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
197화
“하하하하! 이곳이로군!”
말이 나온 김에 나는 정치국원들을 끌고 ‘현장 답사’를 해 보기 위해 모스크바 근교로 향했다.
거의 도시 하나 정도 면적이 온통 공사판인 이 지역은 소련의 미래상 그 자체를 상징했다. 숨을 깊게 들이쉬자 풋풋한 흙냄새로 가슴속이 깊이 들어차면서 호탕하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아! 미래여! 여기가 바로 우리 조국의 미래요. 자! 눈에 담아 두시게! 그리고 먼 훗날 이야기하시게. 내가 조국의 미래를 보았었노라고!”
모스크바는 오래된 도시였다. 몽골의 침략 이후 모스크바 대공국이 성장해 현재의 유럽 러시아 일대를 집어삼킨 것이니 수백 년은 된 고도(古都) 중의 고도였다.
그만큼 난개발도 심했고, 도시 내에 수많은 역사적 건물들이 존재했기에 새로 개발하는 것도 어려웠다.
정교회의 권위를 깎아내리기 위해서라지만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같은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건물을 스탈린은 폭파해 허물어 버리기도 했다. 새로운 건물에 대한 수요는 많았지만, 그럴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었다.
하지만 이제 모스크바 남서쪽에 신도시를 개발하면 그것도 옛말이 될 것이다.
‘황금의 고리’로 알려진 오래된 소도시들이 쭉 늘어서 있는 모스크바 북동쪽의 도시구역이나 구 모스크바 시가지와 다르게, 이곳은 철저히 계획도시로 추가적인 확장까지도 염두에 두고 기획되었다.
설계 과정에서도 가장 소련적인 가치를 담아 설계된 신도시의 핵심에는 이곳, 아직 허접한 가건물투성이지만 <세계 프롤레타리아 대학>이 있었다.
뜬금없이 최고권력자가 갑작스레 등판하자 공사현장에 있는 간부란 간부들이 모조리 달려 나와 나를 반겼다.
“서, 서기장 동지! 여기는 어쩐 일로….”
“아, 미래를 보러 왔네!”
“미… 래라 하심은?”
“바로 여기! 자네들이 짓고 있는 이곳이야말로 소련의 미래가 아니겠나?”
이제 막 초저녁이어서 어둑어둑했지만 건물의 창에는 한 곳도 불이 꺼진 곳이 없었다. 수백, 수천 명의 학생들이 아마 저 안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며 미래를 찾고 있을 것이다.
“쉿, 조용히들 하게. 학생들 공부하는데 방해될라.”
“예, 예! 알겠습니다.”
소련은 종전 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수천 명의 유학생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했다.
모스크바 대학을 확장해 유학생들을 위한 언어교육원을 만들고, 러시아어에 익숙지 않은 학생들을 위해 일단 1년간의 언어교육 코스를 거쳤다.
거의 모두가 본국에서는 빈농, 혹은 공장 노동자들의 자녀들이었고 교육의 기회를 붙잡자 그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매달렸다.
이 <세계 프롤레타리아 대학>에서는 그렇게 기초연수 과정을 거친 학생들이 각자 전공을 배정받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고국으로 돌아가면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출신인 이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로서 국가의 발전에 중책을 맡게 될 것이고.
조금 걸어 들어가자 이제 막 지어진 듯한 흐루숍카들이 수십 채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여기가 기숙사인가?”
“그렇습니다!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이곳의 흐루숍카를 최우선으로 지었습니다. 각 층별로 12개의 방이 있으며 성별과 학부에 따라 몇 개 동을 무리 지어 편성하였습니다.”
“하하하하, 그래 좋네! 아주 좋아!”
몇몇 학생들이 기지개를 켜며 걸어 다니다 이쪽 무리를 보고 흠칫 놀라는 듯했다. 그중에는 명백한 흑인이나 아시아인들이 적잖이 섞여 있었다.
코민테른이나 식민모국의 공산당 조직을 통해 동남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에서 수백 명의 유학생들이 선발되었다. 대부분 중등교육까지는 받았으나 집안 사정이 좋지 않거나 좌익 사상에 경도되었다는 이유로 고등교육은 언감생심인 젊은이들이었다.
이렇게 선발된 이들이 바로 이 세계 프롤레타리아 대학에 와서 공부하고 있었다. 의학, 공학, 자연과학, 교육학, 농학 등 본국에서 쓰일 수 있는 학문들을 이들은 전액 무료로, 용돈까지 받아 가면서 배웠다.
“한번 저쪽으로 가 보지!”
“예! 서기장 동지.”
고국으로 돌아가면 이들은 소중한 인재로서 해방된 조국에서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을 것이다.
고등교육이라는 것은 식민지 저개발국가에서는 꿈조차 꾸기 어려운 것. 세계 최고 선진국 중 하나인 소련에서 대학이나 그 이상의 교육을 받고 돌아온 이들은 아마 그 나라 기준 최고의 엘리트일 것이다.
물론 미국도 이와 비슷한 것을 하기는 했지만, 소련은 일단 선수를 치는 데에는 성공했다. 소위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대표되는 저개발 국가에 고등교육을 이식하는 사업을 미국은 1950년대부터 시작한 반면 우리는 10년은 빨리 들어간 것이다.
가서 인종차별을 겪고 미국에 대해 이를 갈게 되거나, 아니면 미국의 풍요를 동경하여 그냥 남는 사람이 많았던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비해 우리는 철저하게 이들을 돌려보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귀국하여 3년간 조국의 인민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을 조건으로….]
단순히 소련에 인재가 더 많이 필요한 것이었다면, 굳이 말도 잘 모르는 외국인을 데려다 가르칠 필요는 없었다.
굳이 계획도시를 짓고, 새로 최대의 대학까지 지어 가면서 <세계 프롤레타리아 대학>이라는 이름까지 붙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여길 졸업한 학생들이 귀국해 각국의 수뇌로 성장한다면….”
애초에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친숙해서 유학 대상으로 선발된 이들이 소련에서 무료로 교육을 받고 출세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들에게 소련은 과연 무엇이 될까?
아마 제3세계의 빛이자 진리이자 길이 되지 않을까?
근대화 과정에서 ‘산업화 세대’의 이데올로기는 한 사회를 결정했다. 한국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소련도 그랬다. 스탈린 시대 급속한 산업화를 겪으며 확장기에 젊은 나이로 출세한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소련을 주도해 나갔다.
여기 있는 흐루쇼프가 그랬고, 실제 역사에서 그 이후 서기장이 된 브레즈네프가 그랬다. 스탈린 시대 급성장을 겪은 이들은 스탈린주의를 중심으로 사고했고, 탈―스탈린주의를 시도한 흐루쇼프나 스탈린주의의 적자를 표방한 브레즈네프나 그것은 다를 바 없었다.
훨씬 젊은, 러시아가 아닌 ‘소련’에서 태어나 흐루쇼프의 해빙기 당시 대학 시절을 보낸 고르바초프가 등장해서야 소련은 스탈린주의를 보내 줄 수 있었다.
나는 내 손으로 개방정책까지 완수할 생각이었으니 아마 이들이 스탈린주의에 완전히 물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종주국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로군….”
“아! 이곳이 바로….”
실제 역사에서는 모스크바 국립대학을 비롯해 ‘스탈린의 7자매’라고 불릴 양식이 있었다. 웅장한 마천루를 중심으로 한 화려한 스타일로 지어진 7개의 건물들을 통칭하는 명칭이었지만, 여기는 모스크바 국립대학 대신 세계 프롤레타리아 대학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아직 착공 중이지만 그 윤곽만큼은 소련이 얼마나 이곳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허허, 이거 정말 거대하군요!”
“암! 그래야지. 이곳이야말로 모스크바 신도시의 상징이 될 것이네!”
240m의 마천루라면 한동안은 유럽 최고의 건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한 건물은 세계 프롤레타리아 대학의 본관 겸 의학부 건물 겸 대학병원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곧 완공되는 대로 모스크바 구시가지와 연결되는 직통 지하철 노선을 개통하면 모스크바며 전 소련의 환자들이 이곳으로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렇게 큰 의과대학을 짓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서기장 동지?”
“그렇습니다. 정원이… 3만 명까지 확장? 이 정도 규모라면 아마 단일 대학으로는 세계 최대일 것입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지. 그 정도는.”
바라보고 있으려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정원 3만 명이면 현대 한국 기준으로 대형 종합대학의 전체 정원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규모는 되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 역사에서 쿠바는 ‘라틴 아메리카 의과대학’(ELAM, Latin American School of Medicine)을 설립하며 2만 명 가까운 정원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쿠바 같은 소국이 그 정도가 가능하다면, 우리 소련은 그것보다 더 거대한 대학이 가능하지 않겠나? 아무튼 서기장이 까라면 까는 법. 이 거대한 건물 하나가 대학병원이 될 것이라는데 적잖은 간부들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하하하… 이러면 병을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잘 짚었군!”
이 역시 소련 체제의 선전이 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이만큼 거대하고 멋진 병원에서 사람들이 완전 무상으로 치료를 받는다!
또, 제3세계에 대한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도 필요했다. 이만한 병원이 오직 소련 환자만으로 운영될 필요는 없었다. 제3세계의 희귀병 환자들이 소련으로 와서 치료를 받고 돌아가 살아 있는 체제선전이 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혁명가의 좋은 공급원으로는 네 부류를 꼽았다. 학생, 교사, 법률가, 그리고 의사.
고등교육을 받아서 사회모순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춘 데다가, 그 사회모순의 현장을 매일같이 접하는 이들이 어찌 혁명에 투신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체 게바라, 살바도르 아옌데, 루쉰, 노먼 베쑨 같은 이들이 그 살아 있는 증인이었다.
<세계 프롤레타리아 대학> 의학부에서 의학을 배우고 고국으로 돌아간 이들이야말로 식민지 반봉건 반자본주의 사회에 떨어진 붉은 폭탄이 될 것이다.
의학부에 입학한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더 긴 서약서를 썼다.
[나는 이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을 내 나라의 가장 가난하고 가장 소외된 이들을 위하여 3년간 사용할 것을 서약하며….]
단순히 ‘조국의 인민들을 위한 봉사’가 아니었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소외된 이들을 위하여 일하라. 돈은 우리가 얼마든지 대줄 테니!
“돈이야 얼마든지 우리가 댈 수 있네. 미국이 원조해 주는 물품이 있는데 그 정도가 어려울까? 핵심은, 어떻게 해야 저들의 가슴에 우리가 접근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일세.”
미국은 아마 실제 역사의 방식을 비슷하게 따라갈 것이다.
압도적인 돈 폭탄으로 나라를 뒤덮어 버리는 것. 물론 여기서는 소련이 핵무기를 넘겨주는 대가로 그 해외원조로 갈 액수를 엄청나게 빨아먹은 덕분에 실제 역사처럼 돈지랄은 못 하겠지만…
하지만 반대로 이런 방법은 상당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깽판을 치고 다녔고, 미국은 ‘고마운 나라’인 동시에 ‘돈만 아는 천박한 인간들’이 되었다.
우리는 조금 다른 노선을 채택하기로 했다. 가장 가난한 구역에 병원과 학교를 짓고, 해당 국가의 유학생들을 배치해 가난한 학생들을 공짜로 먹이고 가르쳐서 지식인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었다.
“학생들이 이렇게 사랑스러워 보일 줄이야….”
밤새 불을 켜고 공부에 매진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언젠가는 이곳이야말로 전진하는 세계혁명의 심장이 되지 않을까. 황량한 공사판들 사이에서도 내 눈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는 캠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