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190화
영국령 인도는 거대했다.
‘인도 제국’은 버마,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현대의 아프가니스탄 일부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땅이었다. 4억 명에 달하는 인구는 소련을 제외한 유럽 대륙의 인구보다 많고, 45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광대한 면적은 역시 소련을 제외한 유럽 대륙보다 넓었다.
이 거대한 땅을 지배하기 위해 영국은 갖은 술수를 사용했다. 민족, 종교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한편 막대한 자본의 힘을 투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의 힘은 점점 쇠락했다. 1차 대전을 겪으며 휘청인 영국의 국력은 결국 두 번째 세계대전에서 숙적인 독일에게 본토가 짓밟히며 확 꺾이고 말았다.
“국민회의를 석방하라! 석방하라!”
“영국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그 틈을 노려, 간디와 네루가 이끄는 인도 국민회의는 1942년 ‘인도를 떠나라’(Quit India) 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인도 아대륙에서 영국의 질서 있는 퇴장을 요구한 이 운동은 인도를 지배하는 영국의 권력기관들에게 순식간에 짓밟히고 말았다.
간디의 ‘인도를 떠나라’ 연설 이후 인도 국민회의의 구성원들은 인도제국 경찰과 인도 주둔 영국군에게 신속하게 체포당했다.
전쟁기간 중 이적행위를 금지한다는 핑계로 영장 없이 체포당했던 국민회의 지도자들은 전쟁이 공식적으로 추축의 패배로 끝난 지금까지도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다.
“석방하라! 석방하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엄청난 전비 지출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며 제국주의의 떡고물을 받아먹던 인도인 자본가들은 영국의 전쟁을 지지했고, 인도인들의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와중에도 국민회의 지도자들은 석방될 줄 몰랐고, 예산의 태부족으로 인해 영국은 경제난을 겪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독립을 시켜 주겠다던 영국인들은 이제 인도아대륙을 수탈하여 본국의 궁핍을 채우기 위해 안면몰수하고 징세에 몰두했다.
“더 이상 굶을 수 없다! 내 아이가 죽어 가고 있다!”
“인도는 독립을 원한다! 약탈자 영국은 물러가라!”
“착거어어엄!!!”
인도제국 경찰대는 성난 군중들이 몰려오자 착검을 하고 시퍼런 대검을 시위대를 향해 들었다.
“빌어먹을… 차라리 비폭력-무저항으로 계속 싸우게 내버려 두지….”
“그랬다간 아마 진작에 쓸려 나갔을 것입니다.”
간디의 ‘사티아그라하’(비폭력-무저항) 운동은 영국인들에게 결코 총칼이나 하찮은 짱돌 수준의 폭력도 들이대지 않았다.
영국군이 짓밟으면 짓밟는 대로, 끌고 가면 끌고 가는 대로 당해 주는 그 모습에 영국인들은 숭고한 공포마저 느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의미로 공포스러웠다.
“형제들이여, 내 육체는 점점 부서져 가고 있지만 나의 정신만큼은 당신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독립이 오는 그 날까지….”
“아아 마하트마시여!”
“세상에….”
마하트마 간디는 지금 옥중에서 또다시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단식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네루, 간디와 같은 최고위 지도자들은 옥중에서도 바깥세상에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워 편지며 면회가 모두 금지되어 있었으나, 저 지독한 치들은 어떻게 간디의 서신을 빼돌린 것 같았다.
간수들을 족쳐야 한다고 이를 갈며 경찰대는 점점 분노와 흥분으로 뜨거워져 가는 시위대를 바라보았다.
“내 단식은 이제 보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이 땅에 더 이상 미련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내 아내, 카슈투르바는 나를 위해 단식하다 죽었습니다. 내 오랜 동지이자 비서인 마하데브도 죽었습니다. 또 열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열이 올라 의식이 흐려지면 더 이상 펜을 잡기가 힘듭니다. 형제들이여, 인도의 형제들이여….”
간디의 서한을 읽어 내려가던 젊은 연사가 더 이상 읽지 못하고 오열을 시작하자 군중 대오 역시 오열하기 시작했다.
“마하트마께서는 현재 옥중에서 위독하신 상태입니다. 말라리아라고 하지만….”
다른 청년 하나가 확성기를 들고 사람들에게 외쳤다. 말라리아라고는 하지만 간디가 위독한 사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간접적인 원인이 영국의 투옥과 감옥 안에서의 허술한 치료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가 잘 알았다.
“석방하라! 석방하라아아아!!”
“영국은 물러가라! 인도에서 꺼져라!”
군중의 분위기는 점점 흉흉해졌고, 정부 청사로 인도인들이 진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스크럼을 짠 경찰들은 총검을 들이밀면서도 한 걸음씩 물러났다.
같은 시각, 살아남은 국민회의의 지하 조직원들은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고 있었다.
[지금은 인도의 소리, 인도의 소리에서 알려 드립니다.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 선생님의 건강이 날로 악화하는 가운데 영국 정부는 전 인도인의 요구인 독립을 묵살하고 어떠한 응답도 없는 상황입니다….]
“어머, 어머, 이러면 어찌 되는 거니? 얘야?”
“….”
라디오가 보급된 가정은 몇 없었지만, 그 몇 안 되는 가정들에서는 온 마을 사람들이 둘러앉아 두런두런 오늘의 방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송출되기 시작한 국민회의의 지하방송 <인도의 소리>는 현재 인도인들이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방송이었다. 시골 마을에서도 사람들은 모여 앉아 귀를 기울이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궁금해했다.
수많은 인도인들이 존경하는 마하트마 간디가 옥중에서 위독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농촌에서부터 여론이 끓어올랐다.
흰 머리를 한 노부인은 주먹을 꽉 쥔 아들에게 물었지만, 아들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눈에 핏발이 서고 입술을 꽉 깨물어 피가 흐르는 아들의 얼굴을 보며 노부인 역시 말을 잃었다.
“아들아….”
“예, 어머니….”
“이 녀석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그만둬라….”
아들은 주먹을 더욱 꽉 쥐었다. 주름지고 마디진 어머니의 손길이 아들의 꽉 쥐어진 주먹을 쓰다듬었다.
“너는 뒤로 빠지거라, 네 한 몸이라도 안전해야지…. 이 어미는 그것 빼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단다….”
“어머니.”
“응…?”
“죄송합니다.”
간디의 단식이 15일을 넘어 20일을 향해 달려갈 무렵 인도 전역에서는 시위의 불길이 날로 거세어졌다.
* * *
“배은망덕한 인간들… 제기랄!”
“….”
영국 정부의 ‘통고’를 받아든 미국 국무성에서는 관료들이 낮게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왜 안 된다는 건가! 그 땅을 지킬 힘이라도 있다던가? 하!”
“…인도를 잃은 영국은 더 이상 대영제국이 아니라더군요.”
국무성 관료들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거에서 이긴 보수당은 식민지를 어찌어찌 짜내어 영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 하고 있었다.
이는 식민제국들의 해체를 내심 바라고 있던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의중과 전면적으로 어긋난 것이지만.
루즈벨트는 세계가 하나의 경제권역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공황 와중 식민지를 빨아먹기로 작정하고 문호를 닫아 버린 것 때문에 두 번째 전쟁이 터진 게 아닌가!’
별다른 식민지가 없는 미국 입장에서는 영프의 식민제국이 해체되어야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이기도 했을뿐더러, 보호무역주의가 2차대전을 유발했다고 해석했기에 루즈벨트는 어떻게든 식민제국들이 붕괴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여기에 더해 가장 거대한 국가인 소련까지 미국이 주도하는 시장에 편입된다면 세상은 상호 의존 때문에라도 다시는 이렇게 끔찍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적지 않은 국무성 관료들은 루즈벨트의 구상에 공감했다.
소련은 이 의도를 파악했는지 대량의 미국산 물품들을 수입하고 막대한 천연자원과 금을 수출하며 미국과 점점 긴밀하게 무역으로 얽혀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영국이 총을 바꿔 잡다니!
“인도 독립이 안 된다면 제발 인도 국민회의라도 어떻게 출옥시키라고 좀 해 보게. 우리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한답시고 떠들어 대는데 정작 동맹국이라는 것들이 영장도 없이 몇 년씩 사람들을 독방에 처넣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 역시 내정간섭의 소지가….”
“우리 돈을 얼마나 처먹었는데 이제 와서 개소리야! 빌어먹을 토미 새끼들!”
그러면서도 미국은 영국에게 단호한 무언가를 하기 어려웠다.
당장 미국의 유럽 내 동맹국들은 ‘불량 학생들’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휴… 프랑코 이 새끼도 정치범 좀 석방하랬더니 이미 다 처형시켜서 석방할 사람이 남아나질 않지. 남이탈리아는 워낙 썩어빠진 것들이라 별의별 개짓거리나 하고 있지. 이 와중에 영국은….”
확실히 미국 손에 남아 있다고 할 만한 동맹국들은 스페인, 포르투갈, 남이탈리아와 베네룩스, 그리고 영국 정도. 북유럽 4국 중 핀란드는 소련을 침공했기에 붉은 군대에 짓밟힌 이후 사실상 소련 영향권 아래로 편입되었고,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3국은 철저한 중립을 선언했다.
그런데 여기서 영국마저도 식민지 문제로 갈라서게 된다면? 사실상 유럽에서 축출당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골치 아픈 새끼들… 국무성은 이를 갈며 대체 어찌 이들을 다루어야 할지 고민했다.
* * *
“인도를 인도인에게! 인도 땅을 인도 농민에게! <인도의 소리>에서는 오늘 인도 독립 이후의 농지분배에 관련한 인도 국민회의의 입장을 알려드립니다.”
캘커타의 허름한 건물 지하. 이곳은 곧 허물어질 것만 같은 외관과는 다르게 지하에 각종 라디오 방송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인도의 소리> 방송을 송출하는 인도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안가인 이곳에는 놀랍게도 적지 않은 외국인들이 있었다. 그것도….
“소련에서 이렇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사실 질문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게 맞기 때문입니다.”
아리까리한 소련인 고문의 말에 자리에 앉아 소련인 고문을 탐탁잖은 시선으로 보던 빔라오 암베드카르는 다시 한번 표정을 바꾸었다.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 소련은 건국 이후로부터 피식민 민족의 독립과 계급문제의 해결을 위해 힘써 왔습니다. 독일이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영국과 잠시 협력했을지언정… 식민제국과 소련은 사실 공존하기 어렵지요.”
“….”
소련인 고문은 유창한 영어로 이야기하며 싱긋 미소지었다.
그는 인도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크렘린’에서 온 자금이라며 엄청난 액수의 황금을 선뜻 내놓았다. 거기에 방송을 송출할 수 있는 설비를 제공하기까지 했다.
당연히 이렇게 호의를 베풀 때는 저의를 의심해야 하는 법. 하지만 세계가 침묵하는 와중 이런 도움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불가촉천민(달리트) 출신으로 영국의 지배하에서 암베드카르는 교육을 받고 출세할 수 있었다. 그를 차별해 온 것은 상위 카스트 출신의 힌두교도 인도인들이나, 아니면 인도인을 매한가지로 차별하는 영국인들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간디의 노선인 ‘사티아그라하’를 따라 고향에서 불가촉천민을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실한 힌두교도이자 불가촉천민을 차별하는 간디와 대립각을 세웠다.
인도가 해방된다 하여도, 여전히 불가촉천민들은 불가촉으로 남아 있을 것인데 독립은 무슨 의미인가! 인도 부왕(Viceroy)의 고문으로 일하는 그를 비난하는 동포들에게 그는 그렇게 반론해 왔다. 차라리 영국인들은 불가촉천민을 위한 선거구를 제정하고 대표권을 줄 것이라도 논의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제 여기에 새로운 아군이 나타났다. 피식민 민족의 해방과 계급차별로부터의 해방을 이야기하는.
“…왜 이제 오셨소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