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
236화
극동의 전쟁은 끝났지만, 아슬아슬한 미봉책으로 끝났을 따름이었다.
국제연합 조사단이 중화민국의 추축국 협력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자 중화민국군은 말 그대로 수뇌부가 완전 정지해 휘청거렸다.
국민당 암살자가 모택동을 암살했지만, 그의 2인자였던 주은래와 총사령관 주덕은 황급히 사태를 수습하고는 무너져가던 홍군을 모아 반격에 나섰다.
그리하여 중국 대륙은 남북으로 양분되었고, 주은래의 중화인민공화국과 장개석의 중화민국은 회하를 경계로 팽팽하게 맞서는 형국이 되었다.
“두고 봅시다.”
“누가 할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두고 보도록 하지요.”
미소 양국의 중재하에 대륙을 반분하는 협정을 맺고, 일어나 악수를 하던 장개석과 주은래는 그렇게 미래를 기약했다.
장개석은 모택동 암살의 배후가 자신임을 부인했지만, 암살범이 남의사의 끄나풀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주은래는 온화하고 신사적이라는 세평과 다르게 잔뜩 핏발이 선 눈으로 장개석을 노려보았고, 대륙의 반을 앗아간 공산당 두목의 그런 눈빛을 그냥저냥 넘길 정도로 장개석이 만만하지도 않았다.
아무튼 1946년의 불안한 평화 이후로도 얼마간 시간이 지났다.
극동의 두 강국이 반 토막 난 이후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바로 ‘극동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이었다.
“제3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 대한민국과 유고슬라비아 공화국, 인도차이나 연방공화국은 다음과 같은 원칙을 국제 사회에 제시하는 바입니다.”
여운형, 티토, 호치민 3인이 국제사회에 제안한 <평화공존 5원칙>은 소위 ‘제3세계’ 국가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평화적 공존, 호혜적 상호협력, 상대방의 주권 및 영토 존중, 내정 불간섭, 상호 불가침으로 이루어진 5원칙은 피식민국들이 식민열강을 규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무기가 되어 주었다.
소련은 이 선언에 따라 한반도에 주둔해 있던 소련군을 철수시켰고, 이 역시 제3세계 국가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았다. 약한 이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내자 세계최강을 다투는 강대국이 순순히 따른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면 합의가 존재했다.
“우리 소련은 주대한민국, 주북일본 소련군을 전면 철수시키겠습니다. 미국은 원한다면 남일본 및 오키나와, 대만에 군사기지를 유지해도 좋지만….”
“대신 우리 미국은 만주인민공화국, 티베트공화국과 동투르키스탄인민공화국 건국 및 몽골의 영토확장을 승인하겠습니다. 추후 이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각 공화국의 정체(政體)에 대해서도 양국은 상호 간에 협의된 대로 이행하고….”
미국 국무장관 마셜과 소련 외무장관 몰로토프는 극동지역의 분할을 두고 몇 가지 협약을 맺었다.
하나. 대한민국과 북일본에 주둔한 소련군은 철수하고 군사기지를 유지하지 않는다.
둘. 구 중화민국령이던 영토를 현재 판도대로 분할한다.
셋. 중화민국의 추축국 협력 혐의에 대해서는 미국의 결정에 따른다.
넷. 새로 독립한 국가들의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
미국은 남일본의 용이한 통제를 위해 천황제를 복구시키고자 했다. 이는 천황을 반드시 목매달겠다고 분노하던 소련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일이었다.
물론 미국도 할 말은 많았다. 미국의 핵심 파트너인 중화민국은 전범들의 도피를 도운 혐의가 있다지만 아무튼 극동의 몇 안 되는 우방국가였다.
그리하여 양국은 서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씩을 내주었다.
소련은 중화민국의 추축국 혐의에 더 이상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극동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대신 확실한 위성국들(만주, 동투르키스탄, 티베트, 북중국)을 얻었다. 미국은 중화민국과 남일본을 손에 넣었고.
이런 이면 합의 속에서 제3세계의 대표이자 양국의 영향력이 다 지배적이지 않은 한국은 의외의 특수를 누렸다.
“이게 바로 중립국이지!”
분할된 일본이나 중국의 대표단은 회담을 위해 라이벌인 상대국을 방문하느니 서울에서 회담을 여는 쪽을 선택했다.
‘동아시아 평화―균형’을 주창하는 한국은 적극적으로 각국의 평화회담을 자국에 유치했다.
물론 회담만 유치한 것은 아니었지만. 요사이 한국에서는 이런 농담들이 떠돌았다.
‘소련이 지어 준 공장에서 미제 밀가루 수제비를 먹고 총알을 만들면 산동에 한 발, 남경에 한 발, 센다이에 한 발, 오사카에 한 발을 수출한다!’
중립국이라 하여도 성향상 미소 중 한쪽에 기울어질 수는 있었다. 그리하여 미국과 소련은 극동의 유일한 ‘회색 국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경쟁에 들어갔다.
소련은 만주 지역과 일본에서 철거한 공장설비를 한국에 헐값으로 팔아넘겼다. 거의 무상이나 다를 바 없는 값에 넘어온 설비들은 흥남이나 울주, 혹은 경인지역에 설치되어 쌩쌩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국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동아시아의 완충지대인 한국에 대규모로 공장 투자를 감행했다.
“중국 대륙에서 전쟁이 터지면 여기가 바로 배후지가 될 것이오!”
“일본에서의 충돌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소련이 결코 이곳을 폭격하지는 않을 테니….”
중국이나 일본에서 군사적 충돌이 있을 경우, 군수공급의 전진기지로서 한반도는 막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직접적인 군사기지 설치는 거부되었지만, 상대방의 생산능력을 공격하는 것이 주 전략이 된 총력전의 시대에 적 코앞에 박아 둔, 하지만 건드려선 안 되는 군수공장은 전략적으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국은 양국 사이에서 능동적인 줄타기를 하며 날아오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 *
“아주 좋습니다! 저희로서는 더욱 바랄 것이 없는 제안입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허허, 우리가 감사드려야지요.”
주한 미국대사 윌리엄 랭던은 외무장관 홍명희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민족주의, 좌익 인사라고 들었으나, 홍명희는 미국인들에게도 시종일관 우호적으로 대하며 격의 없는 태도를 유지했다.
미국은 소련의 ‘장기적 계획’을 순식간에 파악했다.
‘소련은 유학생들을 통해 한반도, 아니 전 세계에 영향력을 펼치려 한다!’
모스크바에 세워진 <세계 프롤레타리아 대학>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수만 명의 유학생들을 받기 시작했다. 한반도에서도 능력 있고 뜻있는 젊은이들이 해방 이전부터 공산당의 추천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그렇게 세계 각지에서 친소 유학생들을 통해 장기적으로 상층부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파악한 미국은 맞불 작전을 준비했다.
“소련이 할 수 있다면 미국은 더 큰 규모로 할 수 있지.”
굳이 소련에게 싫은 소리를 할 필요도 없었다. 데려가서 밥 먹이고 가르쳐 주겠다는데 감히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미국은 더 큰 규모로 유학생을 유치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상원 외교관계위 위원장 풀브라이트는 ‘공산주의를 막는 가장 좋은 방패는 자유민주주의를 겪게 해 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대규모로 유학생들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첫 타자는 소련의 영향력이 강하면서도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대한민국이었다.
“이것이 미국과 대한민국 간 협력의 좋은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희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양국이 협력함으로써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 얼마나 많을지요!”
소련의 교육부 장관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보즈네셴스키 프로그램’에 맞선 미국의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은 이렇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하하, 우리 젊은이들을 이렇게 많이 가르쳐 주다니… 참, 우리는 빠르게 발전할 수 있겠군.”
벌써 천 단위에 이르는 젊은 인재들이 소련으로 유학을 다녀와 사회 각계에 스며들었다. 그뿐 아니라 장교와 교사, 의사들도 수십, 수백 명 단위로 소련에서 국비 연수를 다녀와 일선에 배치되었다.
그뿐 아니라 소련은 학교도 지어 주었다. 한때 ‘경성제국대학 문리학부’가 있던 자리에는 세계 프롤레타리아 대학 본관을 닮은 웅장한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혹시 같은 게 가능할지… 한번 물어봐야겠는데.”
가칭 ‘민국대학’ 본관과 국립중앙의료원을 소련이 지어 주었으니 미국도 혹시 병원을 하나 지어 줄 수 있을까?
미국은 아마 자국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병원 하나 정도는 지어 줄 것이다. 서울의 심장부에 성조기를 휘날리는 대형 빌딩이 하나 있으면 얼마나 한국인들의 존경심을 자아내겠는가?
중국이며 일본에서는 미소를 대리하는 남북의 군대가 총칼을 맞대고 국지전을 벌이며 동포들끼리 피를 쏟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양국의 온건한 경쟁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어 내고 있었다.
“이 얼마나 좋은 중립국인가!”
* * *
소위 제3세계를 표방하는 ‘캐스팅보트’ 국가들에는 미국과 소련 양국의 지원이 날아들었다.
물론 이 지원은 각 국가의 성격에 따라 판이하게 달랐다. 소련의 지원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무형적인 방향으로 치중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소련은 미국보다 가난했고, 미국처럼 돈지랄을 할 수는 없었다.
미국은 수만 톤의 밀가루며, 스팸이며, 분유와 옥수수 가루, 초콜릿 등 식량을 폭탄처럼 떨어트렸다.
“맛있다! 맛있어!”
“이런 건 처음이야!”
초콜릿을 처음 먹어 본 사람들은 그 단맛에 충격을 받고 미국을 동경하게 되었다. 이런 것이 천지사방에 널려 있는 미국은 대체 어떤 국가일까?
바짝 마른 어린이들은 미국인들이 타고 다니는 차를 따라다니며 ‘기브 미 초콜릿’을 외쳤다. 그러면 미국인들은 껄껄 웃으며 초콜릿을 던져 주곤 했다. 처음 먹어 보는 미국의 음식들은 빈곤국 국민들에게는 문화적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소련의 지원 역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빈곤국들을 강타했다.
“저… 모스크바 유학이 꼭 가고 싶습니다, 선생님.”
‘으음… 네 성적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대화들이 수많은 나라의 중고등학교에서 오가곤 했다.
소련 유학은 유학생이 아무리 가난하든지 간에 부담 없이 갈 수 있었다. 등록금이나 생활비, 기숙사비는 전액 무료였고, 아낀다면 집에 송금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게 용돈까지 줬다.
학사학위가 있는 이들은 끽해야 부자인 집안 덕분에 식민모국이나 외국에 유학을 다녀올 수 있는 이들이 전부였던 피식민국들에서, 소련 유학은 팔자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나 다름없었다.
젊은이들은 유학에 필요한 추천서들을 얻기 위해 공산당에 가입했고, 당이 운영하는 야학에서 어린이들과 문맹 어른들을 가르쳤으며,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소련에서 발간한 레닌의 저서들을 읽었다.
그리고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나는 이 나라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것 같네. 친구들, 아니, 동지들! 우리는 배워야 하네. 이 나라와 민족과 가난한 우리 동포들을 위해서!”
가난한 나라의 가난하고 명석한 학생들 중 불만이 없는 이를 찾아보기가 더 어려웠다.
그들은 부유한 집에서 난, 덜 명석한 이들이 틀어쥔 기회를 증오했고, 애타게 올라갈 기회를 찾았다. 그들 앞에 드리워진 동아줄인 소련은 그야말로 구원이나 다름없었고, 체제의 모순을 자각할 기회를 부여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나는 꼭 커서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될래요!”
“하하, 내게 감사할 필요는 없단다 얘야. 다만….”
설사병으로 입원했다 무사히 나아 퇴원하는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젊은 의사는 병원 복도에 걸린 그림을 가리켰다.
대여섯 살쯤 먹은 아이가 연필로 삐뚤빼뚤 그린 듯했지만, 정성껏 만들어진 액자에 담겨 있었다.
그림을 다가가서 본 아이는 얼마 전 학교에서 배운 것을 떠올리며 글씨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스탈린 서기장님 감사합니다?”
“그래. 저분이야말로 너희에게 이런 병원을 만들어 주시고, 나 같은 의사들을 가르쳐 준 분이란다.”
간신히 콧수염만 알아볼 것 같은 그림 밑에 쓴 글씨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너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모스크바로 유학을 가면, 거기서 배워서 의사가 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너처럼 똘똘한 아이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할 수도 있겠지? 하하하!”
미국은 오늘을 살아갈 물건들을 뿌렸지만, 소련은 내일의 꿈을 뿌렸다.
둘 중 무엇이 더 찬란하게 꽃을 피울지, 최소한 한쪽은 자신들이야말로 승리하리라 확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