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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23화 (223/300)

# 223

223화

“아! 거기 좋지.”

카티아는 요새 한창 유행하는 식당에 가고 싶어했다.

그리고 니콜라이도 솔직히 그곳을 굉장히 좋아했다. 연인들의 로맨틱한 저녁식사라기엔 좀 문제가 있었지만.

장미꽃을 꽂고 양초를 켜고 와인 한 잔을 곁들인 식사는… 미안하지만 쪼들리는 신혼부부들에게는 사치였다. 카티아는 검소했고, 본인과 니콜라이가 버는 돈을 웬만하면 집안을 꾸미는 데 사용하고 싶어 했다.

“그걸로 괜찮겠어?”

“응!”

“하하하하….”

사실 그래서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냥 맛있어서인가?

둘은 어느새 식당에 도착했다. 이곳도 영화관처럼, 아니, 영화관보다 더 사람이 많이 바글거렸다.

“여기가 인기긴 한가 보다….”

“그러게? 맛있잖아!”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인자한 노인, 고참 볼셰비키 혁명가이자 식육의 대중보급 사업의 진행을 담당한 미하일 칼리닌의 캐리커처가 두 부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지… 여기 맛있지….”

큼지막한 영어 글자로 적힌 KFC 세 글자가 붉은 바탕에 박혀 있었다. 영어를 제법 잘하게 된 니콜라이는 그 글자들을 몇 번이나 입속으로 굴려 보았다.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주방 뒤편에서 대량으로 닭을 튀기고 있는지 줄은 금방금방 빠져나갔다. 향긋하고 고소한 닭튀김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으음… 나는 저, 버거로 할래.”

“나는 치킨!”

니콜라이의 취향은 사실 ‘서기장 커틀릿’, 요새 쓰는 말로 하자면 ‘버거’ 쪽에 가까웠다. 그는 처음으로 햄버거를 맛보았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마요네즈를 듬뿍 달라고 직원에게 이야기하자,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문을 적어 내려갔다.

“예, 여기 번호표 받으시고 호명되면 와서 받아 가세요.”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뜨거운 치킨을 호호 불면서도 열심히 뜯어먹고 있었다. 어쩐지 군침이 꼴깍 삼켜졌다.

카티아 역시 당장이라도 침이 흐를 것 같은 얼굴로 행복하게 치킨을 먹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소비에트 인민들은 이 혁명적인 식당을 너무나 사랑했다. 추운 겨울을 견뎌 내야 하는 러시아인들은 전통적으로 기름지고 짠 음식을 좋아했다.

그리하여 KFC는 소련 내에서 대 히트를 칠 수 있었다. 새로 KFC가 열리는 곳에서는 하루 전부터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곤 했고, 월급을 받은 사람들은 자녀들을 데리고 외식으로 나오곤 했다.

저만치에서 즐겁게 손가락을 쪽쪽 빠는 어린아이를 보며 카티아는 미소지었다.

“니콜라이?”

“응?”

“우린… 아이 이름은 뭐라고 할래?”

!!!

사실 그런 면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새삼 결혼이 현실임이 다가왔다.

그가 상상해 본 적 없는 수많은 것들이 그에게 들이닥쳤다. 물론 소비에트 연방이 바뀌었고, 그가 처한 상황이 바뀌었고, 그리고 시대가 바뀌었기에 바뀐 게 더욱 많았지만.

아마 10년쯤 전에 모스크바에서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름에 튀긴 닭을 혁명가의 얼굴이 박힌 간판 아래서 먹는다고 하면 크나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또, 반쯤은 문맹에 산수도 못 했던 시골 청년인 그가 인민영웅에 기갑부대를 지휘하는 대위가 되었다고 하면 그것 역시 충격적이었을 거고.

카티아는 꺄르륵 웃었다.

“일단 아이가 아들일지 딸일지도 모르겠네!”

“그, 그러게?”

생각해 보니 그도 그랬다. 혹은 쌍둥이의 가능성도 있다며 카티아는 깔깔 웃으며 소금과 닭기름이 묻은 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니콜라이도 마요네즈와 튀긴 닭 패티가 끼워진 큼직한 버거를 한 입 깨물었다.

“으음….”

흡족한 맛이 입안에 탁 터졌다. 아, 이걸 어머니 아버지가 드셔 보셔야 하는데.

* * *

“저기 한번 가 보자!”

“어? 어! 그래….”

식사를 하고 나니 다시 에너지가 넘치는지 카티아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도시를 활보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끝에는 ‘굼’ 백화점(굼=국영 백화점의 약칭)이 있었다.

어느샌가 시가지의 중심부인 붉은 광장까지 온 그들은 그 화려함을 입을 딱 벌리고 올려다보았다. 차르 시대부터 존재해 그들보다도 나이가 배 이상 많은 백화점은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며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오….”

“뭐 해? 가자? 하하하하!”

새삼 그 화려함에 감탄하면서도 주머니 속의 부실한 동전들에게 작은 원망을 보낸 니콜라이는 애써 카티아에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카티아는 니콜라이의 그런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살풋 눈웃음을 지었다.

“뭐 사려는 건 아니고, 그냥 구경해 보자!”

“응….”

그가 당 간부가 되면 카티아가 여기서 마음껏 쇼핑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은 재물에 욕심이 없어 보여도, 그녀도 여자다.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는 화려한 장신구들이며, 예쁜 옷가지들이며, 관심이 없을 리 없다.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질 법도 했지만, 카티아는 그저 맑게 웃으며 이것저것 들여다보았다.

“이것도 예쁘지? 저것도?”

“네가 하면 뭐든 예뻐.”

생각에 잠겼다가 어설픈 진심이 튀어나와 버리고 말았다. 점원은 별꼴이라는 듯 피식 웃었지만, 카티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명랑한 미소를 지으며 니콜라이의 목을 껴안았다.

“니콜라이, 당신도 참….”

뭔가 눈물이 왈칵 흐를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잠시 목을 껴안고 그를 토닥이던 카티아는 다시 니콜라이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자! 저기도 가 보자!”

“어디? 어디?”

카티아는 이번엔 백화점 1층 저편에 있는, 새로 연 ‘카페’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아까 KFC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저기도 인기인 듯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간판을 읽었다.

“별… 카페?”

“응! 저기도 유명하다더라.”

보통 쓰는 붉은색 별이 아니라 초록색 별 마크와 인자하게 웃는 대머리 아저씨 모습의 로고가 인상적이었다.

카티아는 니콜라이의 손목을 잡고 카운터로 가서 잠시 고민을 하다 씩 웃었다.

“저는 아이스 소비에트 하나요! 니콜라이, 넌?”

“그… 저도 같은 걸로 하나 주세요.”

아이스 소비에트는 차가운 커피의 위에 초코 시럽과 사워크림을 듬뿍 올린 음료였다. 새콤한 사워크림을 쪽쪽 빨아 먹으며, 두 커플은 실컷 백화점 구경을 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뭘 사지는 않고, 적당히 식사를 하고 뭘 마시면서 여러 가지 상품을 구경했다. 프랑스나 브란덴부르크, 라인란트에서 생산한 각종 물건들이 백화점 선반을 꽉 채우고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탈린 서기장 동지는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을 이야기하며, 10년 내로 국민들이 고기를 마음껏 먹는 삶을 제시했다. 20년, 30년 후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주말에는 가족이 손을 잡고 놀러 나와 저런 것들 한두 개쯤은 사서 즐겁게 집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10년도 갈 것 없이 지금도 고기는 원한다면 먹을 수 있었다.

‘KFC도 그렇고… 스팸도 그렇고….’

최고급 쇠고기를 마음껏 썰어 배 터지게 먹는 것은 아니었지만, 맛있는 육류 제품들은 지금도 먹고자 하면 먹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배가 터지도록 먹고 뚱보가 되지만 누군가는 밥을 굶어야 하는 미국보다도 여기가 괜찮을 것 같았다. 니콜라이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를 기억했다.

대대 정치위원은 실제로 그 자료들을 보여 주었다.

“미국인들은 우리의 좋은 친구들이고, 이렇게 맛있는 것들을 많이 보내 주지만 정작 자기네 나라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내버려 둔다. 이것이 사회주의가 더 나은 점이다.”

다 같이 굶는 게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니콜라이는 그럭저럭 수긍할 수 있었다.

어찌되었건 삶은 점점 나아지고 있었고, 세상에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련 인민들을 위해 라디오 1억 대를 보급하겠다, 15년 후까지 모든 소련 가정에 텔레비전을! 같은 급진적인 구호들은 미래에 대해 꿈을 꿀 수 있게 해 주었다.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또 내일은 내일의 발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흐루숍카는 수천 채씩 세워져 모든 소련 인민에게 수도와 전기, 난방이 되는 주거를 제공할 것이고, 날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인민들에게 그전에 본 적 없는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주말에는 극장과 치킨, 여름과 겨울에는 휴가를!

‘이러다 어느 날에는… 저기 별나라에 다녀올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문득 그런 공상을 하자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니콜라이?”

“아, 아, 그냥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라서.”

“이따 나도 들려줘. 헤헤헷.”

아마 그의 손자나, 증손자 정도면 가능할 수도 있을리라. 지금은 화약을 품고 날아가 전차를 때리는 로켓은 하늘을 날아 인간을 우주로 데려갈 수도 있다고 했다.

엄청나게 먼 미래의 이야기겠지만, 니콜라이는 카티아와 손을 잡고 달을 걷는 장면을 상상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생각해 보면, 이곳도 그동안 그가 상상해 보지 못했던 별천지가 아닌가?

어둡고 무지한 시골의 몽매함 속에서 도시로, 진보로, 소련은 달려가고 있었다.

* * *

“아아아아! 오늘 재밌었다!”

“그랬어?”

카티아는 집에 들어오자 쭉 기지개를 켜며 활짝 웃었다. 전반적인 식량 가격이 확 떨어지며 물가가 내려가, 오늘 쓴 돈은 생각해 보면 얼마 되지도 않았다. 원한다면 매주 주말 이렇게 놀러 나갔다 올 수 있을 정도?

물론 굼 백화점에서 파는 텔레비전 같은 물건을 사려면 꽤 오랫동안 꾹 참고 돈을 모아야겠지만.

“KFC도 맛있었고, 아이스 소비에트도 맛있었고… 친구들이 이야기했었는데 이제야 먹어 보네? 나는 그게 너무 신기했어.”

카티아는 조잘조잘 오늘 보았던 신기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백화점의 화려함, 새콤달콤 쌉싸름한 아이스 소비에트, 고소하고 맛있는 KFC 치킨….

한참이나 재잘거리던 그녀는 안락의자에 푹 파묻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니콜라이도 오늘은 흡족한 하루였다.

그녀와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이야기하고 떠들며 웃음을 볼 수 있었기에. 또, 이제 둘은 부부가 아닌가!

“저… 카티아?”

“응?”

“아이를 낳으면, 딸이면 당신 이름을 따서 짓고, 아들이면….”

“하하하하! 그게 뭐야!”

그러면서도 카티아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어린 카티아, 엄마를 꼭 닮을 어린 카티아가 기대되었다.

“아들은 음… 글쎄?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겠다.”

“아들이면 작은 니콜라이! 어때?”

“아니야, 그건 좀….”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는 너무 촌스러웠다. 수많은 이반 이바노비치들 같은 느낌 아닌가! 니콜라이는 그러다 문득 카티아를 바라보았다.

“카티아?”

“응?”

그녀를 바라보는 자신은 어떤 모습일까? 카티아는 어느때보다도 사랑스러운 미소를 띄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네 이름이 뭐지?”

“응?? 하하하하! 카티아!”

니콜라이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카티아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네 이름이 뭐야?”

“카티아. 카티아 페트로바.”

작은 흐루숍카에 신혼부부의 웃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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