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227화 (227/300)

# 227

227화

“후… 어째 갈수록 쉴 틈이 없군.”

월리스 행정부에서 마셜은 국무장관에 취임했다. 루즈벨트의 최고 심복 중 하나였던 그는 성향이 맞고 죽이 맞는 월리스 정부에서 더욱 중용될 수 있었다. 그리고 국무장관에 취임하자마자 그는 거들먹거릴 시간도 없이 한동안 온 세상을 돌아다녀야 했다.

전임 국무장관 스테티니어스가 짧은 임기를 마치고 주유엔 미국대사로 이임되자 마셜은 순식간에 국무부를 장악했다.

그리고 지금 그를 곤란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아시아 문제였다.

“장개석, 이자는 대체 무슨 속셈인지… 전쟁이 끝난 지 2년도 되지 않아 다시 전쟁을 일으킬 속셈인가?”

장개석은 누가 보기에도 위협적으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었다. 20여 개의 사단이 새로 편성되어 공산당 점령구역 인근에 배치되기 시작했고, 미국에 끊임없이 군수물자 생산을 위한 중공업 설비들을 요청했다.

미국은 더 이상 아시아에서 분쟁이 터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반공주의, 군국주의로 무장한 중화민국이 옛 청 제국의 영토를 다시 손에 넣겠다며 팽창할 경우 개방정책을 펼치려 하는 소련을 자극해 돌아서게 할 수 있었다.

마셜은 ‘X’라는 필명으로 쓰인 전보를 집어 들었다. 요새 국무성 내에서 가장 쉬쉬하면서도 화제가 되는 이 문서의 작자가 누구인지 마셜은 대충 짐작이 갔다. 문제는 외교관, 공직자 신분을 가지고 이런 것을 ‘포린 어페어스’ 같은 대중잡지에 투고했다는 것.

[소련의 팽창주의적 행보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적인, 신경증적 국수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러시아는 항상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두려워하며 완충지대를 확보하려 했으며 소련의 정책 역시 큰 틀에서 그와 다르지 않다.]

아마 5년쯤 전이라면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기서 ‘경직된 체제로 내부나 외부에 대해 정확한 시각을 가질 수 없는 소련 정부’는 전제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내려놓고 개방과 평화를 추구할 수 있었다.

‘X’는, 아니, 마셜의 추측에 따르면 조지 케넌은 소련과의 평화공존은 소련이 그 가능성을 의심하기에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나 지금은 소련이 먼저 미국에게 평화공존을 제안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함께할 때, 우리는 강합니다!”

몰로토프는 그렇게 제안했다. 소련은 대내외적 안정을 통해 생산력 향상을 추구했고, 그를 통해 공산주의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스탈린 서기장은 전제적 권력을 내려놓으며 ‘서방화’를 밀고 나가고 있었고.

미국 역시 세계평화를 필요로 했다. 미국이 번영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유무역과 더 많은 수출대상, 그리고 더 많은 안정된 투자처가 필요했다. 프랑스 식민지들이 평화적으로 독립해 개발도상에 들어가는 것은 미국에게 유익했고, 영국이 식민지들을 독립시키지 않고 분쟁을 조장하는 것은 유익하지 못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은 소련하고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었다.

미국이 소련과 각을 세우며, ‘자유세계의 수호자’ 노릇을 하고 자유세계를 지키는 것은 보나 마나 막대한 비용을 초래할 것이 뻔했다.

먼저, 선진 과학기술을 보유한 소련과 군비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또, 수많은 친미국가들을 일일이 지켜 주어야 했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그 수많은 국가들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소련에 맞서 미국의 동맹국으로 지켜 내는 것은 그야말로 돈지랄이었다.

하지만 소련과 손을 잡는다면? 군비경쟁은 여전히 필요하긴 할 테지만 그 정도는 덜할 것이 뻔했다. 소련에 맞서 전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소련이 예측하기 어렵지만 우리만 할까….”

정치권력이 아직은 훨씬 안정적이어 보이는 소련은 선거에 따라 노선이 들쭉날쭉할 수 있는 민주국가보다 나은 협상 상대였다.

나치처럼 미친 독재자가 제멋대로 국가정책을 들었다 놨다 할 수도 있지만, 그 나치조차 처음에는 민주적 선거로 당선된 게 아닌가?

그리고 이 시대의 나치는 아시아에서 난리를 치고 있었고.

“무슨 생각으로 소련 밑에서 이 난리를 치는 것인가….”

* * *

“으음, 국민혁명군의 증강속도가 제법 빠르군그래? 독일 장교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유능한가 보군.”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중국 공산당에서는 계속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독소전쟁,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도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세계는 내가 아는 것과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먼저, 영국은 끊임없이 인도를 비롯한 식민지 전쟁에 시달리고 있었다. 국민들의 불만이 계속 커지고 있었지만 미국은 영국과 소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여전히 영국에도 원조를 지속하고 있었기에 그럭저럭 굴러는 가는 것 같았다.

인도 공산당은 우리의 지령에 따라 국민회의와 함께 ‘인도 민중전선(popular front)’을 구성하고 영국과의 투쟁에 나섰다. 민중전선 소속의 인도 해방군은 소규모 점조직 형태로 전 아대륙에 걸쳐서 영국인과 영국의 지배기관들을 습격하는 무장투쟁을 벌였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이 건국되자마자 멸망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밀려난 유태인들은 미국으로 떠나거나 혹은 소련으로 왔다. 수십만 명의 유태인들이 소만접경 근처 유태인 자치공화국에 자리를 잡았다.

중동전쟁의 승리를 이끈 이집트군의 나기브, 그리고 예루살렘의 알 악사 모스크를 점령해 해방시킨 나세르는 일약 전 아랍의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부패한 아랍 왕정들은 국가경영에 계속 실패하고 있어 민중의 불만은 점점 끓어오르고 있었다.

한편 극동에서는 갈등이 표면화되지는 않았으나 폭풍 전야의 고요에 가까워 보였다.

“국민당 지배구역 내에서 계속 전방으로 군수물자들이 배치되고 있다고 합니다. 바르바로사 작전 시작 때의 독일군 배치와 비슷한 것으로….”

바르바로사 작전을 이야기하는 크루글로프의 이마에서는 땀이 흘렀다. 어찌 되었건, 독소전쟁 초반부에 당한 전략적 기습은 첩보부 및 지도부의 크나큰 실책이기는 했다.

하지만 정치국은 여유만만했다.

“이미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공산당군이 승리할 필요는 없네. 특히, 우리가 지도한 게 아니라면 더더욱.”

“그…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모택동은 코민테른 요원들을 정치적으로 숙청하면서 공산당 내 권력을 손에 넣었다. 오토 브라운이나 소련 유학파 볼셰비키들은 도시 내 폭력혁명을 통한 정권 장악을 주장하다가 실패했다.

그리고 모택동은 자기 독자노선, 소위 마오주의라고 부르는 농촌혁명론을 고수해 결국 중국을 공산화했다. 이런 실적을 올린 덕택에 중국은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공산진영 내 내부의 적 역할을 톡톡히 했다.

흐루쇼프를 수정주의라고 비난했지만, 정작 제3세계 혁명을 물질적으로 지원한 것은 소련이었다. 목소리 높여 정통 공산주의를 주장해 놓고 결국 닉슨, 키신저와 회담을 하며 데탕트를 논한 모택동은…

“모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는 아니네. 알겠나? 그리고 장개석은 심장에 우리가 보낸 폭탄을 박고 있네. 미국 없이는, 국민혁명군이고 중화민국이고 제대로 유지할 수가 없어.”

팔켄하우젠을 비롯한 구 독일 장교단들은 속속들이 중국으로 모여들었다. 놀랍도록 정예화된 국민혁명군이야말로 중국이 나치 잔당과 손을 잡았다는 살아 있는 증거가 될 것이다.

장개석은 계속 군국주의, 반공주의적인 방향으로 국정을 밀고 가고 있었고 안 그래도 미국은 불안하게 그를 지켜보았다. 이 증거들이 터진다면 미국의 원조에 매달려 비정상적으로 군대를 키운 중화민국은 주저앉을 것이 뻔했다.

미국 역시 눈에 불을 켜고 ‘사라진’ 히틀러와 그 잔당들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만약 조직적으로 중화민국이 나치 잔당들을 모았다는 게 드러나면 당장에 단교를 해도 모자랐다.

장개석의 아들, 장경국이 진행하고 있는 화폐개혁도 실패에 가까워 보였다. 소위 ‘4대 가문’의 기득권층이 격렬히 반발하며 사보타주를 하는 바람에 경제는 계속 초인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비밀경찰 남의사는 불만을 품은 사람들을 감시하고 잡아들였고.

결과적으로 외부의 적을 상대하겠답시고 내부 문제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정권에 미래는 없었다.

다만 그 세력이 지금 강대한 만큼, 차후 골칫거리가 될 모택동을 차도살인하는 것이 우리의 의도였고.

“중국 공산당도 지금 막대한 병력을 모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렇습니다. 다만 군비경쟁을 하면서 계속 군사력 증강을 하는 바람에 경제난, 인력난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호오, 그런가?”

“예. 농촌에서는 토지를 분배해 주었는데 정작 그 토지를 일굴 청년들을 다 게릴라로, 군인으로 끌고 간다고 불만을 표한다고 합니다. 물자가 없기에 그걸 인력으로 메꿀 생각으로 대규모 징병을 하고 있지만, 그 군사력을 유지할 체계가 지극히 부실합니다.”

어쩐지 적백내전 시기가 떠올라 헛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을 본 고참 당원들은 의아하다가도 점점 생각이 나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마 적백내전 당시의 백군은 갈라져 있었고, 통일된 지휘체계도 없었다. 국민당군 내부 군벌들이 있기는 했어도 장개석은 키워 낸 정예사단을 바탕으로 군벌들을 찍어누르고 있었고, 독일 장교단 출신의 우수한 참모들을 바탕으로 참모본부를 설치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중국 공산당은 한 줌 공산당원들만 가지고 드넓은 중국 땅을 다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 같았다. 소련도 그랬지만, 적군은 도시노동자들을 바탕으로 구 러시아 제국군 장교들을 받아들여 만들어 낸 군대로 농민의 불만을 진압하면서 군대를 편성했다.

그러나 중공은 유일하다시피 한 지지기반인 농민을 버릴 수가 없었다. 모택동은 불세출의 게릴라 지도자였지만, 역사에서 증명했듯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없음을 그 스스로가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크게 밀리지는 않을 걸세. 워낙 농민이 많아야지.”

“그렇습니까…?”

정규군으로 게릴라의 숨통을 끊는 것은 지극히 어려웠다. 특히 환경이 게릴라에게 친화적이면 친화적일수록.

“군사력이 강대하면 뭘 하나? 한 줌 마적 떼에 불과했던 공산당이 저렇게 성장한 데에는 중국 내부의 기본적인 모순이 존재했기 때문이네. 그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반 장개석 세력은 언제든 등장할 것이네. 중국 공산당이 한 말은 허공 속으로 사라질지언정, 인민들의 머릿속에는 그들이 한 말이 남아 있을 거야.”

“오….”

일종의 줄타기와 비슷했다.

실제 역사의 중국에서, 그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이 승리한 이유는 분명히 존재했다.

가난과 불결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수억 농민들의 삶에 국민당은 제대로 된 해결책이랄 것을 제시하지 못했다. 공산당은 제시하는 데 성공했고.

그런 이점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이 너무 압승해서도 안 되었다. 중국의 적화가 미국에 가한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지금도 기승을 부리는 매카시즘이 더 날뛰며 친소 월리스 정권을 무너트릴 수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중국 때문이었다.

압승과 참패 사이에서 미묘하게 조정을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하는 꼭두각시놀음 사이에서 죽어 나갈 중국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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