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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00화 (2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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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화

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 진군하는 연합군에게 기관총 세례가 쏟아졌다. 정글 사이의 협로를 통과하며 진군하는 과정에서 연합군은 몇 번이나 이런 기습을 겪어야 했다.

“제기랄, 저건 다 어디서 나온 거야?”

독립군은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독일제 총기와 포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련에게 양도받았는지 구식 소련제 전투기들까지 가지고 영국군과 대등한 싸움을 벌여 나갔다.

물론, 최소한 소련제 전투기들의 출처만큼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제국주의는 종이호랑이다! 반동의 모습이 무서워 보여도 저들은 인민의 바닷속에서 녹아내릴 뿐이다!”

인도차이나 연방 공산당은 즉시 ‘동남아의 자주와 독립을 위협하는 제국주의 침략’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의용군을 편성하여 제국주의의 압제에 신음하는 인도네시아의 형제들을 위해 파병할 것을 선언했다.

1차 파견군에는 소련제 전투기들로 무장한 공군 2개 비행단과 1개 사단의 지상 전투병력이 포함되어 있었다.

소련과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연방군의 창설 당시 보유하고 있던 장비를 대규모로 매각했다. 인도차이나 연방군 정부는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결성’한 의용군에게 구입한 장비를 다시 대량 매각했으며 의용군은 의용군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중무장한 채였다.

“인터내셔널 깃발 아래 전진 또 전진!”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

여기에 세계 각국에서 국제여단이 모집되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출신의 파르티잔들, 동병상련이라고 같은 유색인종 피식민지 출신의 고난을 두고 볼 수 없던 알제리 출신의 외인부대들, 스페인 공화파 출신의 오리지널 국제여단까지.

순식간에 독립군은 연합군 이상으로 중무장한 지상군 2만 명을 편성할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 탱크다 탱크!”

“형제들이여! 우리가 함께합니다! 제국주의는 종이호랑이다!”

‘종이호랑이’ 제국주의에 맞서는 진짜 강철의 호랑이들이 독립군 사령부가 위치한 욕야카르타의 시가지를 행진했다.

인도차이나 연방군은 자기네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기갑전력인 부됸늬 중전차 1개 대대를 과감하게 의용군에게 매각했다.

“아니, 이것은 또 다 무엇입니까?”

“크흠, 우리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정부에서는 독일군 점령군의 잔여 물자들을 매각처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게 그 8,8cm 대공포라는 건데….”

“오오….”

여기에, 독일군의 잔여 물자들이 대규모로 밀려들어왔다.

동유럽 신생국의 정부들은 독일군이 각국에 남겨 놓고 간 군수물자를 동남아에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소련은 안 그래도 남아도는 자국산 군수물자를 ‘사회주의 형제국’에 대규모로 뿌리고 있었고, 규격도 호환되지 않는 독일제 물자들은 그저 골칫덩이였을 뿐.

처분하는 물자 중에 어쩐지 소련군에게서 ‘노획했다’는 핑계를 대는 T-34가 조금 많이 섞여 있는 것 같긴 했지만 동유럽 국가들은 끝까지 노획품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닌 독립군은 조용히, 감사히 물자들을 꿀꺽꿀꺽 받아먹었다.

* * *

“무… 무장을 해제하라! 항복하라! 너희들은… 음… 포위되어 있다!”

“항복하라! 제… 발….”

인도네시아의 중요 도시들이 밀집된 자바섬 동부, 수마트라에 상륙한 연합군은 독립군의 무장해제를 시도했다.

하지만 독립군의 주력은 신속하게 섬 중부의 해방구로 후퇴했다. 물론, 적어도 수천 명은 되는 게릴라들이 도시의 슬럼가로 숨어들어 연합군을 괴롭힐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연합군은 그런 저간의 사정까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당당하게 전차를 앞세우고, 후퇴하는 독립군을 추적하기 위해 진군한 연합군은 금새 스스로가 지옥에 발을 들여놓았단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발사! 발사! 벙커를 깨부숴라!”

네덜란드군과 영국군은 분명 ‘신식’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무기개발사는 1940년대 초반에 멈추어 있었다.

영국군 역시 전차를 운용하고 있었지만 그 전차들이란 40년이나 41년쯤에 생산되어 창고에 처박혀 있다가 기름칠을 해서 다시 끌고 나온 마틸다 전차나 크루세이더 전차였다.

본국이 점령당하고 연구소들이 싸그리 문을 닫은 와중에 무슨 신무기를 연구하고 배치할까? 그리하여 영국군과 네덜란드군의 주력 화기들은 대부분 대전기 초반의 그것이었다. 2파운더, 마틸다 혹은 25파운더 야포 정도.

영국군의 25파운더 경야포가 불을 뿜었지만, 독립군의 벙커는 경야포의 포격 따위는 간지럽다는 듯 꿈쩍도 하지 않고 모래 먼지나 날릴 뿐이었다.

“빌어먹을 새끼들! 공군 불러! 공군 없나?”

“비행장을 게릴라가 습격하여….”

“제기랄!”

어디서 배워 왔는지, 독립군은 현대적 화기에도 저항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벙커 축성술을 배워 와 써먹고 있었다. 망원경으로 벙커를 본 영국군 포병장교는 빠드득 이를 갈았다.

“저거 분명 독일식 벙커인데… 저놈들이 대체 저걸 어디서 배워 온 거지?”

하느님 맙소사. 여기서도 제리 놈들이라니. 지난 전쟁에서 독일인들과 싸워 본 고참병들은 이를 박박 갈았다.

영국과 네덜란드의 연합군은 대도시 지역들은 기존 치안체계를 통해 장악하거나 군사력을 앞세워 탈환할 수 있었으나, 각지로 가는 교통로만 하더라도 게릴라가 설치고 ‘해방구’가 생기는 바람에 통제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적군의 역량도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만만하게 병력을 진격시켰으나 그 병력들은 단단한 방어선에 부딪혀 패퇴하고 말았다.

연합군의 악몽을 자극하는 독일식 방어진지를 마주하고 나서, 연합군 역시 나름대로 미국에서 배워 온 트릭을 사용하려 했다.

“공군! 공군! 씨발!”

간이로 만든 군사비행장들이 게릴라들에게 습격당해 대부분의 군용기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에서도 결국 어찌어찌 이륙하는 데 성공한 허리케인 전투기들이 항공폭탄을 들고 적지의 벙커로 향했다.

텅! 텅! 텅! 텅! 있는 줄도 몰랐던 대공포에 맞아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격추되기 전까지는.

“씨… 발! 저거 88이잖아!!!”

“88이 여기서 왜 나와?”

영국군은 곧 바지에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았다.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패배하고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간신히 살아나와 다시 군대에 끌려온 고참병들은 독일군이라면 기함을 했다.

그리고 그놈들이 쓰던 만능 88이라면 더더욱. 88의 포성은 잊으려야 잊을 수도 없었으나, 독일의 패망 이후 만나 볼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어디까지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몇 문이 매복해 있었는지, 허리케인 전투기들은 88의 십자포화에 결국 걸레짝이 되어 불덩어리가 되어 지상에 처박혔다. 하늘의 위협을 찢어 버린 88은 이제 높이 뻗었던 포신을 저각으로 조정하여 지상의 목표물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후퇴! 후퇴하라!”

“으아아아아아악!”

지뢰밭과 철조망을 간신히 뚫고 진격했다가 벙커를 만났던 영국군은 압도적인 화력의 열세에 밀려 다시 후퇴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뒤에는 미처 제거되지 못한 지뢰밭이 있었지만.

“어머니….”

“아… 아아… 아아아!”

땅에는 지뢰, 하늘에는 포격. 강철의 파편을 한바탕 뒤집어쓴 채 연합군의 어린 병사들은 피떡이 되어 바닥을 굴렀다.

어딘가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채,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던 그들은 곧 눈을 감았다.

“아니, 그 토인 놈들이 대체 어디서 그런 무기들을 구했단 말인가?”

“정보부에서는 알아보고 있지만….”

“미국! 미국은 뭐라는가! 제기랄… 그 거만한 양키 새끼들이 그리워질 줄이야….”

연합군 사령부는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동안 이들은 동남아나 아프리카인들과 같은 ‘토인’을 극도로 멸시했다. 줄루전쟁처럼 그들을 만만히 보다가 털린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은 극히 일부 사례일 뿐.

전투기와 전차, 그리고 야포로 무장한 현대문명 열강의 군대가 패배할 수 있다? 이탈리아 잡졸들도 아닌데?

하지만 저들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던, 머스킷이나 원시적 대포를 쓰는 군대도 아니었을뿐더러 서구 열강군보다도 더 서구적인 군대였다. 미군의 보급을 받아서 미군의 정보력을 활용해 싸우는 데 어느 순간 익숙해져 버린 연합군이 쇼크에 빠질 정도로.

“미국은… 불개입을 선언했습니다. 오히려, 국무성 측에선 비인도적인 식민지 침략을 멈출 것을 비공식적으로 요청한 상태입니다.”

“아니, 대체 왜 그 새끼들은….”

영국인들이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이나 소련이나 각자의 음흉한 속셈을 뒤에 숨기고 영프 등 식민제국이 가지고 있던 식민지의 해방을 외치곤 했다.

미국은 더 많은 시장과 자유로이 당겨올 수 있는 자원들을 원했고, 소련은 그저 세계를 붉게 물들이고 싶어 했다.

이제 더 이상 위대한 브리타니아의 함대가 파도를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게 된 것이다.

“…어찌 되었건, 이대로 전투를 속행할 수는 없다. 본국에 증원을 요청하도록!”

“알겠습니다, 각하.”

“네덜란드인들에게도 추가적인 증원군을 본국에 요청하도록 제안을 해 보도록 하지….”

영국 원정군 사령관 버나드 몽고메리는 항상 쓰고 다니던 베레모를 구깃구깃 주먹으로 쥐며 이를 갈았다.

아프리카에서 참패한 것은 그나마 정상 참작이 가능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독일군은 무적의 군대였으니.

하지만 여기서 독립한 지 고작 1년도 안 된 식민지의 토인들을 상대로 패배한다? 위대한 대영제국의 군대가? 아무리 식민지 출신의 잡졸 반에 이제 막 머리를 깎고 입대한 신병들 반으로 구성된 군대라 하더라도 그래서는 안 되었다.

본국 정부는 상당한 정치적 무리수를 감내하면서도 ‘대영제국의 위신’을 위해 전쟁에 지친 젊은이들을 끌어냈다.

“본국이 증원을 할 여력이 있겠습니까…?”

“그 반대를 무릅쓰고 파병을 해 놓고 여기서 끝난다면 그건 그대로 즉시 내각이 붕괴할 것일세.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참모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로서는 이미 진창에 발을 들였다. 여기서 인도네시아가 독립을 쟁취한다면 저 좁은 해협 건너편, 말레이 해협 식민지들이 즉시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개화시키고 계몽시켜 준 은혜도 모르고 옛 주인 백인들에게 총구를 들이댄 인도차이나 식민지들은 그 배후에서 또다시 군대를 파견할 것이고.

지금 그들을 짓밟아야 했다. 옆에서 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을 인도의 불순분자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라도.

도미노가 하나하나 무너지며 거대한 혼란을 만들어 내듯, 지금의 반란 역시 그럴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도시 내의 반란군에 대한 소탕은 진행 중인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슬럼에 숨은 반군들과 대영제국의 아들들이 교전 중일 것이다.

대부분의 식민지 대도시들은 두 구역, 혹은 그 이상으로 나뉘어 있었다. 본국 출신이나 백인 이주민 혈통의 상류층이 사는 구역과 현지 원주민들이 사는 슬럼가로.

동인도제도의 반군들 역시 자기네와 같은 원주민투성이의 슬럼가로 숨어들어 도시 외곽의 비행장을 습격하거나 도시 내에서 병사들을 공격했다.

곧 토벌되고 도시는 다시 질서를 되찾겠지만, 잠시 시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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