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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09화 (209/300)

# 209

209화

“제길, 이게 무슨….”

“거사 계획이 새어나간 게 아닙니까?”

르클레르는 이를 빠득 갈았다. 당했다. 밀고자가 있다.

그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깜짝 놀라 푸드덕대는 암탉들마냥 허둥대는 장군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저렇게 당황하는 척을 하여도, 저 중에 배신자가 있을지도 몰랐다.

“거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된 이상….”

“그만!”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회의실 안은 조용해졌다. 장군들은 제각기 꿈지럭대고 침을 꿀꺽 삼키면서 어느샌가 ‘군사혁명’의 리더가 된 르클레르를 바라보았다.

“이 거사에 대한 정보가 새어 나갔다면 지금 계획을 무산시킨다 하여 여러분들이 안전할 것 같으시오? 밀고자가 제 목숨을 위해, 제 보신을 위해 우리를 팔아넘겼다면 무엇을 가장 원할 거라 생각하시오? 우리를 단두대에 보내 영원히 입을 닫아 버리는 것이겠지!”

“히끅.”

누군가가 놀라 딸꾹질을 하는 소리 외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르클레르는 탁자를 탕탕 내리쳤다.

“우리에겐 단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소! 단두대냐, 엘리제궁이냐! 당장 병력을 소집하시오. 저들이 눈치챘다면 속전속결밖에 없소이다!”

“아, 알겠소이다!”

“하지만….”

철컥. 전광석화같이 권총을 꺼낸 르클레르는 망설인 장군을 겨누고 앙다문 입술 사이로 협박을 토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빠지시겠소? 당신이 밀고자일지도 모르겠군.”

“아, 아니오! 나는 군사혁명에… 히이이익!”

“잘 모시고 가게!”

그때까지 조용히 문 양편을 지키던 덩치 큰 병사 둘이 장군의 양팔을 붙들었다. 권총의 총구 앞에서 얼어붙은 그는 순순히 끌려 나갔다.

“잘 들으시오. 승리하거나, 죽거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소.”

* * *

“어? 우리 수송부대가 도착한다는 연락이 있었나? 응답하라! 응답하라!”

[….]

파리 외곽, 오를리 비행장의 관제탑에서는 응답 없는 무전만을 계속 보내고 있었다.

아군 수송기임은 분명하지만, 대체 무슨 용무로 들어오는 것인지 알 수도 없는 수송기들이 하나둘씩 공항 상공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 착륙시키라굽쇼? 알겠습니다. 니미럴, 제엔장….”

물론 그 의문은 순식간에 풀렸다. 비행장을 관리하는 관리본부에서 그에게 직접 연락이 온 것이다. 기밀 작전을 위한 것이니 착륙을 허가하라고!

뭔 놈의 기밀 작전을 이따위로 하는지, 그는 구시렁거리면서도 수송기들을 하나하나 유도하기 시작했다.

텅 비어 있던 활주로는 하나하나 도착하는 수송기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엥…? 저게 뭐지?”

그리고 수송기에서는 줄지어 완전무장한 병사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외인부대의 흰 모자(케피 블랑)와 녹색 베레모를 쓴 병사들은 각자 소총을 단단히 붙잡고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공항 밖으로 향했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관제사는 누구에게 보고해야 할지,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 허둥지둥했으나 누군가가 관제실의 문을 뻥 걷어차고 들어왔다.

“자, 고맙네. 이제 관제탑은 우리가 접수하겠네.”

파리 남부의 오를리 비행장을 통해 프랑스 본토로 입성한 식민지 주둔군은 파리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란군의 주력부대인 2기병사단 1연대가 신생 프랑스군에 공여된 미제 M4 셔먼 전차를 끌고 파리 시내로 진격했다.

대부분의 장병들은 그저 명령에 복종할 따름. 이에 더해, 반란군 수뇌부들은 병사들에게 선전했다.

“파리 내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의회와 내각의 요인들을 사로잡았다! 소련이 검붉은 손아귀를 프랑스에 뻗쳐 오고 있다! 대육군이여 궐기하라!”

“외세가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고 식민지를 빼앗아 가려 하고 있다. 병사들이여! 이를 두고 볼 것인가!”

사실은 식민지가 어찌 되거나, 외인부대의 외국인들이나 젊은 병사들에게 어떤 차이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파 정치인들은 프랑스가 더 이상 열강이 아니며, 세계 정세에 영향을 끼칠 수 없게 된다는 것에 발작적으로 반발했다. 미국과 소련의 사이에서 장기말이 될 것이냐? 그들은 피를 토하며 그런 미래를 거부했다.

“진격하라! 진격하라! 반란군을 진압하라!”

“프랑스 만세! 자유 만세!”

시민들은 못 보던 전차가 콰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도로를 달리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거리의 양편으로 사라졌다. 저들이 대체 무슨 목적인지 알 수도 없었으며,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던지 막을 수도 없는 경찰들은 두 눈을 멀쩡히 뜨고서도 전차가 파리를 향해 진격하는 것을 보아야 했다.

그들이 진격하며 뿌리는 유인물을 받아 보고서야 사람들은 저들이 무슨 목적으로 포구를 수도로 돌렸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쿠데타다!”

* * *

“총리 각하, 급보입니다! 반, 반란군이 파리로 진격중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예상보다는 빠르군.”

토레스 총리는 후다닥 뛰쳐 들어와 급보를 전하는 젊은 비서의 당황한 얼굴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직 진압군은 편성이 덜 되었을 텐데.

“쿠데타는 정통 정부가 제압당하지만 않으면 성공할 수 없네. 우리에게 충성하는 부대들은 저들을 격멸할 것이고. 우리는, 우리는….”

살아남아 구원을 기다리면 된다. 겁먹어 항복하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는 싸움이니.

다만 이제 프랑스는 더 이상 위대할 수 없을 것이다.

토레스 서기장 역시 프랑스인이었기에 조국이 위대하기를 바랐다. 제2의 열강이자 유럽 대륙의 최강대국은 아닐지언정, 그는 구 식민지의 프랑스어 사용국가들을 묶어 일종의 느슨한 연방을 형성하고자 했다.

스탈린이 주장한 ‘제3세계’에 나름대로 영향력을 발휘하며, 사회주의권의 2인자 노릇을 하는 것이 그의 구상이었지만 이번 쿠데타는 그의 계획을 망쳐 놓고 말았다.

프랑스가 다시 식민지에 미친 제국주의 국가로 나아가는 것은 전혀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프랑스가 소련이라는 거대 국가의 일개 장기말이 되는 것 역시 달갑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독일에게 6주 만에 패배했을 때? 자력 무장투쟁이 아니라 크렘린의 지령을 받아 독일의 패망에 맞추어 파리를 해방시켰을 때?

나치 독일은 세상을 모조리 집어삼킬 기세로 치고 나가다 소련에게 거꾸러지고 말았다. 독일이 얻어 낸 모든 것이 고스란히 소련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 핵무기. 베를린을 파괴하고 일본을 으스러트린 그 무기. 그게 없다면 결코 다른 국가들은 ‘강대국’을 칭할 수 없었다. 소련은 핵무기를 오직 미국과만 공유했고, 강대국의 지위를 나누길 거부했다.

새로 창설될 ‘국제 연합’에서도 프랑스는 결코 연맹 시절의 상임이사국 자리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무기력감이 몰려와 그는 몸을 의자에 파묻었다.

* * *

“시민 동지들이여! 반동 반란군들이 우리가 세운 우리의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 몰려오고 있소!”

“무장하시오! 무장! 동지들이여!”

이미 사태를 파악하고 있던 노동조합과 공산당의 간부들은 순식간에 조직원들을 소집했다. 무장 수준은 구식 소총이나 급조한 사제 폭발물 정도로 빈약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 낸 공화국 정부를 사수하기 위한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바리케이드를 세웁시다! 전차가 진군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세웁시다!”

반란의 도시 파리는 이런 싸움에 익숙했다.

프랑스 대혁명부터 시작해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 7월 혁명, 1848 혁명, 파리 꼬뮌, 그리고 얼마 전 레지스탕스의 성탄절 봉기까지! 유구한 혁명과 반혁명 간의 싸움에서 단련된 파리 시민들은 순식간에 전차를 막아설 방벽을 세웠다.

그리고 그 위에는 프랑스의 깃발, 삼색기가 휘날렸다.

“어… 어?”

“우리 지금 반란 진압하러 온 게 아닌가?”

하급 장교들과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보고 동요했다. 불법적인 쿠데타로 정권이 붕괴 상태라고 듣고 진군한 이들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진군을 막아서자 당황했다.

“중대장님! 병사들이 발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대체 지금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나도 모르겠네. 어쩌면….”

“저희는 시민들을 향해 총구를 겨눌 수 없습니다! 만약 저희가 불법적인 반란에 연루된 것이라면….”

“말조심하게 소위!”

중대장은 반란을 거론하는 소위를 윽박질렀지만 그 스스로도 심각하게 당황한 상태였다.

몇몇 ‘잘나가는’ 동기생들은 이번 거사에서 공을 세운다면 앞으로 창창한 출세가도를 달릴 것처럼 이야기했다.

새로 애국심 넘치는 군인들로 물갈이될 참모본부에서 고속 승진을 하거나, 아니면 최정예 전투부대들을 이끌고 빛나는 무공을 세우거나!

쿠데타군에 참여한 모든 장교들이 다 출세를 꿈꾸는 것은 아니었고, 중대장처럼 대세에 휩쓸려 온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입신양명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게 뭔가? 시민들은 사납게 총구를 겨누고 당장이라도 발포할 것처럼 으르렁대고 있었다.

저 허접한 바리케이드는 전차포 사격 몇 번이면 와장창 무너져 내리겠지만, 그 이후를 책임질 자신이 중대장에게는 없었다. 나라를 지킨다는 군인이 민간인에게 전차포를 갈긴다?

그 유명한 나폴레옹이 혁명 당시 반혁명 시위대에게 산탄포를 쏴 갈겼던 것은 그의 배후에 혁명정부의 고위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치군인으로 나폴레옹은 출세할 수 있었지만, 중대장은 스스로가 나폴레옹에 버금가는 천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잠시 옆 중대에 다녀오지.”

아마 그와 비슷한 혼란에 빠져 있을 대위들이 적잖이 있을 것이다. 소위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경례를 붙이며 중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중대장도 소위가 뭘 생각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너, 어떻게 할 생각이야?”

동기이자 옆 중대의 중대장인 그의 친구는, 얼굴을 들이밀자마자 그렇게 물었다. 친구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사실 다들 별다를 게 없었다. 혹시나 잘 되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꿔볼 수 있을까 하여, 혹은 옆 사람이 한다니까, 혹은 참여하지 않을 경우 후환이 두려워 쿠데타에 참여했다. 이제 그 짧은 단꿈이 터지려 하니 두려울 법도 했다.

“돌리자.”

“뭐? 뭐를?”

“전차. 상황을 설명하고 정부 측에 합류한다고 하면 따를 거다. 지금 분위기 봤잖아!”

개중에서는 남들보다 더 약삭빠르고, 기회주의적인 사람도 있었다.

중대장은 지금 친구를 꼬드기려 하고 있었다. 어차피 쿠데타의 실패는 뻔해 보였다. 괜히 실패할 반란에 발을 담갔다가 괜한 일에 휘말리지 말고, 아예 정부군 쪽으로 총을 바꿔 잡자! 최소한 그래야지 부하들이 뒤통수에 총을 겨누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래도 되겠나?”

“씨발! 애초에 이 반란부터가 되는 짓이냐? 나라를 지켜야 할 군대가 시민들의 정부에게 총구를 돌려? 식민지고 지랄이고 일단 법은 지켜야 할 거 아냐!”

“….”

우유부단한 친구가 머뭇거리자, 중대장은 과장되게 성을 내며 뒤돌아섰다.

저 친구는 항상 그랬다. 사태가 안 좋을 것 같으면 혼자 겁먹고 아무것도 못 하다가 남들을 따라가는.

그래도 전차 1개 중대를 지휘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알겠어! 나, 나도 따를게.”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중대장은 까딱 고개만 끄덕이고 밖으로 나왔다.

가슴 깊이 숨을 들이마신 그는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우렁차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병사들에게 외쳤다.

“병사들이여! 프랑스의 애국적인 병사들이여! 불법적인 쿠데타를 거부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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