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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08화 (208/300)

# 208

208화

“어리석은 자들….”

객관적으로 보면 프랑스 제4공화국은 허약했다.

독일로부터 조국을 해방시켰다는 타이틀을 가진 공산당은 식민지 문제 때문에 매국노로 몰리기 시작했다. 사회당과 우파들은 이 기회에 자기네 나름의 지분을 확대해 보려고 이 악의적인 선전에 동조했다.

물론 공산당은 식민지에 꼬라박을 재정을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투입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그 정도로는 소위 ‘위대한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집착을 막지 못했다.

내분에 흔들리는 나라는 결국 약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군사력마저 별것 없었다.

“서기장 동지, 말씀하신 프랑스군의 군사력에 대한 개괄입니다.”

“으으음… 형편없군, 형편없어.”

영국도 그랬지만, 더 일찍 밀려 버린 프랑스는 새로운 군사기술을 발전시킬 수가 없었다. 끽해야 자유 프랑스군의 잔당들이 미국과 영국 망명정부에 붙어 깔짝댄 정도?

영국이 아직도 1936년에 개발된 40mm 2파운더 대전차포를 쓸 때 프랑스 역시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독일 주둔군이 남겨 놓고 간 독일제 무기들이 있기는 했으나 숙련도가 처참했다. 수리나 정비도 거의 불가능했고.

동부전선에서 전선에 구멍이 뻥뻥 뚫리는 바람에 프랑스 전역에 남아 있던 대부분의 전차들은 다 동부전선으로 갔다. 남아 있는 것은 끽해야 구식 B1 전차나 독일제 3호 전차 정도.

“으윽, 이름만 봐도 뭔가 쉰내가 올라오는 것 같은데? 아니? 이런 인간들이 다시 장군을 한다고?”

“그, 그렇습니다. 푸흡….”

거기에 전술적, 전략적으로도 그다지 구식 사상을 탈피하지 못했다. 주요 실전부대의 장군들이라고 있는 작자들은 다들 약력상 지난 대전기에 영관쯤을 지내던, 지금 전장 기준으로는 노인들이나 다름없었다.

독자적인 군사작전은 거의 하지 못하고 도시 게릴라 전술로 정권을 탈환했으니 감안해 줄 법도 하지만….

“그런데 내부 단속도 못 하다니. 쯧쯧쯧….”

장군들은 머리에 똥만 들어찬 데다 야망만 쓸데없이 들어찬 머저리들이요. 무기는 10년쯤은 묵은 데다 A급은 다 뺏긴 폐급이요. 병사들은 뭐, 볼 필요도 없이 의욕만 높고 숙련도는 개판인 잡졸들일 것이다.

이 정도면 소련이 알제리에 개입 못 하게 막아 주는 것을 고맙게 여겨 모스크바 방향으로 하루 세 번씩 절을 올려도 모자랄 판에 뭐? 쿠데타?

“그래서 관련자들에 대한 정보는 확보했나?”

“예! 서기장 동지. 여기 이 부분을 확인해 보시면….”

거기다가 정보도 줄줄 샜다. 쿠데타 측이나 충성파 측이나.

충성파들은 대부분 친소성향에 정권부터가 친소정권이니 그렇다 쳐도 쿠데타군 내에 기회주의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니면 잠입해 있는 스파이들이며, 친정부파 프락치들에게 부주의하게 계획을 누설하거나. 아마 저기 관련자들보다 우리 정보부가 쿠데타 계획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음, 아주 마음에 드는군 크루글로프. 아주 마음에 들어. 하하하하하하! 이 자들은 어떻게 가면 갈수록 가관인가?”

“하하하하…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그리고 진짜 웃음이 터지는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나는 일부러 과장된 연극 조로 보고서의 킬링파트를 읽어 내려갔다.

“영국 정권 및 군부의 제국주의 분파들은 프랑스의 제국주의 쿠데타를 후원하여 협력하고자 물밑 접촉을 시도하고 있음. 일부 장군들이 동조하여 유사시 영국군이 프랑스 쿠데타에 위장하여 참가한다고? 이거 미친놈들 아닌가?”

아니 진짜 미친놈들이다. 자기네들 식민지에서도 허우적거리는 주제에, 남의 나라까지 그 진흙탕 속에 끌어들이겠다고? 정신 나간 거 아냐?

그만큼 식민지 사정이 급박하고 이런 멍청한 판단을 내릴 정도임을 시사하지만 웃긴 것은 이게 아니었다.

“MI5와 MI6의 우리 첩보원들은 이들의 계획을 주기적으로 NKVD에 전송하고 있으며 아직 추적이 따라붙지는 않았으므로 상황은 전적으로 통제 가능할 것으로 보임. 하하하하하하하!”

“와하하하하하하핫, 하하하하!”

“푸흐흐흐흡….”

그 계획들은 모조리 새어나가서 다음 날 아침 크렘린 내 책상에 올라온다는 것조차 모르고 일을 벌인다는 것이 제일 웃기는 일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영국 정보부 내에는 케임브리지 5인조라는 전설적인 간첩들이 존재했다. 영국 국내, 해외 정보기관들과 암호해독기관의 정보를 소련에 빼돌렸던 스파이들. ‘이념의 조국’ 소련에 충성했던 그들은 영국의 가장 귀중한 비밀들을 아낌없이 소련에 가져다주었다.

여기서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영국의 혼란을 틈타 우리는 더 많은 간첩을 심을 수 있었고, 말 그대로 영국의 첩보는 줄줄 흘러나왔다.

그뿐인가? 미국은 CIA의 전신 격 되는 OSS(전략사무국) 정보를 영국에 공유했다. 이렇게 공유된 정보마저 우리에게 흘러들어왔고.

FBI의 후버 역시 정보기관으로서의 독자적 위상을 위해 OSS를 견제하느라 자기 나름대로의 끄나풀까지 심어 두었기에 이들 역시 소련 스파이 노릇을 했다!

“일단 그래. 토레스 서기장은 뭐라 하던가?”

“이런 심각한 반역음모가 이루어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하며, 유사시 소련군의 개입을 요청한다고 했습니다. 혹시 연락이 두절될 것을 대비해 미리 개입을 요청한 문서를 작성하여 보냈습니다.”

“그래, 그러면 됐네. 부디 한 몸 안전히 보존할 수 있도록 주의하라 하게.”

“예! 서기장 동지!”

어쩌면 이것은 기회일지도 몰랐다. 프랑스 내부의 불순분자들을 모조리 떨어낼 기회.

어차피 프랑스군의 미래 세대가 우리 소련의 영향력 하에 놓일 것은 명백했다. 벌써 백 단위의 사관생도들과 장교 유학생들이 소련군 군사고문단 아래서, 혹은 프룬제에서 수학하고 있었다.

그나마 보수적이고 제국주의적 성향을 가진 현세대들이 부릴 깽판이 걱정되었으나 그들은 스스로 제 목숨을 끊어 달라고 애걸하고 있었다.

“라인란트 주둔군에게 비상대기를 명령하게. 네덜란드 놈들이 깜짝 놀라겠지만… 아, 벨기에 놈들도 그러려나?”

“명령하신 대로 전달하겠습니다.”

국경 근처에서의 소련군 움직임을 보고 네덜란드는 제대로 겁을 집어먹은 것 같았다. 물론 실제로 소련군은 국경 너머로 한 걸음도 내딛지 않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번에도 경기를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프랑스 쿠데타군은 착각할 것이고.

“파리까지는… 얼마나 걸리겠나?”

“저항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1주일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충성파 부대가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입니다.”

그럼 프랑스 총리 토레스가 1주일 이상만 잡히지 않고 버티면 된다. 그러면 소련군이 전차를 몰고 반란군 놈들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려 도달할 테니.

독일군을 상대로도 잡히지 않고 몇 년을 버텼는데 그깟 허접한 ‘6주’들에게 잡힐 리가.

“1주일 말고 6일 내에 끝장내게. 독일군은 6주 걸렸으니 우리는 6일 어떤가? 하하하하하!!”

“예! 서기장 동지! 하하하하하하!”

* * *

“이 개만도 못한 자들이….”

쿠데타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토레스 총리는 내각의 핵심 각료들을 불러모았다. 공산당 출신으로 오랜 레지스탕스 시절 동안 배신하지 않고 따라온 이들을.

몇 년간의 레지스탕스 투쟁 끝에 단련되고, 독일군과 싸우고도 살아남은 강인한 이들은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사태에 대한 보고서를 경청했다.

사회당은 얼마든지 ‘적’들과 결탁할 수 있다고 판단한 총리는 확실한 충성파들만 불러모았다.

유사시를 대비해 소련에 지원을 요청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외국군을 불러 국내의 쿠데타를 진압하는 것은 망신살이 뻗치는 일이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국내에서 이 문제를 처리하고 싶었다.

프랑스는 안정도 필요했지만, 위신 역시 필요했기에.

“서기장님, 충정부대들을 동원하여 즉시 진압해야 합니다! 이 기회주의자 새끼들! 반역자들을!”

“노조와 시민들은 정권을 지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파리를 사수하고 반란군을 짓밟아 버릴 수 있습니다.”

흥분한 각료들은 각자 과격한 발언을 쏟아 냈다. 몇몇은 토레스를 현재 직함인 총리가 아닌 옛 직함인 서기장으로 불렀다.

레지스탕스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토레스는 입을 열었다.

“일단 노조 간부들과 우리를 지지할 구 레지스탕스 세력들에 대한 비밀 동원령을 내리게. 군 무기고를 우리가 검열할 경우 저들이 눈치챌 수 있으니 반란파 국가헌병대를 불시점검을 근거로 단속해 무기를 확보하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국가경찰은…?”

프랑스의 경찰 체계는 국가헌병대와 국가경찰로 이원화되어 있었다. 시골 지역, 소도시들은 헌병대가, 대도시의 치안은 경찰이 맡고 있었다.

헌병대는 상대적으로 비시 시절 대민 물의가 적어 물갈이가 덜 되었고, 군인들 간의 연줄을 통해 반란파에 협력하는 이들이 적잖이 있었다. 반면 경찰들은 비시 정권에 충성했었기에 신속하게 교체되었고 믿을 만한 인사들이 훨씬 많았다.

군대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경찰이라도 동원해야 하는 법. 내무부를 통한 비상지시를 명령한 토레스 총리는 이마를 짚었다.

“이 개자식들이 얼마나 모일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지. 더 이상 프랑스 땅에서 프랑스인의 피가 흐르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는데….”

좌중은 숙연해졌다.

프랑스는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전쟁을 끝냈다. 독일과의 전쟁은 짧았지만 수십만의 희생자가 났다. 동부전선에 끌려가 또 수많은 젊은이들이 다치거나 불구가 되었고, 파리 해방 작전에서 용감한 시민들이 죽고 말았다.

앞으로 나라를 재건하고 발전시켜야 할 동량(棟梁)들이 무익하게 죽어 나가는 꼴을 보지 않기 위해 식민지 해방이라는 대승적 결단을 내렸건만. 어찌 되었든 유혈은 불가피해 보였다.

“다 우리가 저지른 죄 때문일세. 다 우리의… 우리가 저지른 짓들 때문이야.”

세계를 호령하는 거대한 식민제국의 발밑에는 핏물이 줄줄 흘러야만 했다. 학살당한 식민지 원주민들, 노예노동 속에서 죽어간 자들, 차별받고 억압받고 탄압당했던 수백만의 민중!

그 핏값으로 쌓아 올린 화려한 이 도시가 죄업을 씻어 내기 위해선 배부른 이들이 거꾸러져야만 했다.

그 와중, 가장 용맹하고 정의로운 청년들이 희생된다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었지만.

“일어나라 조국의 아이들아, 영광의 날이 도래했노라! 우리에 대항하여 압제자들의 피 묻은 깃발이 일어났노라!”

그토록 목청껏 불러제꼈던 <라 마르세예즈>의 첫 구절을 총리는 읊조렸다.

한때 압제당하던 이들이 다시 압제자가 되었다. 프랑스가 문명을 전해 준 인도차이나와 아프리카의 식민지에서 식민지인들이 프랑스를 향해 총칼을 겨누며 저 노래를 부르는 작금의 상황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무기를 들라! 시민 동지여, 대오를 갖추라! 전진! 전진! 반역도의 더러운 피로 목마른 밭고랑을 적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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