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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25화 (225/300)

# 225

225화

“뭐? 시리아가 선제공격을 가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장군님. 부디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으음….”

이집트군 1, 2기갑여단의 젊은 장교들은 시리아가 이스라엘 영내로 파죽지세로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사령부로 몰려들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자유장교단을 조직한 젊은 대위, 나세르가 있었다. 그는 열정적인 어조로 총사령관에게 진격을 호소했다.

“이집트가 아랍의 맹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공이 필요합니다! 각하! 저희 장교들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저 악마 같은 유태인들을 모조리 때려잡고….”

“아니, 우리 혼자 진격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시리아군이 있는데 어찌 우리가 혼자입니까! 요르단이나 이라크 같은 약졸들 없이도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총사령관 아흐메드 알―무아위 장군은 여전히 우물쭈물했다. 나세르는 순간 깨달았다.

‘아, 이자도 실전경험은 한 번도 없었지….’

이집트군 총사령관 알―무아위는 군 인사쪽에 정통한 파루크 왕의 심복이었을지언정 장군으로든 위관, 영관으로든 실전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런 자를 장군이랍시고, 총사령관이랍시고 세워 내보낸 파루크 왕에게 속으로 욕을 하며 나세르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나가 있게. 참모들과 상의해 보고 결정하겠네.”

“…알겠습니다.”

전장에 어울리지 않게 호화롭게 차려진 장군의 막사에서 나온 젊은 장교들은 웅성거렸다. 나세르는 그 특유의 열정적인 어조로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반드시 유태인들 아래에서 고통받는 우리 동포들을 도와야 합니다! 형제들이 저기 있습니다. 저들만 피를 흘리도록 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찌한단 말인가?”

“나기브 장군을 찾아갑시다. 나기브 장군이라면 저런… 저런 겁쟁이보다는 우리 말을 들어줄 겁니다!”

항상 냉정, 침착한 사다트가 대책을 묻자, 나세르는 주먹을 꽉 쥐고 들었다.

2기갑여단장 나기브 장군은 자유장교단의 대부격 되는 인물이었으며, 젊은 장교들에게도 견실한 이미지로 널리 호감을 사고 있었다.

“갑시다! 나기브 장군께!”

* * *

“그렇단 말인가….”

“장군께서 행동해 주셔야 합니다!”

“….”

이번에는 2기갑여단장 모하메드 나기브의 막사로 몰려든 장교단들 앞에서, 나세르는 또 한 번 같은 연설을 했다.

대놓고 겁쟁이인 사령관보다 그나마 나기브는 용맹했다. 물론, 명령 없이 단독작전을 치르는 것에 대한 머뭇거림은 있었지만.

하지만 인자한 미소와 동네 아저씨 같은 푸근함으로 무장한 그의 뒤에도 야망은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세르는 그의 눈동자에서 끓어 넘치는 기묘한 열정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각하! 각하야말로 이 아랍연방을 서구 압제자들의 마수에서, 그들의 하수인들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적임자이십니다! 저 유태인들을 다시 그들이 온 지옥으로 돌려보내십시오!”

“…내가 무엇을 해 주면 되겠나?”

장교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소련군 군사고문단에게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은 정예 장교들은 나름의 작전계획을 세워 두었다. 대위급의 실무자들로서 애초에 이들이 작전계획의 실무를 담당하기도 했었지만.

보고서를 받아든 나기브 장군은 호오 하는 감탄을 하거나 침음성을 흘리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보고서를 책상에 내던졌다.

“사실 이런 내용이 무엇에 쓸모 있겠나. 전장의 상황은 항상 예측할 수 없는 법. 하지만 나는 자네들을 믿네. 자네들의… 우국충정도.”

자유장교단의 젊은 장교들은 한껏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들이 바치는 충정이야말로 제국주의의 아래 짓눌린 이집트 민중과, 더 나아가서는 아랍 대중을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나기브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개 기갑여단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자네들 뜻대로 해 보지. 시리아의 형제들이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 총사령관님은 내가 설득해 보겠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장군님!”

나세르는 앞으로 달려 나와 나기브 장군의 손을 와락 잡고 무릎을 꿇었다. 사다트는 쇼맨십 하나는 뛰어난 자신의 친구를 보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저 차이가 바로 리더와 2인자의 차이였다. 나세르의 목소리는 열정적이고 호소력이 짙었으며, 또 듣는 이의 가슴이 끓어 넘치도록 하는 마성을 지니고 있었다. 나기브 장군도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 주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 자신도 그래서 나세르를 따라 자유장교단 운동에 참가한 것이지만.

아무튼 진격령은 떨어졌다. 장성단 내에서 인망 높은 나기브 장군은 진격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집트군이 전공을 세운다면 화들짝 놀란 타국들도 전공을 모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진격할 테고.

“가자! 앞으로! 승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형제들이여!”

“와아아아아아아!”

* * *

“이… 이집트군이 국경을 넘었다고 합니다.”

“….”

“국경초소들은… 장렬히 싸우다 전멸했다고 합니다.”

하가나 민병대의 비밀 회합 장소였다가 졸지에 신생 이스라엘군 총사령부가 된 건물 아래에서, 연락요원들은 다 같이 입을 다물었다.

독립전쟁을 선포한 다비드 벤구리온과 남부 이집트 방면 부대들을 옮겨 시리아군의 진격을 막을 것을 명령한 참모총장, 이스라엘 갈릴리는 죄인이나 된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쏟아지는 보고들을 받아 보았다.

“니림 키부츠는… 전멸당했다고 합니다. 탈출한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이외 생존자들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야드 모데카이 키부츠는 적의 공세 앞에 함락 직전이라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항전하겠다고 하지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고….”

“지바티 여단은 이집트군과 교전에 돌입했습니다!”

주력이 시리아 방면으로 빠져나갔지만, 그쪽에서의 방어가 성공적인 것도 아니었다. 기계화부대, 소련제 전차로 무장한 시리아군은 이스라엘군이 가지고 있는 소화기들을 그저 무참하게 짓밟아 버렸다.

이스라엘군은 마지막 수단으로 자폭에 가까운 돌격까지 감행했지만 시리아군의 전차들은 몇 대 손상조차 입지 않고 초기의 기세를 유지한 채 남하했다.

“예루살렘을 사수할 수 있겠는가?”

“….”

해안가의 텔아비브와 달리 예루살렘은 산 위에 위치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단 한 번도 짓밟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지.

도시로서는 지극히 불리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오직 종교의식만을 위해 세워진 이 도시는 유태인들의 영광된 시기를 상징했다. 솔로몬 대왕 시절부터 아름답게 펼쳐진 유대왕국의 수도! 그 신성한 도시 예루살렘을 짓밟으러 수만 명의 이교도 군세가 몰려오고 있었다.

이교도 로마군은 성전을 무너트리고 성도를 흙발로 뭉개었다. 유태 민족은 그 이후 수천 년간이나 고난을 겪으며, 메시아를 기다리며 세상을 떠돌아 왔다.

세상의 가혹한 풍파 속에서 그들은 언젠가 오실 구세주를 갈망했다. 저 스스로 문명인을 자처하는 열강들은 그러나, 유태인들을 버렸다. 프랑스의 멸시, 영국의 사기, 독일의 조직적이고 열정적으로 냉혹한 학살을 겪은 이들은 결국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고향 땅을 찾아 되돌아왔다.

“아직… 우리의 시대가 아닌 것인가?”

“….”

“야훼시여… 야훼시여… 저희가 져야 하는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교인들은 애타게 신의 이름을 불렀다. 야훼의 진노를 사 젖과 꿀이 흐르는 고향 땅에서 추방당한 지도 어언 2천 년.

역사가 이리도 반복되어야 하는가, 벤구리온은 탄식했다.

야훼가 그들에게 약속한 약속의 땅 가나안.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모든 나이 든 세대가 죽어야만 했다. 모세마저도 그 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야훼의 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는 자신이 새 시대의 모세가 되리라 생각했다. 고통받고 압제당한 동포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귀환하는.

하지만 진짜 모세와도 같이 그는 약속의 땅에 천년왕국이 세워지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죽어야 할 운명을 받고 말았다.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예정된 대로 대피시키도록 하게. 스탈린 서기장마저 우리를 모두 죽이지는 않을 거야.”

“총리 각하!”

스탈린 서기장은 같은 사회주의자로서 지원을 기대했던 유태인들을 버렸다. 만주, 혹은 소련령 동프로이센 지역에 유태인 자치공화국을 허용해 줄 것이다! 그것이 스탈린이 내민 가장 관대한 제안이었다.

“골다?”

“예, 다비드.”

그리고 벤구리온은 힘겹게 그의 옆에 시립한 여인을 쳐다보았다.

순식간에 수년은 더 늙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며 여인은 살짝 눈물지었지만, 표정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담담하고 대담했다.

“당신이라면… 어쩌면 당신이야말로 여호수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네….”

“우리가 도망갈 수 있는 곳은 바다뿐입니다! 차라리 저희도 싸우다 다 같이 죽겠습니다!”

“이 민족을 모조리 끝장낼 셈인가?”

“우리가 모두 죽어도, 세계에 우리 동포들이 아직 수백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언젠가 다시 이스라엘을 재건할 것입니다.”

골다 마이어슨은 벤구리온 총리의 ‘부탁’을 강경하게 거절했다.

‘철의 여인’. 그것이 이스라엘인들이 그녀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죽음을 말하는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마사다 요새에서처럼 우리를 먼저 죽이십시오.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는 죽지만 우리 형제들은 저기 바다 건너에도 수십만, 수백만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불꽃을 피워 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입니다.”

“골다, 수만 명의 아이들이 죽을 걸세.”

“그 점은 저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수치 속에서 노예가 되어 다시 살아가느니 죽음을 선택하겠습니다. 유태인이라면, 긍지를 가지고 있다면 말입니다.”

이미 예루살렘에서는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겠다는 전문이 도착했다.

그들 역시, 2천 년 전 로마와 싸우다 장렬하게 죽어 간 선조들을 기억하는 듯했다.

[마사다는 함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마사다는 함락당했다. 사막의 마사다 요새를 점거하고 로마인 고관들을 암살하며 공작을 펼치던 열심당원들은 결국 압도적인 숫자를 앞세워, 그리고 동포들을 노예이자 고기방패로 세워 밀고 들어오는 로마군을 막아 내지 못했다.

남성들은 그래서 가족들을 죽였고,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모두 자결한 후 요새에 불을 지르고 항복하지 않았다.

아랍인들에 대한 맹렬한 증오심을 품은 그들은 아랍인들의 아래에서 2등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 이미 유럽인들에게도 몇 번이고 학살당한 유태인들은 꿈에도 그런 발상을 거부했다.

“언젠가… 언젠가는… 이 땅 위에 야훼께서 약속하신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입니다. 저 모든 이방족속들을 물리치고….”

사회주의자를 표방하면서도 골다 마이어슨은 유태인들이야말로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임을 굳게 믿었다.

벤구리온은 그런 그녀가 과연 스탈린의 소련에서 유태인들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녀가 거부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하지는 못할 것이다. 애초에, 골다는 아직 젊었다. 40대밖에 안 된 젊은이들이 죽음으로 도피하도록 놔두는 것은 잔소리쟁이 늙은이로서는 가만 두고 볼 일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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