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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13화 (213/300)

# 213

213화

“와….”

고향 마을로 가는 기차역은 달라져 있었다. 나지막한 언덕배기 아래의 한산한 기차역은 어느새 수백 명의 사람이 분주하게 오가는 곳이 되어 있었다.

“여기! 이쪽으로 실어라!”

“그건 거기가 아니고 저기야!”

바쁘게 오가는 노동자들은 화물, 주로 곡물을 화물열차에 싣고 비료처럼 보이는 것들을 내려놓았다. 육중한 기계들이 움직이며 수 톤은 되어 보이는 화물들을 들었다 내렸다 했다.

이런 광경을 도저히 상상하지도 못한 니콜라이는 입을 쩍 벌리고 멍하니 두리번거렸다.

“이봐, 어디서 온 촌뜨기길래….”

“예? 저 여기 출신인데….”

억센 팔뚝을 한 노동자 한 명이 니콜라이의 등짝을 툭 치며 농담을 던졌다. 화들짝 놀란 니콜라이는 무심결에 대답을 했다.

“어디 뭐 차르 시절에서 왔나… 아니? 니콜라이?”

“어? 이반 아저씨?”

“이야, 너 이놈, 너 죽은 게 아니었구나! 하도 안 돌아와서 죽었나 했다! 하하하하하!!”

미묘하게 익숙한 목소리며 얼굴에 잠시 아리까리한 머리를 굴리던 니콜라이는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예전 고향마을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진 바람에 적잖이 시간이 필요했지만.

“와! 너, 드디어 돌아왔구나! 너희 어머니 아버지가 널 얼마나 기다리셨는데?”

“하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편지를 한다면 대부분 카티아에게나 하고 부모님에게는 그저 살아만 있다고 안부를 전하는 정도로 편지를 썼기에, 기다리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쩐지 부모님께 죄송해진 니콜라이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아무튼 가자! 나도 여기서 볼일은 다 끝났다. 집까지 태워 줄 테니.”

“예?”

“뭘 그리 놀라?”

이반 아저씨는 억센 팔로 니콜라이의 어깨동무를 하고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 팔로 니콜라이를 질질 끌고 가면서 아저씨는 자연스럽게 역 근처에 주차되었던 트럭에 올라탔다.

“아니, 아저씨는 이런 트럭을 어떻게 구했어요?”

“어떻게 했긴? 당에서 몇 대를 불하해 줬는데?”

니콜라이는 적잖이 놀라고 말았다. 이반 아저씨는 익숙한 몸짓으로 트럭에 올라 드르릉, 시동을 걸었다. 딱 봐도 신품임이 분명한 미제 2.5톤 트럭이 대체 이 동네에 왜 있는가?

“몰랐냐? 군수용으로 들여오거나 그 뭐라냐… 라이센스 생산? 한 걸 당에서 집단농장에 대량으로 풀었다. 이거 한 대 없는 농장은 없을걸 요새?”

“그… 그렇군요….”

징집 영장을 받고 떠나 왔던, 흙먼지 풀풀 날리는 흙길은 어느새 아스팔트가 쫙 깔린 포장도로로 변해 있었다. 부드럽게 핸들을 돌린 이반 아저씨는 니콜라이더러 보라는 듯 창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거 보이냐? 저 둥근 원통들?”

“예? 예! 예….”

“저게 그 뭐라냐… 아무튼 곡물을 저장해 놓는 건데, 이제 저기에다 가져다 놓으면 된다지 뭐라냐?”

사일로라는 개념을 간신히 초등교육이나 받은 농민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니콜라이는 대강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일종의 중간 보급창고 같은 개념 아닌가? 부대 지휘관으로서 말단 부대와 상급부대를 연결하는 중간 관리자 노릇을 해 본 그는 저게 왜 필요한지 알아챌 수 있었다.

고향의 풍경은 바뀌어 있었다. 기차역은 거대하게 커져 있었고, 못 보던 도로며 시설들이 생겨 있었다.

“저기는 신축한 축사고… 여기는 이제 그 흐루숍카가 들어선다는 공사판이고….”

도로에는 적잖은 수의 트럭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이렇게 우리나라에 차량이 많았나 고민했다.

물론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 끝없는 전차의 물결을 본 이상, 적지는 않았을 것이라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 깡촌 동네에 저렇게 많은 트럭들이라니!

니콜라이가 그렇게 멍해져 있는 것을 본 이반 아저씨는 또 껄껄 웃었다.

“야! 너는 뭐 전쟁 나가서 큰물에서 놀다 온 거 아니냐? 무슨 더 촌뜨기가 돼서 돌아온 것 같아! 하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러게요….”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너무 갑작스레 커지고 넓어져 버린 세상에 니콜라이는 도무지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자그마하고 낡은, 영원토록 그 모양 그 꼴일 것만 같은 고향으로 가고 싶었다. 고향에서는 그의 분수에 맞는 적당한 일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그리던 고향 마을은 고향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훨씬 잘 먹고 다니는지 퀭하던 얼굴에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었고, 입은 옷이나 사는 집들은 옛날의 그 허름하고 다 떨어져 가던 것이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가 기억하던 고향은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자! 다 왔다. 너희 부모님이… 아마 326호시던가?”

“아… 예, 감사합니다.”

농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예전과 비슷했지만, 그 안쪽에 있는 것들은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갓 세워진 하얀 칠의 흐루숍카 아파트를 보며 니콜라이는 입을 딱 벌렸다.

“요즘에 저런 게 몇 채나 세워졌는지… 예전보다 훨씬 따뜻하고 좋단다.”

“그렇군요….”

“어어이! 여기 니콜라이가 돌아왔어! 표도르 바실레예비치네 아들!”

“어? 니콜라이?”

드디어, 변하지 않은 반가운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챠! 샤샤! 소피아!”

“하하하하! 이제야 돌아온 거야?”

“니콜라이! 이게 얼마 만이야!”

옛 친구들, 조금은 늙었고 조금은 세월에 닳았지만 아무튼 기억 속의 그 친구들이 거기에 있었다. 함께 열차를 타고 군대에 갔던 미하일과 알렉산드르, 그리고 울며 친구들을 보내던 소피아는 니콜라이가 기억하는 그 모습을 하고 고향에 있었다.

“넌 왜 이렇게 늦었냐? 아니, 전쟁은 작년에 끝났잖아!”

“설마 저기 극동에 다녀온 거야?”

“하하, 아니, 그건 아닌데….”

병사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지만, 장교들은 군 감축과 보직이동 및 개편을 거치면서 군에 남아 있어야 했다. 니콜라이는 훈장 덕분에 높은 고과 평점을 받아 반강제로 ‘유능한 장교들이 필요한 요지’인 구 독일령 최전방으로 전출되었었다.

“아무튼 잘 됐다. 표도르 아저씨네가 어딘지 넌 모르지? 자, 가자!”

“어? 어, 그래….”

“니콜라이 이 자식. 넌 어떻게 변한 게 하나도 없냐? 하하하하하!”

한참 변한 동네의 모습에 머뭇거리는 것을 보며 친구들은 와하하 웃었다. 니콜라이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그러게.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는데….’

집으로 가는 길은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가슴이 뛰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집, 돌아가면 수리를 해야지 몇 번이고 생각하던 집은 이제 깔끔한 신축 아파트가 되어 있었다. 새로 칠한 페인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곳이 우리 집이라니? 새삼 새로웠다.

“누구세요…?”

“엄마!”

“니콜라이니?”

고향 집의 문을 두드리자 문이 끼익 하고 열렸다. 고개를 빠끔히 내민 어머니.

어머니의 얼굴은 그때보다도 주름살이 늘어 있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니콜라이는 벌컥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얘는… 일찍 좀 오랬더니 이제야 오는 거니? 밥은 잘 먹고 다녔지? 에그, 칼라를 왜 이렇게 접고 다니니… 니네 아버지는 저녁때쯤 오실 거란다. 아버지는 허리가 요새 왜 그리 안 좋으신지 모르겠네.”

어머니는 항상 그렇듯 이런저런 잔소리를 쏟아 내셨다. 니콜라이는 감격에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어머니는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보더니 툭 내뱉으셨다.

“그러게 편지 좀 자주 하지 그랬니.”

* * *

“어, 아들. 왔어?”

“아부지!”

아버지는 집 문을 열고 들어오시다 낯선 군화가 있는 것을 보고 무심하게 이야기하셨다. 그러면서도 흙 묻은 장화를 던지듯 벗어 버리고는, 몇 년 만에 보는 아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보자….”

굳은살이 가득 박이고 마디마디 굴곡진 두터운 손으로 아들의 얼굴이며 손이며를 구석구석 들여다본 표도르 씨는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어디 병신 된 건 아니구나! 잘 됐다. 그거면 된 거야!”

“아버지도… 아니, 그럼 아들이 병신 돼서 돌아왔겠어요?”

그렇게 너스레를 떨면서도 니콜라이는 알았다.

함께 떠난 친구들 중 모두가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농장의 당서기 아저씨가 보내 준 편지에는 가끔 그런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친구 누구의 전사통지서가 도착했다. 너희들은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가끔 추신이 두어 줄로 붙어 있으면 이번에는 대체 누가 죽었을까 니콜라이는 몸서리를 치곤 했다. 장교 교육을 받을 때부터는 그런 추신이 안 붙기는 했지만.

“밥 먹자!”

어머니는 때맞추어 큼지막한 냄비를 탕 하고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아들이 오래간만에 왔다고 솜씨를 부리셨는지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그래. 밥이나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네, 아부지.”

집에서의 첫 식사는 니콜라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와! 여기서도 이제 군대 스튜를 먹어요?”

“그럼, 그럼. 이게 요새 제일 싸기도 하고… 기름지고 짭조름하지 않니?”

얼큰한 양념이며 미제 스팸, 직접 만든 꼴바사(소시지), 각종 잡육 같은 것이 듬뿍 들어간 ‘군대 스튜’를 어머니는 한 국자 푹 퍼서 니콜라이의 그릇에 부어 주었다.

“많이 먹어라, 내 새끼.”

“예!”

어머니 아버지는 두런두런 요새 사는 이야기들을 해 주셨다. 누구는 결혼을 했고, 누구는 아이를 낳았고, 또 누구는 요즈음 어떤 일을 하고….

물론 죽고 다친 사람들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말을 피하셨지만. 간만에 돌아온 고향 집에서는 행복한 이야기만 하기에도 시간은 모자랐다. 대충 요사이엔 신축 축사와 수입품들 덕에 우유며 고기며 먹을 것들이 넘쳐나서 사람들이 뚱뚱보가 되고 있다고 촌평하시는 아버지의 말을 어머니가 끊었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누구니?”

“으엑, 켁, 켁….”

“그러게? 그 아가씨는 대체 누구니? 뭐 하는 애니?”

“아, 아버지 어머니가 카티아를 어떻게 알아요?”

그 애 이름이 카티아였던가? 어머니는 갸웃하시면서도 물었다.

“걔가 너 좋대니? 아니, 아들은 편지를 보내지도 않는데 걔가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한테 편지를 보내더구나? 너는 우리한테는 편지를 안 보내고 여자친구한테만 보낸 거니? 어쩜… 우리는 네가 아니라 걔한테 듣고 네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았단다.”

“켁, 켁….”

부드러운 스팸이 목에 걸릴 리도 없는데 니콜라이는 연신 기침이 났다. 카티아가 어쩐지 집 주소를 물어보더라니!

“거, 네가 무슨 훈장을 받았다는 소리도 하던데… 그래서 어쩐지 저기 면서기가 수훈자 대상 연금이라고 돈을 주더구나? 가서 좀 날린 모양이다? 하하하하!”

“그 아가씨는 그래서 뭐 한다니? 어디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

“아니 엄마! 왜 사람더러 이상하다는 소리를 해요?”

뜬금없는 어머니의 물음에 당황한 니콜라이는 벌컥 화를 냈다. 하지만 어머니는 뚱한 얼굴로 담담히 이야기했다.

“뭘? 너 같은 애도 좋다는 걸 보면 어딘가 이상한 게 아니겠니? 눈이 안 좋다던가….”

“아 여보! 얘가 내 젊은 시절을 어찌나 똑 닮았는데 여자들이 안 따르겠어? 그럼 당신은 뭐야!”

“내가 병신이었지….”

한숨을 푹 쉬시며 고해하듯 중얼거리는 어머니와 노발대발하면서도 말문이 막힌 아버지는 여느 때와 똑같았다.

“하하하하하하하!”

니콜라이는 오래간만에 즐겁게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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