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207화 (207/300)

# 207

207화

“제기랄, 이게 무슨 꼴인가? 우리 위대한 나라(La Grande Nation)가!”

“이게 다 빨갱이들 때문이네…. 개만도 못한 국가반역자 새끼들!”

음침한 밀실에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침침한 조명 아래 담배를 꼬나물고 욕설을 내뱉었다.

마치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교과서처럼, 그들은 남들의 눈을 피해 밀실로 숨어들었다.

밝은 대낮은 공산당의 천하. 야음을 틈타, 수상하게 쳐다보는 눈들을 피해 그들은 하나하나 이렇게 모일 수 있었다.

그들은 현 프랑스의 시국에 굉장히 불만이 많았다.

“어떻게 식민지를 그저 놓아 줄 수 있느냔 말이야! 그 식민지들을 우리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 얻어 내고, 얼마나 공을 들여 개발했는데!”

“소련 놈들의 지령에 놀아나는 창녀 같은 새끼들. 공산당이 그렇지….”

“베트남이나 땅덩어리만 넓은 서아프리카 사막들은 그렇다 쳐도 알제리까지? 이건 너무 도를 넘은 것 아닌가?”

프랑스 공산당은 표면적으로는 국가경영에 부담이 되는 식민지들을 포기하고, 본토의 재건에 집중할 것을 발표했다.

소련은 이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현재는 라인란트로 분리된 구 독일령 산업시설의 일부를 프랑스를 위해 지원했다. 하지만 우파들이 보기에 이것은 전적으로 손해 보는 장사나 다름없었다.

“씨발, 이게 무슨 꼴이지…. 우중충한 브리튼 새끼들은 저렇게 식민지들이 많은데….”

식민지는 여전히 국가 위신의 문제였다.

전 세계에 걸친 거대한 식민지는 막대한 행정비용과 군사비용, 그리고 정부의 재정지출을 강요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체제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군인들은 필연적으로 유지하게 되는 대군으로 인해 진급이 쉬워졌고, 식민지에서 떵떵거릴 수 있었다. 사업가들은 각종 혜택을 받고 식민지인들을 싼 가격에 마음껏 부릴 수 있었으며, 본토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현지 원주민들과 구분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본토 납세자들의 부담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정권을 잡은 공산당은 이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고, 반대자들의 불만을 찍어누르고 식민지 해방 정책을 진행시켰다.

“다른 데는 몰라도 알제리만큼은 안 돼!”

하지만 적지 않은 우파 인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프랑스 본토에서 지중해만 건너가면 나오는 알제리는 실로 거대했다. 유럽에서 소련을 제외하면 가장 넓은 국가인 프랑스 본토보다, 알제리는 네 배는 넓었다.

백 년이 넘는 식민지배 기간 동안 프랑스인들은 알제리를, 최소한 해안가 대도시들만큼은 유럽 본토에 꿀리지 않는 수준으로 개발했다. 2백만의 프랑스계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데다가 유럽식으로 개발까지 한 그곳은 아프리카가 아니라 유럽이다!

최소한 보수적인 프랑스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권을 잡은 공산당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한때 로마의 곡창이었던 풍요로운 해안지대를 프랑스계 이주자들(피에 누아, Pied Noir, 검은 발. 구두를 신은 유럽계 이주자들을 뜻한다)에게 빼앗긴 600만 현지인 인구는 척박한 사하라 사막지대로 밀려났다.

이들의 불만을 이해한 공산당은 알제리 역시도 독립시킬 것을 결정했다. 소련이 그것을 원했고, 또 점점 잠재적인 무력을 키워 가는 알제리인들과 싸워 가며 그 땅을 지켜 낼 자신이 없었기에.

“그곳마저 잃으면… 우리는 더 이상 위대하지 않게 되겠지.”

그 ‘우리’는 위대한 국가 프랑스일까? 아니면 수만 명의 군대를 부리는 장군 계급장이었을까?

밀실에 모여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대부분 구 군부 출신의 장군들이었다. 프랑스 레지스탕스들은 자기네들이 정규군을 편성하고 부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게릴라 투쟁이나 시민 봉기를 통해 독일군을 몰아내기는 했어도, 전차나 야포, 비행기 등을 다룰 능력은 최소한 이들 게릴라에겐 전무했다.

그리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을 프룬제에 유학시키는 동시에 구 공화국군의 장군들을 대거 새로 편성된 ‘대육군’에 배치했다.

“갓 임관한 소위에게 장군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과연 구 군부의 비시 부역자들을 장군으로 재기용하는 것이 맞냐는 질문에 대해 총리로 선출된 공산당의 모리스 토레스 서기장은 그렇게 대답했다.

말은 맞았다. 비시 프랑스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군부를 모조리 물갈이해 버린다면 바닥부터 새로 군을 재건해야 하는데, 그럼 그 기간 동안 장군도 영관도 없는 군대를 운용해야 하나?

페탱 원수는 결국 처형당했지만 그의 마지막 유언에 따라 대부분의 군인들은 새로 태어난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했다. 물론 악질이거나 독일군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이들은 처형당하거나 수감되었지만.

그러나 군인들은 여전히 불만이 많았다.

“제기랄, 내가 언제 이 계급이었는데?”

“내 보직은? 내 진급은? 내 병사들은!”

은혜도 모르고, ‘꼭 필요한 인재’이니 재기용되었다 생각한 이들은 처우에 점점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식민지 해방과 함께하는 군축으로 보직 수는 줄어들었고, 재기용되었다 해도 바로 원 계급이나 보직을 받지는 못했다. 대부분 한두 단계 강등되었고 대우는 그보다 더 떨어졌다.

몇몇 친정부 인사들이 핵심 보직 및 고위급으로 이동하는 것 역시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얼마 안 있으면 감군으로 장성들이 결국 해임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장군들은 결국 이렇게 모였다.

누구도 대놓고 쿠데타라는 단어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말하지 않고서도 서로 알고 있었다.

“언제가 좋겠습니까?”

“….”

끝끝내 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비시 부역자의 낙인이 찍히지 않은 자.

그가 이 자리에 나타난 것 자체가 의외였건만 그는 가장 맹렬하게 공산당 정권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이었다.

“언제가 좋겠습니까? 저희 부대원들은… 언제든 준비되어 있습니다.”

“르클레르 장군….”

필리프 르클레르. 한때는 드골 휘하의 자유 프랑스의 일원이었으나 영국으로, 캐나다로 도망치는 과정에서 자유 프랑스는 그야말로 한 줌의 낙오자들이 되었다.

파리를 자력으로 해방시킨 공산당 레지스탕스들은 ‘자유 프랑스’를 동등한 반나치 운동 세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에 대해 개인 자격으로 각개 입국할 것을 강요했고, 드골은 정치활동에서 배제당한 채 반쯤은 은거를 강요당했다.

물론 비시 부역경력도 없는 데다가 소부대 지휘관으로서지만 실전경험이 있는 자유 프랑스 출신 장교들은 신생 프랑스군에서 괜찮은 자리들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공산당에게 가장 맹렬한 적개심을 불태웠지만.

“우리가!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데!”

비시 부역자들은 말 그대로 전력 때문에 ‘알아서 기었다’. 하지만 자유 프랑스는 어쩔 수 없이 공산당의 견제를 받았다. 어제의 동지들이 권력을 두고 다투는 와중 기회주의자들은 두 집단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제 몫을 챙기기 위해 움직였다.

“공수부대 역시… 준비되어 있습니다.”

“외인부대 2개 연대를 동원 가능합니다.”

“…기갑여단 하나쯤은 가능할 거요.”

각자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의 규모를 내놓는 가운데 르클레르가 좌장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우리는 그렇다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르클레르는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 끊고는 침을 탁 뱉었다. 탁자 밑에서 꺼낸 지도에는 벌써 주요 목표물들이 표지되어 있었다.

“공산당 놈들은 결국 중앙집권 때문에, 모가지를 쳐 날리면 아무것도 못 할 거요. 우리가 파리를 점령하고, 위대한 프랑스의 이상을 구현하겠다 선언한다면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거외다.”

“…좋습니다.”

만년필을 들어 그는 지도에 슥슥 써 내려갔다.

“파리의 제2기병사단, 알제의 제1외인공수연대… 그리고 14공수와 18공수연대. 이 정도라면….”

겪어 보았다시피, 레지스탕스 놈들은 정규전에 대한 이해가 극히 부족했다. 기갑이나 야포, 전투기 같은 병과들은 그들이 겪어 본 적 없는 영역이었다.

기갑사단을 동원하여 파리로 들어가는 주요 길목을 끊고, 공항을 통해 공수부대를 투입해 총리관저를 점령한다. 여기에 적지 않은 국가헌병대 출신들이 가세하여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공산당 고위급들을 체포한다.

직접 공산당이 해방시킨 파리보다는 지방의 여론이 더 우파에 우호적이었다. 여기에 졸지에 백 년 가까이 살아온 터전에서 ‘귀국’ 명령을 받은 알제리 거주 피에 누아들은 군사혁명을 지지할 것이다.

장군들은 자기네들 나름대로 다 계산을 해 둔 채였다. 공산당과 사회당이 지지를 받기는 했어도, 식민지 문제는 프랑스인들에게 너무 민감한 문제였다.

분명 반발하는 자들은 나오겠지만, 현재 상태를 식민지 전쟁이 계속되는 전시로 간주하고 계엄령을 내리고 싸그리 잡아들이면 된다.

또, 식민지 문제에 골머리를 앓는 영국 역시 프랑스가 식민제국의 대오에 복귀하는 것을 지지할 것이다! 안 그래도 구 추축국의 일원이던 포르투갈과 함께 인도나 홍콩 마카오 같은 아시아 식민지나 아프리카 식민지 작전에 손발을 맞춰 나가는 것을 보면 협력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미국과 소련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공산이 높았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내정의 문제가 아닌가? 내부의 정권교체며 정치 불안정에까지 두 나라가 개입할 수는 없었다.

결국 대략적인 작전계획의 얼개가 정해지자 르클레르를 필두로, 장군들이 일어섰다.

“프랑스 만세! 위대한 프랑스 만세! 대육군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르클레르는 핏발 선 눈으로 흐뭇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보라, 기회주의자들이라지만 위대한 프랑스 국가를 사랑하는 이들이 아닌가?

나라를, 식민지를 소련에게 팔아먹는 ‘크렘린의 장녀’보다는 차라리 이들이 나았다.

* * *

“예! 예, 그렇습니다. 예, 아무렴요. 네, 네.”

전화통에 대고 가느다란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연신 굽실댔다. 그는 아무도 없는 자기 집무실에서도 불을 끄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듯 두리번대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예! 그렇습니다. 두목은… 그 자유 프랑스 출신의 르클레르라고… 예 지금 기병사단장인 그자입니다. 그자가 사실상 회합을 주도하여….”

[알겠네. 유념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가지 더 알려 드리자면 저는 절대로 절대로 현 체제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니라 그저 국가와 정부를 향하는 불타는 충성으로….”

전화 속의 목소리는 기묘한 억양으로 그저 짧게 알았다는 말만 하고 탁 하고 끊어버렸다. 콧수염을 기른 남자, 제복에 장군 계급장을 붙인 그는 휴우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멍청한 놈들, 그게 될 것 같냐….”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한 번 기회주의자는 영원한 기회주의자라는 것을. 그는 스스로도 비시와 독일에 부역하였기에 더욱 기회주의자의 생태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분명 밀고할 것이다. 그 전에 최대한 빠르게 밀고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승진? 진급? 그걸 원한다면 정부를 타도하고 신정부를 구성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위험한 꿈을 꾸는 ‘반역자’들을 밀고하는 방법도 있는데 왜 굳이 험한 길을 가야 하겠나.

물론 혹시나 승리할 것을 대비해 일부 병력을 쪼개어 투입할 수는 있겠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자기보신이 최우선이었다. 그렇게 대전을 살아남았기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