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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99화 (199/300)

# 199

199화

종전 이후 최초의 군사적 충돌을 일으킨 것은 의외로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는 나치 독일로부터의 해방 이후 본국을 재건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식민지에 다시 손을 뻗쳤다. 하지만 본국이 그리 쉽게 짓밟히고 패망한 것을 본, 그리고 진주한 일본군으로 인해 한번 자유의 맛을 본 식민지가 다시 순순히 옛 주인의 지배에 순응할 리 없었다.

“인도네시아 연방은 자유로운 자치공화국들의 연합임을 선언하며….”

“인도네시아 독립 만세! 만세! 수카르노 만세!”

20년대부터 인도네시아 국민당의 당수로 독립운동을 이끌어 온 수카르노는 일본군이 항복하고 물러간 직후 바로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독일군의 학살과 약탈로 혼란에 빠졌었다 해도, 네덜란드가 이를 좌시하지는 않았다.

본국의 산업기반이 황폐해진 만큼 식민지가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당장 화폐를 발행해야 할 은행의 금고는 독일의 약탈로 텅 빈 상태였고, 나치 전범들은 재판을 거쳐 처형당하면서도 금의 행방을 끝까지 모른다 잡아떼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에 대해서 네덜란드는 전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음을 선언합니다. 이 지역의 사소한 소요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에서 진압군을 파견하여 처리할 예정입니다.”

패전의 후처리만 해도 등골이 부러질 지경이었지만, 네덜란드는 기어이 진압군을 편성했다. 900만 인구 중 30만이 독일군에게 끌려가 사망하거나 학살당한 와중에도 2만여 명의 군대가 편성되었다.

“빰 빠바밤 빠바바밤~~”

“우리는 자랑스러운 왕립 네덜란드군으로 국가와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여론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시민들은 한시라도 재건이 시급한 와중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전장에 내모는 정부를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입장은 완고했다.

“지금 식민지를 잃으면 우리나라에 남은 것은 뭐가 있습니까? 국가와 왕실을 위해 지금 즉시 입대하십시오!”

“청년들이 남소! 최소한 살아는 있어야 어찌해 볼 것 아니오? 나치와는 맞서 싸우지 못… 윽! 이거 놔!”

“끌고 가라! 병역기피자들은 싸그리 전방으로 쳐넣어!”

정부의 징병계획은 2만 명에서 최대 10만 명. 본국보다 50배는 넓고 인구수도 10배 가까이 많은 거대한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제압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규모였지만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압을 선언했다.

최소한, 네덜란드 정부는 믿는 구석이 한 곳은 있었다.

“동인도제도의 소요는 우리 해협 식민지의 안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소이다. 인도차이나반도 지역의 불온한 기류가 동인도제도의 소요를 만나 불어나기라도 한다면….”

영국 정부 역시 네덜란드 정부와의 공동전선을 천명했다. 영국의 소위 ‘해협 식민지’를 위해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한 뿌리에서 나온 형제나 다름없었다. 이들이 나뉜 이유는 오직 하나, 영국의 식민지냐 네덜란드의 식민지냐 이것 하나뿐이었다.

영국 입장에서는 중국을 비롯한 극동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통로인 말레이 해협을 지키기 위해 해협 식민지가 필요했고, 인도네시아가 독립을 한다 어쩐다 하며 이 지역의 정세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렇다고 또 군대를 편성할 것입니까? 지금 예산이….”

“예산이 중요합니까? 자, 지도를 보십시오. 여기 우리 식민지들이 있습니다.”

동남아와 남아시아 일대가 그려진 지도에는 두 개의 붉은 구역이 존재했다.

“프랑스를 장악한 공산당원들은 인도차이나 연방의 독립을 승인했습니다. 또, 인도네시아의 불순분자들 역시 공산주의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이 시대의 지식인들 중 사회주의에 관심이 없는 자는 아마도 없다고 보는 게 맞겠지만, 아무튼 ‘적색 공포’는 제국주의 국가의 그 어디서나 만연해 있었다.

“인도네시아가 불순분자들의 손에 넘어갈 경우 그다음은 말레이시아입니다. 말레이시아의 해협 식민지들이 무너지면 그다음은 태국, 그다음은 버마, 그다음은 인도. 그리고 중화민국 역시 배후에 저들을 두고 공산당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영국 정부는 도미노처럼 하나하나, 혁명이 확산되는 사태를 두려워했다.

이들의 논리는 일견 타당한 지점이 있었다. 공산국가들은 결국 다른 체제의 국가들과 스스로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혁명을 수출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하곤 했다.

인도네시아의 반란을 지금 짓밟지 않으면 더 큰 부메랑이 되어 아시아 식민지들을 모두 강타할 것이다! 당장 인도만 해도 골치 아픈 가운데 다른 곳들까지 반란에 합류한다면 얼마나 속을 썩일지 생각한 영국 정부는 결국 군대 파견을 승인했다.

“인도 식민지군 1개 사단을 일단 편성하여 투입하고, 1개 사단을 더 증파할 수 있다고 네덜란드 정부에 통보하겠습니다.”

“…이쯤에서 전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네덜란드보다 영국의 상황이 더 좋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인도네시아의 불안이 영국령 인도로 확장되는 상황을 경계했을 뿐.

또, 수백 년간 이 지역으로 이주자를 보내며 영향력 확대를 꾀해 온 중국 역시 경계의 대상이었다. 중화민국은 지금은 공산당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지만, 공산당의 위협이 제거되고 나면 예전처럼 자국 중심의 아시아 질서 재편을 위해 동남아 지역으로 손을 뻗칠 것은 명약관화였다.

그 전에 빨리 ‘아시아주의’니, ‘민족자결’ 같은 불온한 이야기들을 하는 자들을 빨리 찍어 눌러야 했다.

전쟁의 상처가 채 다 아물지도 않은 본국에서 군함에 타고 식민지로 파병되는 젊은이들은 그러한 저간의 사정은 다 알 수 없었다.

“씨발… 또 전쟁이야?”

“일본놈들을 잡아 족쳤더니, 그다음엔 저기 어디 섬 원주민들인가? 제기랄!”

“…고향 집도 보니까 꼴이 말이 아니던데….”

영국 육군의 등뼈는 나치와의 싸움에서, 그리고 본토 방위전의 패배로 이미 박살 난 지 오래였다. 대부분의 고참들이 죽거나 불구가 된 상태에서 영국 정부는 부랴부랴 새로이 신병을 모집하여 설렁설렁 훈련을 하고는 전장으로 던져 넣었다.

* * *

“결국 거기서 유혈사태가 터졌다,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네덜란드군과 영국군은 시위대에 대한 유혈 진압을 가하며 독립운동을 찍어 누르고 있습니다.”

“의외로군… 의외야….”

한창 간디와 네루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인도도 아니요, 장개석과 모택동이 불안한 협상 중인 중국도 아니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다. 어중간한 식민제국으로서 식민지마저 상실한다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소국으로 추락할 것을 우려했던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며 즉시 진압을 시도했다.

인도네시아 독립군은 머릿수는 많았지만 전투기나 항공기, 전차 같은 현대 무기는 거의 가지지 못했고, 영국군과 네덜란드군의 합동 진압에 결국 수만 명의 피해를 내며 패퇴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를 것이다.

“알겠네. 미국은 인도네시아 독립을 승인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루즈벨트 정부는 현재 반인륜적인 식민지 재점령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역시 지령만 떨어지면 비난 성명을 발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뭐, 그런 비난 성명 따위가 무엇에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군사적 승리였다. 독립군의 군사적 승리로 침략군이 박살 난다면 좋든 싫든 반강제적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베트남을 재점령하려다 디엔비엔푸에서 패배하고 밀려났던 프랑스군처럼. 이번엔 프랑스군이 아니라 영국군이 그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핵심은 군사력이야 군사력. 우리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게. 인도차이나 연방을 통하여 1차로 구형 전투기와 T―34 전차들을 공급하고….”

“예!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그리고… ‘국제 여단’을 동원하지.”

“!!!”

제3인터내셔널, 즉 ‘코민테른’은 지난 스페인 내전 당시 전 세계의 사회주의자 자원병들을 모집하여 공화파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병력을 투입했다.

코민테른 자체는 미국과 영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지난 대전 중 발전적 해체를 선언하며 해산했지만, 그 연락망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이번 대전의 승리로 서유럽과 미주 등지에서 공산당을 재건하며 당세가 더 커졌으면 커졌지.

“주로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우리 고문단이 훈련시켰던 이들을 의용군으로 간판만 바꿔 달고 투입하는 게 어떻겠나?”

“예! 그렇게 지시하겠습니다.”

또, 종전 이후의 감군으로 자리가 없어질 장교들을 위해서 우리는 ‘군사고문단’을 창설했다. 동부전선에서, 그리고 대일전에서 극한의 실전을 겪은 이들은 소련의 프룬제 군사대학에서 연수를 받고 귀국할 제3세계 출신의 장교들과 함께 신흥 독립국의 창군을 지원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이미 수천 명의 장교들, 특히 게릴라전과 침투작전, 기습 등에 익숙한 스페츠나츠 출신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각국으로 파견을 나가 군대와 민병대를 교육 중이었다.

물론 병사들이 제대로 된 군사훈련을 받았던 것도 아니오, 우회루트를 통해 보내 주는 병기의 수량에도 한계가 있었으며, 최고사령관인 현지 지도자들의 자질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군 역시 비슷했다.

“네덜란드군이나 영국군이나 식민지군이나, 3류 군대를 가지고 현지 지형에 익숙한 이들과 저 정글을 배경으로 싸운단 말인가? 하하하하하!!”

일본군에게도 패배했던 3류 군대. 그것이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군을 가장 잘 설명할 만한 단어였다.

장비야 가까스로 신식이라 해 줄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있지만, 훈련도가 심각하게 낮았고 사기도 끔찍하게 낮아 수시로 병영에서 탈영 시도와 항명 등이 발생한다고 보고가 올라오고 있었다.

아 이걸 어떻게 아냐고?

“뭐, 이 자료들은 그럼… 그쪽에 핫라인을 통해 보내 주게.”

“예! 서기장 동지!”

영국군의 작전계획은 말 그대로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국 정보부 안의 우리 간첩들, ‘케임브리지 5인조’나 ‘옥스포드 7인조’, ‘런던 정경대 그룹’은 영국 내 온갖 정보들을 빼돌려 우리 측에 전달해 주고 있었다. 영국 여왕이 오늘 무슨 속옷을 입었는지까지 우리 정보부는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식민지군의 반제국주의 성향 장교들이나 인도 독립운동에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현지인 출신들 역시 이런 정보원들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드웨어적인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군대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터에 들어와 있었다.

군대의 사기는 낮고 정보는 빠져나가고 있었으며, 상대해야 하는 독립군들은 강철같은 감투정신과 현지에 대한 이해로 무장하고 있다. 여기에 미―소 양대 열강은 최소한 제국주의 군대의 재침공에는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물론 둘의 꿍꿍이가 다르기는 했지만.

“자! 그럼 가서 보여 주도록 하게. 제국주의는 종이호랑이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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