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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34화 (234/300)

# 234

234화

이 전쟁은 아예 새로운 전쟁이었다.

“돌격! 싸워라! 쏴라!”

“으아아아아악! 다 죽어라!!!”

서로 얼굴을 볼 일도 없던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총질을 하다 죽어 간다는 점에서 이 전쟁은 이전의 것들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 다른 점은 존재했다.

“5만 명을 증파하면 무엇하나….”

“퉷, 이 개 같은 곳에 또 몇 놈을 처박아 버리려는 건지.”

전장에서 ‘정정당당하게’ 총을 겨누고 싸울 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전장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전선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더 끔찍한 진실을 말한다면 23만 명이나 되는 영국군 병력과 맞서 싸우는 ‘적’조차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약간 더 끔찍한 진실이라면 4억 인도인 모두가 적일 수도 있었고.

전장도 전선도 적군도 없는 이 전쟁은 그러나, 영국을 점점 수렁 안으로 끌어들여 가고 있었다.

“대체 그놈들을 언제쯤 소탕할 수 있는 것인가! 더 이상 인도에 이렇게 온 예산을 꼬라박아서는….”

“…면목 없습니다.”

“말해 보게. 우리가 대체 몇 개 주 정도나 우리 손에 넣고 있는 건가?”

총리의 그런 질문에 육군 장관은 어물어물거리며 말을 하지 못했다. 이런 간단한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는 머저리 같은 부하에 탄식하며 이든은 책상을 방방 두들겼다.

“왜 대답을 못 하나!”

“그… 아군의 세력은 인도 전 지역에서 반란군보다 우세합니다.”

“그럼 왜 전황이 이 모양인가? 어? 대답 좀 해 보게! 23만 명이나 되는 영국인들이 거기서 썩고 있어야 할 이유가 뭔가!”

얼마 전 증파된 5만 명을 더하면 23만 명. 이미 인도에 갔다가 별의별 문제로 귀국한 이들까지 생각하면 30만 명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거기에 인도 현지에서 징발한 인력들, 특히 시크교도들이나 구르카 같은 인도계 병력들까지 생각하면 50만에 가까운 대군이었다. 이 정도라면 지난 대전의 프랑스 전역에서 싸운 영국원정군(British Expeditionary Force)보다도 훨씬 많았고, 영국이 감당할 수 있는 인력의 한계나 다름없었다.

이미 한계를 넘어선 것도 같았지만.

“그들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습니다 총리 각하.”

“끄응… 우리가 뭘 해 주면 그놈들을 분쇄할 수 있나?”

“….”

이 전쟁은 그런 전쟁이었다.

영국군에게는 목표가 없었다.

“아니, 어디를 함락시키고, 어디를 치고, 어디를 부수면 되는 게 있어야….”

“…송구합니다만 각하, 그런 것이 없습니다.”

대전쟁에서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예컨대, 독일군이 프랑스나 영국을 침공했을 때는 파리와 런던이라는 전략적인 목표가 있었다. 이 목표물에 도달하기 위해 마지노선을 우회해, 프랑스군을 궤멸시키고 영국군을 영불해협 앞바다에 꼬라박으면 되었다.

또 소련과 독일의 전쟁에서도 명백한 작전목표가 있었다. 레닌그라드나 모스크바, 혹은 우크라이나의 흑토지대나 동부 돈바스 공업지대, 더 멀리 보자면 카프카스의 유전들.

소련은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을 노렸고, 또 다른 전략목표들로는 루르 계곡이나 이제 부됸늬그라드가 된 쾨니히스베르크 같은 곳들을 점령하거나 불태웠다.

그러나 영국은 대체 무엇을 노려야 할까?

“인도 반란군은… 고정된 거점이 없습니다. 보급로도 없고, 누가 누구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인도 반란군은 말이 반란군이었지, ‘군’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수백만 명의 분노한 사람들이었다.

어디서 배워 와 만드는지 모를 조악한 폭발물과 로켓과 총기 같은 것으로 영국군을 노리는 수백만 명의 분노한 현지인들은 멈출 수 없었다.

베를린을 짓밟은 것처럼 어느 도시를 짓밟는다고 멈출까? 이미 뉴델리와 캘커타 같은 핵심 도시들은 영국군이 통제하고 있었다. 거점 하나를 짓밟는다 쳐도 다른 수백 개의 거점에서 개미 떼처럼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보급? 총기는 어디서 구해오는지 몰라도 각종 루트를 통해 밀수되거나 제작되거나 혹은 도난, 약탈당했다. 영국군 군부대나 경찰서가 약탈당할 때마다 수십, 수백 정씩의 총기가 넘어갔다. 간단한 총기 정도 만들 능력이 없지도 않았거니와, 현지인들은 각종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물자를 빼돌렸다.

결정적으로, 멈춰 세워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저들은 적군이 강하면 철저히 민간인으로 위장하다가 수가 적어지면 본색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누가 불만을 품고 있는지, 누가 그냥 허풍쟁이고 누가 진짜 반란군인지 식별해 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영국군이 토인들을 학살하는 데 사용해 온 기관총은 의미를 잃었다.

그들은 기관총 앞으로 몸을 들이밀어 주지 않았다. 모습을 숨기고, 저 멀리에서 폭탄을 터트리거나 조악하지만 화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로켓을 몇 발 들이로 날려댔다.

비행기와 전차들 역시 의미를 잃었다. 압도적인 화력은 누구를 향해야 할지도 모르고 방황하다가 누군가 던진 화염병에 불타오르는 세금 덩어리가 되었다. 깨부술 적 전차도, 잡아낼 적 전투기도 없었으나 한 대 한 대 영국인들의 피눈물이 담긴 최신식 무기들은 고철이 되었다.

이 전쟁은 그랬다.

* * *

“하, 하하… 이봐 톰.”

“…예, 병장님.”

“너도 이거 해 보라고. 빌어먹을, 제기랄. 하하하핳….”

“웨스트모어 상사님이 아시면 가만 계시지 않을 겁니다.”

불쾌한 이름이 들리자 병장은 잔뜩 핏발이 선 눈으로, 그러나 취한 듯 풀린 눈으로 후임 병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는 피시식, 여태껏 반복해 온 헛웃음을 터트렸다.

“웨스트모어? 좆 까라 해… 씨발… 이거 없으면 나도 뒤져.”

“….”

잔뜩 찌든 냄새가 병장에 입에서 확 풍겨 오자 후임병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 좆같지? 씨이발… 이 좆같은 구석탱이….”

“병장님….”

“그러니까 너도 하라고. 좆같이 빼지 말고.”

병장은 그런 말을 하면서 귀중한 것이라도 꺼내는 듯, 조심조심 허리 뒤춤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그 담뱃갑 안에는 아편이 들어 있었다.

“그건 또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이이거? 이거 존나 많아! 여기 인도 놈들이 좆같지만 딱 하나 좋은 건 아편을 만든다는 거야….”

후우우, 병장이 다시 연기를 뿜자 아편 연기의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콜록콜록거리는 후임병을 보며 병장은 낄낄대며 웃었다.

“낄낄… 너는 이 좋은 걸 왜 안 하냐?”

“그거 안 좋은 거 아닙니까?”

“씨발, 그렇게 좋고 나쁜 걸 따질 거면 이 전쟁을 하면 안 됐지. 이 씨발 좆같은 전쟁에서 뒤져 나가느니… 차라리 약쟁이나 하겠다.”

인도 반란군들이 실제로 올리는 ‘전과’는 사실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폭탄 한 발이 떨어져도 몇 명이 부상당하고 한두 명이 죽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영국군은 수시로 두려움에 떨고 모든 것을 의심해야만 했다. 저 소똥 무더기 속에 폭탄이 숨겨진 게 아닐까? 내가 밟는 이 땅에 지뢰가 파묻힌 게 아닐까? 오늘 밤에라도 로켓포가 날아와 내 막사며 우리 부대를 터트려 버리지 않을까?

그런 걱정은 병사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불안 속에서 병사들은 안정을 제공해 주는 것들에 탐닉했다.

술, 특히 인도에서 잔뜩 나는 설탕으로 빚은 럼주가 병영에서 몰래몰래 돌아다녔고, 한때 중국에 팔아먹기 위해 재배했던 아편이 병사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미 수천 명의 병사들이 전투가 아니라 아편과 술로 발생한 문제로 군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여기서 개죽음당하러 왔는데 어떻게 맨정신으로 버티냐! 씨발!”

병장의 외침은 수많은 영국 병사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인도인들은 교묘한 심리전을 시도했다. 차마 말릴 수도 없는 심리전들을.

“병영 밖 가로등 아래서 나는 밤마다 서서 당신을 기다리겠어요~”

“하….”

인도인 꼬맹이가 어설픈 영어지만, 제법 괜찮은 솜씨로 <릴리 마를렌>을 불러 젖혔다. 간드러지게 목소리를 떠는 대목에서는 초병이 긴 한숨을 토하게 할 정도로.

인도인들은 영국인들을 잘 알았다. 영국인들이 인도인들을 아는 것 이상으로.

고향의 노래들, 고향의 이야기들, 하다못해 인도인들이 사다 피우는 영국산 담배들까지. 음식 빼고 모든 게 그리운 병사들은 애간장이 타 죽을 지경이었다.

조직적이든 아니든, 인도인들은 영국이 생각나게 했다.

“햐… 고향 펍에서 시원하게 맥주 한 잔 마시면 좋겠는데.”

“그러게. 맥주도 좋고, 나는 정어리 파이가 그립네.”

“그, 그건 좀….”

아무튼 별의별 곳에서 인도는 영국과 닮아 있었다. 물론 엄청난 차이들이 있었지만, 그런 대조가 오히려 더 고향을 그립게 했다.

사방에서는 어설픈 영국 노래가 들려오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뿐인데!

그래서 군대에서는 온갖 음습한 부정행위들이 저질러졌다.

“상병 톰 필슨. 그대는 정해진 병역기간을 부정하게 단축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대영제국군의 전투력을 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네.”

“아니, 저 진짜 부비트랩 때문에 다쳐서….”

“뭐 하는 부비트랩이 수직으로 총알을 박아넣나? 톰, 불쌍한 톰. 자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여섯 살짜리 어린애라도 알 수 있을 거야.”

수사관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톰 필슨 상병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군대에 더 있지 않기 위해 자기 왼발에 권총을 쏘는 자해행위를 한 사유로 군법재판에 회부되었다.

적지 않은 병사들이 자해를 해 병역요건에 미달하게 하여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자르거나, 다리를 부러트리거나, 혹은 극단적인 방식으론 지금처럼 자기 발등에 총을 쏘기도 했다.

처음에는 병영에서 부상자가 속출하는 것에 대해 깜짝 놀랐던 영국군 상층부는 곧 상황을 파악하고 병역기피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작업을 벌였다.

“톰, 내가 하나 이야기해 주지. 상층부에서는 병역기피 겸 탈영 행위를 둘 다 엮어서 자네를 처벌할 거야. 그냥 혐의를 부인하지 말고 받아들이면… 음, 아마 추가복무 1년 정도로 끝낼 수 있을 거네.”

“…만약 제가 인정하지 않으면요?”

“군 판사들이나 검사들은 자네가 진짜 무고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요새 창설된… ‘교련부대’는 알고 있나?”

톰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교련부대라니! 교련부대라니! 그의 앳된 얼굴은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교, 교련부대라뇨! 저는 그저….”

“집에 가고 싶었을 뿐이지. 하지만 위쪽에선 그렇게 결정했네. 자네들을 영창에 처박아 두는 것은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여기 남느니 영창에 가겠다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자해로 병역을 기피하고자 한 이들은 부상 정도에 상관없이 ‘교련부대’에 보내지는 게 잠정적으로 확정….”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교련부대만은….”

수사관은 담배를 하나 더 피워 물며 펜으로 슥슥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교련부대, 즉 ‘교육―훈련 부대’는 새로 창설된 일종의 형벌부대였다. 영국군은 ‘대전쟁의 전우’인 소련군의 그것을 본떠 자국군 내에도 형벌부대를 창설했다.

귀중한 인력을 영창에 보내거나 강제 전역시키는 등 낭비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범죄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기에도 뭣했던 그들은 형벌부대에 몰아넣는 방식을 채택했다. 영국 내의 중범죄자들이나 군내 병역기피자들은 ‘추가적인 교육 및 훈련’을 받게 될 교련부대에 들어가 강제적으로 복무하게 됐다.

물론 교육과 훈련이라는 것은 부비트랩과 지뢰가 가득한 게릴라 진지수색 같은 것이었지만.

그리하여 톰은 울고불고하며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죄까지 털어놓기 시작했다. 수사관은 기꺼이 그의 ‘죄상’을 적어 내려갔다.

과연 그가 형벌부대에서의 추가복무 1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수사관은 그런 업무 외 영역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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