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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91화 (191/300)

# 191

191화

1천만이 넘는 중국인들이 죽은 8년간의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전쟁이 몰아칠 때보다도 전쟁이 끝난 지금, 더욱 더 살벌한 기류가 중국 대륙에서는 불어오려 하고 있었다.

“우리 공산당은 최소한 우리가 확보한 영역들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이는 당연한 상식 아니겠습니까?”

“….”

뻔뻔하게 번드레한 개소리를 늘어놓는 모택동을 보며 장개석은 이를 갈았다. 모택동은 얼굴이 더 번들번들해져 있었다.

‘잘도 제 세상이 될 거라고 처먹고 다녔군.’

총통부의 숙수들을 시켜 만들어 낸 고급 요리들을 꾸역꾸역 입 안으로 욱여넣으면서도 모택동은 염치없이 굴고 있었다. 원래 그가 뻔뻔한 것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8년간의 전쟁에서 중화민국의 국민혁명군이 일본에 맞서 싸우는 동안 공산 비적들은 무엇을 했던가! 후방에서 제 세력을 불리고, 어리석은 민중을 선동해 비적에 합류하도록 했을 뿐이지.

하지만 지금 당장 모택동을 총살하고 500만 국민혁명군을 끌고 가서 비적 떼를 모조리 토벌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장개석은 모택동의 등 뒤에 군림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스탈린, 독일을 무릎 꿇리고 유럽을 제 손안에 넣은 세계 최강의 권력자. 모택동은 그자에 비하면 그저 한갓 꼭두각시나 다름없었다.

스탈린의 군대는 중국군 수백만이 달려들어도 8년간 당해내지 못하던 일본 관동군을 단 몇 주 만에 박살 내버렸고 북경, 천진, 하얼빈, 장춘 등의 주요 도시들을 해방시켰다.

“산동, 하북, 산서, 섬서 그리고 감숙의 5개 성에서는 공산당 주도하의 연립 정부를 세우고, 나머지 성들에서는 국민당의 장 총통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지요. 사실 이것만 해도 많이 양보한 것 아닙니까?”

“…요구조건이나 더 말씀해 보시오.”

“또한, 공산당 휘하 독자적인 군대를 보유할 권한도 인정받고자 합니다. 우리는 상황이 악화될 때를 대비하여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모택동은 그렇게 끊임없이 자기네들의 요구사항을 읊어 내려갔다.

중국 대륙에서의‘외국군’, 즉 미군 철수. 공산당의 독자적 영역과 군대 보유. 전 인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민주적인 선거를 하지만 아무튼 공산당 점거 영역에서는 공산당이 주도하는 정치체제를 설립하겠다.

대놓고 그 구역에서는 ‘부정선거’를 저지르겠다는 모택동의 선언 아닌 선언에 장개석은 점점 기가 차기 시작했다.

“공산당은 하나의 중국이 아니라 여러 개로 쪼개진 중국을 원하는 거요? 미군의 철수? 그렇다면 동북 3성에 주둔한 소련군은 어찌하시겠소?”

“그것은 만주에서 자율적으로 소비에트 공화국을 설립한 만주 공산당과 협의하셔야 할 문제지 여기서 말씀하신다고 될 일이 아닌 듯합니다. 소련군의 철수는 저희가 소련에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빌어먹을 자라 새끼, 꼭두각시 새끼….’

소련은 아예 만주 땅을 점거하고 괴뢰정권을 세운 후, 그 땅에 있는 중국 국민의 재산을 뜯어 가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중국인의 피고름을 짜내어 세운 수많은 시설들이 고스란히 소련 손에 넘어가는 것을 장개석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미국은 계속 합의를 종용했지만, 비적 떼들과의 합의며 평화라니! 저 들개들은 국민당이 힘을 잃는 순간 마구 물어뜯으려 달려들 것이 아닌가?

빠드드득… 그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모택동은 제 상황에 취한 듯 마구 말을 늘어놓다가 흠칫하는 듯했지만, 장개석은 익숙해진 미소를 지었다.

“계속, 계속 이야기해 보시오.”

* * *

두 지도자가 미래의 중국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구름 위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는 하여도, 지방에서는 총질이 멈추지 않았다.

“죽어라! 친일파 새끼!”

탕! 탕! 국민당의 간부 하나가 입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가슴에 두 발이 적중한 것으로 보아 살아남기 어려웠다.

각지에서는 적색테러와 백색테러가 횡행했다.

적색테러의 주요 레토릭은 항상 ‘친일파’, ‘민중의 피고름을 빨아먹는 약탈자’였다.

“이자는 일제와 협력하여 중국인 애국지사들을 팔아넘긴 주제에 국민당에 빌붙어 비굴한 목숨을 영위해 왔소. 인민들이여, 국민당과 그에 협력하는 개자식들을 타도합시다!”

“잡아! 저 빨갱이 새끼!”

“중국 공산당 만세! 만세!”

피를 뿜으며 쓰러진 남자의 등 뒤에 몇 발의 납탄을 더 박아 준 청년은 만세를 외쳤다.

“만세! 만…! 으아악!”

달려온 경찰은 경찰봉으로 청년의 머리통을 세게 후려치고, 혼절한 청년의 손목에 굵은 수갑을 채워 끌어내었다.

“이자는 악질 공산비적이요! 지금까지 하는 말은 모조리 헛소리이니 국민 여러분들은 개의치 마시고 생업에 종사하십시오.”

“….”

진실일까? 아닐까?

아무도 알 수는 없었다.

국민당은 어쨌건 이 광대한 중국 대륙을 지배하기 위해 각지의 군벌, 토호들과 협력해야 했다.

그 토호들이 예전에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엄청나게 유명한 것이 아니라면야 알려 하지도 않았다.

일제가 피부 위의 적이라면, 공산주의는 심장에 틀어박힌 기생충이나 다름없었으니. 공산주의를 토벌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거짓말쟁이 자라 새끼… 이분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데….”

경찰은 혼절한 청년을 질질 끌고 가며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공산당이 항상 ‘대의’를 위해서만 행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순진한 외지 청년들이나, 혹은 해당인에게 원한이 있는 이들을 사주하여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명목이야 붙이기 나름. 이 혼란상에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 알아내는 것만 해도 힘든 일이었다. 공산당이 적절하게 사건을 잘 조작해 혐의를 붙인다면 인민을 위한 충의에 불타는 젊은 청년들은 권총이나 폭탄을 집어 들곤 했다.

“푸헙, 푸흐흐헙! 흐읍….”

“말해라, 이 새끼야. 좋은 말 할 때. 어? 누가 시켰어!”

“흐허허허… 누가 시켰긴… 중국 인민들과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결이 시켰지.”

“안 되겠네. 계속해!”

부르르르르… 찬물이 넘실거리는 욕탕에 청년의 머리를 박자 물거품이 바글바글 솟아올랐다.

국민당의 경찰들이라고 부패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암살의 배후, 즉 공산당 조직으로 연결되는 끈을 잡기 위해서 이들은 암살자를 고문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점점 의식이 흐려져 가는 와중에도 끝까지 고문경관들을 비웃는 청년은 스스로의 행동에 철저한 확신을 가진 듯했다.

“하… 이 새끼 독하네.”

“그러게요. 다음에는….”

물론 국민당 정보경찰들에게는 수많은 수단이 있었다. 항일전쟁에서 일제의 밀정들을 잡아 족치던 수법들을 이제 공산당의 밀정을 향해 돌렸을 뿐.

물고문, 전기고문 같은 ‘기본적인’ 수법들부터 시작해 일제와의 싸움에서 개발해 낸 각종 신종 수법들까지.

정보경찰들은 기어이 그 모든 방식들을 써먹어서라도 공산당의 암살단을 색출하고자 했다.

“헉, 헉, 헉… 이 개새끼, 지금 숨 쉬고 있나 봐라.”

“숨… 쉽니다. 쉬네요.”

“그래? 그럼 일단 의사 불러서 응급처치나 시키고 다시 하자.”

이들이 암살자들을 이렇게 참혹하게 고문하는 데에는 다 목적이 있었다.

공산당은 집요하게 장개석의 칼인 정보경찰, ‘남의사’를 노렸다.

아까 암살당한 자만 하더라도 겉으로는 경찰 고위직이었지만 실제로는 남의사의 고급 간부였고, 그 정체가 비밀에 부쳐져 있었으나 공산당은 또 그를 어떻게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다음 목표는 자기가 아닐까? 남의사 요원들, 정보경찰 인사들은 그것을 제일 두려워했다. 자기 목숨을 노리러 오는 자들을 최대한 빨리 뿌리 뽑아야 두 발을 뻗고 잘 수 있을 텐데.

* * *

단순히 저격이나 척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공산당은 모택동의 노선대로 인민 속으로, 중국의 농촌이라는 거대한 바닷속으로 숨어들었다. 하늘에서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바닷속으로는 잠수함이 다니는 시대에도 아직도 수백, 수천 년 전의 생활을 고수하는 수억 명의 농민들 사이로.

“공산당은 여러분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줄 것입니다. 왜 저 지주는 여러분들이 뼈 빠지게 일하는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먹으면서, 여러분들이 수확한 것의 절반을 가져갑니까?”

“그거야…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지금은 그 시대가 아니지요. 새 시대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등골이 휘고 골수에 사무치도록 일하는 여러분이야말로 그 시대의 주인입니다!”

어두침침한 호롱불 아래에서, 앳된 청년이 새카만 얼굴의 소작농들에게 열변을 토했다.

원래라면 그런 말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살던 대로 살면 그만이지라며 잠이나 자러 갔을 소작농들은 이번만큼은 청년의 말을 듣고 있었다.

“허먼… 우리가 진짜 수확한 것을 모두 가져간단 말인가?”

“물론이지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저런 지주들이 아편이나 피우면서 헤롱헤롱거릴 돈으로 화씨 아저씨 어머니 같은 분 약값을 하고, 진씨 아저씨네 애들은 학교에 다니게 될 겁니다.”

“허허… 장씨가 참 아들은 잘 키웠어?”

도시에서 학교에 다니다 혁명사상에 빠져든 청년들은 돌아와 자기 고향에서 혁명의 불씨를 지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헛소리냐며 듣지 않던 이들도 모든 농민의 숙원인 땅을 분배해 준다는 데에서는 혹할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한번 들어 보시지요.”

[중국의 소리에서 알려 드립니다….]

청년은 묵직한 가방에서 자그마한 소련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꺼내 들었다. 사람들은 신기한 외지 문물에 눈을 휘둥그레하게 뜨고 바라보았다.

워낙 산골에 있는지라 전파도 잘 안 잡히고, 음질도 불량했지만 그래도 간신히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허어… 진짜 우리 같은 무지렁뱅이에게도 땅을 준다는 말인가?”

“예!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아저씨들이 왜 무지렁뱅이에요.”

“에이, 장삼아. 너는 학교에 다녔지만 우리들은 제 이름 석 자도 쓸 줄 모른다 이 녀석아. 어데서 배우기는 했는데 다 잊어버렸네.”

“대신 농사짓는 방법을 아시잖아요, 가장 위대한 기술.”

청년의 목소리에는 일종의 종교적인 열정마저 엿보일 지경이었다.

농민들은 낮게 웃음을 터트리거나, 혹은 나름 심각하게 청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세상에 저 잘났다는 사람들, 어디 박사며 어디 교수며 하는 작자들이 아저씨들 같은 사람이 없으면 제 밥이나 해 먹고 살겠어요? 박사가 없어도 살 수 있고 교수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농민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농사야말로 천하의 큰 근본이고, 농민이야말로 이 나라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그, 그게 그렇게 되나? 하하하하하!”

“장삼이 너 말 참 잘한다!”

모택동 동지의 어록에 쓰인 내용을 이야기했을 뿐이지만 한 번도 배운 사람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 본 적 없는 순박한 농민들은 그저 감동할 뿐이었다.

“자, 아저씨들. 저는 이걸 여기 두고 갈게요. 이걸 이렇게, 이렇게 하면 켜고 끌 수 있고….”

“으음… 알겠다.”

“한번 들어 보세요! 정말 유익한 말들이 많이 나와요.”

“암 그럼! 우리 장삼이가 하라는데 꼭 해야지.”

장개석이 이를 알았더라면 소련이 공산당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물적 증거라면서 펄펄 날뛰었겠지만, 그의 눈길조차도 시골 마을의 라디오까지 잡아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포탄의 근접신관 부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소련이 개발한 트랜지스터는 라디오 부품이 되어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제3세계의 시골로 퍼져 나갔다.

[인도의 소리에서 알려드립니다….]

[오늘 자 중국의 소리에서는 북경에서 발생한….]

[이집트의 소리는 내일 같은 시각에 또다시 방송됩니다.]

소련의 소리가 세계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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