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
212화
“어서 오시오! 하하하하!”
장개석은 오래간만에 기분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의 체면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그는 오래간만에 만난 옛 ‘친구’를 끌어안았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아니, 우리 사이에 무슨! 어서 들어오시오. 고생이 많았구려. 얼굴이 이 원….”
전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장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은 수척해진 얼굴로 장개석의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그의 주름진 눈가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얼마 만에 돌아온 중국인가! 38년, 중국과 일본을 화해시키려는 독일의 ‘트라우트만 공작’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총통은 결국 양자 중 일본을 동맹으로 선택했다.
중화민국 국민정부를 위해 파견했던 독일 군사고문단은 결국 철수해야만 했다. 팔켄하우젠 그는 중국을 사랑했고, 장개석 역시 보내기 싫어했으나 총통이 가족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을 하여 결국 철수하고 말았다.
팔켄하우젠은 2차대전이 시작된 이후 다시 독일군으로 복귀하여 복무했으나, 총통에 대한 반역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쓰고 수용소로 보내졌었다.
독일이 패망할 때까지 그곳에 갇혀 몇 년이나 학대를 당하던 그는 상당히 쇠약해졌다. 소련은 수용소 수감자들 중 적지 않은 수를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의 수용소로 다시 끌고 갔고, 그곳에서 몇 달간 복역하던 팔켄하우젠은 간수를 매수해 탈출할 수 있었다.
“소련이 전 유럽을 장악하여 탈출할 만한 곳이 별로 없었습니다…. 장 총통의 무한한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이를 말이오, 장군? 장군은 중화민국의 친구요. 그리고 장군과 함께 탈출한 이분들도 장군의 친구라면 내 친구나 다름없소. 특히 지금과 같은 시점에는 반갑기 그지없구려.”
쇠약해진 팔켄하우젠을 부축하고 있는 장년의 중령을 비롯하여 총 9명이 함께 탈출할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의 수용소에서 도망친 그들은 신장과 티베트를 거쳐 국민정부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그렇소. 장군을 비롯한 군사고문단이 육성했던 정예 병력은 대부분 지난 7년간의 전쟁에서 손실되었소. 그러나 장군이 이렇게 다시 온 이상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오! 하하하하!”
장개석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팔켄하우젠 역시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국민정부는 공산당과 계속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서로를 몰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국민혁명군은 다시 소집되어 맹훈련을 받고 있었고, 공산당 비적들 역시 각종 암살공작이며 게릴라 전술을 더 가열차게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팔켄하우젠이 도착한 이상 국민혁명군의 승리는 예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엇이오? 한 가지만이 아니라 열 개라도 들어줄 수 있소. 얼마든지 말씀해 보시오.”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도망친 저희 장교들이 중화민국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을는지요?”
그 말에 장개석을 비롯한 중국인들은 눈에 이채를 띄었다.
적잖은 수의 독일인들이 소련을 피해 도망쳤다. 상당수는 유럽 대륙 내의 스페인이나 남이탈리아로 도망쳤다. 또 상당수가 같은 백인들이 사는 남미 지역으로 도망쳤다.
거기서 평생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 할 옛 동료들을, 팔켄하우젠은 동정했다.
그리고 장개석은 그들을 필요로 했다.
“좋소! 아주 좋소!”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의 훈련하에 국민혁명군은 정예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공산당 놈들을 거의 토벌할 수 있었던 제5차 초공작전에서도 독일식 토치카 조이기 전술은 공산당의 장기인 게릴라 전술을 효과적으로 찍어눌렀었다.
또, 일본과의 전쟁에서도 독일식으로 훈련받은 병력들은 일본의 대공세를 이겨 내는 데 상당한 공헌을 했다. 그걸 날려 먹은 놈이 바로 그 좆 같은 양키, 스틸웰이었고.
“미국 고문단도 소련 고문단도 철수했으니, 독일인들이 다시 도와준다면 그만큼 도움 되는 일이 없을 것이오!”
장개석의 심장은 이제 단꿈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비록 소련에게 패배했다지만 독일은 1/3의 인구만을 가지고 소련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소련보다 두 배의 인구를 가진 중국이 독일식으로 훈련을 받는다면 어떨까?
단 100여 명의 독일 군사고문단이 육성했던 정예사단들이 발휘했던 위력을 떠올리자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팔켄하우젠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함께 탈출한 장교들을 소개했다.
“이 친구야말로 아마 장 총통께서 원하던 인재일 것입니다. 이름은….”
“요한 폰 킬만스에크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운이 좋게도, 소련군은 독일군이 수용했던 수용소의 인원들을 그대로 옮겨다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에 갖다 놓았다.
히틀러 암살음모에 가담했다고 알려졌던 젊고 유능한 장교들은 그래서 팔켄하우젠과 함께 탈출할 수 있었다.
팔켄하우젠은 흐뭇한 눈으로 장개석과 악수하는 킬만스에크를 바라보았다.
“계급은 중령이지만, 불미스러운 모함을 받아 이 계급인 것이지 사실 장군이 되었어도 모자랄 인재입니다. 프랑스 침공 당시 프랑스군의 유일한 반격을 분쇄했었는데….”
“오호라, 그렇소이까?”
킬만스에크는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었다. 다른 장교들 역시 대부분 전쟁대학을 졸업한 독일군의 최고 엘리트라 할 만한 인재들이었다.
장개석의 입꼬리는 이제 하늘을 찌를 것만 같이 올라갔다. 그전 군사고문단 장교들은 한스 폰 젝트 장군처럼 초빙해 온 인사를 제외하면 사실은 그다지 정예라고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보라!
하나하나가 다 독일의 장군이 되었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거기에 이들의 말을 들으면, 남미나 스페인으로 도망쳤던 장교들만 해도 수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좋소! 좋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드리겠소!”
이제 모택동, 그 빌어먹을 빨갱이 새끼는 찍소리 못하고 눌려 죽을 것이다.
장개석은 힘차게 술잔을 치켜들었다.
“자! 우리의 우의를 위해 잔을 듭시다. 건배!!!”
* * *
“그자들은 결국 중화민국에 안전하게 도착했나?”
“예,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흐음… 이 친구들은 너무 아깝고… 도저히 신념 상 우리에게 협력하지 못할 사람들을 위주로 잘 추려서 보내보게.”
크루글로프는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집무실을 걸어 나갔다. 기지개를 쭉 켜자 책상 위의 서류들이 들썩였다.
“아무리 멍청해도, 이걸 들고 지겠나…?”
양측에 심어 둔 정보원들에 따르면 이제 중국에서의 국지전은 날로 격해지고 있었다. 대대급, 연대급 이상의 충돌이 몇 번이고 일어나는 현재 상황을 전쟁이라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할까?
실제 역사에서는 공산당이 국민당을 격파하고 압승을 거두어 대만 섬으로 국민정부를 쫓아냈다. 하지만 이렇게 흘러갔던 역사에서는 중국이 오히려 소련과 각을 세우고 미국과 손을 잡고 ‘데탕트’를 하며 소련에게 엿을 먹였다.
하나 된 중국은 너무 거대한 국가였고, 이미 만주와 신장, 티베트 지역을 반강제로 떼어 내긴 했어도 본토도 여러 토막을 내야만 했다.
그래서 장개석에게 조금 ‘도움’을 주기로 했다.
먼저 모택동의 배후가 될 동북 3성, 만주 지역과 내몽골 지역은 양측이 둘 다 사용할 수 없도록 떼어 냈다. 소련군이 쓰는 1급 장비들이 아니라 일본군한테서 노획한 3류 장비들만 중공에게 제공했고, 군비 원조도 가급적 줄였다.
“흐으음… 누굴 또 보낼까….”
그리고 장개석에게는 독일 장교들을 보내 주었다.
아마 그들은 자기네들이 ‘매수’에 성공해서, 혹은 운이 좋아서 탈출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적잖은 수의 독일 장교들이 우리 과학화훈련단의 대항군으로 쓰기 위해, 혹은 군사연구를 위해 끌려왔다.
우리는 이들 중 적당한 자들을 추려 놓아줄 생각이었다. 중화민국으로 보내려고.
장개석의 군사적 능력은 솔직히 말해 궤멸적인 수준이었다. 비슷하게 전략 수준에서 궤멸적인 수준인 군벌들을 상대하거나 압도적인 자원을 가진 상태에서 한 줌 게릴라들을 찍어누를 때야 승리할 수 있었지만, 대등한 상대들에게는 맥을 못 추고 패배했다.
단적으로 독소전에서의 유럽 러시아보다 중국 대륙이 훨씬 넓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화민국은 일본 ‘육군’을 상대로도 힘겹게 항전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독일 장교들이 붙어서 국민혁명군을 정예군으로 훈련시킨다면? 아마 불세출의 게릴라 지도자인 모택동이라도 고생깨나 할 것이다.
“저… 서기장 동지, 모택동을 고평가하시는 것은 알겠지만, 만약 일이 잘못되어 장개석이 승리한다면….”
“몰로토프, 너무 걱정하지 말게. 중국은 넓고, 장개석이 밀고 올라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걸세. 그동안 충분히 주력군이 소모되었다 싶으면 미국에 일러바치도록 하지! 하하하!”
정 밀린다 싶으면?
소련군이 개입하는 것은 하책이었다. 저 거대한 중국 땅에서 수억 명의 중국인들과 정면 대결하는 것은 좋지 못했다. 괜히 세계적으로 어그로를 끄는 짓이기도 했고.
소련군의 직접 군사행동은 프랑스의 ‘요청’을 받고 개입하는 정도면 족했다.
“자네, 나치 잔당들과 중화민국이 협력하고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 과연 미국인들이 뭐라고 할 것 같나? 아이고, 참 잘했어요 하며 좋아하겠나?”
“…굉장히 기분 나빠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언더독인 공산당은 아마 버티기는 버틸 것이다. 수억 명의 농민들에게 토지분배란 더할 나위 없는 유혹이니까.
그리고 중화민국이 이제 이만큼 이겼으면 됐다 싶으면, 중화민국이 나치 잔당들을 숨겨 주고 써먹고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까발리면 된다. 아마 동유럽이나 프랑스, 심지어 영국까지도 경기를 할 것이다.
“우리도 써먹고는 있지만… 안 걸리면 그만이지.”
시베리아의 벌판으로 끌려간 독일군 장교들은 지금 말 그대로 쥐여 짜이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군사적 지식들은 곧 놀랍도록 발전할 로켓이며 공군 기술 때문에 구시대의 것이 되겠지만, 아직은 유용했다.
감군 과정에서 유능하다고 인정받아 군대에 남을 수 있었던 정예 소련군 장교들은 시베리아의 훈련단에서 자기 부대를 이끌고 실전 같은 모의전을 몇 번씩이고 치러야 했다.
야전, 전차전, 포격전, 공중전, 진지전과 산악전, 그리고 상륙전까지! 수많은 형태로 조정된 모의전장에서 독일군의 엘리트들과 싸우며 소련군 장교들은 단련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제 제3세계로 보내져 ‘선진 군사기술’, 그리고 혁명 수출의 방편이 될 것이다.
“아 그래. 그 중동 국가들에 제안한 군사고문단 파견에는 어떻게 답장이 돌아오던가?”
“예! 먼저 이집트에서는 40여 명의 군사고문단 파견을 요청했습니다. 요르단과 이라크는 아직 고민 중이고… 터키에서 100여 명 규모로 요청을 넣었습니다.”
“터키가? 아무래도 좋네. 그리고 스페츠나츠 고문단 파견도 한번 검토를 해 보게.”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물론 직접 소련군을 파견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실제 역사의 아프간전 꼴이 날 뿐.
우리는 철저히 군수물자 판매와 유능한 장교단 훈련을 통해 현지에서 군사력을 발휘할 생각이었다. 현지에 익숙하지 못한 군대를 마구 꼬라박는 것은 하책일 뿐이었다. 전장에 익숙한 게릴라들은 야전에 단련된 군대도 얼마든지 엿을 먹일 수 있었다.
“어떤 호구가 요새도 직접 파병을 하나! 하하하하!”
저기 영불해협 건너 어떤 호구는 그러는 것 같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