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224화
“우리는 고통받는 우리 동포들을 도울 것이오! 만세! 만세! 이집트 왕국 만세!”
“와아아아! 알라후 아크바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분쟁은 블랙홀처럼 주변 국가들을 빨아들였다.
아니, 빨아들이기보다는 퍼져 나갔다. ‘이교도’들이 무슬림 형제들을 박해한다는 소문을 듣자 적지 않은 수의 과격파 무슬림들이 신앙의 형제들을 지원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리고 더 많은 수의 무슬림들이 직접 싸움에 뛰어들지는 않더라도 분노했다. 그 분노의 방향은 서구 이교도들과 붙어먹는 정부, 혐오스러운 영국인들에게 놀아나는 정부를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민중의 이 분노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아랍 각국은 팔레스타인의 분쟁에 한 발을 담가야 했다.
이집트 왕국, 트란스요르단 왕국, 이라크 왕국, 프랑스에게서 공화정으로 독립한 시리아 공화국이 직접 파병을 선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원을 파병한 이집트는 연합군의 맹주 격으로 추대되었다.
이집트군은 4만 명의 대군을 편성했으며, 그중 2개 기갑여단은 소련 군사고문단에게 훈련받은 최정예군이었다. 이외에도 아랍 전역에서 몰려든 의용군에 사우디가 파견한 비공식 지원병들까지.
각자 다른 출신에 훈련방식도 가진 무기도 다르고 지휘체계도 일원화되지 않은 ‘연합군’이 탄생했다.
“이 정도 병력이면 저 찌끄러기 같은 유태인 놈들을 모조리 지중해 바닷속에 처박아 버릴 수 있소이다!”
“암, 암, 그렇소.”
각국의 지휘관들은 각자 가져온 병력이며 무기를 뽐내며 거들먹거렸다.
이라크 왕국은 영국인들이 남겨 놓고 간 공군기 100대로 무장한 공군을 가지고 있었다. 요르단 역시 영국식으로 훈련받은 정예 ‘아랍 군단’을 보유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잡병 정도는 얼마든지 쓸어내 버릴 수 있다고 장담했다.
유태인 민병들, 지금은 이스라엘 국군이 된 ‘하가나’는 끽해야 기관총 정도의 중화기밖에 보유하지 못했다. 포병도, 공군도, 하다못해 공군을 견제할 대공포도 없는 군대는 현대식 화기 앞에 쓸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두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어쩐지 불안하군….”
“머리가 많으면 결국 자멸할 텐데….”
이집트 최정예군, 2기갑여단 소속 대위 가말 압델 나세르와 안와르 사다트는 벽 근처에서 서로에게 속삭였다.
아랍 연합군은 태생부터 불안했다. 이집트가 제일 많은 병력을 파병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훈련도로 보았을 때 두 개 기갑여단을 제외하면 오합지졸 잡병들에 가까웠다.
요르단 아랍군단이나, 시리아 공화국수비대를 제외하면 딱 전부 잡병에 가까웠다. 이라크 공군 조종사들은 자기가 모는 기체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연줄이며 권위를 내세워 ‘간지나는’ 파일럿 자리를 잡은 귀족 도련님들에 불과했다.
그리고 ‘의용군’들은 다행히 팔레스타인에서 흘러나온 신형 소련제 총기들을 가진 이들도 있었지만, 심하게는 300년 전에 개발된 것 같은 화승총을 들고 의용군입네 하고 온 이도 있었다.
반면 이스라엘군은? 그들은 무장도 빈약했고, 수도 훨씬 적었다.
하지만 그들은 몇 가지 이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통일된 지휘체계하에 있고, 수비하면서 우리의 진격을 맞을 수 있지. 예루살렘 같은 곳에 포격을 퍼붓기엔 윗대가리들이 너무 경직되어 있고….”
“거기다가 저놈들은 막강한 무기도 있지.”
투덜대는 나세르에게, 사다트는 침착하게 한 가지를 더 지적했다.
“패배하면 죽는다는 절박함.”
아랍 연합군은 사실 국내의 불만을 진정시키기 위해 군대를 보냈을 뿐이다.
민중은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집트의 현 국왕, 파루크만 해도 술 처먹고 계집질하는 데 국가 재정을 꼬라박고 있었으니 국민의 불만이 없을 리 없었다.
그리하여 국왕은 강력한 소련제 무기를 구매하고, 소련 군사고문단까지 초빙해 강군을 육성했다. 혹여나 민중이 반기를 들면 쉽게 진압할 수 있도록.
물론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국왕은 해외파병을 선택했다.
군사적 승리는 민중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었다. 그것이 이교도를 향한 무슬림 형제들의 ‘성전’ 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고.
“이제 그 뚱뚱보 파루크는 그렇게 이야기하겠지. 정부가 서방 제국주의자들 손에 놀아난다는 것은 헛소리다. 그들의 하수인인 유태인들을 몰아내지 않았느냐?”
유태인들은 미안한 말이지만, 반쯤 버려졌다.
영국은 새로 결성된 국제연합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던지고 이집트와 협상해 수에즈만을 사수하길 선택했다. 소련은 노골적으로 아랍 연합군 소속 시리아와 이집트 같은 곳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해 군대를 훈련시키고 무기를 제공했다. 뭐, 유태인들에게도 나름의 자치령을 주겠다는 선전을 하기는 했지만.
파루크는 국민들 상대로 체면도 세울 겸, 새로 육성한 군대도 테스트해 볼 겸 파병을 선택한 것 같았다.
“하, 아주 잘못된 선택을 했군.”
나세르가 코웃음을 치자, 사다트는 낮게 끌끌 웃었다.
둘이 이끄는 ‘자유장교단’은 무능하고 부패한 왕정도 혐오했고, 광신적인 이슬람주의자들도 배격했지만 그럼에도 이번 전쟁은 찬성했다.
1기갑여단과 2기갑여단에는 자유장교단 소속의 젊은 장교들이 쫙 깔려 있었다. 그들은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작정이었다.
그냥 승리가 아니고, 압승. 압승을 거두어야 했다.
전쟁은 영웅이 탄생하는 가장 좋은 요람이었고, 나세르는 전쟁영웅이 되어 이집트를 휘어잡을 작정이었다.
* * *
“시, 시리아군이 요르단강을 넘어 진격 중이라고 합니다!”
텔아비브에 위치한 이스라엘군 총사령부에는 이제 마구 급전이 쏟아졌다. 아랍 연합군이 모여서 작전을 준비한다 어쩐다 꺼드럭거리며 탁상공론을 늘어놓는 동안 말만 많은 그 꼴을 본 이스라엘군도 잠시 방심하고 말았다.
하지만 시리아군은 그런 방심을 틈타 전격적인 기습을 가했다.
“빠드득… 비겁한 놈들….”
하필 날짜는 유태교 전통의 속죄일인 ‘욤 키푸르’. 절묘한 시점에 가해진 이 기습에 일선 이스라엘군은 철저하게 깨져 나갔다.
“아직 이집트나 요르단 방면에서는 별 군사행동이 없나? 팔레스타인 놈들은?”
“예! 아직 그쪽에서는 전해진 바가 없습니다. 시리아가 단독으로 군사행동을 개시한 듯합니다.”
사실상의 수도인 텔아비브, 반드시 지켜야 하는 명목상 수도 겸 성지인 예루살렘과 시리아 국경으로부터 거리는 고작 120km 정도.
마음만 먹으면 저 ‘시리아 공화국수비대’의 기계화여단은 하루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였다. 보병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급속한 기동성으로 전선 깊숙이 정예병력을 때려 박는 대담한 전술 때문에 이스라엘군은 쇼크에 빠져 버렸다.
“참모총장님, 어찌해야 할지….”
“이집트 방면의 부대를 재배치하도록 하지.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을 사수할 수 있도록….”
“그랬다간 이집트가 공격해 올 시에….”
가장 거대한 군대를 보유한 이집트를 방어하기 위해 다수의 방어군을 시나이 방면에 할애했던 군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틀리고 말았다.
시리아군은 골란 고원에 주둔하다가, 위에서 아래를 돌파하는 지형상의 이점을 활용하여 요르단강과 갈릴리호를 끼고 방어선을 구축한 이스라엘군을 박살 내고 돌파했다.
이스라엘군은 소부대 전술이나 거점방어 정도는 할 줄 알았지만, 본격적인 기계화제대와 마주치자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으아아아악!”
“막아, 막… 아악!”
둔중한 생김새에 비해 전차는 엄청나게 빨랐다. 한 번도 전차와 마주쳐본 적 없는 병사들은 32톤짜리 강철 요새가 저렇게 빠른 속도로 자신들에게 다가온다는 데 놀라 공황상태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빈약한 소총이나 기관총으로는 전차의 전면장갑을 뚫어 낼 수 없었다.
쾅! 85mm 주포가 불을 뿜었다. 고폭탄은 다시 한번 폭발하며 파편의 비를 불운한 병사들 위에 흩뿌렸다.
억센 소련군 훈련단에게 단련된 시리아 공화국수비대의 훈련도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스라엘 병사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주포의 연사속도는 소련군 전차병들 못지않았고, 또 정확하게 표적을 박살 냈다.
“에잇… 이거나 먹어라!”
펑! 퍼펑! 전선으로 연결된 대전차지뢰가 신호에 따라 터지며 T―34 전차의 궤도를 끊는 데 성공했다. 전차가 멈춰서자 병사들은 잠시 환호했으나 다시 날아오는 기관총과 멀쩡히 펑펑 쏴 대는 주포에 비명을 질렀다.
“후퇴, 후퇴한다!”
전쟁은 항상 창과 방패의 싸움. 창이 뾰족하고 강력해지는 만큼 방패도 그만큼 단단해졌다. 방패가 강화된 만큼 창도 방패를 돌파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했다.
소련군은 독일군 기갑전력을 막아 내기 위해 세련된 대전차 방어전술을 발전시켰다. 대전차 방벽과 지뢰, 곳곳에 매복한 대전차포와 가장 중요하게는 적 기갑세력을 분쇄할 수 있는 기갑부대의 적시 투입 같은.
또, 이렇게 세련되게 발전한 대전차 방어전술을 격파하고 진격하기 위해 공세전술 역시 정교하게 발달했다.
유기적인 포격과 폭격, 그리고 제병협동 공세로 방어선에 돌파구를 만든 후 기계화부대가 후방에 진출하는 소련식 공세작전은 고문단들에 의해 시리아군에 전수되었다.
시리아군은 아직 어설프고, 공군의 지원도 거의 받지 못했으며, 소련처럼 막대한 기갑전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 역시 허접했다.
“으음… 우리 매뉴얼대로라면 대전차포 진지를 탐색하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중대장님, 이 새끼들 대전차포 진지가 없는데요?”
“아… 그렇네….”
모든 것이 부족했고, 야포와 중화기는 그냥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것들 없이는 전차를 멈춰 세울 수 없었다.
전차는 막강한 무기였다. 보병이라면 고전해서 돌파했을 참호선과 철조망은 그냥 깔아뭉개 버렸다. 적절히 배치되었다면 일개 소대 정도는 갈아 버렸을 중기관총들은 널브러진 채 궤도 아래서 고철 덩어리가 되었다.
“일단… 진격!”
“옙!”
그리하여 시리아군은 진격을 계속했다. 요르단강을 넘어, 텔아비브와 성지 예루살렘을 향해. 아마 악마 같은 유태인 놈들은 반격을 시도하겠지만, 그들은 자신이 있었다.
공화국수비대 최정예 부대, ‘근위 기계화여단’ 의 선봉을 맡은 중대장은 상부의 지령을 분명히 기억했다.
‘굳이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를 점령하는 게 우리가 될 필요는 없다….’
무슨 의도가 더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시리아군 상층부는 자국군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현재 이스라엘이라는 공통의 적 앞에서 아랍 연합국들은 다 함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적이 제거된 이후에는 각자 성향과 상황에 따라 척을 지고 으르렁댈 것이다.
시리아는 레바논과 함께 공화국으로 독립했기에 대부분 왕정을 유지하는 다른 아랍 국가들에게 따돌림당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괜히 너무 튀어서, 전략목표인 두 도시를 다 먹으며 집중 견제를 당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또, 상부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네들이야말로 우리 군의 미래이자 중추일세! 다치지 말고 반드시 살아서 돌아와 군대를 위해 오래오래 복무해 주게.”
선진 군사교육을 받은 장교들이야말로 앞으로 군의 중추가 될 것이다! 여단장은 휘하 장교들을 그렇게 우대했고, 실제로도 나라에서는 많은 혜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니 굳이 도시에 틀어박힐 놈들을 상대로 피를 흘리며 시가전을 치를 필요는 없었다. 소련군 군사고문도 기갑부대를 도시에 투입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촌평했다.
시리아는 요르단강 상류의 갈릴리 호수만 온전히 손에 넣을 수 있으면 승리라고 자평했다. 척박한 팔레스타인 땅에서 그나마 몇 안 되는 풍요로운 일대를 장악하고 가장 중요한 자원인 물을 가질 수 있다면 충분히 소득을 거둔 것이나 다름없다. 굳이 더 욕심을 부린다면 지중해로 통하는 항구 정도?
이집트는 반드시 이스라엘을 짓밟고 아랍의 맹주로 우뚝 서고 싶어했지만, 그건 그런 대국이나 부리는 욕심. 시리아는 정확히 전력을 판단했다.
“자! 진격하자! 가자, 지중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