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198화 (198/300)

# 198

198화

“허허… 아직도 개발이 안 되고 있다는 말인가?”

“송, 송구합니다 서기장 동지!”

어제에 이어 정치국원들은 모스크바 근교의 화학―생물학 복합연구소로 시찰을 나왔다.

모스크바 남서쪽 대학단지와 함께 조성할 가칭 ‘혁신―연구단지’의 일부로 계획된 이곳은 넓게 잡은 부지 때문에 아직은 썰렁해 보였다.

기밀 연구소의 소장은 머리가 벗겨지고 깡마른 50대였는데, 내가 보는 모든 것, 말하는 한마디마다 긴장하는 것 같았다.

“개발에 가장 애로사항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예! 예! 아무래도 시간과 인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서기장 동지. 명령하신 내용이 워낙 많다 보니까….”

크흠. 내가 불편하다는 듯 헛기침을 하자 연구소장이 벌벌 떨면서 고개를 숙였다.

“서기장 동지! 저희 연구소의 모든 직원들은 스타하노프 정신으로 연구개발에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부, 부디… 자비를!!”

“이 연구소는 우리 소비에트 연방의 전략무기나 다름없네! 자네는 이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내용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할 것이네.”

“송, 송구합니다!!!”

그저 수사법이 아니라 진짜 중요했다.

이 시대의 수많은 비밀들은 그저 발견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향을 지정해 주고, 자원을 투입하면 그 비밀을 얼마든지 선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소련의 내일을 책임질 힘이 될 것이다.

“알겠네. 일단 개별 연구실들을 한번씩 둘러보도록 하지.”

연구소장은 연신 굽실대면서 나와 정치국원들을 이끌고 연구소 내로 안내했다. 엄청난 떡대의 경호원들을 두려운 듯 곁눈질하기는 했지만.

“흐음… 이쪽이 생물학 연구소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여기서 서기장님께서 지시하신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로에 찌든 것 같은 연구원들이 신음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다가도 높으신 분들이 보이자 화들짝 놀라며 가운의 얼룩을 가리거나 잔뜩 뻗친 머리를 매만졌다.

“다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하게. 소장, 자네는 설명이나 하도록.”

“예! 다들 들어가시오! 들어가!”

그렇게 말하면 신경을 안 쓰려다가도 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무튼 연구원들은 복도에서 순식간에 실험실 안으로 후닥닥 도망쳐 들어갔다.

“여기서는 서기장님께서 지시하신 ‘그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초빙한 과학자가 팀장으로….”

“아!”

어쩐지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실험실 문 앞에 붙어 있는 명패는 영어로 쓰여 있었다. 그의 이름을 입속으로 잠시 굴려 보면서, 어쩐지 흐뭇한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

내가 연구실 문을 똑똑똑 두드리자 퉁명스러운 얼굴의 젊은 과학자가 문을 벌컥 열었다. 이마가 훤하게 벗겨져 있어서 얼핏 보면 나이가 좀 있어 보였지만 눈은 젊은 패기와 총명함으로 번뜩였다.

“어? 누구십니까?”

“아, 하하하. 별것 아니고 잠시 돌아보러 들렸습니다.”

“허어어억!”

젊은 과학자가 멍하니 밖의 인파를 둘러보다 툭 내뱉자 연구소장이 숨을 헉 들이켰다.

감히 서기장 동지께 무슨 무례를 저지르는 것이냐고 호통치려 한 것 같았지만, 내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인 것에 더욱 충격을 받은 것일까?

“으음… 어쩐지 얼굴이 익숙한데….”

“그냥 조그마한 직책을 맡고 있어 지나가다 얼굴 몇 번쯤 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잠시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예? 지금은 실험 중이라… 큰일이 아니라면 조금 이따가 연구실에 오시면 제가 커피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연구소장은 이제는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뒤의 정치국원들은 술렁이며 대체 저 무례한 인간이 누구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크루글로프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것으로 보아 권총을 만지작대는 듯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이 정도의 존경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한… 7시쯤 들리면 되겠습니까?”

“네, 네, 그러시지요.”

젊은 과학자는 전후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서, 서, 서기장 동지….”

“쉿! 방해될 수도 있으니 빨리 다른 곳들을 둘러보고 오지.”

* * *

연구소의 화공학 분과는 새로운 화학물질의 개발에 힘쓰고 있었다.

내가 직접 개발지침을 지시하고 전쟁 중에서도 막대한 지원을 쏟아부어 준 연구소에서는 매일매일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최소한 연구소장은 그렇게 말하려 했다.

그동안의 개발사항을 문서로 받아본 결과는 흡족했다.

아직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흠… 아마도 우리 소비에트 연방의 역량이 아직 서방 국가들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송, 송구합니다!”

“뭐, 송구할 게 있나. 어차피 우리 소련이 20여 년 전만 해도 찢어지게 가난했었는데 여기까지 올라온 것 아닌가?”

초등, 중등교육은 상대적으로 확대하기 쉬웠으나 고등교육은 그러기가 어려웠다. 수많은 엘리트들이 귀족이나 부르주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숙청당했다.

그 빈 공간은 상대적으로 교육은 덜 받았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스스로 자질을 증명한 빈농과 노동자 계급 출신자들이 채웠다.

하지만 고등교육 분야마저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의 학문적 토양, 역사적 기반이 있어야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볼셰비키 혁명은 혁명 과정에서 구체제의 학술 엘리트마저 쓸어내어 버렸다.

물론 그들을 가장 철저하게 배제한 것은 이 몸의 주인, 스탈린이었지만.

하지만 항상 방법은 있는 법. 소련은 항상 대책을 찾았다.

“안 되면 미국 유학 빨리 보내게. 독일 과학자들을 쥐어짜거나. 안 될 게 뭐 있나?”

말은 이렇게 하고 있어도 이들의 실적이 완전히 초라한 것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아 그런데… 새로이 개발한 물질에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어떤 이름이 좋겠습니까?”

“‘그것’ 말인가?”

“예! 혹시, 위대하신 서기장 동지의 존함을 붙여 지어도….”

하. 내가 한숨을 내쉬는 와중에, 흐루쇼프가 대머리와 눈을 반짝이는 것이 눈에 들어와 머리가 아팠다. 이마를 짚고 고개를 숙이자 연구소장은 다시 겁에 질렸다.

“그냥 그거 스트렙토마이신이라고 이름 짓게.”

우리 소련의 ‘생화학 무기’는 독가스나 병균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을 만들어 봐야 핵폭탄 한 방이면 꼼짝도 못 한다. 오히려 이후의 도덕적 지탄과 외교적 파탄을 감당해야 할 뿐. 실제로 투사하기도 힘들뿐더러 통제하기도 어려운 것이 무기인가?

오히려, 더 강력한 무기는 바로 약품이었다.

“스트렙토마이신, 세팔로스포린, 메트로니다졸, 날리딕세이트, 이소니아지드….”

“그렇게 이름을 지정하시겠습니까?”

“그래. 그러도록 하지.”

아무래도 스탈리노마이신이나 세팔로스탈린 같은 이름은 너무 좆같잖아?

이 연구소의 화학분과에서는 페니실린 이후 세대의 항생제들을 연구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분자식들을 적당히 적어 주고 합성을 해 보라고 하는 방식은 무식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까라면 까는 소련 사회에서는 생각보다 잘 먹혔다.

페니실린은 기적의 약물이기는 했는데 한계가 많았다. 일단 그람양성균에만 사용할 수 있는 데다가, 안정성이 떨어지고 많은 박테리아들이 금방 내성을 획득했다.

그리고 애초에 듣지 않는 균들이 많았다. 최소한 혐기성균, 흑사병 등에 사용할 수 있는 메트로니다졸이나 결핵균을 상대할 이소니아지드, 이후 퀴놀론계 항생제 개발에 필요할 날리딕세이트 같은 물질들을 개발해 두어야 했다.

이것이야말로 소련의 전략병기가 될 것이다.

향후 막대한 비용을 내고 남이 특허를 내 버린 것을 가져다 쓰느니 차라리 지금 비용을 들여서 우리가 미리 개발해 팔아먹는 게 낫다.

또, 세상에 미칠 영향도 생각해야 한다.

“생각해 보게! 이런 기적의 약물들이 얼마나 우리의 승리를 널리 선전하는 수단이 될지!”

불치병으로 죽어 가던 사람들이 소련에서 보내 준 약으로 치료받는다. 소련 과학기술의 우월함을 선전할 뿐만 아니라, 소련이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가진 명백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수탈하기 위해서 피식민국가를 경영하고 개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소련은 그 반대였다. 피식민지가 자발적으로 역량을 키워 합류하기를 원할 뿐.

“자본주의는 너희들을 병들고 죽게 했지만, 사회주의는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그 어떤 총칼보다도, 그 어떤 무기보다도 이것이 더 강력한 무기가 아니겠나?”

이것이야말로 부와 풍요를 자랑하는 자본주의에게 사회주의 체제가 가할 수 있는 일격이나 다름없었다.

“소비에트 연방은 자네들을 믿고 있네. 자네들이야말로 우리 소련의 선봉이요, 최고의 자랑이나 다름없네. 최선을 다하도록 하게!”

이제 막 시간이 되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이제 우린 커피나 한잔하러 가지.”

* * *

다시 공손하게 연구실 문을 두드리자 아까의 그 미국인 과학자가 문을 열었다.

“아… 아까는… 정말 죄송합니다!”

“에잉, 어느 놈이 말해 줬습니까? 박사를 방해하는 놈은….”

말끝에 들어 있는 것이 숙청이라고 생각했는지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전문 지식인들을 건드리는 것이 좋을 리 없다. 숙청이라기보다는 그냥 ‘야근 500배’ 하면 되는 거지.

노동계급의 국가 소련에 지은 죄는 노동으로 씻으면 되는 법이다.

“크흠, 아무튼 커피나 한 잔 타 주시지요. 제 것은….”

“아! 예! 물론이지요. 어떤 게 좋으십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주시지요.”

아이스 소비에트는 없냐고 흐루쇼프가 뒤에서 작게 농담을 하는 소리가 들려서 심하게 숙청이 마려웠지만 아무튼 참기로 했다. 저런 걸 좋다고 웃어 주는 놈들이 문제인데 그놈들이 다 정치국원들이라 문제였다.

그것이 서면 뭐 하나? 유머감각이 안 서는데!

“연구에는 진척이 좀 있습니까?”

“예! 저기 미국에선 끝없이 저를 견제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소련에서는 모두가 저를 도와주려고 해서 연구가 참 편합니다. 획기적인 기법이 개발되어 벌써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하, 그걸 다 내가 배후조종했지만.

아무튼 젊은 과학자는 자기 감정을 숨기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얼굴에 하나하나 감정을 다 드러내는 것은 젊은이의 특권이 아닐까.

뭐, 이제 막 박사학위를 딴 젊은이에게 거의 일개 중대급의 인력을 지휘할 권한을 준 데다가 수백만 루블의 지원금까지 퍼부어 준다면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서기장이 미쳤느냐는 식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주 좋습니다. 조나스 소크(Jonas Salk) 박사! 필요한 모든 것은 소비에트 연방에 요청해 주시지요. 우리는 얼마든지 당신의 연구를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소아마비 백신의 개발자, 조나스 소크는 내 앞에서 과학자스러운 수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 시대 바이러스학의 권위자인 토마스 프랜시스 박사 밑에서 수학하고, 막 박사학위를 따고 온 그를 우리 소련에서 스카웃하여 연구소로 데려왔다.

마침 막 소련에서 개발된 체외 바이러스 배양기술을 통해, 소크의 소아마비 연구는 순식간에 진척을 보일 수 있었다.

“예! 감사합니다. 서기장 동지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이 소아마비라는 것은 증상을 보이지 않는 건강한 감염자를 통하여 전파되기에 예방이 극도로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 백신만 있다면…! 이것만 있다면 소아마비는 얼마든지 토벌 가능한 질병이 될 것입니다! 또….”

감히 서기장 앞에서 묻지도 않은 설명충 노릇을 하는 소크를 보며 사람들은 바들바들 공포에 질려 떨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흐뭇할 뿐이었다. 미래에는 워낙 널리 알려진 것이라, 이 시대의 새로운 발견으로 자랑하는 그가 새삼스레 다시 보였다.

“아, 그리고… 혹시 질문 하나 해도 괜찮겠습니까?”

“소크 박사, 상부에 문의할 내용이 있으면 공식적인 보고 라인을 거쳐….”

“얼마든지 좋습니다! 하나가 아니라 한 열두 개쯤 해도 좋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연구소장은 그의 무례를 보다못해 화들짝 놀랐지만, 나는 그저 기분이 좋았다. 소크는 처음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소련이 이 연구를 위해 막대한 돈을 후원하고 대단한 배려를 해 준 것은 분명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이 기술의 특허권은 누가 가지게 됩니까?”

“음?”

“소크 박사! 박사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소이까?”

“소장, 당신은 빠져 있게.”

소장은 아예 얼굴이 새파래져서 버럭 소리를 쳤지만 소크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마 그가 특허권에서 나오는 로열티 일부를 요구할 것이라 생각한 것일까?

“자, 나는 대학을 나오지 못했소. 그리고 사실 외국이라고는 별달리 가 본 적이 없소이다. 미국은 더더욱 가 보지 못했고. 그래서 모르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꿀꺽. 뜬금없는 장광설에 사람들은 침을 삼켰다. 갑자기 조용해진 연구실에서 부글부글 실험관이 끓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태양에도 특허를 매기곤 합니까? 기술의 주인은 인민 아니오이까?”

“하하하하하하하!”

정적 속에서 소크는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일어나 팔을 벌리자 그는 나를 꽉 껴안았다.

“제가 바라던 대답을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들려주십니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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