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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77화 (177/300)

# 177

177화

결전의 날이 도래했다.

아직 일본인들은 개전이 1주일 정도 남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주일소련 대사관에서는 일본인들을 위한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후후… 저 친구들도 자기네들이 했을 때는 다시 당할 것을 생각했겠지? 너무 깜짝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군.”

“하하하하하하하! 아, 저 자식들 얼굴이 기대됩니다.”

미국과 일본에 통보한 불가침조약 파기 기간은 독일의 항복으로부터 1달 후였다. 하지만 비밀리에 미국에만 알린 채 소련은 선제기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진주만을 선전포고 없이 기습한 일본의 비열한 행태에 분노했던 미국은 이제 일본이 자기네들이 한 짓을 똑같이 돌려받는다는데 일종의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

단지 아직도 이오지마를 뚫지 못하고 병력만 꼬라박는 중인 맥아더 원수의 파이프가 하나 더 박살 났을 뿐.

소련 주일 대사관은 본국에서 전문이 도착하는 대로, 즉 공격이 시작된 이후 일본에 선전포고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아 통보를 준비하고 있었다.

[띠-띠-띠, 알린다. 본국에서 알린다. 지금부터 3시간 후 일본 정부에 해당 문서를 전하라.]

“예! 알겠습니다. 자… 이제 우리는 가 볼까?”

지금은 새벽 1시. 막 공격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자기네들이 야간전에 굉장히 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보부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피로 점철된 동부전선에서 단련된 소련군과 한판 꽝 붙을 때는 어떨까? 험지가 적잖이 있기는 했지만, 만주는 동부전선과 상당히 비슷한 지형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 날씨도 추워져 있었기에 더더욱.

“하… 빌어먹을 잽스 놈들. 이제 안녕이다!”

* * *

우르르릉, 우르릉. 새벽의 고요함을 뚫고 차량의 굉음이 평야를 진동시켰다.

온 땅을 덮은 흰 눈을 헤치고, 전차가 진격한다. 이미 국경의 요새선 및 일본군이 구축한 방어진지들은 침투한 소련군 침투부대에 의해 교란당하는 중이었다.

일본의 작전계획은 처음부터 하자가 있는 계획이었다.

“멍청한 놈들. 이 드넓은 평야를 요새 몇 개 가지고 지키겠다고?”

“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달려라! 달려!”

차가운 공기가 시속 수십 킬로미터로 달리는 전차를 맞받았다. 일본군은 분명히 자기네들이 기갑 전력이라는 측면에서 열세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차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치하, 치누 같은 것들을 T-34나 부됸늬 중전차 같은 괴수들 앞에 들이밀었다가는 박살 날 것이 뻔한 터. 그들은 그래서 기갑전력을 붙들어 놓기 위한 방편으로 요새선을 구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애초에 기갑부대라는 것이 왜 탄생했는가? 단단하게 구축된 요새와 끝없는 참호전을 돌파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전차는 달렸다. 적의 후방으로, 후방으로. 고작 80만 명 가지고는 역전의 용사들을 막을 수 없었다.

일본인들에게는 독일 놈들이 쓰던 판처파우스트 같은 대전차로켓도, 티거 중전차 같은 일당백의 무시무시한 무기도 없었다. 듣기만 해도 이가 갈리는 모델 원수 같은 명장도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우라! 우라! 우라!”

“전차부대 진격하라! 우라!!!”

소련 전차병들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앞에는 육중한 체구에서 우렁찬 엔진음을 토하는 부됸늬 전차가 달렸다. 하늘에서는 기갑부대의 진격을 엄호하는 불곰 전투기들이 맴돌며 지상의 목표들을 노리고 있었다.

저 앞의 작은 초소의 불빛이 보였다.

“11시 방향 거리 2천, 고폭탄 장전하고 쏴!”

“예엡!”

85mm 주포가 콰릉 하고 불을 뿜자 일본군의 국경경비초소였던 것으로 생각되는 무언가는 산산이 터져 나가며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첫 전과였다. 어디선가 땅, 땅, 단발 소총이 발사되는 소리 비슷한 게 들려왔지만 전차의 장갑은 그런 허접한 것쯤은 얼마든지 튕겨 낼 수 있었다.

끼이이이이익! 더 이상 슈투카, 공포의 상징이 아니라 든든한 아군 불곰의 상징이 된 나팔 소리를 뿜으며 전투기가 저 앞에서 지상으로 급강하했다.

쾅 하고 항공폭탄이 터지는 불빛 속에서 뭔가가 또 터져 나가는 것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유개호인가? 어쩐지 사람의 팔다리 같은 것이 언뜻 보인 것 같았지만 전차병들은 곧 잊기로 했다.

“일본놈들은 야간에 보초도 안 서나… 루마니아 군대도 아니고. 껄껄껄!”

“하하하하하! 루마니아 놈들인가 이탈리아 놈들인가 그렇게 개판이라죠?”

베테랑 전차병들은 자기네들이 겪어 보았던 적군들에 대해서 각자의 무용담을 풀어 놓았다. 마구 탈영해서 총구를 어제의 동지들에게 돌리던 루마니아 군대. 총 몇 방 쏘면 손을 들고 항복해서 포로수용소로 빨리 가고 싶어 하는 이탈리아 군대 같은.

물론 일본인들이라고 보초를 안 서는 것도 아니었고, 또 나름대로 보고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했다.

대책이 없었을 뿐.

* * *

“어떻게 거기에 소련군 전차가 나타나! 아직 개전까지는 시한이 남아 있단 말이다!”

[…알겠습니다. 일단 사단… 소련군 기준 군단 규모의 적 전차부대와 교전 중입니다. 저희 보병부대들은…]

사단장은 야밤에 자기에게 보고랍시고 전화를 건 대좌에게 한참 난리를 피우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었지만, 전차와의 교전이라는 말에 쏟아부으려 했던 말을 잊고 말았다.

옆에 반라인 채로 누워 있던 러시아 혼혈인 기생은 마구 고함을 치는 목소리에 눈을 부스스 비비며 일어났지만 그녀의 나신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상… 상급사령부에 일단 보고하겠다. 203연대는 현 위치를 사수하라!”

[…예, 각하. 저희 부대는 전원 옥쇄를 각오하고 있습니다.]

“에잉… 충용무쌍히 싸워 격퇴하지는 못할망정 벌써 옥쇄를 논하나?”

차갑도록 담담한 연대장, 대좌의 말에 사단장은 혀를 차고 툴툴거리며 옷을 걸치려 했다. 훈도시를 집어 드는 손이 떨려서 떨어트리기 전까지는.

“이게, 이게 무슨 일인가….”

실제로 전쟁이 났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등골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확 소름이 돋았다.

사단장, 그는 육군대학에서 줄을 잘 타고 상급자들에게 철마다 뇌물을 가져다 바쳐 출세한 위인이었다.

처가가 사업가로 제법 잘 나가는 덕에 처가의 돈으로 총리대신이며 육군대신이며 관동군 참모장 댁이며 사바사바를 해서 사단장 자리에 올랐다.

그전까지는 참모로 본부에서나 굴렀고, 일선 야전에서 지휘를 해 본 것은 기억도 안 날 만큼 까마득한 옛날의 소위 시절 정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나….”

바들바들 떨며 이를 딱딱 부딪치는 그를 혼혈인 기생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도망가야 하나?’

하지만 어디로? 소련군은 흉악하기로는 세상에 비할 바가 없는 작자들이라 했다. 재빠른 전차도,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많다고 했다.

도망가봐야 그놈들 손바닥 안일진대 어디로 가야 하나?

문득, 침실 벽에 걸린 아름답게 세공된 일본도가 눈에 들어왔다. 밑의 누군가가 사단장 취임을 축하드린답시고 가져온 선물이었다.

꿀꺽, 그는 침을 삼켰다. 할복? 할복이라도 해야 하나?

무능한 사단장이 일본도를 보며 할복을 고민하는 동안 휘하 연대장은 군도를 뽑아 들고 마지막 돌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군이 올 때까지는 적잖이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 그러면 저희는….”

겁에 질려 벌벌 떠는 부하 장교들, 그마저도 전원이 다 모인 것도 아니었다. 몇몇은 아마 소련군 전차부대에 짓밟혔을 것이고 또 얼마는 불명예를 감수하고 도망쳤을 것이다. 원래 그런 자들이었으니.

“귀관들도 대일본의 건아가 아닌가? 한평생, 천황 폐하와 황국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때가 되면 옥이 바스러지듯 깨어질 뿐. 덴노 헤이카 반자이!”

“…반, 반자이!”

3식 군도를 빼어 들고, 연대장은 우렁찬 목소리로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쳤다. 부하 장교들 역시 각자 떨리는 목소리든, 아니면 각오한 목소리든 따라 만세를 외쳤다.

일본군이 야간 전술에 능하다 할지언정, 환하게 탐조등을 켜고 진격하는 적 전차부대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적의 전차를 격파하기 위해… 총검술을 사용할 것이다.”

“….”

대전차무기라곤 T-34 전차의 측면이나 후면을 영거리 즈음에서 사격해야 간신히 관통을 노릴 수 있는 대전차소총 한두 정밖에 없는 일본군은 결국 극단적인 전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수류탄이며 폭발물을 한가득 묶어 들고 전차 아래로 던져넣든가, 혹은 차창에 총검을 박아넣든가. 어느 쪽이든 눈에 발이 푹푹 빠지는 이 평원에서 시속 수십 킬로미터로 달리는 전차들을 상대로 할 짓은 아니었지만.

“자… 본부대는 나를 따르라!”

저만치서 장교들이며 하사관들이 치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겁먹은 병사들을 이끌고 전차부대에 돌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원 착검! 더러운 로스케들에게 일본건아의 용맹을 보여주자! 덴노 헤이카 반자이!”

“덴노 헤이카 반자이!”

* * *

“으아아아악! 저 새끼들 또 온다!”

캄캄한 밤, 탐조등의 불빛은 수백 미터 앞의 적군까지 환하게 비추었다. 애초에 달빛 덕에 웬만한 것은 다 볼 수 있었지만.

왜소한 체구의 일본인들은 전차를 보면 대전차포를 쏘거나 로켓을 쏘거나 포병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총검을 착검하고 달려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소련군 전차병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고폭탄 장전하고 되는대로 쏴! 씨발….”

“기관총! 기관총 쏘라고 제기랄!”

전차부대는 흩어져 달려오는 일본군 보병들을 처리하기 위해 고폭탄이며 기관총을 마구 쏴 갈겼다.

“반자… 아아아악!”

“오… 오까상….”

소련군 전차부대들이 그동안 상대해 왔던 독일군과는 질적으로 다른 상대였다.

보통 이쯤 되면 독일군은 포격이 날아들거나, 혹은 3호, 4호 전차나 구축전차 같은 것이라 해도 기갑장비가 소련군을 상대하기 위해 나왔다.

하지만 일본군은 기갑장비라는 것이 없는지 영 제대로 된 반격이 없었다. 포성 역시 익숙한 아군의 것뿐.

별 의미도 없이 소총이나 몇 방 쏘다가 이상한 괴성을 지르며 돌격해 오는 일본군을 소련인들은 그저 학살했다.

사단장이 공황상태에 빠져 제대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 그런 것이었지만 말단 소련군 전차병들이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여기에 저들은 쇳덩어리로 된 전차에 온몸으로 부딪혀 왔다.

흰 눈밭은 일본군의 피와 살점으로 뒤덮였다. 전차의 육중한 궤도는 조금 전까지 일본군이었던 시신을 으드드득 하며 짓밟고 지나갔다.

이는 소련군 전차부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아, 씨발… 야! 조종수! 운전 똑바로 못 해?”

“죄, 죄송합니다!”

“하… 너, 궤도에 사람 시체가 끼면 청소할 때 얼마나 좆같은지 아냐?”

“아니요….”

씨발, 말을 말자.

고참 전차병인 전차장은 욕설을 씨불이며 앞에 또 일본군이나 그 시신이 없는지 두리번거렸다. 사실 둘은 별 차이 없었지만

궤도에 사람의 시체가 끼면 굉장히 역겨운 냄새를 풍길뿐더러 제거하는 것도 골치가 아팠다. 이것이 일본군이 소련 기갑부대에 주는 최대의 타격 중 하나였다.

“얘들 군인 맞습니까? 군인인데 왜 무기가 없어요?”

“낸들 알랴?”

“이거… 우리 제대로 온 것 맞습니까?”

다른 하나는 바로 이런 데 있었다.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하는 병신 같은 놈들을 학살한다는 죄책감을 심어 주는 것.

소련군은 전진했다. 궤도의 시체와 죄책감을 달고서.

기갑부대의 속도는 여전히 일본군이 대응할 수 있는 것보다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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