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193화
예상외의 돌풍을 일으키며 경선 초기 엄청난 인기를 끌어모은 맥아더―매카시, 맥맥 듀오는 예상 밖으로 급격히 인기를 잃었다.
“빨갱이들을 잡아야 합니다! 빨갱이들! 빨갱이들!”
입만 열면 빨갱이를 찾는 매카시의 극단성에 질린 사람들은 좀 더 ‘온건한’ 대안을 찾았다.
“맥아더 후보님, 그래서 향후 미국의 경제에 대해서 어떻게 이끌어 나가실지….”
“기업이 자유롭게 영리활동을 하게 두면 됩니다. 괜히 이렇다 저렇게 떠드는 노조, 빨갱이, 불순분자들은 내 군대를 얼마든지 투입하겠소!”
“아… 방금 하신 그 말씀, 농담이 아니고 진심이십니까?”
그리고 맥아더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맥아더가 왜 필리핀으로 쫓겨났는지를 생각해 낼 수 있었다.
FDR의 전임인 후버 대통령 시절, 대공황으로 생계가 막막해진 퇴역 군인들이 생계연금의 조기지급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Bonus Army) 맥아더는 그들을 폭도로 몰아 유혈진압했다.
시위대의 95%는 진짜 퇴역병 혹은 그 가족이었으나, 맥아더는 10%만이 ‘진짜’ 시위대며 나머지는 전문 시위꾼, 빨갱이, 혹은 선동가들이라고 주장하며 최루탄과 전차로 시위를 진압했다.
맥아더의 무리한 돌격명령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해병들로부터 시작해 군인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평판이 술술 퍼져 나가더니, 결국 맥맥 듀오의 인기는 점점 하향곡선을 그렸다.
반면, 루즈벨트와 월리스의 ‘친소용공’ 노선에 반기를 든 남부 (구) 민주당원들과 공화당 온건파의 거두인 토마스 듀이는 점점 인기가 오르고 있었다.
“저는 미합중국 국회에 퇴역군인 원호법을 정식으로 제출하겠습니다! 우리 위대한 미국의 참전용사들에게 연금, 주택, 의료보험을 제공하고 또 그들이 대학에 갈 때는 미국 연방정부의 보조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합중국 만세! 미군 만세!”
“와아아아! 듀이! 듀이! 듀이!”
루즈벨트 정부 역시 보너스 군대 사건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재정압박에 시달리던 정부는 연금의 조기지급 대신 뉴 딜 정책으로 만들어진 공공근로 일자리를 대신 제시했고 퇴역군인들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허리케인이 지역을 강타하는 바람에 수백 명이 결국 죽고 말았고, 이는 루즈벨트 정부의 지지도에도 타격을 입혔다.
이 틈을 노려 듀이와 트루먼은 손을 잡고 대선의 스윙보터로 떠오른 수십, 수백만의 참전용사들을 노리는 공약을 몇 개나 내놓았다.
결국 공화당의 거물들은 손을 잡고 다함께 듀이를 지지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사퇴할 것을 선언하며… 토마스 듀이 후보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를 밝힙니다.”
“경선을 치르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았고, 저보다 더 적절한 후보가 있기에 그분의 대선가도에 한 손 보태고자 합니다. 듀이를 대통령으로!”
급격하게 사태가 반전되며 지지율이 이탈하자 맥맥 듀오는 다른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방금 퇴역한 군인과 초선의원의 조합으로는 워싱턴의 노련한 정치인들에게 놀아날 뿐이었다.
“공화당은 이리하여 토마스 듀이 씨를 미합중국 대통령 후보로, 해리 트루먼 씨를 미합중국 부통령 후보로 선출합니다!”
이변에 이변을 일으키며, 결국 루즈벨트와 맞상대할 공화당의 후보로는 듀이가 선출되었다. 트루먼 및 민주당을 탈당한 남부파의 손을 잡고 만세를 부르는 그 앞에서 맥아더는 질겅질겅 물고 있던 파이프를 세게 깨물었다.
* * *
“공화당의 지지율이 심상찮습니다, 각하. 맥아더의 선전은 우리 지지율을 깎아 먹는 효과는 있었지만, 반대로 네거티브에 염증을 낸 사람도 있었습니다만… 듀이는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서도 맥아더의 선전 효과에 제대로 수혜를 입었습니다.”
“….”
“또한, 4선만은 안 된다, 또 하나의 독재자를 탄생시킬 뿐이다 같은 의견도 있었습니다. 남부 표가 다수 이탈하기도 했고….”
“트루먼, 그 개새끼!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사실 실세는 남부 민주당의 중진들이고 트루먼은 그 꼭두각시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지만 루즈벨트는 여전히 트루먼에게 이골이 나 있었다.
대국을 모르고 자꾸 반소노선으로 일관하는 자들이라며 쯧쯧 혀를 찬 그는 심신이 모두 피로한지 깊게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 모습을 보며 민주당의 각료들은 일말의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진짜 괜찮을까…?’
민주당의 인기 하락에는 몇 가지 원인이 더 있었다.
먼저 루즈벨트의 전례 없는 4선 도전. 초대 대통령 워싱턴 이래로 모든 대통령들은 인기에 상관없이 재선에서 더 이상의 도전을 포기했다.
비록 명문화된 헌법은 아니었으나 관례적으로 굳어졌던 상황에서 루즈벨트는 3선에 성공했고, 이는 정적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그때는 유럽의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도 있었지만, 이제 전쟁이 끝났으니 물러나라는 공격에는 별다르게 할 말이 없었다.
거기에 애써 부정하는 본인 빼고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건강 문제가 또 있었다.
“루즈벨트? 내가 그를 대통령으로 지지한다 해도 과연 루즈벨트 씨가 대통령을 몇 년이나 더 할 수 있겠습니까?”
<루즈벨트를 찍으면 월리스가 대통령이 된다!>
건강 문제는 계속 발목을 잡았다. 차라리 대통령으로서 정력적인 대외활동 모습을 보여 줄 수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실제로도 건강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에 답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루즈벨트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백악관 관계자들은 애써 그것을 대중으로부터 숨기려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루즈벨트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는 못했다.
하지만 늙고 지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는 벗길 수 없었다. 야전 사령관으로 전장에서 구른 터프한 장군 이미지의 맥아더나,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젊고 청렴하단 이미지의 듀이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루즈벨트가 죽으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부통령 월리스. 루즈벨트는 본인이 4선을 꽉 채울 것이라 생각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장 정책적으로 가까운 월리스를 부통령 자리에 두고 실무를 맡기려 했지만, 국민들의 인식은 달랐다.
“제기랄, 그래도 아직 격차가 좁혀진 정도지. 나는 이 나라를 12년을 이끌어 왔네! 국민들도 그걸 알고 있고.”
“그렇습니다. 당선 가능성은… 민주당 측이 훨씬 유리합니다.”
여론조사에서는 여전히 루즈벨트가 유리했다. 상하원 역시 조사대로라면 민주당이 장악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건 사실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민주당이 믿고 있는 구석은 하나 더 있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월리스를 보며 루즈벨트는 안심하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래… 그럼 된 거야….”
* * *
시간은 지나고 운명의 날이 점점 다가올 무렵 하나의 거대한 충격이 워싱턴 정계를 강타했다.
<맥아더, 경선에 불복하고 독자 출마 선언!>
<공화당의 분열? 보수파 14인의 맥아더 지지!>
<듀이, 대선 가도에 먹구름. 웃고 있는 크렘린?>
맥아더는 결국 공화당 후보 지명에 불복하여 독자 출마를 선언했다. 여전히 듀이와 루즈벨트 모두를 고깝게 보거나, 강경 반공 성향인 의원들이 여럿 맥아더를 지지했다.
“맥아더 장군이야말로 이 나라를 적색 마수로부터 구원할 인물입니다!”
“맥아더 만세! 미합중국 만세!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그의 인기가 떨어졌다 해서 인기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패배가 미합중국의 뒤편에서 암약하며 사보타주를 저지르는 빨갱이들 때문이라 생각한 맥아더의 지지자들은 더 단단하게 뭉치기 시작했다.
“맥아더 장군이 경선에서 패배한 것은 미국 정부에 숨어 있는 빨갱이들 때문이다!”
“빨갱이들이 나를 도청하고 있어! 내 귀에 도청장치를 숨겨 놓았단 말이야!”
“몰아내라 빨갱이! 미국의 자유를 수호하자!”
“Oh, say can you see~”
수만 명의 맥아더 지지자들이 각 대도시에서 집회를 시작하자 또 그것을 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때를 노려 황색 언론들은 각종 음해성 기사를 쏟아 놓았다.
[크렘린의 밀정, 백악관으로 향하다?]
[국무성 내부 스파이 보고서: 매카시가 옳았다!]
털이 부숭부숭 난 가슴팍을 깐 시뻘건 콧수염쟁이 악마가 백악관에 걸터앉아 낄낄대는 만평이 전미를 강타했다.
누가 보아도 명백히 스탈린을 그린 그 만평의 아래에는 짤막한 코멘트가 달려 있었다.
<맥아더냐, 스탈린이냐?>
말인즉슨 맥아더 이외의 다른 후보를 뽑으면 사실상 스탈린을 선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무례한 코멘트나 다름없었다.
주미 소련대사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분노 섞인 항의로 해당 만평을 게재한 언론사는 결국 정정보도를 내야 했지만, 그 정정보도에서도 비아냥을 빼지는 못했다.
<저희 언론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하여 만평에 대한 정정보도를 게재합니다. 이번 대선에서 맥아더와 경쟁하는 후보는 스탈린이 아니라 루즈벨트―월리스, 듀이―트루먼이지만 저희 만화가가 그들과 스탈린을 구분하지 못한 관계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에 깊이 사과드립니다.>
“하하하하! 이것 좀 보라고!”
“허허, 나라에 진짜 빨갱이들이 숨어 있나?”
요동치는 맥아더의 지지율,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분열로 확 꺾인 듀이의 지지율, 그리고 여전히 높은 상황이지만 끄트머리가 위를 볼 줄 모르는 FDR의 지지율.
그런 폭풍 속에서 결국 운명의 날이 도래했다.
* * *
“하, 이게 말이 되나?”
“…미국의 선거제도가 정상적이지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우리에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보고서에는 미국 대선 및 총선의 선거결과가 쓰여 있었다.
미국의 대선은 독특하게도 각 주의 선거인단 수로 승패를 갈랐다. 해당 주에서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인구비례로 정해지는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독점했다.
즉 51:49로 선거인단 수십 석을 싹쓸이할 수도 있는가 하면 99% 득표를 해도 선거인단을 3석밖에 얻지 못할 수도 있었다.
루즈벨트는 북동부 주에서는 듀이에게, 남부에서는 맥아더에게 대거 표를 잃고, 승리하더라도 가까스로 승리한 곳이 많았다.
물론 선거인단 수에서 약간 우세했기에 결국 승리를 쟁취하기는 했지만, 그의 득표는 선거인단 기준 2위를 차지한 맥아더보다 더 적었다.
“공화당이 분열하지 않았더라면 루즈벨트가 패배할 수도 있었겠군….”
“반대로 분열로 인한 유권자 결집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루즈벨트는 네 번의 대선을 모두 여유롭게 승리했다. 4선째에서는 격차가 줄어들기는 했었지만.
하지만 이번에는 적진의 분열이라는 대형 호재를 겪고서도 간신히 승리하는 데 그쳤다. 맥아더는 아예 목소리 높여 듀이와 루즈벨트를 모두 비난하고 있었고, 공화당 주류는 그들을 저지하지도 못하고 입을 꾹 닫은 채 원론적인 이야기들만 늘어놓았다.
“…일단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해 보지.”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여전히 미국은 우리에게 줄 게 많았다. 핵무기를 3개 넘겨주고 땅겨오기로 한 미국의 원조 액수는 결국 300억 달러로 정해졌다. 물론 루즈벨트가 의회의 인가를 받을 수 있을 때지만….
“우리도 선물 하나 정도는 돌려줘야 하지 않겠나?”
신규 대통령을 위한 축하 파티를 한번 해야 할 것이다.
전범들의 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