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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30화 (230/300)

# 230

230화

“흐음… 이제 슬슬 터트려 볼까?”

“예!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두꺼운 보고서 한 장이 준비되어 있었다. 같은 내용의 사본을, 미국에 있는 우리 대사 콜론타이 여사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크렘린에서 지령이 떨어지면 바로 국무장관 마셜을 방문해 전달할 것이고.

“마셜, 그 친구가 중화민국을 싫어한다는 게 참 잘된 일이야.”

“그들의 비리상을 보면 차마 좋아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 전쟁부터 수집한 증거자료들도 차고 넘치니….”

마셜은 1차 국공내전 시절 국민당 군사고문을 지낸 나름 중국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 보고 온 경험으로 중국, 그리고 아시아에 학을 떼며 질려 버리고 말았다.

그는 국민당이 부패하고 무능력한 집단이라는 시각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한 중재를 무시하고 바로 공산당에 총구를 겨눈 장개석을 별로 탐탁지 않아 했다.

미국 외교관들이 중국에 나치 잔당들이 숨어 들어온 것을 따지러 올 때, 중화민국이 해처먹은 액수를 우리 프락치를 통해 찔러 준다면? 아마 복장이 터져 죽으려 하겠지.

받아먹은 액수로만 따지면 우리 소련이 압도적인 1위였고 그다음 2위는 뭐니 뭐니 해도 핵심 동맹국인 영국이었지만, 중화민국은 2위에 근접한 3위였다. 그렇게 수십억 달러를 퍼부어 주었는데 그것을 다 누구 주머니로, 누구 뱃속으로 보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영국, 포르투갈 놈들이라고 가만히 있겠나? 하하하. 장개석, 그 친구는 너무 성급했어.”

여기에 인도에서 수렁에 빠져 들어가 허우적거리는 중인 영국까지 끼어들 것이다.

영국은 동방의 거점으로 홍콩을 유지하고 싶어 했다. 홍콩을 조차하는 조약의 기간은 1997년까지였지만, 조차조약을 영원히 연장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그러나 중국 대륙을 온전히 손에 넣고자 하는 장개석은 홍콩, 마카오 같은 ‘외세에 침탈당한 영토’를 눈 뜨고 두고 보지 못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막대한 수익이 나는 무역항에 대한 욕심이었겠지만.

아무튼 이제 중국은 다시 한번 물어뜯길 것이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외세’에게.

“아, 그리고 그 마가린 놈도 처리할 수 있으면 처리해 보게.”

* * *

“뭐? 이게 무슨 소리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미국 측에서 우리 군대를 검열하겠다고….”

“제놈들이 무슨 권… 아니, 뭐 돈을 좀 많이 보내 주기는 했지. 후… 아랫놈들이 해처먹은 게 오죽 많아야 원….”

장개석은 뜬금없이 떨어진 폭탄에 당황하면서도 정신을 빠르게 부여잡았다.

그도 아랫사람들의 부패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아들, 장경국은 소련에 유학 다녀온 이후 빨간 물이 들어 4대 가문의 전횡과 부패를 비난하면서 모조리 밀어 버려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중화민국 국민정부, 국민혁명군은 유지되기 어려웠다.

잡다한 소군벌들, 지역 유력가들, 자기 구역의 두목들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모인 조직이 바로 국민정부였다. 중국은 하나의 정부가 전제적,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하기에는 너무 거대했다.

자기 구역에서 왕 노릇 하는 작은 두령들을 적당한 부패와 적당한 향응으로 포섭하지 않으면 그들은 더 큰 사고를 칠지도 몰랐다.

그런 중국사회의 생리를 알았기에 장개석은 부패를 알면서도 그냥저냥 내버려 두곤 했다. 그거 먹고 사고나 치지 말라고. 미국인들은 황당했겠지만, 공산당을 상대하는 최전선에 있다는 것을 빌미로 억지로 입을 막아 두었고.

올 것이 왔다. 장개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각하! 각하! 총통 각하!”

“뭔가! 채신머리 없게.”

“그… 미국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벌써? 장개석은 놀람과 불쾌함 사이의 감정을 느끼며 얼굴을 팍 찌푸렸다.

아무리 미국이 물주라도, 이것은 외교적인 결례였다. 뭐, 정 안 되면 이것을 빌미로 더 지원을 요청해 보자고 혼자 생각하며 일어선 장개석은 충격적인 소식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팔켄하우젠 장군이 체포당했습니다!”

“뭐…라고!!!”

갑자기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팔켄하우젠은 공식적으로는 소련 수용소에서 복무하고 있어야 했다. 의외로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 탈출해 중화민국으로 도망친 것이고.

원칙대로라면 탈주한 복무자들은 소련으로 인도되어야 했다. 장개석 그 자신이 욕심을 부려 팔켄하우젠을 참모로 붙잡아 둔 것이고.

사실 저지른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나치 부역 혐의가 있는 장교들을 빼내 중화민국군으로 데려오질 않나, 남의사를 시켜서 그들의 과거 행적을 세탁하기도 했다.

이게 걸리면 미국은 제대로 분노할 것이다.

감히 우리 돈을 받아 처먹고 나치들을 숨겨 줘? 잘못하면 사라진 히틀러와 괜히 엮여 곤란해질 수도 있다.

“빠, 빨리 가 보도록 하지!”

“예! 총통 각하!”

* * *

“아, 미스터 장. 오래간만입니다.”

“…스틸웰 장군.”

장개석은 순간 혈압이 올라 쓰러질 뻔한 것을 간신히 참고 휘청대는 무릎을 붙잡아 진정시켰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 중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개 같은 양키, 스틸웰이 씨익 사악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니, 미국의 이 막대한 원조물자를 수령하셨으면서 독일인들과 손을 잡으시다니요? 이자들은 소련 수용소에 갇혀있어야 하는데… 왜 중화민국에서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일까요?”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인데….”

“착오라니요? 이자는 팔켄하우젠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총통께서 아셨는지 모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틸웰은 또다시 장개석의 말을 끊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무례한 제스처에 장개석은 이를 악물었지만, 저만치에서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채 끌려오는 팔켄하우젠을 보고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팔… 팔켄하우젠 장군….”

“….”

“이자는 곧 다시 소련으로 이송될 것입니다. 혹시나 그 과정에 관여하려고 하셨다가는… 우리 미국 정부는 그런 시도를 가만히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팔켄하우젠은 본인이 장개석에게 누를 끼쳤다는 것이 미안한지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시선을 땅을 향해 떨구고 있었다. 혹시라도 아는 척을 하면 장개석에게 혐의가 씌워질까 봐 더욱 조심스러워 했다.

“…이러려고 들이닥친 거요?”

“미스터 장! 저희 미국은 이런… ‘사소한’ 일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팔켄하우젠은 고작 빙산의 일각일 뿐이란 제보를 받았죠.”

“그 제보가… 대체….”

“하하하하! 그런 걸 물어본다고 대답해 드릴 것 같습니까?”

스틸웰도 장개석을 싫어했었다. 서로 그 사실 정도는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푸하하하 웃음을 터트리고는, 옛 숙적에게 복수한다는 즐거움을 만끽하는지 기지개를 쭉 켜고 콧노래를 불렀다.

“이 중국에 그렇게 독일인들이 많은지,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 친구들을 하나하나 색출해서 다시 그들이 있어야 할 저어기 시베리아로 보낼 생각입니다. 그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알겠소.”

“하하하, 환대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그럼 이만!”

스틸웰은 콧노래를 부르며 명랑한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를 따라온 국무성, OSS 소속의 미국인들 역시 차가운 눈빛으로 중국인들을 쏘아보고는 스틸웰을 따라갔다.

“빌어먹을….”

이곳에 있는 독일인들은 진짜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극렬 나치임에도 불구하고 능력만 있다고 하면 남의사를 시켜서 남미, 유럽 등지에서 데려오기도 했다. 그게 미국에 걸린다면 원조물자를 얼마 해처먹은 것 따위 이상의 문제가 될 것임을 장개석은 잘 알 수 있었다.

* * *

“뭐? 공세 명령? 지금 같은 상황에?”

“예. 크렘린에서는 지금 중화민국 참모부에 문제가 생겼다며 공세를 명령했습니다.”

“끄응… 이 전선 꼬라지를 보고서도….”

북경은 반 포위 상태에 있었다. 천진에 있는 홍군은 함락당하기 직전인 도시에서 필사적인 저항을 펼치고 있었고, 여기마저 함락당하면 북경에 있는 50만 홍군 병력은 그대로 포위망 안에 갇히게 되는 꼴이었다.

그런데도 크렘린에서는 무조건 반격 명령만을 내렸다. 어떠한 군사적 지원도 없이.

여전히 홍군에게는 야포도, 전차도, 전투기도 없었고 오직 사람의 발과 힘만으로 전쟁을 치러야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지 말해 준 것은 없었나?”

“그… 얼핏 듣기로는 독일인들이 거기로 도망친 것이 적발되었다고 합니다.”

“그래?”

모택동은 대충은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들의 전술적 역량은 중국에서 배울 수 있는 그것을 훨씬 상회했다. 어디 유럽, 독일이나 소련군처럼 대규모 회전을 수십 번씩 겪어 보며 성장한 이들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실력이었지.

그게 진짜 독일군이 거기로 망명해서일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그자들이 사라졌다면 아마 반격의 여지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총공세로 포위망을 돌파하도록 하지.”

“예! 주석 동지!”

핵심 당세포들은 탈출시켜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북경에 붙들려 버렸다. 여기마저 버리면 갈 곳조차 마땅치 않았지만.

대장정도 한 번일 때나 영웅적 위업이지 두 번 세 번 하게 된다면 그건 그냥 꼴사나운 도망일 뿐이다. 국민당에 있는 독일 장교들이 가르쳐 준 그 야전기지 구축을, 어설프겠지만 국민혁명군의 중국인 장교들도 비슷하게 배워 써먹는다면….

“우린 끝이지.”

집무실 밖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 중에 국민당 첩자들이 몇이나 숨어 있을까?’

공산당과 국민당은 서로의 당이며 군대에 수많은 첩자들을 숨겨 놓았다. 각자 신념에 따라, 혹은 돈으로 매수하거나 협박을 통해 양측에 정보를 제공하는 자들이 제법 있었다.

발각되면 그들은 사살당하기도 했지만, 협박하여 이중첩자로 전향시키기도 했고… 아무튼 모두를 신뢰할 수 없었다. 분명히 국민당이 그 첩자들을 사용하여 공산당의 일거수일투족을 읽어 내는 것은 분명했는데, 그게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 대응하지 못했을 뿐.

“소련도 분명 국민당에 첩자를 심어 두기는 했을 텐데, 그것 좀 공유해 주면 좋으련만….”

소련은 수십 년 전부터 국민당과 협력관계를 맺어 왔다. 그동안 포섭한 사람들이나 매수, 협박한 사람들이 적잖게 있을 텐데 유독 정보에 관련해서는 공산당에게 박하게 굴었다.

“쯥… 어쩔 수 없군.”

그가 직접 친소련파 볼셰비키들을 숙청했으니,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소련이 보기에 그의 사생활이나 이데올로기적 측면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을 것이고.

국민당이 오히려 반공적인 것만 빼면 더 협력하기 좋은 상대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문득 소름이 끼쳤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주석 동지! 주석 동지!”

저만치서 웬 청년 당원 하나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허리춤에 무언가 묵직한 것을 끼고 헐떡이면서 모택동을 불렀다.

“무슨 일인가?”

“주석 동지! 그… 급보입니다!”

“뭐, 뭔가! 말을 하게!”

한참 상기되었던 당원의 표정이 살벌하게 일그러졌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한 모택동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굳어져 버렸다.

“중화민국 만세! 청천백일 만지홍!”

탕! 탕! 탕! 묵직한 꾸러미에서 새카만 권총이 나와 모택동을 겨누었다. 세 발의 총성은 정확하게 머리와 목, 가슴을 꿰뚫어 후벼 파 버렸다.

“안돼! 주석 동지!”

“하하하하! 반역도에게는 죽음뿐….”

다른 총성들이 터져 나와 암살자를 사살했다. 두 명의 남자가 널브러진 바닥에 새빨간 핏물만이 가득히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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