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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87화 (187/300)

# 187

187화

적어도 수십 발의 핵폭탄을 얻어맞은 일본제국은 그다음 날, 살아남은 총리대신 도조 히데키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여 결국 패배했다.

V-J day, 대일전 전승을 기념하는 헤드라인과 현수막이 온 천지에 나부끼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전쟁이 끝났다! 미국 만세!”

“만세! 만세! 승리 만세!”

언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전장으로 가야 할지 노심초사 기다리던 신병들부터 시작해 일본에 막 발을 디디려던 고참 해병대원들까지. 하나하나 항구로, 공항으로 귀국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조니! 조니! 여기야!”

“아, 데이지!”

남자들은 환호하고, 소년들은 소리치고, 여인들은 밖으로 뛰쳐나와 귀환병들을 반기고.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웠다.

그리고 이 개선행렬은 맥아더 원수의 도착으로 절정을 맞았다.

“우와아아아아아!!! 맥아더! 맥아더!”

[더글러스 맥아더를 대통령으로]

위풍당당하게 이번 대전의 최고 수훈함, 엔터프라이즈에서 걸어 내려온 맥아더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그를 향해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사람들은 더 높게 목청껏 소리쳤다.

“맥아더! 맥아더!”

“대통령은 맥아더!”

“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맥아더를 위해 간이 연설대를 마련해 준 병사들이 척 경례를 붙이고 물러가자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미국의 시민 여러분!”

“와아아아아!!!”

“이 자리는 우리 미국이 거둔 영광스러운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이 전쟁을 이끈 자랑스러운 군대에게 힘찬 박수 부탁드립니다!”

한 번 더 거대한 박수와 환호와 열광의 해일이 지나간 자리에서, 아이젠하워는 맥아더가 연설하는 뒷자리에 앉아 쓰게 웃었다.

오늘 아침까지도 연설문의 내용을 가지고 들들 볶던 상관은 제법 능숙하게 연설을 하고 있었다. 저 내용을 써 준 것이 자신이라는 게 미국인들에게 죄책감이 들 정도로.

맥아더는 스스로가 얼마나 뛰어난 군인이었으며 위대한 장군이었는지, 자기 자신의 리더십이 어떻게 미군을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었는지를 열심히 자랑하고 있었다. 맥아더에게 맛이 간 수많은 지지자들은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오든지 간에 박수를 쳤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민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저, 더글러스 맥아더는 미합중국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의 후보로 출마할 것임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

오랫동안 보지 못한 그의 아내 매미에 대해 잠시 생각하던 아이젠하워는 뜬금없이 맥아더가 대선 출마를 발표하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내가 써 준 원고에는 저런 내용이 없었는데?’

어쩐지 맥아더는 원고를 보며 연설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똑바로 바라보며 아무말 대잔치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장성이 정치인에 가깝다지만, 현직 군인 신분으로 정치에 관련되는 것은 피해야 했지만 맥아더는 그런 문제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끈지끈 아파 오는 머리를 붙잡고 조용히 귀띔을 하려 했으나 맥아더는 이미 지지자들에게 업혀 인파 위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개선장군을 방패 위에 올려 행렬을 이끌게 하듯.

그리고 항상 개선장군은 자기네들의 인기로 군주에게 도전하는 법이었다. 다행히도 미군은 맥아더의 사병이 아니었고, FDR은 늙었지만 현명한 지도자였으며, 미국은 선거제 국가였다.

“하느님….”

“신이여 미국을 지키소서!”

맥아더에게 환호하는 대중들과 아이젠하워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찾는 신이 같은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맞다면 조금 골치가 아플 법도 했다.

* * *

1944년 11월에 예정된 미 대선의 후보를 결정하기 위한 공화당 경선은 가장 먼저 위스콘신주에서 치러졌다.

민주당은 당연히 당내에서 압도적인 세력과 권위를 자랑하는 현직 대통령 FDR을 또 한 번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으며, 루즈벨트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결국 월리스가 잠정적으로 부통령에 내정되었다. 공화당원들은 이에 대항할 ‘강력한 후보’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미국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주로 주별로 각 후보의 지지율을 파악하는 방식이었다. 어느 선거에서나 그렇겠지만 맨 처음 나타나는 지지율이 향후 계획과 부동층의 향방을 결정하곤 했다.

그리하여 전미의 눈길이 위스콘신주로 쏠렸다. 전형적인 중서부(Midwest)의 시골 주에 어느 정도 보수성향과 진보성향이 적당히 섞인 이곳, 첫 승리를 거두는 자가 결국 대통령으로 가는 가도에 오른다고 판단한 후보들은 위스콘신에서의 경선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공화당 경선 후보들은 예상 밖 최악의 난적과 만나야 했다.

“이 위대한 나라에 수십만 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들을 모조리 찾아내서 수용소로 보내야 합니다. 미국인들이여! 내부의 적을 경계하십시오!”

위스콘신 하원의원 조지프 매카시는 당의 대선후보를 정하는 자리에서 공산주의자를 찾아내자는 연설로 사람들을 휘어잡고 있었다.

그 어떤 대선후보들도 매카시에게 군중이 보내는 열렬한 지지를 넘어서지 못했다. 1940년 대선에서 FDR과 맞붙었던 거물 정치인 웬델 윌키도, 뉴욕주 주지사를 지내고 얼마 전까지 공화당 지지율 1위를 달리던 토마스 듀이도 어안이 벙벙해진 채 대중의 열광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공화당 온건파들이라고 FDR의 친소노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대전을 종결지은 것은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루즈벨트 대통령이었으며, 개입주의가 옳았고, 뉴 딜이 인정하기 싫지만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매카시는 그 모든 성과들에 빨간 딱지를 붙이며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중은 그에게 열광했다.

열광에 힘을 받아 매카시는 한층 더 높아진 목소리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저는 이 모든 난국, 우리 위대한 국가가 빠진 난국을 헤쳐 나갈 지도자로 가장 적합한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맥아더 원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리더십과 결단력으로 좌익세력들의 농간에 허우적거리는 미국을 구원해야 합니다.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

이 모든 사태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여유롭게 옥수숫대 파이프를 질겅이며 관전하던 맥아더는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돌아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필리핀 육군 원수의 정모에 새카만 비행사용 선글라스, 그리고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옥수숫대 파이프까지. 사람들이 지금까지 신문에서 보던 ‘위대한 총사령관 맥아더’가 사진의 그 모습 그대로 단상 위에 올라와 있었다.

“와아아아아!! 맥아더 원수! 맥아더 원수!!”

“하하, 감사합니다.”

맥아더는 여유롭게 연설을 시작했다. 늘 하던 자화자찬과 ‘맥아더 사령부’의 위대한 전공에 대한 이야기들. 일본을 상대로 거둔 기적적인 승리와 용맹한 병사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유능한 사령관 맥아더!

다른 후보들은 이제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결코, 그 어떤 대중연설에서도 이만한 환호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베테랑 정치인의 감으로,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이미 위스콘신 경선은 끝장났다는 것을. 현지에 자기 지지자들을 다수 확보한 데다가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혜성 같은 신예들이 둘이나 뭉쳤다.

“또, 여러분을 위한 깜짝 선물이 있습니다.”

하, 이젠 또 뭔가… 후보들이 각자 체념하는 가운데, 아까 전 맥아더를 위해 열광적인 지지연설을 한 매카시가 자리에서 걸어 나왔다.

사람들은 이제 매카시만 보면 환호를 하는 것 같았다. 단상 위로 올라와 맥아더 옆에 선 매카시는 흐뭇한 얼굴로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위스콘신 하원의원 조지프 매카시를 이 자리에서 제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바입니다. 앞으로의 경선에서 매카시 의원, 그리고 위스콘신 공화당원들의 많은 지지를 바랍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손을 잡고 함께 만세를 부르는 두 사람에게 그 어떤 순간보다도 열광적인 환호가 쏟아졌다. 투표가 요식행위로 보일 정도로, 그들의 지지는 압도적이었다.

첫 경선은 그렇게 끝이 났다. 위스콘신 경선에서 압도적인 표 차로 지지를 재확인한 맥아더는 다음 경선이 치러질 일리노이로 매카시와 함께 떠났고, 그들의 뒷모습을 다른 후보들은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들 대선후보를 노려볼 만큼 유력한 정치인들이었기에 각자 주마다 깔아 놓은 지지자들의 네트워크가 있었다.

그들을 통해 조사해본 바로는 다음 경선이 치러질 일리노이의 맥아더 지지율은 위스콘신보다 더 높으면 높았지 낮지는 않았다.

첫 두 경선을 낙승으로 이겨 버린다면 그 앞으로의 대선가도는 도무지 저지할 수 없는 눈덩이처럼 굴러가 버릴 터. 경선후보들은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했다.

선거는 돈이었고, 지금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세를 과시하는 매 순간순간 엄청난 돈을 잡아먹었다.

승리를 전제로 돈을 빌리고 투자나 다름없는 후원을 받아야 하는 정치인들로서는 이미 승패가 결정된 듯한 상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당장 내일이면 후원을 철회한다는 편지들이 물밀듯 들어올 것만 같았다.

“…맥아더 장군을 지지하는 법도 있지 않겠소?”

물론 ‘패자’들도 나름의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계속 약화될 것이라 해도 자기가 가진 당조직과 후원자금을 지지선언을 한 후보를 위해 밀어주고 향후 내각이나 적당한 곳에 힘 있는 자리를 약속받는 것이 하나였다.

맥아더는 기성 정치인이 아니었고, 분명히 정가를 잘 아는 협력자가 필요할 것이다. 매카시라는 새파란 신참을 부통령으로 삼는다면 더더욱. 베테랑 정치인들은 자기의 지지율과 약속받을 수 있을 만한 자리 등을 주판을 굴리며 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그나마 지지율이 봐 줄 만한 몇은 여전히 다음 경선, 다다음 경선에서의 승리를 위해 또 다른 주판을 튕기고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지율 1위’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던 토마스 듀이였다.

‘아무리 봐도 맥아더는 너무 무리하는 듯한데….’

그 역시 거물 정치인 중 하나로 사방에 손이며 귀가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알아 온 바로는 매카시의 ‘공산주의자 리스트’에는 전혀 근거가 없었다. 실체조차 불분명한 주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 인기가 어느 순간 신기루처럼 증발해 버릴 수도 있단 것은 고참 정치인인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보수파들의 약진으로 어느 정도 계획에 수정이 필요해 보였지만, 애초의 승리계획이 그다지 엇나갈 것 같지도 않았고.

“흐음,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오늘 저녁의 협상에서는 조금 더 많은 것을 내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후에 웃는 자가 진정 웃는 자. 제 나름의 한 수라면 아무리 명장이라도 골머리를 앓게 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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