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216화
“자… 이 폭발물이라는 게….”
“오오….”
인도 산기슭의 한 비밀 아지트에서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흥미롭게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 있는 사람은 건장한 체구의 백인이었다. 그는 비료와 설탕과 화공약품을 만지작거리며 사람들에게 뭔가를 선보이고 있었다.
“자, 이렇게 하면 로켓 추진 연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와! 대단합니다!”
“하하하, 사실 해 보면 별것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해 보면 얼마든지 따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설탕이라는 게 그렇게 값싼 물건은 아니었지만. 대규모로 사탕수수가 재배되는 지역에서는 제법 싼 가격에 설탕이 함유된 원액을 구할 수 있었다. 또 화약의 재료가 되는 비료도 구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구하는 게 가능했다.
건장한 체구의 백인, 스페츠나츠 요원은 이런 재료들을 사용해서 무기를 제작하는 법을 인도인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인도인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척척 각종 폭발물을 만들어 내는 요원을 바라보았다.
“이걸 그냥 가져다가 쏘면 됩니까?”
“그렇습니다! 뭐 품질이나 신뢰성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화력 하나는 화끈할 겁니다! 하하하하!”
“아주 좋습니다! 하하하하!”
소련이나 인도차이나에서 만들어 밀수하는 로켓포가 신뢰성도 높고 화력도 준수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만드는 수제 로켓, 통칭 ‘바즈라’(금강저) 로켓은 조악하기는 해도 육중한 한 방을 자랑했다.
비료 수십 킬로그램과 설탕 몇 포대, 그리고 화공약품 조금을 파이프 같은 것에 재워 넣어 만든 바즈라 로켓은 맞히기만 하면 웬만한 건물 정도는 박살을 내버릴 수 있었다.
더운 기후에 맞추어 적당히 시원하게 지은 영국군 주둔지를 깨부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아 그리고 지난번에 보여 주셨던 부비트랩 만드는 법도 다시 한번 가르쳐 줄 수 있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어떤 부비트랩을 보여 드리면 되겠습니까?”
“저, 그 인계철선과 양옆에 지향성 지뢰를 까는 것이….”
“하하, 그거야말로 고전이지요. 좋습니다.”
스페츠나츠 요원은 이번에는 아지트 깊숙이 짱박아 놓았던 상자 몇 개를 끌고 나오더니 다시 앉아서 뚝딱뚝딱 폭발물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자 일단 여기서는 폭약을 연결하지 않고 해 보겠습니다. 인계철선은 보통 발목 높이에 잘 안 보이도록 깔아야 합니다. 이건 당연한 일이고… 이렇게 이중으로 지뢰를 깔면… 꼼짝 못 하죠!”
“하하하하! 그렇군요!”
요원이 우스꽝스럽게 펑 터지는 모습을 취하자 인도인들은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동안 꺼드럭거리며 사람들에게 잘난 척을 하던 영국군이 이 간단한 폭발물에도 엿을 먹는 꼴은 정말 우스웠다.
토인이랍시고 제대로 된 교육도 시키지 않고 딱 써먹기 좋을 정도로만 가르치면서,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 뭘 할 자격이 없다! 이렇게 떠들어 대던 영국군도 정작 그 ‘토인’들이 만든 폭탄 앞에서 픽픽 쓰러졌다.
“자, 그럼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위치에서 또 해야 할 작전이 있어…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아… 그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요원은 씨익 웃으며 배웅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뿐이 아니라 수백 명에 달하는 스페츠나츠 요원들이 인도 각지로 숨어들었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영국과의 교전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인도인 게릴라들에게 게릴라 전투의 묘리를 가르치는 데 집중했다.
교리는 소련이나 인도차이나 연방으로 유학한 유학생들이나 혹은 국민회의의 비밀 사관학교에서 소련 군사고문단의 교육을 받는 장교후보생들이 책임질 것이다.
특수작전의 전문가인 스페츠나츠 요원들은 게릴라들에게 기술적인 측면을 가르쳤다. 사제 폭발물을 만들고 조립하고 은닉하고 운용하는 묘리들부터 위장, 유인, 교란 작전 등 독소전쟁에서 단련된 기술들은 인도 아대륙의 광활한 미개척지에서 빛을 발했다.
거친 산골짜기로 게릴라들을 쫓아 진입한 영국군 소부대들은 이런 예상치 못한 화력 앞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정교한 지뢰밭과 화망은 게릴라들이 유인한 지역으로 멋모르고 걸어들어온 영국군을 말 그대로 산산조각냈다.
영국군은 기본적으로 화력 면에서 우월했다. 게릴라들은 영국군처럼 수만 발의 탄약을 공급받아 마구 휘갈겨 댈 수도 없었고, 대포나 공군을 불러서 진지를 깨부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광활한 민중의 바닷속에 숨을 수 있었다.
“예? 아뇨, 못 봤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그런 사람 없는데요?”
“아니, 왜 우리를 그런 흉악한 반군으로 몹니까? 여왕 폐하 만세! 영국 만세!”
영국군은 도무지 누가 어디서 공격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대도시에서 영국 고관에게 총질을 한 인도인 암살자는 척탄과 총격을 가하고는 수십 명의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슬럼가의 층층이 쌓인 건물들을 모두 뒤질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한 영국 경찰들은 그들을 그냥 눈 뜨고 보아야 했다.
시골에서는 더하다면 더했다. 분명 이곳이 게릴라들의 해방구라고 생각하고 왔지만 마을 사람들이 딱 잡아떼는 이상에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들이 기분 나쁘게 킬킬거릴 때는 확 끌고 가 버릴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랬다간 분노한 게릴라를 더 만들어 낼 뿐이었다.
압도적인 화력이 있으나 그 화력을 조준할 곳이 없는 데서야 아무 쓸모가 없었다. 융단폭격으로 인도 아대륙을 모조리 불바다로 만드는 것은 이걸 지키려 하는 영국에겐 결코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제기랄! 그 새끼들은 대체 어디서 나타나는 건가? 그리고… 그 의사 놈들도….”
“의사들은 소련 유학생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련에 왜 의사들을 가르치냐고 할 수도 없고….”
“빠드득… 양키들은 왜 못 도와주겠다나? 본국은?”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표정으로 참모는 사령관을 쳐다보았다.
“양키들은… 원칙적으로 인도인들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가 제국주의란 말인가! 하!”
제국주의가 아니면 뭔가, 하는 표정으로 참모는 사령관을 다시 보았지만 사령관은 씩씩대느라 무슨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새끼들… 물리적으로만 위험한 게 아니야. 그놈들이 퍼트리는 내용이 문제라고!”
“….”
그렇다면 어쩔 텐가? 영국이 제시할 수 있는 더 매력 있는 선택지가 없었다.
소련에서 배우고 고국에 돌아온 인도인 의사들은 ‘서약’한 대로 농촌과 산간의 벽지들에서 진료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이 분명 무슨 조직과 연결고리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연결 자체가 오리무중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을들이 점점 반영으로 돌아서는 것을 보며 영국군은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붉은 사상’에 물든 의사와 간호사들을 지역에 풀어놓는 것은 사람들을 이상한 방향으로 경도시킬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멀쩡한 의료인들을 잡아다가 감방에 처넣는 것은 가장 충성스러운 여왕 폐하의 인도인들마저도 반기를 들게 할 수 있었다.
숭고함을 무기로 쓰다니! 소련의 악랄함에 영국인들은 두 손 두 발 다 들 지경이었다.
“토지의 경자유전, 무상몰수 무상분배, 빌어먹을! 이걸 어떻게 이기란 말인가!”
그 인도 놈들의 비밀 방송 [인도의 소리]에서는 매일같이 그런 불온한 이야기들을 떠들어 댔다.
작금의 인도는 영국인이 경영하는 대농장이나 소수 대지주, 라자들의 손아귀에 대부분의 땅이 들어가 있었다.
수많은 인도 농민들이 화전민이나 소작농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을 때, 저 넓고 풍요로운 땅을 너희 손에 안겨 주겠다는 구호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땅에서 나는 물산을 차지하는 게 목적인 영국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었고.
하지만 그 구호에 현혹된 수많은 인도의 소작농들과 빈농들, 그리고 슬럼에 사는 농촌 출신의 도시노동자들은 무기를 들고 반영을 외치기 시작했다.
“하… 일단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네. 그리고 이런… 이런 개 같은 방식의 전쟁에 단련된 전문가들과… 그리고 전차와 전투기와 야포들도 더 있으면 좋겠군.”
“알… 겠습니다.”
전차들이 별 쓸모는 없다지만 일단 이동식 토치카로 쓸 수는 있었다. 부비트랩이며 지뢰에 겁먹고 벌벌 떠는 병사들에게 우리 편으로 굴러가는 쇳덩이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안심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정 안되면 미국이 일본에게 했던 것처럼, 인도 게릴라들이 숨어 있을 법한 산악지대에 고엽제를 뿌려 버리지! 그 독한 걸 뒤집어쓰고도 얼마나 버티나 보겠네.”
“예? 하지만….”
하지만 인도의 주력 산업인 농업이 박살 나거나, 그걸 뒤집어쓴 멀쩡한 화전민은 과연 영국에게 무슨 감정을 품을까?
충성하지 않는 자들은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는 책략은 가능키나 할까? 아마 가능은 할 것이다.
인도인들은 ‘군대’라 할만한 것으로 조직된 상태는 아니었다. 소규모, 끽해야 수십 명으로 이루어진 군사조직들이 온 사방에서 설치고 다닐 뿐.
그러면서 폭탄이며 로켓으로 기습을 가하지만 야전에서 꽝 맞붙어서 영국의 현대화된 군대를 이길 수는 없었다.
인도네시아에서야 공식적으로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 연방군이 개입했고, 정부란 것이 있었으니 가능했지만 인도에는 둘 다 없었다. 인도 독립을 주장하는 정부도, 그리고 군대를 조직할 실체도.
모든 인도인들에게 충성맹세를 시킨 후 하지 않는 자들을 싹 쓸어버리는, 그런 전쟁도 결국 하면 이길 수는 있을 것이다.
“그… 러면 인도를 가지고 있는 가치가….”
하지만 그렇다면 영국 왕관의 보석이라 하는 인도의 가치는 폭락할 것이다.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고 그들을 무력으로 통치하며 하나하나 죽여 없애는 방식은 결코 수익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의 손에 로켓포와 소총을 비롯한 현대 화기들이 있다면! 아예 안 먹느니만 못한 땅이 될 텐데 정부는 대체 무슨 생각인가!
“…공산주의자들을 솎아내 버릴 수는 있겠지.”
“….”
이든 정부는 편집증적으로 대륙을 모조리 차지한 공산주의자들을 두려워했다.
해협을 수비하기 위해 남해안에는 각종 비행장들과 방어기지를 구축했다. 그리고 안 그래도 쪼들리는 재정을 쥐어짜 건함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스탈린은 미국의 해양 패권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것을 공공연히 보여 주기라도 하듯 잠수함대를 제외하면 함대 건설에는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잠수함에 데어 본 영국인들은 거의 노이로제에라도 걸린 듯이 반응했다.
영국과 소련의 전쟁에서, 양국의 ‘대립’을 관망 중인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영국의 필패는 분명해 보였다. 영국은 빈약한 본국의 자원을 충당하기 위한 배후기지로 미국이 없으니 인도를 반드시 손에 넣고 있어야 했다.
만약 인도마저 없다면? 공산주의자들이 퍼져 정권을 장악하고 소련 편에 붙는다면?
그때는 말 그대로 파멸이었다.
“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각하.”
“우린 그냥 위에서 시킨 대로 하면 되네. 생각하지 말게.”
일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이 이래도 되느냐 묻고 싶었지만 사령관의 눈에도 핏발이 서 있었다.
그도 아마 고심 중일 것이리라.
“결국 저들이 우리 군대를 박살 내지 못한다면, 우릴 여기서 몰아낼 수 없어.”
“….”
그리고 가질 수 없다면, 영국은 얼마든지 이 대륙을 박살 낼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