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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82화 (182/300)

# 182

182화

소련군이 관동군을 격파하고 진격하던 바로 그 시간대. 이오지마에는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오지마에는 3개의 일본 비행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미군은 본토 상륙작전 및 안정적인 폭격로 확보, 일본 공군의 제공 거점 제거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이오지마를 점령하고자 했다.

특히, 미국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이오지마를 최대한 빠르게 점령할 것을 명령했다.

“이오지마를 점령해야 상륙할 수 있어! 최대한 빨리 저 코딱지만 한 섬을 치우고 혼슈와 규슈로 가도록 하지!”

상륙에 앞장을 서야 하는 해병대와 현실적으로 이것이 어려울 것을 아는 해군 제독들이 반발했지만 맥아더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예 무슨 개가 짖나 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쓱 바라본 맥아더는 파이프를 뻑뻑 피우며 툭 던졌다.

“나는 명령하고, 당신네들은 수행하지. 그게 군대야.”

맥아더의 참모들은 길길이 날뛰는 해군 제독들을 말려야 했다. 그에게 각종 청탁이며 인터뷰며 하겠다고 날아오는 워싱턴의 정계인사들과 기자들을 상대하느라 맥아더는 바쁘기 그지없었다.

“이오지마는 육군이나 해군이나 주둔기지로는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각하.”

“하지만 항공기지로는 쓸모가 있지. 드와이트, 폭격기로 때려 부수고 전함으로 펑펑 쏴 주는데 그걸 상륙을 못 한다고?”

“….”

애써 그를 붙잡고 이견을 제시한 아이젠하워에게 맥아더는 싸늘한 눈초리를 던졌다. 한숨을 푹 내쉬며 돌아나와 어깨를 으쓱하는 그를 해병대 장성들은 핏발 선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일본군과 미군은 피비린내 나는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 * *

“하루라도 더 살아라! 더 살아서 황국을 위해 싸워라! 옥쇄라는 허울 좋은 말로 전투에서 도망치려 하지 마라!!!”

“덴노 헤이카 반자이이!!!”

이오지마의 일본군 사령관 구리바야시 다다미치는 대부분 정신 나간 작자들투성이인 일본군에서 몇 안 되는 상식인 중 하나였다.

군사대학에서 배운 ‘상륙전에서는 상륙 직후가 가장 취약하다’라는 꽉 막힌 도그마에 그는 의존하지 않았다.

“미군은 우리 황군에 비해 압도적인 포격, 폭격 지원을 받고 있다. 우리가 상륙 직후 공세를 가하기 위해 해안선 근처에서 대기할 경우 저들의 사전 포격에 무익하게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대신 그는 압도적인 화력을 상대로 싸우기 위한 전술을 채택했다. 다중의 참호와 땅굴을 파고, 적의 포격이 집중되는 해안선보다 한참 들어온 안쪽에 방어선을 구축한 채 버틴다.

구리바야시의 전략은 얼추 들어맞는 듯했다.

“씨발! 씨발 맥아더! 개 같은 새끼!”

“아아악! 어머니!”

한동안 수백, 수천 발의 포탄을 퍼부었기에 다 죽었을 줄 알았던 빌어먹을 잽스들은 이젠 땅굴에 숨어서 기관총을 갈겨 댔다.

원래처럼 나 쏴 달라는 듯 반자이라고 고함을 지르며 돌격한다면 미군의 중화기에 갈린 고깃조각이 되었겠지만, 일본군은 철저하게 몸을 숨긴 채 참호와 동굴에서 자기네들의 지리적인 이점을 활용했다.

화산섬의 중턱, 상대적 고지대를 이용하여 진지를 설치하고 땅굴망을 판 일본군들은 철저하게 미군을 자기네들이 구축한 방어선 안으로 끌어들였다.

투타타타타타타타! 일본군의 기관총이 땅굴로 기어들어 오는 미 해병대 병사들에게 쏟아졌다.

기관총으로 잽스를 갈아 버리는 것만 알고 있던 미군에게는 실로 신선하면서도 불쾌한 경험이었다.

반강제로 섬 점령에 투입된 병사들은 맥아더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죽어갔다.

“씨바아아아알! 좆같은 잽스 새끼들 다 뒤져라!”

“다 태워버려!”

화아아아아아아아! 굉음을 내뿜으며, 뜨거운 화염이 동굴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땅굴을 파고 근접전을 강요하며 방어선에서 총구만 내놓은 일본군을 조지기 위해, 미군은 화염방사기를 가져와 모조리 불태워 버리는 것을 택했다.

상륙함에서 내린 개조판 수륙양용 전차들은 일본군의 화기를 막아 내는 토치카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여기에다가 일반 포가 아니라 화염방사기를 장착하고, 연료통을 주렁주렁 매단 화염방사전차들을 투입하자 땅굴은 하나하나 정리되어 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자그마한 섬에서 죽어 갔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았지만.

“포격을 더 하라고! 개새끼들아! 저기서 뒤지는 게 개새끼로 보여? 내 눈에는 우리 미군 병사들로 보이는데?”

“포탄이 부족하오! 지금 우리에게 할당된 포탄은 이것이 전부요. 제기랄, 내가 이러고 싶어 이러는 줄 아시오?”

일본군의 지하진지를 부숴 버릴 만큼의 포격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해병대 장교들은 사전포격지원을 담당하는 해군 포술장교들이나 항공대의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추가적인 화력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군의 막강한 보급역량으로도 충분한 지원은 할 수 없었다.

“일본 본토 상륙을 위해서라도 예비 물자를 비축해 두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조삼모사. 지금 있는 폭탄을 모조리 써 버리면 규슈나 혼슈에 상륙할 때에는 지금만도 못한 지원 속에서 싸워야 했다.

다행히도 불도저나 탱크 같은 중장비들은 지원이 되었기에 어찌어찌나마 일본군을 제압해 갈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악!”

“자돌폭뢰 가져와! 가져오라고!”

“묻힌다! 안 돼!!”

두터운 장갑을 두르고 앞에는 불도자 삽날을 단 전차는 그냥 일본군이 버티고 있는 굴을 출구째로 메워 버렸다. 전투공병대원들은 각종 폭탄을 이용하여 땅굴을 폭파시켜 무너트렸고, 그 안에서 미군을 기다리던 일본군은 산 채로 생매장당했다.

기관총에 맞아 갈려 나가는 해병대원, 화염방사기에 타 죽는 일본군, 생매장당하며 울부짖는 병사들, 또 그들을 묻어 버리며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는 공병대.

그 지옥도 사이에서 양군의 지휘관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 코딱지만 한 섬 하나 점령하는 데 며칠이나 걸려야 하나? 공군 놈들이 다 때려 부숴서 우리가 할 게 없겠군!”

“….”

이오지마에 투입된 전투병력 10만여 명 중 벌써 5천여 명이 전사하고 1만 명 이상이 부상당했다는 보고에도 맥아더는 시간을 끈다는 데 더 불쾌해하는 것 같았다.

“적의 저항이 강력합니다, 각하. 해병대는 용맹히 싸우고 있지만….”

“용맹히? 흠, 뭐, 소련군만큼 용맹하지는 않은 것 같군. 그들은 벌써 80만 명이나 되는 관동군을 박살 내고 남하한다는데 여기 이 섬에 틀어박힌 일본군이 한 100만 명은 되나?”

“….”

흰자위의 핏줄이 터져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지만 해병대 장성은 옆에서 팔을 붙잡는 동료 때문에 파이프를 질겅대는 맥아더의 아구창에 주먹을 갈기지 못했다.

“고작 2만 명이네 2만 명! 전차도, 대포도 없이 카미카제로 들이받는 놈들한테 3주씩이나 시간을 쓰고 있다니…. 제발, 좀 아니라고 해 주게.”

칼이나 뽑아 들고 반자이 돌격을 하는, 그동안 만나보았던 허접한 군대와는 확연히 다른 이들이었지만 맥아더는 아랑곳 않고 부하 장성들을 힐난했다.

“각하, 전 병력은 최선을 다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아이젠하워가 끼어들어 중재를 시도하자 맥아더는 버럭 고함을 쳤다.

“그럼 좀 더 잘 해 보란 말이야!”

“각하, 센다 소장이… 전사하였다고 합니다.”

“…무인다운 최후로군. 비행장의 항공대는?”

“전원 특공을 통해 산화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군. 그래. 구리바야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섬을 뒤흔드는 포화가 전혀 줄어들지 않은 것을 보면 특공은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면 성과를 올렸는데도 미군이 더 많은 함대를 끌고 온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나 전국은 이미 미국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황군이 설정한 ‘절대국방권’은 맥없이 돌파당했고, 태평양의 섬들을 거점으로 미군은 본토며 곳곳의 군사기지들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오지마만은 특별해서 돌파당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매운맛을 봤으면 제발, 본토에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제 일본군 상부의 소위 ‘비관론자’들이 바라는 것은 그것이었다.

소련은 독일을 거대 폭탄 한 발로 무력화시키고 사실상 전 유럽을 장악했다. 이제 일본을 비롯한 극동에도 손을 뻗쳐 오는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미국은 일본이 필요할 테니, 국체를 보존하고 몇 가지 요구조건을 이행하는 수준에서 평화협상을 맺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최소한 비관론자들 중 가장 낙관적인 이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진짜 비관론자들은 미국이 미쳤다고 평화협정을 할 것이냐고 냉소를 표했지만.

하지만 2만 명에 불과한 병력으로도 수십만 미군을 붙들고 막대한 피해를 강요할 수 있다면 다를 수도 있다. 구리바야시는 마지막 희망을 그곳에서 찾고자 했다.

참모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쓴 편지를 정리한 그는 지필묵을 정돈하고, 종이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사령부의 어린 당번병은 불안한 표정으로 지금 이것이 무엇인가 두리번거렸다.

“제군! 자네는 꼭 이곳을 살아 나가서 이 편지들을 전달하도록 하게.”

“예? 예! 아, 예! 장군 각하!”

황국의 건아답게 싸우다 죽는다. 그것 이외에 해답은 없었다.

다만 가족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전달할 전령 한 명 정도는 남겨 놓아도 좋겠지. 사령부의 전원은 각자 편지를 작성해 남겨 둘 여유가 있었다. 다른 전우들은 그럴 시간도 없이 꽃잎처럼 산화하여 흩어졌지만.

“내가 제군들보다 먼저 산화하여 제군들이 세우는 공훈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장 훈시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담담하게 마지막 말을 남기는 사령관을 쳐다보았다. 씁쓰레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는 말을 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군들이 세운 공훈, 나라에 바친 헌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싸움에 졌을지언정, 일억 국민들이 우리 뒤에 있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는 영령이 되어 다시 만나자. 편히 나라를 위해 순교하자!”

“덴노 헤이카 반자이! 반자이!”

“반자이이이이!”

“참 이상한 일이야….”

우렁차게 훈시를 마무리한 그는 다시 어린 당번병에게 고개를 돌렸다.

한 뭉텅이의 편지를 정리하는 당번병은 예? 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구리바야시는 이제는 슬며시 미소를 짓고 눈을 반개한 채 의자에 앉았다.

눈물이 흐르는가? 지엄한 사령관님의 얼굴을 오래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숙인 어린 병사는 자기가 본 것이 무엇인지 잠시 고민했다.

“참… 참 이상해….”

사령부 인원들은 이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돌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석부관은 사령관의 군도를 점검하며 한구석에 소중히 모셔 두었던 군도 수입용 기름을 꺼내어 칼을 닦고 있었다. 하지만 사령관은 그런 것에는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는 듯했다.

“가족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겠다고 마음먹었건만, 왜 가족들만 생각하면 마음이 흔들릴까?”

그 말을 남긴 구리바야시는 하하하 웃으며 부관이 준비한 군도를 두 손으로 꾹 잡았다.

“가자! 야스쿠니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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