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
196화
“서기장 동지, 이 영광을 어찌해야 할지….”
“하하하, 자네가 이 사업을 진행하는 데 수고한 게 아닌가? 그 정도 영광을 받을 가치는 있네.”
모스크바 외곽지역에는 전쟁 이후 새로이 지어지는 아파트들이 수백, 수천 채씩 올라가고 있었다.
공장에서 생산된 아파트 부품들은 대형 트럭에 실려 대도시 근교의 공사장으로 실려 갔고, 어느새 숙련된 건설노동자들은 척척 하루에도 몇 채씩의 아파트를 조립해 냈다.
이 아파트들의 공식 명칭은 ‘흐루숍카’로 정해졌다.
소련의 재건 및 인민 복지향상을 위한 계획 수립에 다대한 공을 세운 흐루쇼프를 기려 이름을 붙였다! 라고 공표하기도 했고, 실제로 흐루쇼프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남들이 ‘스탈린카’라고 부르자는 게 싫었을 뿐이다. 대량 양산한 데다가 불가피하게 질적으로 아주 뛰어나지는 못한데 그것에 왜 스탈린 이름을 붙이나? 그래서 흐루쇼프에게 짬 처리로 던져 버렸지만 흐루쇼프는 눈치 없이 감격한 것 같았다.
“민스크와 스몰렌스크, 그리고 르보프 같은 도시들 역시 우선적으로 재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기장 동지께서 지시하신 계획도시안을 세 도시에 다르게 적용하여….”
“흐음, 그러한가?”
모스크바까지는 전쟁의 참화가 미치지 않았지만, 서부의 대도시들은 독일군에게 무참히 파괴당했었다.
이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수만 채의 흐루숍카가 공급될 예정이었다. 아니, 그냥 도시를 기틀부터 재설계할 예정이었다.
이미 거의 1천 년 전부터 생겨나 몇백 년간 무분별한 확장, 스프롤링(sprawling)을 겪은 도시들은 상당히 현대적 생활에 맞지 않게 구성되어 있었다.
좁은 도로, 빙빙 꼬인 철도, 저층 건물 위주로 지어져 높이기 어려운 밀도 등 ‘현대 도시’와는 백만 광년쯤 떨어진 그런 도시들을 언젠가는 재개발해야 했다.
소련 지도부 역시 도시의 장점과 개발의 필요성은 알고 있었으나 돈이 없었고, 도시를 허물어 버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둘 다 가능해졌다.
그래서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가를 배경으로 ‘심시티’를 하고 있었다.
“오… 이것이 그 신도시 계획안입니까?”
도시를 구성하는 것은 보통 복잡한 작업이 아니었다. 도시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뒤범벅되어 있었기에.
일단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주거구역이 필요했다. 이들이 생필품을 공급받을 편의지구나 공원 같은 위락시설이 필요했고, 또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일할 공장 등 생산시설이 필요했다.
이것을 잇는 도로와 도시철도 등 교통편을 배치하고, 도시에서 생산된 것이 밖으로 흘러나갈 광역철도 역시 계획에 짜 넣어야 했다. 발전소, 저수지 등 도시 생활에 필수적인 물과 전기를 공급하고 농산물을 공급할 배후지도 필요했고.
소련은 역시 지독하게 소련다운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소련의 새 도시들을 만들어 낼 템플릿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각종 수학자들과 도시학자들,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동원해 몇 가지의 표준 도시계획안을 구성한 이후 이것을 복제해 전 국토에 박아 넣는 것이다.
그리고 내 명령에 따라 몇 가지 현대적, 아니 미래적 개량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도로가 필요 이상으로 넓지 않습니까? 이 정도로 넓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점은 서기장 동지께서 특별히 지시하신 사항이라….”
간부 하나가 질문을 하자 흐루쇼프는 난처해하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다들 흠칫 놀라는 듯했지만 나는 굳이 이들을 여기서까지 찍어 누를 생각은 없었다.
“일단 도시가 추가적으로 확장될 경우를 대비하여야 할 것이오. 향후 몇십 년간 인구증가 및 도시화를 고려하면 도시는 당연히 확장될 것이지 않겠소? 그럴 때 도로가 그 인구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좁다면 어찌할 것이오? 건물을 모조리 뜯어낼 수도 없고.”
“아… 역시 서기장 동지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소련은 전 가정에 자동차를 보급할 것이오! 자동차 공업은 인민의 부를 상징할뿐더러, 공학의 정수이며 우리 소련의 국력을 전 세계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오.”
두둥! 내가 선언하자 몇몇 눈치 빠른 정치국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차! 자동차야말로 현대 공학기술의 응집체이자, 그것을 인민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장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동차라는 것을 군대에서 처음 접했을 소련에서 그걸 모든 가정에 보급할 것이라는 내 선언은 충격적일 법도 했지만, 고위급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상 재건의 최고 전문가가 된 흐루쇼프는 내 선언을 사람들에게 해설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우리 소련의 중공업 기반 생산구조를 책임질 산업입니다. 건설, 화학공업과 함께 말이지요. 어쩌면 이 두 개와 자동차가 세발자전거처럼 중공업을 지탱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
“철강, 유리, 섬유, 정밀가공 및 제어계측, 엔진, 고무와 연료를 위한 화학공업 등 현대의 과학기술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기술력의 정수가 바로 자동차입니다. 이 자동차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강대국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다. 소위 말하는 ‘열강’ 국가, 미일독프영+이탈리아 정도를 제외하면 자국의 기술력으로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았다.
끽해야 중국이나 인도 같은 인구 측면에서의 대국이나, 아니면 북유럽의 강소국들, 그리고 한국 정도?
자동차산업 없이는 그에 딸린 수많은 산업들을 함께 발전시킬 수 없었다. 소련 같은 대국이라면 반드시 자동차 공업을 발전시켜 국가 중심산업으로 삼아야 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군비경쟁에 돈을 몰빵하느라 허접한 차들이나 찍어 냈지만.
“몰로토프, 자네도 알고 있겠지?”
“아! 아, 그렇습니다. 이를 위해 사회주의 형제국들 간 협력체계를 발전시키기로 하였습니다.”
사회주의 ‘형제국’(위성국의 다른 이름이었다)들 역시 나름대로 발전된 공업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동차 생산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공업시설을 철거당한 구독일 4국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이들과 함께 합작해 자동차를 공동개발 및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자네들도 알다시피… 굳이 우리가 쓸데없이 자동차의 품종만 늘릴 필요는 없지 않나? 저들의 발전된 기술력을 배워 오고, 대량생산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합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네.”
그리고 여기에는 하나 더, 소련 측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
자동차란 아까 말했던 것처럼 그 나라 과학기술의 총화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소련의 주도하에 소련 스타일로 만든다고 하면 한 국가의 과학기술력을 소련의 스탠다드 하에 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래도 큰형님 국가인 소련을 중심으로 연구소를 설립하고 각국의 과학자며 기술자들이 와서 소련인들과 연구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과연 이들은 익숙한 소련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받아들일까? 아니면 비효율을 감수하고 독자적인 새로운 규격을 만들어 내고자 할까?
소련은 굳이 위성국들에 하드파워를 과시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과시하는 것은 위험했다. 차라리 이와 같은 소프트파워를 각국에 흘려 넣어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나았다.
한국에서도 그랬고,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련의 지도는 ‘괜찮아야’ 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게! 우리는 저들의 기술력을 무상이나 다름없는 가격에 합작회사를 통하여 양도받고, 적절한 교환가에 우리가 만든 기계를 수출하여 필요로 하는 물품을 가져올 수 있겠지. 그러면서도 우리의 ‘관대함’을 과시할 수 있지 않겠나?”
실제 역사의 미국이야말로 이러한 전략을 가장 잘 쓰는 국가였다.
수많은 사람이 미국인의 생활을 동경했고, 미국식 패션과 미국식 식생활과 미국 문화를 즐겼다. 전 세계에 주둔한 미군은 코카콜라를 마시고 맥도날드를 먹고 초콜릿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이것은 그대로 사람들에게 ‘미국’의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우리도 비슷한 것을 할 작정이었다.
소련이 지은 소련식 아파트, 소련과 개발해 쏟아져 들어오는 소련 자동차! 소련 덕에 싼값에 패밀리카를 마련한 가구들이 과연 소련을 뭐라고 생각하게 될까?
여기에 맥도날드의 대항마로 마련한 ‘KFC’(칼리닌 프라이드 치킨)와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을 뒤덮고 자라는 신품종의 밀로 키운 소련의 먹거리들까지!
미국은 철저하게 달러를 받아 가지만, 우리는 딱히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해볼 만했다. 그리고 군사적인 확장은 경계심을 사겠지만, 이런 비군사적인 확장을 누가 어찌하겠는가?
“우리… 고마운 친구 독일인들이 참 많은 공을 세우고 있네. 그렇지 않나?”
“하하하하하,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그리고 소련이 이렇게 미국과 문화경쟁을 계획하기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은 독일인들의 공이 적지 않았다.
우리 요원들이 체포해서 데려온 독일 기술자들은 소련 기술자들과 함께 ‘통조림’ 당하며 선진 기술을 뱉어내고 있었다. 독일과 이탈리아 등지에서 뜯어온 자동차 생산 설비들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우리 기술자들은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나가는 기분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 입장에서도 선진기술의 유입 통로로 미국이 아니라 새로운 길이 생긴 것이다!
독일 기술자들은 우리가 나쁘지 않은 처우를 약속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대우하자 자기가 아는 내용들을 술술 풀어 놓았다.
“특히… 군사기계 분야에서 독일이 실험한 다양한 자료들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파시스트들은 참으로 별별 기괴한 것들을 다 만들었더군요!”
“그런가? 아, 그… 코룔로프 박사는 어떤가?”
“예! 폰 브라운이라는 자의 자료를 받아 보고 대단한 감명을 표했습니다. 이대로라면 2단계 개발목표를 몇 년 내에 이뤄내는 것도 꿈이 아니라고….”
역시! 소련이 낳은 최고의 천재 중 하나인 코룔로프의 역량은 대단했다. 아직 미국은 나사(NASA, 미 항공우주국)를 설립하지도 않은 상태였고, 우주개발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는 상태였다.
이제 겨우 맨해튼 프로젝트를 폐기하고 우리가 내준 핵폭탄을 요모조모 뜯어보며 핵무기 개발을 익히고 있을 텐데, 우리는 성큼성큼 앞서가는 것이다.
중앙집권 국가의 장점이자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자원의 몰빵’을 받은 코룔로프는 우주개발 테크를 쭉쭉 올려 나가고 있었고, 이것이야말로 소련 과학기술의 승리를 상징하노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 인공위성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코룔로프 설계국에서는 향후 5년 이내 지구궤도에 ‘인공위성’을 올려놓을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내용인지 아는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
이제 우주 공간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곳이 아니게 된다. 전인미답의 영역이던 곳에 소련의 영토라 할 만한 기계장치가 휘젓고 다니게 된다면? 스푸트니크 쇼크 정도는 아마 약과 취급될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의 머리 좋은 학생들은 소련을 과학기술의 종주국으로 생각하여 동경할 것이고.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