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185화 (185/300)

# 185

185화

루즈벨트 역시 나름의 계산을 가지고 있었다.

“맥아더 따위를 개선장군으로 만들어 줄 바에야 일본열도를 소련 손에 넘겨주고 말지.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그냥 그곳을 불바다, 혹은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게 아니겠나?”

겸사겸사, 하는 김에 새로 제공받을 무기의 구체적인 위력을 시험해 보고, 또 소련이 가지고 있을 재고를 바닥내는 것도 가능했다.

얼마나 ‘핵폭탄’을 소련이 많이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은 일단 기술이전과 개발이 완료되는 한동안은 단 3개밖에 없을 예정이다. 그러니 소련이 일본을 열심히 불태워 주는 게 미국 입장에서는 안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련이야 필요할지 몰라도 우리가 일본의 공업력을 굳이 뜯어와야 할 필요가 있나? 애초에 그치들은 정밀가공능력이 부실해서 제대로 된 부품들도 못 만들었다는데… 지난 대전처럼 대공황이나 걱정하세나.”

미국은 요사이 자신의 힘을 막 깨달아 가고 있었다. 아직 체계적인 총생산량 통계 같은 것은 없었으나 이전 시대까지 최강대국이던 영국이나 잠재적 가상적국이던 소련보다 월등한 국력을 가졌다는 게 확인된 것이다.

소련의 스탈린마저 얼마든지 미국에게 숙여 줄 의향이 있으니 이제 세계무대는 미국이 주물럭거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미국을 지도하는 자리에 누가 앉게 되느냐는 것이었다.

“당에서는 뭐라고 하던가? 또 월리스 부통령을 가지고 짹짹이던가?”

“예, 유감스럽게도… 당의 중진들은 월리스 부통령이 다음 대선에도 러닝메이트로 출마하는 데 반대했습니다.”

“그 빌어처먹을 새끼들. 매카시라는 자가 하는 말에 아직까지 딱히 근거를 못 찾았다며? 후버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다만 이렇게 말이 나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나,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개만도 못한 놈들. 루즈벨트는 낮게 욕설을 지껄이며 기침을 쿨럭거렸다. 가래가 끓는 기침을 몇 번 하다 멈춘 그는 한층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놈들은 그저 바지사장을 원할 뿐이야. 내가 픽 쓰러져 뒈질 거라고 생각하나? 나는 이번 임기도 꽉 채울 생각이네. 네 번쯤 했으면 그만할 때도 됐지만, 전쟁 이후 공황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뉴 딜이 필요하고, 난 그걸 죽을 때까지 할 작정이네.”

“예, 각하의 지도력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셜은 요사이 한층 건강이 나빠진 대통령을 안쓰럽게 내려다보았다.

루즈벨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정가의 고위급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루즈벨트가 그동안의 관례를 한 번 더 깨고 4선에 출마한다고 할지언정 그가 임기를 다 채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적었다.

그렇다면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부통령에 반드시 ‘적절한’ 사람을 집어넣어야 했다.

친소―용공 논란을 겪으면서도 소신을 지키는 데다 나이도 젊고 유능하기까지 한 월리스는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만들고자 하는 당의 중진들에게는 최악의 부통령 후보였다.

민주당 보수파들은 일단 꼭두각시 노릇을 시키기에 적당히 고분고분하면서도, 이념적으로 비슷한 선상에 있는 후보를 부통령에 올리고 싶어 했다.

“트루먼, 그 빌어먹을 꼴통 새끼가 뉴 딜에 찬성한답시고 중진들이 나한테 데려와서 들이밀었는데… 절대 안 돼! 제기랄, 그놈 덕분에 스탈린 서기장과 이야기할 때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아나? 월리스, 자네는 나와 같이 갈 거야. 내 최고의 파트너라고! 하하하!”

“감사합니다, 각하.”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다 다시 한참 기침을 한 루즈벨트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회중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D.C 시간으로 언제쯤이라고 했지?”

주어가 없었지만 모두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제… 5분가량 남았습니다.”

“알겠네. 크흠… 난 오늘은 몸이 별로 좋지 않군. 이만 하지.”

“예! 각하!”

루즈벨트는 휘청이는 걸음으로 국무회의 탁자에서 일어나 휠체어로 향했다. 그의 휠체어를 밀어 주는 경호원은 잠시 넘어질 뻔한 그의 팔을 붙들어 주었다.

“고맙… 쿨럭! 쿨럭!”

“각하! 괜찮으십니까?”

“그래, 난 괜찮아.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예정이네. 하하하하하!”

* * *

[기장의 판단에 따라 투하하라. 다시 말한다, 기장의 판단에 따라 투하하라]

호위기 편대는 도쿄 상공에서 별다른 저항이 없자 전대장의 명령에 따라 본 기지로 귀환했다. 대부분의 전투기들은 일본열도 남부의 규슈에서 상륙하려는 미군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되었다고 한다.

애초에, 일본의 공업력과 생산력이 계속되는 폭격으로 박살 나는 바람에 이 고도까지 올라올 수 있는 항공기가 몇 기 없기는 했지만. 1만 미터 고도에서 재빠르다는 일본군의 전투기들은 엔진 성능의 열악함으로 육중한 중폭격기도 따라오지 못하고 빌빌대곤 했다.

“예~ 알겠습니다!”

소련군 폭격대의 에이스, 바실리 오시포프는 경쾌한 목소리로 통신망에 대답했다.

물론, 그 역시 긴장하고 있었다.

그의 비행기가 품고 있는 거대한 폭탄이 저지른 파괴는 모르려야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선전이 나돌았다. 한 번의 실수로 지금까지의 커리어가 박살 날 수도 있는 것이다.

‘커리어가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되겠지만.’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왜 마리나 라스코바인가? 그 역시 연방영웅 훈장을 수훈한 최고의 소련 폭격기 조종사 중 한 명이었다. 아니, 솔직히 그의 생각으론 최고의 폭격기 조종사였다.

하지만 첫 핵폭탄 투하라는 영광스러운 임무는 라스코바에게 넘어갔고, 그는 역사에서 두 번째가 되었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두 번째.

거기에 더해, 그만이 두 번째가 아니었다. 총 14팀이 이번 임무에서 일본열도 전역을 폭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의 편대에만 해도 세 발의 핵폭탄이 탑재되어 있었다.

도쿄를 박살 내버리는 데에는 세 발쯤은 필요하다나?

아래를 보자 이미 처참하게 박살 난 도시의 흔적이 보였다. 미국의 어떤 미친놈은 도쿄를 파괴하기 위해서 소이탄을 저고도 비행으로 들이붓자는 의견을 내서 그것을 관철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으으, 미친놈들.’

그 스스로가 수백 번이나 적국의 군대와 국민들에게 죽음을 배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런 ‘관료적인’ 학살은 진저리가 났다.

1만 미터에 가까운 고고도에서 본 바로도 저 도시가 강대한 열강국의 수도라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저렇게 형편없이 파괴되었다니.

그 위에 한 번 더 거대한 파괴를 끼얹을 자가 바로 그였지만.

“기장님…?”

“아, 그래, 폭격수, 자네가 이어받게나.”

“예! 알겠습니다.”

미제 신형 폭격조준기를 사용하면 투하하는 동안은 폭격수가 기체를 조종하게 되었다. 그와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베테랑이기에 오시포프는 안심하고 통제권을 넘겨주었다.

“투하합니다!”

묵직한 폭탄이 떨어지자 비행기는 잠시 가벼워진 듯 했다. 조종간을 쭉 잡아당긴 그는 폭발의 반경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기수를 틀었다.

[2번기, 투하합니다.]

[3번기도 투하합니다.]

다른 기체들도 동시다발적으로 핵폭탄을 투하하고 그를 따라 기수를 돌렸다. 아무도 저 열폭풍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았다.

“자, 가자! 집으로!”

“옙!”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세 번의 섬광이 터졌다. 그 유명한 ‘버섯구름’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쩐지 궁금해져 뒤를 돌아본 오시포프는 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워… 워우….”

한때 제국의 수도였던 도시의 하늘에는 세 개나 되는 거대한 버섯모양의 구름이 피어올랐다. 서로를 휩쓸고 지나갔는지 마치 기이한 식물처럼 뒤엉킨 버섯구름은 죽음의 가지들을 땅 위에 드리웠다.

아마 일본의 주요 도시들은 오늘 밤을 잊지 못하리라.

몇 명이 죽었을까? 인구 600만이라는 도시에서, 다음 날 아침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자들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을 눈으로 보았음에 감사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될까?

기수를 돌린 비행대는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파괴를 뒤에 남겨 두고.

* * *

“아… 아아….”

일본인들은 절규했다.

핵폭탄은 동시다발적으로 일본의 주요 도시들에 떨어졌다. 도쿄, 오사카, 요코하마, 고베, 교토, 나고야, 히로시마, 후쿠오카… 일본에서 인구순으로 꼽으면 상위권에 있는 대도시들이 모두 한순간에 핵폭격을 얻어맞았다.

물리적으로 쑥대밭이 된 도시들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극히 적었다. 물론 파괴가 상대적으로 덜 휩쓸고 지나간, 폭심지에서 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달려와 그 파괴를 증언할 수 있게 되었다.

“없… 없어졌어….”

“거기 살아 있는 사람 없어요? 아무도 없습니까?”

먼지가 섞였는지 시커먼 비를 맞으며 사람들은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찾아 나섰다. 가족을, 친구를, 또 친지를 찾아 나선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은 돌 더미 안에서 참혹하게 바싹 타 버린 시신들을 발견하고 오열했다.

검게 타 버린 시체를 안고 우는 그들의 머리 위로 검은 비가 떨어져, 종국에는 누가 살아 있는 사람이고 누가 소살당한 시체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 * *

창백한 죽음은 가난한 자의 문과 왕의 궁전을 똑같이 두들겼다.

“폐하!!!”

“아… 아아…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시여….”

도쿄를 말 그대로 갈아 버린 핵폭격은 일본의 천황이 사는 황거라고 하여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아니, 소련은 처음부터 황거를 겨냥하여 핵폭격을 가했다. ‘전범 히로히토’를 재판정에 올리기 어려울 것 같으면 그냥 태워 죽여도 좋다는 서기장의 명령에 따라 핵폭탄 하나가 황거의 상공에서 폭발했다. 건물은 통째로 무너져 지반과 함께 가라앉아 있었다.

도쿄가 버섯구름에 뒤덮인 것을 보고 경악하여 달려온 사람들은 절망해 주저앉았다.

“제국의 역사가… 제국의 신께서….”

“이제 어찌한단 말인가….”

항복해야 하나? 일본이 그동안 전쟁을 해 온 마지막 이유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 야만스러운 미국과 소련을 상대로 일본의 국체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제국의 아들들이 마지막 충정을 보여주며 옥쇄해 왔다.

하지만 그들이 지키려던, 만세일계로 이어지던 황가가 증발해 버린 와중에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무너져 돌무더기가 된 일본 외교부 청사로는 전신을 통해 전문이 날아오고 있었다.

[즉각 항복하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핵폭격이 가해질 것이다. 일본국 정부는 즉각 무조건적으로 항복하라]

하지만 이를 접수할 정부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 안에서 일할 사람들은 대부분 폭격에 휘말려 죽거나 크게 부상을 입었다. 결정권을 가진 내각 관료들 역시 살아남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들은 소련이 전달하려는 의사를 수신할 방법이 없었으며, 사실 소련도 딱히 그들이 즉시 항복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12시간 지났나? 다시 폭격하게.”

이미 파괴된 도시의 잔해 위로, 혹은 아직까지 파괴되지 않았던 도시에, 한 번 더 핵폭탄이 쏟아졌다.

일본은 그렇게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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