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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01화 (201/300)

# 201

201화

“즉결 처분이다. 즉시 집행하라!”

“…예!”

탕! 탕! 짤막한 총성이 적막한 도시에 울려 퍼졌다.

슬럼가에 남겨진 ‘결사대’들은 모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이들이었다. 제 한 몸 불살라 이 땅에 해방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그런 각오로 독립군의 결사대는 비행장, 사령부 등 핵심 시설에 총 몇 자루와 수류탄 두어 개를 꼬나 들고 돌격했다.

가끔은 약간의 전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시설의 방어 앞에 갈려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군은 당당했다.

“이거 놔라! 제기랄, 빌어먹을 놈들!”

“끌고 와!”

먼저 간 동지들의 시신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연합군의 손에 개처럼 질질 끌려 나왔다. 어디가 부러져 덜렁거리고, 너덜거리는 사지나 피로 뒤범벅이 된 머리칼이 진흙탕에 뒤범벅이 되었다.

“퉤, 개만도 못한 새끼들.”

그러면서도 그들은 웃었고, 제국주의의 개라며 병사들을 조롱했다. 병사들은 굳은 얼굴로 독립군의 게릴라들을 끌어내었다.

‘불법 무기를 소지한 반란군’들은 재판 없이 즉결 처형당했다. 몇몇은 지하 깊은 곳의 심문실로 끌려가기는 했지만 진술하기를 거부한 자들은 다시 피떡이 되어 끌려 나와 동지들과 함께 총탄 자국이 빼곡한 벽 앞으로 끌려 나갔다.

간부들이 부르는 비공식 명칭으로는 ‘통곡의 벽’. 병사들이 부르는 멸칭으로는 ‘도살대’. 그들은 그 앞에서 부르짖었다.

“제국주의는 종이호랑이다! 너희는 인민의 바다에 빠져 익사하리라!”

“나는 가지만 조국의 해방은 온다. 오고야 만다!”

“저 새끼, 재갈도 물리랬지!”

“죄, 죄송합니다!”

치안경찰대장은 ‘죄수’들이 제각기 한마디씩 유언을 남기는 것조차 참을 수 없었다. 그가 그렇게 호통친 이후로 사형수들은 부르짖을 수도 없게 되었다.

“읍읍읍!”

입에는 재갈이 물리고, 두 손은 꽁꽁 묶인 채 벽 위로 드리워진 갈고리에 걸려 무력하게 늘어진 이들을 겨냥하고, 총살대는 총을 겨누었다.

“…저, 저는 못 하겠습니다!”

“뭐?”

새파랗게 어린 병사 하나가 벌벌 떨다가 총구를 떨구며,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명령 불복종이냐? 이 빌어먹을 새끼….”

“저, 총경님. 이 친구는 이제 막 입대한 신병인데… 어제 부대가 전멸했다고 합니다. 부디,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

옆의 제법 경력이 있어 보이는 병사 하나가 마구 고함을 치려는 경찰 간부에게 달려가 선처를 빌었다. 발포를 거부한 신병은 아예 주저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다른 병사들 역시 상태가 그닥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본 경찰 간부는 혀를 쯧쯧 찼다.

“나라를 위해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임하지는 못할 망정….”

그는 저벅저벅 검붉은 핏자욱이 눌어붙은 벽 앞으로 걸어갔다.

죄수는 모두 여섯 명. 그의 리볼버 권총에 장전된 탄약도 모두 여섯 발.

“두렵나? 두렵냐고 어?!”

탕! 총성이 울렸다.

한 명의 죄수가 옆머리에서 피를 튀기며 축 늘어졌다. 병사들은 아연실색한 채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를 하늘로 향한 총경을 바라보았다.

소매를 걷은 팔뚝과 경찰 제복 바지에 피가 잔뜩 튀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 저, 미친 것 아니야?”

“미칠 법도 하지… 가족이 다 죽었다잖아….”

탕! 또 한 번 총성이 울리고, 한 명의 죄수가 다시 축 늘어졌다.

탕, 탕, 탕. 그는 저벅저벅 걸어가며, 죄수의 옆머리에 대고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세 번의 총성과 세 명의 죄수. 점점 더 많은 핏물이 묻어 옷이며 팔뚝이며 얼굴까지 피가 튀고 붉게 물들었는데도 그는 개의치 않고 다음 죄수를 향해 걸어갔다.

“하! 이 개자식!”

마지막 죄수의 얼굴을 본 그는 이를 악물고 축 처져 있던 죄수의 배를 걷어찼다.

게릴라는 부어올라 반쯤 감았던 눈을 뜨고 대체 어느 놈인지 올려다보다가, 재갈에 물린 입으로도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으으읍… 읍!”

핏발이 잔뜩 선 경찰대장 역시 이를 빠드득 갈다가 거친 손으로 게릴라의 재갈을 벗겨 내었다. 재갈이 벗겨지자 게릴라는 부서져 빠진 이빨 틈으로 경찰대장의 구두에 침을 찍 뱉었다.

“네 애새끼들은 다 지옥으로 갔겠구만. 흐흐흐하하하하!!”

“이제 내가 네놈을 지옥으로 보내 줄 차례지.”

경찰대장은 마지막 탄이 장전된 것을 확인하고는 철컥, 권총을 게릴라의 머리통을 향해 갖다 댔다.

현지 경찰서를 향한 테러로 경찰대장의 가족들은 그를 제외하면 모조리 죽고 말았다. 물론 그동안 독립군을 집요하게 색출해 처형하던 대장과 게릴라들 간의 첩첩이 쌓인 원한을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었겠지만.

“지옥? 네놈에게는 여기가 천국일지는 몰라도 우리들에게는 지….”

탕! 총성과 함께 마지막 한 명의 게릴라들까지 축 늘어진 시체가 되었다.

신선한, 뜨끈한 피가 얼굴에 튀었는데도 경찰대장은 부들부들 떨며 시체를 노려보았다. 병사들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처형을 바라볼 뿐이었다.

“뭣들 하나! 얼른 치워!”

“예! 예!”

병사들은 불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의 호통에 시체가 되어 널브러진 게릴라들을 질질 끌고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아마 어딘가에 적당히 묻어 버리거나, 화장해 잿가루를 오물과 섞어 매장지에 뿌려 버리겠지.

벌벌 떨던 신병은 다른 병사들이 와서 어깨동무를 하고 끌어냈다. 군의관은 오늘 저녁, 신병이 자살하지 않도록 병동에서 밤을 새울 것이다. 몇 번의 자살사고를 본 상부는 군의관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쉘 쇼크’를 처리하려 했다.

게릴라들은 포탄을 쏘지 않기 때문에 쉘 쇼크가 없다고 묻어 버리지나 않으면 다행. 정글 속에서의 전쟁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좆 같은 토인 새끼들… 꼴에 무기 좀 들었다고 덤비기는….”

후방에서 병사들이 제 머리통에 총구를 겨누든, 아니면 전방에서 지뢰를 밟고 폭사하든 연합군은 결국 전진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마지막 식민지를 잃어서는 안 된다, 이미 국민의 반대가 높은 이상 반전시킬 방법은 전승뿐이라는 주장 때문에 추가적으로 4만 명의 진압군을 편성하고 있었다.

영국 역시 해협 식민지, 인도 식민지로의 소요 확산을 우려하여 추가적인 군대를 차출하여 투입했다.

피해를 개의치 않고 쏟아붓는 물량공세 앞에서, 방어선의 견고함도 결국 균열이 생기기 마련. 아직 진짜 최정예 장교들처럼 세련된 방어전략을 구사하지 못하는 인도네시아 독립군은 한 걸음 한 걸음 후퇴했다.

물론 곳곳에서 강력한 역습을 성공시키기는 했다.

“고폭탄 장전! 발사!”

쾅! 부됸늬 전차의 육중한 주포가 불을 뿜자 영국군의 크루세이더 전차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적 전차가 한 대 폭발할 때마다 전차병들은 환호했다. 일방적인 부됸늬 중전차의 활약 때문에 슬슬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압도적인 무기를 가지고 식민지인들을 깔아뭉개던 제국주의자들에게 먹이는 일격은 매번 새로웠다.

독일군의 중전차들을 적수로 상정한 100mm 전차포는 크루세이더나 마틸다 같은 초기 전차들을 상대로는 오버스펙에 가까웠다. 철갑탄이 아니라 고폭탄으로도 웬만한 영국군 전차들은 관통되거나 직격으로 궤도가 벗겨져 버리는 피해를 입곤 했다.

반면, 크루세이더의 40mm, 2파운더 전차포로는 부됸늬 전차를 도저히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아니 왜 맞아도 안 뚫려?”

“그, 그러게나 말입니다….”

열심히 응사해서 부됸늬에 포탄이 명중했을 때 영국인 전차병들은 환호했지만, 꼼짝도 않는 저 막강한 중전차를 보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3호와 4호 전차를 끌고 대조국전쟁에 돌입했던 독일인들이 소련의 중전차를 보고 KV 쇼크에 빠졌던 것처럼, 영국은 부됸늬를 보고 ‘부됸늬 쇼크’에 빠지고 말았다.

“빌어먹게도 강력한 놈인데….”

아직 제대로 훈련을 받지 않아 ‘티타임 각도’ 같은 기술을 구사할 줄 모르는 이들 입장에서는 더욱더 충격적이었다.

전차 정면에 수직으로 포탄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살짝 각도를 꺾어 ‘2시 방향’, 즉 티타임을 가리키게 만들면 포탄은 빗겨맞아 도탄될 확률이 높아졌다.

하지만 끽해야 몇 개월 동안 전차라는 것을 몰고 포탄을 쏘는 정도나 가르쳐 준 후 전장으로 내몬 병사들은 그런 고차원적인 내용은 알지도 못했다. 가르쳐줄 고참들도 싸그리 쓸려 나갔기에 더더욱.

결국 부됸늬를 잡으려면 몇 문 있지도 않은 ‘중야포’들을 가져와서 집중해서 곡사포격을 가하거나, 공군을 불러 항공폭격을 퍼부어야 했지만 연합군은 그럴 만큼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군에게 배운 방식이 아니라, 조금 다른 쪽에서 배운 방식을 써먹기로 했다.

“저… 저기까지 가란 말입니까?”

“그래! 자네가 그렇게 한다면 자네 가족들에게는 막대한 보상이 지급될 걸세!”

깡마른 원주민 사내는 불안하게 육중한 독립군의 전차와, 가식적인 미소를 짓는 네덜란드인 장교, 그리고 통역병을 바라보았다.

그의 발치에는 꽤 묵직해 보이는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네덜란드인 장교는 사내가 머뭇거리자 허리춤에서 지갑을 꺼내어 펼쳐 보였다.

“자! 여기 돈 보이나? 이 돈이 다 네 가족에게 간다고! 돈! 통역병, 통역해!”

“아, 음, 저 돈이 다 당신 거랍니다. 저기, 저 전차만 깨부순다면….”

발치의 상자는 폭약 뭉치였다. 중전차라고 해도 전차의 아랫면이나 엔진룸 같은 곳은 취약하기 마련. 그런 곳에 폭탄을 던져 넣으면 전차를 격파할 수 있었다.

영국군과 네덜란드군은 일본군과의 교전에서 이 ‘귀중한’ 교훈을 획득했다. 셔먼 전차가 나타나면 그들은 반자이 돌격이나 자폭 돌격을 통해 기어이 한두 대 정도는 격파하곤 했고, 특히 무성하게 수풀이 우거진 이런 정글에서는 더 잘 먹히곤 했다.

물론 대부분은 무참하게 실패했고, 전차의 기관총이나 보병의 응사에 갈려 나가곤 했지만. 그리하여 영국군이나 네덜란드인 장교들은 자기 휘하의 병사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리기 싫어했다.

항명이 뒤따를 것이 불 보듯 뻔했기에 더더욱. 대신 그들은 좋은 ‘대체재’를 찾아냈다.

“….”

사내는 팔 한쪽이 없었다. 이렇게 병신이 된 몸으로는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고민했다. 이렇게 좋은 얼굴로 말하고는 있어도, 가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그가 멍청하지는 않았다.

토인들은 다 우둔하고 욕심만 많다고 생각하는 저 얼굴 하얀 백인들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결국 폭탄 뭉치를 집어 들었다.

“내가 죽더라도 부디 가족들에게는 돈을 전달해 주십시오. 그들이 굶어 죽게 내버려 둔다면 죽어서도 당신들을 저주할 것이오.”

“아 예 물론이지요! 어서, 어서 가시오!”

통역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자를 재촉했다. 폭탄 뭉치를 멀쩡한 왼쪽 팔로 집어 들어 어깨에 멘 그는 불안하게 뒤를 바라보고는 수풀을 헤치며 앞으로 달려갔다.

50톤짜리, 폭약과 강철을 흩뿌리는 쇳덩어리 괴수를 향해.

“어쩌시겠습니까?”

“내 돈을 왜 주나? 그냥 공금에서 적당히 성의 표시나 하면 그만이지. 깨지도 못했구만…. 어디 토인 놈들 좀 더 없나?”

장교는 그렇게 씹어뱉고는 다시 허리춤에 신경질적으로 지갑을 쑤셔 넣었다.

일본놈들은 그래도 몇 번은 성공시켰는데, 어째 토인들은 제대로 전차를 폭파시킬 줄 아는 놈들이 열에 한둘도 없는 것 같았다.

상부에 ‘대민사업 자금’을 더 요청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린 장교는 땅바닥에 침을 찍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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