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189화 (189/300)

# 189

189화

“흐음… 군정은 지금 어느 정도까지 업무를 파악했다던가?”

구 추축국, 즉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 지역에는 군정이 설치되었다.

서부군정 총사령관에는 현재 총참모장 바실렙스키가 임명될 예정이었고, 북일본 군정사령관에는 신중하고 꼼꼼하기로 정평 난 톨부힌 대장이 임명되었다.

만주 지역은 그동안 극동군구를 책임졌던 추이코프가 ‘재만 소련군’ 사령관으로 직함을 바꾸어 달게 되었다.

“예! 아, 아직 시간이 부족하여 완벽한 수준은 아니지만 점령지들은 소요사태 없이 관리되고 있습니다. 조금만 시간과 예산을 더 주신다면….”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당황한 듯 서류를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지고 했다. 하지만 뭐, 겨우 몇 달 만에 한 국가의 운영을 모두 장악할 수 있다면 거짓말이겠지.

협력자로 데리고 간 망명파 공산당원들이나, 아니면 현지의 공산당 세력들이나 파시스트들에게 혹독하게 탄압당해 집권역량이 부족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총칼을 들이대고 협박한다고 배를 곯는 것에 대한 불만이나 미래에 대한 불만마저 잠재울 수는 없었다.

차라리 토지에 대한 무상몰수 무상분배 같은 급진적인 개혁책으로 농민대중의 마음이라도 살 수 있는 낙후지역들은 편하기라도 했다.

하지만 독이일 삼국 모두 충분히 산업화될 만큼 된 나라에다, 특히 독일은 노동자들의 마음을 사겠다고 각종 복지대책을 제공하기까지 한 전적이 있어 통제가 쉽지 않았다.

“알겠네. 절대, 절대 소요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게.”

“예! 서기장 동지!”

1953 동베를린 사태는 1956 헝가리 혁명, 그리고 1968 프라하의 봄까지 이어지는 동유럽 위성국 내의 반소 시위들의 효시가 되었다. 동베를린의 소요를 억누른 일로 다른 국가들에서 반감을 품고, 또 동독 내 지식인들의 마음이 돌아섰던 것을 생각해서라도 처음부터 그런 일이 없도록 예방해야 했다.

다행히, 나는 실제 역사에서처럼 편집증적으로 중공업화를 밀고 나가지 않았다.

자신에게 시선이 꽂히자 대머리를 붉힌 흐루쇼프는 경공업, 즉 생필품 생산 확대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생필품 공급에도 차질이 없도록 하고… 최근 몇 년간은 전쟁상태였기에 배급제나 낮은 생활수준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걸 천년만년 이어갈 수는 없네.”

정 안 되면 미국에서 수입하고. 그렇게 덧붙이자 정치국원들은 옙 하고 고개를 숙였다.

미국산 수입을 생각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으흐흐흐흫….”

미국은 핵무기를 손에 넣기 위해 소련에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기로 했다. 렌드리스 대금에서 상계하고도 한참이 남는 데다가, ‘전후 복구에 대한 공동 지원’이란 이름으로 수십, 수백억에 이르는 경제 원조까지!

여기에 우리가 손에 넣은 엄청난 양의 황금도 있었다.

“이따… 다시 한번 가 보겠는가?”

“예? 예! 흐흐흫….”

내 웃음이 무슨 뜻인지 알아챈 이들은 비슷하게 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자기 것이 아니라도 그렇게 쌓여 있는 막대한 황금을 보면 기분이 좋을 법도 했다.

나치는 실제 역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점령한 서유럽 국가들의 중앙은행에 쌓여 있던 황금을 약탈했다. 네덜란드, 벨기에 등지에서 약탈했던 금만 해도 ‘나치의 비밀 황금’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도시전설을 만들어 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나치 독일이 더 흥하는 바람에 더더 많은 금이 쌓여 있었다.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열강인 영국까지 짓밟으면서 독일은 수백 톤이 넘는 금괴를 손에 넣었었다.

이젠 우리 것이지만.

모스크바 지하 보관고에는 독일이 빼돌린 막대한 황금을 다시 빼돌려 쌓아 올린 금 보관고가 있었다. 스탈린이 전쟁 이전 모아 두었던 황금은 거의 대부분 렌드리스 대금 지급을 위해 미국으로 향했지만, 독일에서 빼내 온 황금은 보관고를 꽉 채울 것처럼 쌓여 있었다.

그 장엄하게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했던 소수 정치국 고위관료들 역시 상당히 감명을 받았던 것 같았다.

이제 이것을 천천히 미국에 팔아치우며, 생필품이나 식량 같은 것을 사 오고 우리는 남는 돈으로 중공업화를 추구하면 된다. 우린 부자니까!

“일단 그럼 선거판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어 보도록 할까?”

“예! 서기장 동지!”

그렇게 말하자 몰로토프가 손가락을 튕겼다. 좀 더 고분고분해진 듯한 NKVD 요원들이 거대한 칠판을 밀고 쭉 들어왔다.

칠판에는 우랄에서 북대서양까지를 포함하는 거대한 유럽 지도가 하나 붙어 있었다.

“먼저 프랑스 제4공화국에서는 공산당이 제헌의회 선거에서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코민테른의 지령에 따라 마찬가지로 제헌의회에서 제2세력을 차지한 사회당과 인민전선(popular front)을 형성할 예정입니다. 현재 의석수대로라면 내각제 하 단독정부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는 파리에서 독일군을 몰아낸 공산당이 예상대로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당과의 연정을 지시한 이유는 하나가 더 있었다.

“식민지 문제에 관련해서는 다만, 국민적 반발이 예상되는 관계로 이에 대해 유화적 입장을 취하는 유일한 당인 사회당과의 협력을 지시하였고 전선 내부에서는 협의를 끝마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뭐, 좋은 일 해 주겠다는데 굳이 반발하는 자들이 문제인 거지.”

식민지는 말 그대로 적자였다. 식민지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자본가들이나 거기로 이주해 부를 찾은 소수의 이주민들을 제외하면 정부는 엄청난 예산을 지출해야 했고, 국민들은 그걸 세금으로 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자존심 문제로 식민제국들은 식민지에 끝까지 집착했다. 하지만 이제 프랑스 공화국 정부가 수립되면 바로 횃불을 올릴 것이다.

탈식민화의 횃불을.

알제리에서는 알제리 공산당이,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의 인도차이나 식민지에서는 인도차이나 공산당이 벌써 코민테른의 명령을 받아 활동하고 있었다. 우리 소련은 이들과 본국 정부를 중재해 식민지가 원만하게 독립하는 과정을 도왔고.

필연적으로 탈식민, 반제노선을 주장하는 소련으로 기울어질 제3세계가 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국제연합에서 소련 영향력의 확대를 의미했다.

“필요하다면 프룬제의 우리 장교 훈련 TO를 줄이고서라도 식민지 출신 장교들의 유학을 확대하도록 하게. 우리도 이제 슬슬 군축을 할 때가 왔으니.”

“예! 알겠습니다.”

유학생들이야말로 모국에 유학대상국의 영향력을 퍼트리는 핵심 매개체였다. 안 그래도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군대를 그냥 확 토막 내버릴 수는 없으니 점점 외국인 교육과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중국 국민당의 황포군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동아시아 식민지에서 반제 투쟁을 했던 것처럼, 소련의 프룬제가 동남아,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 출신 장교들의 반제운동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은 영국 정세입니다. 영국 총선에서는 아쉽게도 보수당이 우세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노동당 역시 코민테른의 명령하에 있지는 않기에….”

“음? 그걸 보수당이 이겼다고?”

“예, 그렇습니다. 죽은 처칠에 대한 영국인들의 추모 열기가 아직도 상당히 높은 상태입니다. ‘늙은 사자’를 기억하라는 구호가….”

오우, 이건 의외다.

실제 역사의 1945년 영국 총선은 노동당이 ‘전승총리’ 인 처칠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다. 얄타에서 독일 패망 이후의 세계를 논의하던 3거두, 스탈린과 루즈벨트, 처칠 중 다음 회담인 포츠담에서도 자리를 지킬 수 있던 이는 스탈린뿐이었다.

루즈벨트는 그사이에 뇌출혈로 사망해 트루먼이 대통령이 됐고, 처칠은 선거에 패배해 노동당의 애틀리가 수상직을 승계했다.

지금은 애틀리와 이든이 2인 3각으로 합을 맞추어 망명 영국정부를 이끌었기에 <요람에서 무덤까지> 구호 없이도 노동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상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몰로토프가 보여주는 그래프에서는 보수당의 지지율이 노동당의 그것을 한참 웃돌고 있었다.

“전 외무장관이던 앤서니 이든이 처칠의 후계자로 수상 취임이 유력해 보입니다. 앤서니 이든은 처칠과 유사한 제국주의자로서….”

몰로토프는 크루글로프가 긁어온 NKVD의 정보를 바탕으로 브리핑을 진행 중이었지만 나는 이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45년에 정권을 빼앗긴 처칠에게도 다시 한번 기회가 돌아왔었다. 50년 한국전쟁 발발과 식민지 반란, 그리고 군비지출 상승으로 인한 복지지출 절감으로 노동당 정부는 51년 총선에서 결국 패배하고 만다. 처칠은 그러나 55년 은퇴하고 수상직은 이든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이든은 식민지 독립에 무력으로 개입하며, 프랑스, 이스라엘과 손잡고 수에즈를 국유화한 나세르 정권을 무너트리기 위해 이집트를 침공하지만 결국 뼈아픈 실책이 되고 말았다.

그가 수상으로서 했던 업적을 알고 있으니만큼 부연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세계정세는 점점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어찌 되었거나, 미국이 유럽에 손을 뻗칠 길이 아예 없지는 않게 되었군.”

“그렇습니다…. 또, 영국 노동당 역시 식민지 독립에는 부정적인 듯합니다.”

“흐음….”

그럴 법도 하다. 식민지의 자원을 끌어다 대독전선에 본격적으로 꼬라박아 보기도 전에 영국이 짓밟히고 망명까지 하게 되었으니.

이런 위신 추락으로 전 세계에 걸친 영국의 식민지들은 대대적인 항쟁에 나섰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식민지인 영국령 인도에서는 네루와 간디가 이끄는 인도 독립주의자들이 하루가 멀다고 시위를 벌였다.

아직은 잠잠하지만 아랍의 아랍민족-사회주의자들도, 동아프리카나 남아프리카의 흑인해방론자들도 기회만 주어지면 가열차게 타오를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 반대였는데….’

영국은 상대적으로 온건하게 식민지들을 독립시켰고, 프랑스는 알제리 전쟁, 인도차이나 전쟁 등을 치르며 바득바득 싸워 가면서 결국 식민지를 상실했다.

이 과정에서 서유럽 경영의 주니어 파트너로 선택한 프랑스를 지원했던 미국이 엉뚱하게 인도차이나 전쟁에 발을 담갔던 것이고.

정작 프랑스는 드골의 제5공화국 집권과 함께 알제리를 독립시키고, 디엔비엔푸에서 대패한 이후 인도차이나에서도 손을 뗐는데 미국은 ‘도미노 이론’에 입각해 중국이 적화된 이후 사회주의가 확산하리란 공포에 빠져 베트남을 침공했다.

이번엔 중국이 남북조가 되는데, 엉뚱하게 인도가 붉게 물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영국군은 본토 탈환 이후 재건 중이지만 아직 영국 식민지군은 건재합니다. 다만 같은 인도인의 독립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과연 식민지군을 사용할 수 있을지….”

갑론을박이 오가던 도중 전령 하나가 회의장 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서기장 동지! 급보입니다.”

“뭐? 무슨 일인가!”

“미국에서… 미국에서….”

미국에서? FDR이라도 죽었단 말인가? 안 그래도 건강이 좋지 않다고는 들었는데….

“결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듀이가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맥아더와 매카시가 너무 과격한 것을 우려한 나머지 후보들이 결국 듀이를 밀기로 대동단결했다고….”

“음? 그게 그렇게 우려할 일이었나?”

듀이? 그는 결국 역사에 패자로만 이름을 남겼다. 처음에는 루즈벨트에게, 두 번째에는 트루먼에게.

맥아더와 매카시가 순식간에 치고 올라가 미국 정-부통령이 되는 것은 우려할 만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딱히 대단할 것도 없었다.

“그뿐인가? 루즈벨트 대통령이 어차피 이길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그… 민주당의 남부 보수파들이 대대적으로 탈당해 공화당에 합류했다고 합니다. 듀이는 남부 보수파들을 이끈 트루먼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