌의회를 구성해 평화헌법을 의결, 통과시켰다.

물론 제헌의회의 구성 과정이 투명했다는 것을 보장할 수는 없었지만.

대부분의 정당 후보자들이 당론에 따라 제헌의회 선출을 거부한 가운데 공산당은 거의 전 지역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일부 무소속들이 당선되기는 하였으나 대세를 바꿀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로써 일본 공화국의 신헌법이 의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와아아아아! 공화국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센다이의 체육관에서 공산당 소속의 제헌의회 의원 294명이 모인 가운데,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만장일치로 통과된 헌법은 다음날 바로 발효되었다.

일본공산당은 남쪽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헌법에 따른 내각을 구성하기 위한 총선을 진행시켰으며, 소련군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무기를 인수해 ‘자위대’를 구성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남일본의 정치세력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행동에 나섰다.

“우리 역시 단독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갖춘 정부를 구성해야 합니다! 저들이 정당성을 독점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는 ‘선거파’였다.

그 과정이 얼마나 독단적이었든, 아무튼 북일본에 들어선 자칭 일본공화국 정부는 선거를 통해 민의를 빌어 당선된 정부였다.

그들이 자기네가 일본의 정통정부라고 자임한다면 반대파들로서는 반박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최소한 정통성을 주장하는 대립정부라도 존재해야 했으며, 그 정부는 반드시 민주적 권위에 의지해야만 했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저들의 선거 자체가 조작된 사기극인데 무엇 하러 우리가 단독 선거를 치른단 말입니까? 우리가 서둘러 선거를 치른다는 사실이 오히려 저들의 정통성을 더해 줄 것입니다. 거짓 선거를 거부하고 소련의 괴뢰정부를 타도하기 위한 무력투쟁에 나서야 합니다!”

그들은 선거를 거부하고, 어떤 방식을 사용하든지 북일본의 ‘괴뢰정부’를 타도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주로 ‘타도파’라고 불리곤 했다. 주로 천황제 지지자들로 구성된 이들은 일본을 갈라놓는 두 개의 정부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경악했다.

“일본 66국은 하나다! 만세일계로 내려오는 천황 아래 단합한 일본은 하나일 수밖에 없으며 외세의 권위를 빌어 일본 정부를 참칭하는 괴뢰들은 단호하게 배격, 타도해야만 한다!”

“마침 소련군이 물러가고 저들은 무력을 보유하지 않았다. 괴뢰정권을 무너트릴 절호의 기회가 도래했다!”

미국 내에서도 일본의 재무장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이는 동안 구 일본군의 잔해들은 재조직을 시도했다.

옛 장교들이 모였고, 극우 야쿠자들이 동원한 꼬붕들은 팔자에도 없는 군사훈련을 받으며 소위 ‘일본국 수비군’으로 편성되었다.

비밀리에 각지에서 만들어진 군사조직들은 그리하여 ‘빨갱이 간첩들’을 색출하고 ‘국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행보는 바로 백색테러였다.

“으악! 사람 살려!”

“너! 스기우라 타로! 빨갱이 새끼를 벌하러 금강야차가 왔다!”

이즈음 일본의 정세는 ‘공촌자도’로 설명할 수 있었다.

몇 년 동안이나 집요하게 가해진 미국의 고엽제 폭격은 농촌 민심을 반미, 친소로 돌려놓았다. 반면 소련의 핵폭격에 말 그대로 삭제당한 도시인들은 소련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품었다.

치안이 불량한 농촌을 야쿠자 소속의 조직원들, 혹은 ‘일본국 수비군’들이 대대적으로 습격했다.

대상자는 주로 지역의 공산당 거점이나 남일본 지역 공산당, 사회당의 주요 인사들이었다.

“네놈들을 벌하러 우리가… 엥?”

“하하하, 빌어먹을 야쿠자 똘마니 새끼들! 우리가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았냐?”

물론 공산당원들이 그저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군용 대검이나 일본도를 들고 설치는 야쿠자들에 대항하기 위해, 농촌에 침투한 공산당원들은 비밀리에 유통시킨 화기를 들고 반격했다.

백색테러와 적색테러, 반격과 복수는 소련군 철수에 맞추어 미군이 빠져나가자 더 횡행하기 시작했다.

“천황 폐하 만세! 반역도를 토벌하라!!”

가장 테러가 심한 곳은 바로 반으로 갈라진 일본의 옛 수도, 도쿄였다.

북일본, 즉 ‘일본 공화국’은 헌법상 수도를 도쿄로 선포했으면서도 사실상 북부의 대도시인 센다이를 실질 수도로 삼아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도쿄에는 여전히 중요 시설들과 인물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고, 백색테러의 목표가 되었다.

소매에서 회칼을 꺼낸, 누가 봐도 야쿠자 조직원처럼 보이는 사내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자를 덮쳐 칼로 배를 쑤셨다.

주위에 경호원조차 두지 않고 돌아다니던 남자는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내뱉었다.

“개… 자식… 언제까지 뒈진 덴노 불알이나 잡고….”

“에이잇! 역도 새끼!”

호루라기를 불며 치안대가 달려오자, 야쿠자는 씨익 웃으면서 비명을 지르는 인파를 헤치고 달렸다. 그가 향한 방향은 남북일본의 경계선.

북일본 치안대는 분쟁을 우려하여 남쪽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보통 백색테러는 경계지역에서 행해지고, 테러리스트들은 그저 반대쪽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물론, 치안대라고 아무것도 못 하고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쏴라! 발포를 허가한다!”

탕! 탕! 권총 총성 두 방이 터져 나왔다. 나지막한 담벼락을 넘어 남일본 구역으로 도망가던 야쿠자는 다리에 총을 맞고 다시 북일본 구역에 떨어졌다.

“저 새끼 테러리스트다! 즉결 사살 허가한다. 쏴라!”

“제기랄….”

야쿠자는 피를 흘리는 다리를 붙잡고 다시 담벼락을 기어 올라갔다. 철조망이라도 쳐 놨어야 하는데, 치안대원들은 혀를 차면서도 후다닥 달려가 야쿠자를 붙잡았다.

그런데 잡아끄는 데도 그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담벼락 저편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 자는 현재 우리 구역에 있다! 물러나라!”

“무슨 소리냐! 지금 이놈의 다리가 이쪽에 있는데….”

담벼락은 암묵적으로 양측 영향이 미치는 구분선이 되었다. 하지만 그 구분선에 걸쳐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 관할인가?

결국 버둥대던 야쿠자는 남일본 측으로 끌어 내려졌다. 찢어진 바짓단을 잡은 북일본 치안대는 이를 박박 갈았다.

“저 빌어먹을 새끼들….”

저런 백색테러 같은 경우 외에도 온갖 사람들이 경계선을 마구 넘어 다니며 법망을 피해 다녔다.

도둑 같은 잡범들이나 공산당의 추적을 피해 남하하는 정치범들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리하여 원래는 그저 바닥에 그어진 선이었던 남북 간의 경계선은 점점 두터워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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