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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32화 (2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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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화

그 소식은 별것 아닌 것처럼 전해졌다.

“서기장 동지, 코룔로프 박사의 연구에 약간의 진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뭐? 그걸 왜 지금 말하나?”

1947년 신년회 자리에서 NKVD 국장 크루글로프는 지나가는 이야기 삼아 툭 던졌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를 보고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그… 뭐 새로운 로켓을 개발했다고, 추가적인 예산 배정을 요청하여 보고안에 올렸는데….”

“코룔로프 박사 관련한 사항은 최우선 보고… 하라고 말을 자네한테는 안 했군. 으음….”

“송, 송구합니다 서기장 동지!”

이미 숙청당한 베리야가 이런 쪽에서는 참 일을 잘했다.

독일인 과학자들을 빼내 오는 것도 잘했고, 사람들 갈아 넣어서 원자력 개발도 잘했고, 기밀유지도 참 잘했고… 물론 그래서 더 위험하다 경계했지만.

“아무튼 좋네. 한번 알아보러 가 보도록 하지. 그… 굴라그가 어디에 있었더라….”

“예! 카자흐스탄 쪽에 있습니다.”

“아! 그랬지. 그럼… 시찰을 준비해 보도록 하세.”

크루글로프는 즉흥적인 내 명령에 당황한 듯 허둥거렸다. 베리야가 이 정도로 어리숙하기만 했다면 숙청당하지 않았을 텐데.

* * *

코룔로프가 배치되어 있는 특수 굴라그, 소위 ‘샤라쉬카’ 라고 불리는 과학자용 특수수용소는 카자흐스탄 남부에 위치해 있었다.

‘코룔로프 설계국’은 이 지역 비밀도시와 우주기지, 그리고 수용소에 대한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설계국에 필요한 노동력과 기자재들, 기밀유지를 위해 필요한 공간 등을 그는 이 지역에서 원하는 만큼 동원해 사용할 수 있었다.

“서… 서기장 동지!”

“오, 박사. 잘 있었소? 연구에 진척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코룔로프는 베리야의 마수? 로부터 벗어난 이후 제법 기력을 회복한 것 같았다. 뭐 그뿐만 아니라 그 대신 갈려 들어갈 독일 과학자들까지 데려다주었으니 본인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조금 더 줄었을 것이다.

훨씬 얼굴에 살도 붙고, 다크써클도 줄어 있어 제법 볼 만해져 있었다. 코룔로프는 내가 대뜸 로켓 연구 이야기를 하자 활짝 함박웃음을 지었다.

“예! 대략 1천 킬로미터가량의 사거리를 가지는 로켓을 이제 실전배치할 수 있을 듯합니다. 연료를 다 쓴 이후 추진기를 본체로부터 분리하는 방식인데….”

“오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은 독일 V―2 로켓을 가지고 한참 씨름하며 이걸 어떻게 베껴 낼지 고민하고 있어야 할 상황이지만, 코룔로프는 벌써 한참이나 앞서가고 있었다.

41년에 풀려나 벌써 거의 6년 가까이 연구 중이니 그럴 만도 한가? 아무튼 소련이 배출한 최고의 천재 중 하나인 그의 두뇌가 진정으로 위대해 보였다.

1천 킬로미터 사거리라면 탄도미사일로서는 단거리 미사일에 불과하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얼마든지 ‘대륙간 탄도탄’을 개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튼 사거리에 대한 개량은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 서기장 동지.”

“잘했네! 아주 잘 했네.”

하지만 내 치하를 받는 코룔로프는 웃으면서도 어딘가 슬퍼 보이기도 했다.

“미안하네. 자꾸 군사무기 연구만 시켜서.”

“아! 아닙니다, 서기장 동지. 제가 어찌 그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아마 코룔로프가 하고 싶은 것은 ‘평화적인’ 우주개발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 어느 우주과학자가 적국에 핵폭탄을 때려 박을 미사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우주과학에 입문했을까?

사람이 우주에 가고, 또 달 위를 걷고, 언젠가는 저 깊은 심우주(Deep space)로 여행을 떠나는 공상 속에서 시작했겠지.

그러나 현실은 좀 더 가혹했다. 전쟁이 끝나면 평화로운 우주공학 연구가 가능할 줄 알았겠지만 다시 탄도미사일과 공산오차 제어장치 등을 개발하는 꼴이, 진짜 가슴이 시켜서일까?

“다만… 자네가 바라는 것들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두게나.”

“…예?”

“따라오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좋아하나?”

내가 먼저 슥슥 걸어가며 이야기하자, 코룔로프는 심히 황망해하면서도 내 뒤를 따랐다.

그의 집무실은 생각보다 호화로웠다. 프랑스에서 만들었다는 각인이 새겨져 있는 벨벳 소파와 마호가니 원목으로 만든 탁자, 그리고 딱 봐도 장인의 손길 같은 책장들까지.

“크흠… 저… 그….”

“변명할 필요 없네. 자네 정도라면 이런 대우를 받을 수도 있지.”

부끄러워하는 코룔로프에게 휘휘 손을 내젓고, 경호원에게 커피를 가져오라고 시키자 그는 금방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대령했다.

“자네가 가장 잘 알겠지만… 우주공학은 놀라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예? 예! 그,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아마 우주를 평화롭게 이용 가능한 시대가 도래한다면, 엄청난 것들이 가능해질 거야.”

나는 그 시대에 이미 살아 보았다.

위성인터넷, GPS, 기상관측위성 같은 것들은 생활을 놀랍도록 바꾸어 놓았다. 위성인터넷이 촉발한 혁신이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정치와 사회를 바꾸어 놓았나? GPS 덕에 가능해진 안전한 항공여행, 기상관측위성이나 천문관측위성이 얻어 낸 새로운 정보들!

그 모든 혁신이, 그러나, 이 냉전기에는 군사논리에 종속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네. 안타깝게도. 나는 자네에게 가능한 모든 명예며 권한이며 가능성을 주고 싶지만… 예컨대, 자네가 자네의 숙원인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다고 해 보지. 그럼 어떻게 되겠나?”

코룔로프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게 뭐 어떻냐는 그의 순진한 눈빛에 나는 조금 더 마음이 아파 왔다.

“미국, 미국인들이 어떻게 반응하겠나. 아마 자기네들 머리 위에 뭐가 떨어질지 몰라서 노심초사, 조바심을 내겠지. 우리의 항공우주과학은 인민들의 삶을 번영하게 하기 위해, 또 소련의 명예를 위해 연구되지만… 저들 입장에서는 세계를 파멸시킬 수단으로 보이겠지.”

“그… 그런….”

“인공위성? 나도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 알지만,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려놓을 로켓을 조금만 개조하면 바로 대륙간 탄도탄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올라가기만 하면 위성이요, 다시 지구를 향하여 꽂히면….”

그게 바로 탄도탄이지. 미국은 의심할 것이다.

소련이 핵무기를 미국에게 넘겨주고 핵 개발 자료 공유를 해 준 것은 단순히 원조를 받아먹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는 싸우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기 위함이었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메시지를 진심으로 받아들여 준 월리스 행정부의 인기는 날로 추락하고 있었고, 맥아더―매카시 듀오가 미쳐 날뛰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대륙간 핵미사일’의 가능성을 끼얹어 준다면?

“이해할 수 있겠나? 그래, 자네가 인공위성을 연구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 발사는 꽤 오랫동안 기밀에 붙여져야 할 것일세. 아니면… 미국과 함께 연구해서 기술을 공유하든가.”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은 그동안의 세계에서 전쟁을 억제해 온 가장 큰 동력이었다. 군비경쟁을 통해, 인류의 발전에 들어갈 수 있는 막대한 자원을 오직 전쟁에 동원함에 따라 맞춰진 힘의 균형은 역설적으로 전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힘의 균형의 시대는 가고, 새로운 균형이 세상에 도래했다.

바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내가 적국을 파멸시킬 수 있는 것처럼 적국도 나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이 공포가, 핵무기가 현실이 되고 냉전이 도래한 세상에서 전쟁을 멈추어냈다.

아직까지 소련이나 미국이나 진지하게 상대가 자신을 파멸시키려 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만약… 이 기술이 개발되고, 유출되어 미국이 두려워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나?”

“…그들도 서둘러 기술을 개발할 것입니다.”

“그래. 그렇지. 우리는 영원히 서로를 두려워하며 더 강력한 무기, 더 무서운 무기를 만들어 낼 것일세. 서로의 머리통에 총구를 겨누고 불안한 동거를 하는 거지.”

그 불안한 동거는 몇 번이고 상호확증파괴로 이어질 뻔했다. 실제 역사의 서로를 향한 편집증적인 공포 속에서 몇 번이나 지구가 멸망할 뻔했던가?

소련 붕괴 이후 밝혀진 내용은 최소 150번이라고 했다. 어쩌면 우리 중 대부분은 핵전쟁의 불길 속에서 죽어 버렸을 수도 있다.

“자네가 생각하는 평화로운 우주개발을 저들도 평화라고 생각할지, 아니면 공포스럽게 여길지는 아무도 모르네. 자네도, 나조차도.”

“….”

“차라리 미국과 공동 개발을 한다면 모를까….”

코룔로프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물론 그리된다면, 어쩌면 독자연구보다도 연구진척이나 투자 정도가 느릴 수도 있었다.

어차피 우리가 열심히 힘을 써 봐야 저쪽도 똑같이 득을 본다면 누가 연구를 하겠는가? 서로가 연구결과를 빼돌려 뒤에서 다른 짓거리를 하지나 않는지 견제하고 감시하다가 사소한 분쟁 혹은 한때의 추억으로 끝나 버리겠지.

또, 그가 만약 여기서 미국과의 적극 협력을 주장한다면 20년대나 30년대처럼 스파이 혐의를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한번 그런 숙청을 겪어 본 코룔로프는 그래서 망설이는 것 같았다.

“…서기장 동지, 미국과 협력할 수단은 진정 없겠습니까?”

“가능할 수야 있겠다만….”

물론 방법은 없진 않았다.

양자간의 협력이 불가능하다면 CERN(유럽 입자물리연구소)같이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연구기구를 발족시킬 수 있었다.

다만 인공위성 발사기술, 즉 대륙간 탄도탄의 기반기술이 워낙 정치적으로 민감한 물건이기에 이걸 여럿이서 연구한다는 게 가능할지가 의문일 뿐이지.

“핵탄두가 달려 있지 않다면 사실 별 쓸모없는 물건이긴 하네만. 핵폭탄 제조기술이 언젠가 저들에게 알려지고 탄도미사일도 손에 넣는다면….”

“꿀꺽….”

그랬다간 진짜 세계는 핵전쟁의 공포 속에 떨어지겠지.

핵폭탄 제조의 기본이 되는 핵연료 농축기술은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실제 역사에선 핵확산방지기구를 통해 허가되지 않은, 연료용 이상의 고농축은 엄격하게 감시했지만.

아마 이 세계에서도 그렇게 되기는 할 것이다.

“월리스 대통령과 이야기를 해 보긴 해야겠네. 아무튼… 코룔로프 박사, 자네가 소련을 위해 바치는 노고는 우리 인민 모두가 알지는 못해도 깊이 감사할 따름이네. 특히, RPG 로켓포는 막대한 전과를 올려 수많은 인민을 구해 냈지.”

“감사합니다, 서기장 동지.”

경호원에게 손짓하자, 그는 들고 있던 묵직한 서류가방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이리 오게.”

“…아!”

그 안에는 금빛으로 번쩍이는 인민영웅 훈장이 놓여 있었다.

“감… 사합니다….”

직접 그의 가슴팍에 인민영웅 훈장을 달아 주자, 코룔로프는 그 무게가 실감이 되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군사용 무기와 평화적 로켓… 은 참으로 복잡한 문제네.”

코룔로프는 약간은 이해가 간다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평화적인 기술은 인류 최악의 핵투발 수단이 되고, 전차를 깨부수기 위해 만든 RPG 로켓포는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게릴라의 상징이 되었다.

인도에서 코룔로프가 개발한 휴대용 로켓이 ‘시바의 요술봉’이라고 불리며 게릴라들의 최고 무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부디… 자네가 바라는 대로 우주개발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좋겠군.”

물론 우주개발은 오히려 냉전이 격화되던 시기에 더 활발해졌다. 상대를 군사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라면 왜 우주개발을 하겠는가? 한번 실험할 때마다 수억 루블의 비용을 처먹는, 돈 먹는 돼지 같은 산업을.

미래과학 발전을 위해서라지만 돈을 쓸 곳은 늘 많고 예산은 부족했다. 그럼에도 이런 산업에 투자가 가능했던 것은 합리적인 비합리성으로 가득했던, 차갑게 미친놈들로 세상이 들끓었던 냉전시대뿐.

코룔로프의 아리송한 눈빛이 어째 안타까웠다. 그 시대를 볼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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