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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88화 (188/300)

# 188

188화 (외전) 나, 대대장이 되었다?!

그는 행복했다.

한때 일개 마적 떼의 두령이었던 그는 줄을 잘 탄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뭐, 동료들이 몇몇 죽어 나가기도 했고 적잖은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점령군의 대대장이라는 자리는 결코 작은 자리가 아닌 것이다.

그것도 한때 조선반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던 일본의 심장 도쿄에 주둔하는, 세계최강무적의 소련군 대대장이라면 더더욱!

도쿄는 핵폭탄을 몇 발이나 맞고도 여전히 수십만 명이 사는 대도시였다. 건물과 토지가 피해를 입었을지언정 도쿄에 사는 부호들이 모조리 죽어 나자빠지고 재산이 증발한 것은 아니었다.

“으음, 하라쇼, 하라쇼.”

“하하, 에또… 진 사마, 소련군의 정책이 언제부터 이행될 것인지를 좀 여쭙고자 하는데….”

눈앞의 일본인의 벗겨진 머리에서 삐질삐질 흐르는 진땀과 얼굴에 좔좔 흐르는 개기름을 보며, 대대장은 푹신한 소파에 몸을 깊숙이 기대었다.

본토에서 군인 노릇을 하자면 누릴 수 없었을 이 호화로운 생활을, 점령군으로서는 얼마든지 누릴 수 있었다. 멸망했다 한들 일본은 여전히 부유하고 화려한 국가였으며, 얼마든지 ‘자본주의자들이 노동자를 착취해 만든 재화’를 징발할 수 있었다.

거기에, 소련군의 군정이 어찌 돌아갈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거리낄 것이 많은 자들은 어떻게든 줄을 대 보려고 애를 썼다.

동양계라 말이 통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그에게도 일본인 부호들이 줄을 서서 찾아와 말 한마디라도 듣고자 온갖 귀한 선물들을 바쳐 댔다.

방금 이 일본인이 들고 온 것도 그랬다. 화려하게 포장된 화과자 한 박스였지만, 감히 무소불위의 권력자를 상대하는 데 이런 애들 간식 같은 것이나 가져올 리 없었다.

박스를 집어 든 대대장은 예상외의 묵직함에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어? 어허허허! 하하… 정성이 대단하십니다그려?”

“헤헤헤, 제가 항상 군인분들을 흠모해 왔기에 약간이나마 성의를 보이고자 했습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이 묵직함은 돈다발, 아니 군표의 묵직함이 아니었다. 화과자를 거친 손마디로 치우자 그 아래에는 번쩍이는 금괴가 두 개나 들어 있었다.

“호오… 이거….”

금괴를 물어 보자 잇자국이 남는 것을 본 대대장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웃음에 일본인 사업가 역시 비굴하게 따라 웃었다.

“이야! 이거 개안을 했습니다? 순금은 이빨 자국이 남는다고 하던데….”

“하하하, 장군님의 위엄에 어울립니다그려.”

혓바닥에 기름 바른 것처럼 매끄럽게 돌아가는 작자였다. 하지만 듣기 싫지도 않았기에 대대장은 껄껄 웃으며 화과자 박스 아래에 금괴를 깔았다.

거친 손길로, 요정의 게이샤들을 벗겨 먹듯 화과자 포장을 까내린 대대장은 우걱우걱 만쥬를 씹으며 거만하게 탁자에 군홧발을 올렸다.

“자, 그래서 묻고 싶은게 뭐요?”

“아… 소군정의 분배정책이 어찌 진행될지….”

“그거? 허허, 그건 너무 중요한 일이라 약간 더 성의가 필요할 것도 같고….”

“헤헤, 제가 당장 내일이라도 이 묵직한 것을 몇 개 더 구해 올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고….”

서로 간을 보던 와중 대대장은 크하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이 상황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권력, 권력은 이런 것인가?

왜 그토록 높으신 분들이 권력을 탐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식민지 반도인으로 살 적에는 고개를 들고 쳐다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비비며 그에게 뇌물을 가져다 바친다.

이 또한 애국이 아닌가? 왜놈들이 수탈해 간 ‘우리’ 것을 돌려받는. 비록 ‘우리’ 것은 그 개인의 주머니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아무튼 민족의 이름으로, 만세인 것이다.

“하하하하하하! 알겠소. 알겠소이다. 그렇다면 며칠 후에 보도록 내 부하와 약속을 잡아 두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진 소련의 오랜 부하가 스윽 걸어 나와 눈웃음을 치며 다음 면담일정을 적어 내려갔다. 그의 수첩에는 빽빽하게 일본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일본인 사장은 땀이 흐르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수첩의 이름을 곁눈질했다. 누군가는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할 재산이 사라졌을 것이다.

지금 누릴 수 있는 이 행운을 아마테라스 오오카미… 가 아니라 위대한 소련의 스탈린 동지께 감사드리며 사장은 종종걸음으로 물러났다.

소련군 중령으로 현재 일본 도쿄 주둔 소련군 대대장을 맡은 진지첸(Jing Zhichen), 본명 김일성(金日成)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만주 마적 시절부터의 동지이자 부하 김책은 두툼한 수첩을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금괴, 순금 두 개. 이게 몇 돈이나 되는지 모르갔어?”

“헤헤헤헤, 그것이 중요한갑쇼?”

하긴, 아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고, 투표는 그것을 세는 자에 의해 결정된다. 금의 실제 가치가 얼마든지 상관없이 무력을 손에 쥔 자는 얼마에 이걸 팔지를 정할 수 있었다.

벌써 한 무더기의 일본인들이 다녀갔다. 쩝쩝, 침을 튀기고 소리를 내며 양과자를 씹던 김책은 우물우물거리며 그동안 쌓인 뇌물을 정리했다.

“금괴에, 금송아지에, 금두꺼비에, 이거 금으로 십이간지를 만들어도 되겠습니다그려?”

“하하하하하하하! 아, 거 금으로 우리 낫과 망치나 하나 만들어 오라 할까?”

“흐헤헤헤헤, 그것도 좋겠습니다.”

통상 이만큼 삥을 뜯었다면 뒤가 켕겨서라도 위에 상납을 해야 했지만 의외로 연대장은 청렴한 사람이었는지 상납도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부하들이 한몫 거하게 챙기는 것을 봐주는 것으로 보아 대체 뭐가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아무런 제지가 없는 사이 이들이 긁어모은 재물만 해도 상당한 액수. 이제 이것을 소련의 더 고위층에게 바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이걸… 어디로 가져가야 하나?”

일본 군정장관 표도르 톨부힌 대장은 그들 같은 일개 영관급이 감히 뇌물을 바칠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일단 대령, 그리고 장군으로 승진하기 위해서 괜찮은 줄을 잡을 필요는 있었지만 대전 초 공포의 숙청으로 소련군은 상당히 깨끗해진 상태였다.

고위 장성들은 특히나 열렬한 NKVD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이 알려질 정도였다. 물론 아직까지 직접적으로 그들에 대한 숙청은 없었지만.

한동안 궁리하던 와중 진지첸 중령은 한껏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거, 우리도 조선으로 갔으면 거기서 떵떵거리면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에이, 그런 말 마십쇼. 여기서 챙긴 재물이 얼맙니까?”

대부분의 조선계들은 조선인 기갑군단에 소속되어 한반도로 향했다. 신생 ‘대한민국’(소비에트 공화국도, 인민 공화국도 아닌 것은 이상했지만) 국군의 근간이 될 군단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았더라면 아마 장군은 쉽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만큼 재물을 긁어모으진 못했을 테고, 아마 대조국전쟁의 최전선에서 피 터지게 싸운 무정 사령관 같은 사람에 밀려 빛을 못 봤을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지나간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앞으로 출셋길을 궁리하던 차에 대대장실의 전화기가 갑자기 울렸다.

“엥? 저게 웬 일이지….”

전화선이고 뭐고 온통 뒤집힌 판에 이곳에 전화를 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매우 높은 확률로 그보다 높은 군인일 것이 뻔했기에 진지첸은 후다닥 달려가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예! 중령 진! 지! 첸!”

“아, 진 중령, 나 파블로프 소장이오. 알려 줄 것이 하나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사단장 동지!!”

무려 사단장씩이나 되는 고위 군인이 전화를 하자 진지첸은 마치 누가 보기라도 하는 양,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처럼 부동자세로 전화를 받았다.

한때 대장씩이나 되는 고위 장성에서 숙청당해 형벌부대 사단장이 되었다 하더라도 장군은 장군. 심지어 그의 직속 사단장에게 감히 군기가 빠진 태도를 보이기는 어려웠다. 대부분 독일인 파시스트 죄수로 구성된 도쿄 주둔부대에서 몇 안 되는 정통 소련 장교라면 더더욱 윗선의 눈에 보기에 흠이 없어야 했다.

“음, 유감이지만… 여기 의무대에서 연락이 왔는데 자네 아들이 지금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입원했다는군. 유리라던가? 아무튼 오늘은 빨리 조퇴하고 가 보도록 하게.”

“예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단장 동지!”

그 말을 들은 김책마저도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유리가 아프다니?

* * *

“유리, 아니 정일아!”

“아, 오셨습니까?”

의무대를 책임지는 군의관은 인자한 생김의 늙수그레한 의사였다. 아마 대조국전쟁 때문에 다시 징집되었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나이에 비해 고작 중령 계급장만을 달고 있는 그에게 진지첸은 간단히 인사를 하고 일단 제 아들부터 찾았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빠….”

“오냐, 오냐, 내 아들….”

늙은 의사는 진지한 얼굴로 안경을 고쳐 쓰더니 차트를 꺼내어 뭔가를 뒤적거렸다.

“으음, 진지첸 중령, 맞습니까?”

“예, 제가 바로 진지첸입니다.”

“예, 예. 뭐 별달리 걱정할 것은 없고, 아이가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좀 피로가 쌓였던 듯합니다. 건강에는 별 이상이… 없을 것이고, 아이에게 좋은 영양제를 몇 가지 처방했으니 부디 걱정 말고 푹 쉬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군의관 동지.”

어린 유리는 이제 고작 만으로 두 살밖에 안 되었다. 열이 나는지 찬 물수건을 이마에 얹은 유리는 코를 헝겊으로 틀어막고 있었다.

“코피가 났던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멍도 조금 들었고… 열도 조금 있고. 영양제 처방을 받고 좀 쉬면 나아질 것입니다.”

의사는 푸근한 웃음을 지으며 진지첸에게 그렇게 답을 주었다. 한껏 긴장했다가 힘이 쭉 빠진 진지첸은 아들 유리가 누운 침대 옆의 소파에 푹 주저앉았다.

“후우, 다행입니다…. 그런데 군의관 동지?”

“…예? 무슨 일입니까?”

연신 차트에 만년필로 무엇을 적어 나가던 군의관은 진지첸이 그를 부르자 다시 안경을 고쳐 쓰고는 물었다. 어쩐지 눈빛이 냉정하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물었다.

“생각해 보니 저도 몸이 요새 좀 노곤하고 코피가 몇 번 났는데, 이거 괜찮은 것입니까?”

“음… 비슷한 증상이로군요?”

그렇게 말하며, 목에 맨 청진기로 진지첸을 이곳저곳 진찰한 의사는 두꺼운 안경 뒤에서 눈을 빛냈다.

“영양제를 몇 종류 처방해 드리지요. 지금 맞고 가시겠습니까?”

“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군의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차트에 또 무언가를 적으며 중얼거리고서는 걸어 나갔다. 기묘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던 진지첸은 소파에 다시 푹 몸을 기대었다.

“어…?”

갑자기 코에서 뭔가 뜨끈한 게 흘러나오는 것 같아 손을 대어 보니 또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거, 진짜 피곤해서 그런가?

‘영양제 좀 맞아야겠군….’

요새 출세에 눈이 멀어 한동안 쉬지도 않고 너무 오래 달려왔다. 잠시 좀 쉬어야겠다고 느낀 그는 코에 대충 손수건을 틀어막고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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