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
183화
임진강 방어선은 맥없이 돌파당했다.
“으아아아악!!”
“연대장님이 당했다!”
임진강에서 조선 군단이 도하하지 못하도록 일본군이 전진배치했던 23연대는 부됸늬 전차의 고폭탄 사격 한 방에 지휘부가 몰살당하면서 박살이 나 버렸다.
군도를 뽑아 들고, 조선 군단 전차부대가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참모들을 거느리고 장병들에게 일장 훈시를 늘어놓던 연대장은 100mm 고폭탄에 얻어맞고 시체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안 그래도 구식 소총이나 죽창 같은 것을 들고 저 막강한 소련제 전차에 대항해야 한다는 생각에 심각하게 사기가 낮아져 있던 일본군 병사들은 지휘부가 개박살 나자마자 비 맞은 개미 떼마냥 이리저리 흩어져 버렸다.
“엥? 뭐지? 왜 저렇게 난리가 났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일단 저 교량부터 확보하자.”
일본군 군복 비슷한 것을 입은 놈이 저만치에 있길래 그냥 고폭탄을 한번 갈겨 본 조선 군단이 더 의아해질 정도로.
저들이 임진강 도하를 막기 위해 출동한 일본군이라는 것을 상상도 못 했던 대대는 그저 후속하는 1여단과 자주포여단 등의 병력이 도하할 수 있을 교량을 확보하는 작업에만 주력했다.
“작계대로라면 이곳을 건너서….”
일본군은 훈시를 한답시고 기갑부대를 저지할 수 있는 최고의 방어선인 대형 하천들을 점거하는 일조차 하지 못했다.
교량들만 제때 폭파했더라면 기갑부대가 이렇게 빨리 내려오지는 못했겠지만, 사실상 공황에 빠진 상급사령부와 각종 부조리에 찌든 하급부대들은 그 정도의 판단을 자율적으로 내릴 능력이 없었다.
“저쪽이다! 자! 진격하자!”
“우라! 우라! 해방 만세!”
목표는 경성. 전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경성으로 진입하기 위한 길목으로 조선군단은 의정부읍 방면을 선택했다. 의정부 방면으로 미아리고개를 넘어 경성에 들어가 총독부의 항복을 받아 내는 것.
이것이 기본적인 목표였다.
일본군 역시 경성으로 기갑부대가 진입하려 할 때 선택할 만한 경로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현재 소련의 탱크부대는 양주군(현재의 양주시, 의정부시)으로 진입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23연대는 적군과 교전 중 궤멸당했고, 소수의 살아남은 병력은 후퇴 중입니다. 120사단의 나머지 병력을 고양군 숭인면(현재 미아동) 방면으로 배치하여 방어선을 구축 중이나….”
“…구축 중이나, 뭔가.”
“장병들의 사기가 심각하게 낮습니다, 각하. 또한, 120사단을 고양군으로 전진배치할 경우 최악의 상황에서 경성부 내 폭동으로 경성부를 상실할 수 있습니다!”
조선인들은 아예 의기양양하게 줄을 지어 부내 주요 거리들을 행진했다. 조선인들이 주로 살던 북촌 일대뿐만 아니라 혼마치(本町, 현재의 중구) 일대에도 흰옷을 입은 조선인들이 난입하여 시위를 벌였다.
그나마 총독부는 경찰병력에 군병력까지 동원해 시위가 폭동으로 번져 나가는 것을 억제하고 있었으나 1만여 명에 이르는 병력이 북으로 빠져나갈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빼애애애애애애애액! 빼애애애애애애액!
밖에서는 시끄러운 나팔을 장착한 소련제 전투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빌어먹을! 저것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각하, 대공포대가 무력화당해….”
“멍청한 새끼들!”
일본 본토에 미군의 폭격이 집중된 바람에 조선반도에는 전투기들을 막아 낼 만한 대공무기체계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것을 알아챈 소련 놈들은 나팔을 장착한 전투기들을 수시로 띄워 보냈다.
“개 같은 놈들, 이젠 아예 우리가 무력해 보이나 보지?”
무력해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무력했지만. 전투기들은 경성 시내에 폭탄 대신 삐라를 무더기로 떨어트렸다.
[일본은 항복하라]
막강한 소련의, 아니 ‘독립 조선 기갑군단’의 군사력을 자랑하며 항복을 종용하는 삐라들이 경성의 흐린 하늘을 하얗게 수놓았다.
“어떻게든 막아! 막으라고!”
* * *
“하… 저걸 어떻게 막아야 하나?”
“….”
조선군단은 일본군과의 교전에서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남하하며 합류한 조선인들로 인하여 규모가 훨씬 불어나 있었다.
대대의 전차는 고작 45대뿐이었지만, 곳곳에서 무장한 건국준비위원회 소속 병력들이 합류하여 거의 수천 명 수준으로 불어나 있었다.
“저놈들은 근데 다 어디서 나온 건가?”
“아… 각지 경찰서가 항복하면서 무기고가 넘어갔다고….”
“제기랄….”
본토로, 지나대륙으로 대부분의 병력이 차출당하고 남은 것은 쭉정이들뿐인 일본군에 비해 조선군단이 여분으로 가져온 소련제 무기나 각지의 무기고를 털어 무장한 조선 봉기군의 무장상태는 크게 차이 나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전차에 비하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집채만 한 강철의 야수들이 낮은 굉음을 뿜으며 다가오는 것을 보며 일본군은 땀만 삐질삐질 흘렸다.
그 누구도 저기로 육탄돌격을 감행해 전차를 깨부술 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전에 아마 기관총이나 보병의 소총에 걸레짝이 되겠지만.
‘고개 양편에 매복한 채 저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려서 전차를 깨부수면 된다! 보병의 엄호가 없는 전차는 무력할 뿐이다!’
사단장은 그렇게 말하며 자기와 친한 장교들 몇몇만 데리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은 애초에 전제부터 틀려 있었다.
일단 훈련을 제대로 받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수백 명은 되는 보병들이 전차부대를 따르고 있었다.
전차부대는 어차피 약간은 시간을 더 주어도 일본제국과 총독부가 뭘 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양옆을 돌아보지도 않고 고속 주파하는 대신 위엄을 뽐내며 천천히 진군하고 있었다.
“뭐가 저렇게 크냐…?”
그리고 전차는 컸다. 조선 주둔 일본군이 본 유일한 전차인 치하 전차보다 서너 배는 크고 육중한 것 같았다.
둥그스름한 반구형 포탑은 자돌폭뢰를 붙이기 딱 봐도 어려워 보였다. 쭉 뻗어 나온 거대한 주포는 그동안 몇 명의 일본인들을 갈아 마셨는지 모를 정도로 강력해 보였다.
저걸 이 초라한 병사들을 데리고 저지하라고?
누굴 위해서?
조선은 그나마 식량 사정이 일본보다는 나은 편이었기에 병사들도 좀 더 잘 먹기는 했지만, 여전히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추레한 것은 다를 게 없었다.
시커멓게 탄 얼굴에 움푹 들어간 뺨과 깡말라 덜덜 떨리는 손목. 어쩌다 군대까지 끌려온 것인지는 알 법도 했다.
집이 가난하고 일자리가 없어서, 군입 하나 줄여 보려고, 또 나라에서 끌고 와서.
“대대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보게.”
대대장은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
과연 이들을 데리고 저기에 육탄돌격을 해서 얼마나 오래 시간을 끌어줄 수 있을까? 시간을 끈다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한다고 결국 대세가… 대세가 바뀔까?
“대대장님?”
“아, 잠시만 기다려 보라니까!”
조선군 전차 대오는 이제 고갯길을 넘어 경성부로 들어가는 길목을 향해 행군하고 있었다. 그나마 이 조악한 자돌폭뢰로도 깰 수 있는 측면 장갑을 내놓은 채 전차는 앞으로 앞으로 달려갔다.
매복한 채로 그들을 기다리던 병사들은 대대장의 돌격 명령을 기다리다가 명령이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통신병! 통신병!”
“예! 대대장님!”
“본부와 통신 연결해라.”
“예? 예!!”
의아하게 그를 쳐다보는 참모들의 눈치가 느껴졌다. 대대장 역시 가슴이 먹먹해지다가 등골이 서늘해졌다.
“본부, 본부, 응답하라.”
[여기는 본부. 무슨 일인가?]
“소련군 전차는… 목격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만 최후방어선으로 후퇴하겠다.”
[알았다. 후퇴하도록.]
본부에 그렇게 보고를 하니 어쩐지 가슴이 후련해졌다.
“하하하하하하!!”
껄껄 웃는 그를 참모들이 경악하여 바라보았다. 방금 조선 기갑군단 전차들이 지나갔는데 목격되지 않는다고 거짓을 보고하다니!
“대대장님…?”
“어차피 우리는 못 막네. 여기서 개죽음당할 텐가? 자네들도 부모님이 계시고 처자식들이 있지 않나?”
“하지만….”
“하지만 뭐, 죽어서 야스쿠니로 가자고? 하! 그러면 뭐 하나. 어차피 이 전쟁은 졌네! 한 몸 건사해서 살아남기나 하는 게 제일이란 말이야!”
갑자기 그렇게 고함을 치는 대대장을 보며 장교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원래 ‘국가에 충성, 황국을 위해 옥쇄’ 하면 은근히 비웃던 이였으나, 대놓고 명령에 불복종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와아아아아! 대대장님 만세!”
“만세! 만세! 따르겠습니다!”
당장 저승사자가 눈앞에서 어슬렁대다가 입맛을 다시고 돌아간 판에, 다시 저기에 몸뚱아리를 가져다 박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직접 총 잡고 돌격하는 것이 자기가 아니라고 입으로만 충성을 논하는 장교들이야 논외로 친다면. 장교들이 반대할 기미가 보이자 병사들은 외려 장교들에게 총구를 겨누기 시작했다.
“대세가 이러한데, 따르지 않을 건가?”
“…대대장님의 말씀이 옳은 것 같습니다.”
“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순식간에 흉흉한 얼굴로 총을 겨누는 병사들을 둘러보더니 한껏 졸아든 장교들은 다시 입을 닫고 대대장의 훌륭한 판단을 칭찬했다.
역시, 아무리 입으로는 충성이며 명예며 옥쇄를 떠들어도 근본적으로 이들은 겁쟁이였다.
‘비겁한 자들, 나를 포함해서….’
그들은 비겁했고 선택적으로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명령 불복종을 할 용기는 그냥저냥 낼 만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소련 전차에 꼬라박을 만한 용기는 없었다.
* * *
“아니, 그쪽으로 안 내려온다면서?”
“그, 그렇게 보고는 받았는데….”
경성부로 들어가는 마지막 길목인 미아리고개를 아무 일 없이 통과한 소련군은 이제 경성에 진입했다.
보고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조선군단의 전차들을 본 일본인들은 경악했다. 총독부에서는 각종 고함과 고성이 오갔고,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는 이들로 난리가 났다.
“이게 다 당신 책임이오! 병력을 어떻게 통제했길래 벌써 소련군이 여기까지 당도한 거요?”
“어떻게 그게 내 책임입니까? 현실적으로 저들을 막을 수단이 없는데! 경성 내 소요도 통제하지 못하면서 왜 내게 책임을 돌리려 합니까?”
“자, 자 그만하시고 저 ‘건국준비위원회’의 교섭안을 어찌할지….”
“그걸 용납한다는 게 말이나 되오? 차라리, 차라리 다 불태워 버립시다!”
별다른 대책이 나오지는 않는 와중, 밖에서는 시끄러운 함성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대한 독립 만세!!!”
“이 무슨 소란이야! 제기랄, 감히 총독부 앞에서 조센징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창문으로 나가 대체 무슨 일인지 보려 한 고이소 구니아키 총독은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이, 저, 무슨… 아….”
“총독 각하? 무슨 일이십니….”
하얗게 질려 뒷걸음치는 그를 보고 부축이라도 하러 간 총독부 관료 역시 말을 잇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쾅! 쾅! 쾅!
부됸늬 전차의 전차포 일제 사격은 총독부 청사를 박살 냈다.
산산이 부서져 휘날리는 돌가루며 기우뚱하며 무너지는 건물을 보며 군중은 환호했다.
“대한 독립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