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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76화 (176/300)

# 176

176화

독일에 대한 소련의 처우는 가혹했다.

다른 추축국들 역시 가혹한 대우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산당 레지스탕스가 봉기하여 파리를 함락시키고 4공화국을 선포한 프랑스나, 미소가 분할 점령한 데다가 왕실이 무솔리니를 마지막에 실각시킨 이탈리아에 비해 독일은 ‘죄질이 악랄’했다.

독일이 저지른 짓들이 하나하나 드러날 때마다 세계는 경악했다.

[나치 독일의 만행이 드러나다: 폴란드에서 발견된 ‘절멸수용소’]

[독일의 생체 실험 자료, 비인간적 실험의 집합 공개]

소련군은 이러한 ‘전쟁범죄’를 파헤친다는 아주 좋은 핑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지은 죄질이 덜한 민간인들에게는 철저하게 신사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반면 전쟁범죄의 관련자들, 예컨대 군인들이나 생체실험 관련 혐의가 있을 법한 과학자들, 혹은 노예노동 관련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법한 공학자와 기술자들은 모조리 색출되었다.

“찾아! 여기에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예! 너희는 저쪽으로 가라! 우리는 이쪽으로 돌입한다!”

수많은 과학자들은 탈출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NKVD의 날카로운 눈은 감히 이런 순진한 민간인들이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베르너 폰 브라운? 당신 맞지?”

“아, 아니오! 나는 그… 저….”

자기 가명도 헷갈렸는지, 어색한 콧수염을 붙이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눌러 쓴 중년 남성은 소련 군복을 입은 청년 하나가 완벽한 독일어로 자기 이름을 부르자 당황하며 손에 든 짐마저 버리고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건장한 병사들이 나타나 그를 둘러싸고 총을 겨누었다. 벌벌 떨며 두 손을 높이 든 베르너 폰 브라운의 양옆에서 NKVD의 파란 모자를 쓴 두 명의 요원이 그의 팔짱을 꼈다.

“자, 갑시다. 당신은… 뭐 이런저런 혐의가 있다는데 나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갑시다!”

“아… 아… 살려, 살려 주십시오.”

“어허, 어디 우리가 뭐 사람들 막 죽이는 그런 흉악한 놈들로 보이나?”

당연히 마구 죽이는 흉악한 사람들은 맞았지만 폰 브라운은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고개만 마구 휘휘 저었다.

NKVD 요원은 어색한 독일어로 농담을 했다.

“후후후후, 잡아먹지는 않을 테니 따라오시오. 우리 그렇게 나쁜 사람들 아니라니까?”

전쟁이 말기로 치달으면 치달을수록, 총통은 전황을 뒤집기 위한 ‘슈퍼 무기’에 집착해서 막대한 자원과 인력을 투자했다.

독일제국의 가장 뛰어난 두뇌들이 이러한 기조하에서 엄청난 예산을 투자받았고, 각자 나름의 연구성과를 구축할 수 있었다.

물론 혁신적인 연구성과가 실제로 엄청난 전력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독일은 결국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하하하하! 다 나오시오! 안 아프게 살살 끌고 가 드릴게!”

“히이이익!”

“아차! 혹시나 여기 있는 자료들을 사보타주하려 한다면 음… 북극 근처의 굴라그가 특별히 예약되어 있소이다! 말년을 펜대 굴리면서 편하게 보내고 싶으시다면 조용히 걸어 나오시고… 얼음을 많이 좋아하시면 사보타주하셔도 좋소! 가족 중에 얼음 좋아하는 분들이 많소이까?”

베를린이 순식간에 초토화되면서 전쟁이 끝났기에 연구소에서 일하던 과학자들이며 공장의 기술자들은 도망칠 시간도 없이 종전을 맞이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들을 노리고 순식간에 짓쳐 들어온 NKVD 요원들에게 연행당했다. 가져다 붙일 수 있는 혐의들은 다양했다.

독일은 실로 다양한 분야들에서 노동력이 부족했고, 자국민들을 유태인이며 패배주의며 각종 혐의를 붙여 가며 숙청해 놓고는 점령지 주민, 혹은 포로들을 노예노동에 동원했다.

거의 모든 연구기관과 공장들이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소련은 이곳에서 복무한 이들에게 ‘전쟁범죄’ 및 ‘반인륜범죄’ 혐의를 붙여 연행했다.

아직 미군은 독일 해방지구에 진입하지 못했고, 무장해제당한 독일군은 저항할 수도 없었다. 장교들과 장군들이 가장 먼저 끌려갔으니 지휘를 할 사람도 없었지만.

“우와… 여기 정말 대단하군! 마그니토고르스크만큼은 아니지만….”

“감탄할 시간 없네! 빨리, 빨리 움직이게!”

“예!!”

또한,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연합국은 독일 산업역량에 대해서도 제한을 두는 데 합의했다.

본토가 독일군에 짓밟히며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은 소련은 공업역량을 보충하기 위해 독일 루르 지역을 일종의 전리품으로 간주하고 지역의 공업기반설비들을 뜯어낼 준비를 마쳤다.

“레닌그라드에서도, 서우크라이나에서도 했던 것을 여기 와서 하게 됩니다! 하하하하하!”

“그러게. 자기들이 쳐들어올 때는 이렇게 당할 생각은 못 했겠지?”

독일인 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낄낄 웃으며 기계들을 해체하는 소련인들을 쳐다보았다.

루프트바페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 독일의 공업지대를 때려 부수는 미국 항공기들을 막아 냈다. 그렇게 해서 지켜낸 시설들은 소련이 말 그대로 날로 처먹게 되었다.

전시에 자국 영토의 각종 공업시설들을 해체해, 말 그대로 도시를 통째로 우랄산맥으로 들어 옮겨 본 소련인들은 이런 작업이 너무 익숙하다는 듯 즐겁게 루르 지역을 하나하나 해체해 나갔다.

“독일의 중공업 설비들은 모두 뜯어서 가져오도록!”

서기장은 명령을 내렸다. 루르에 가장 많기는 했지만 독일 전역에서 이와 같은 산업설비 약탈 작업이 잇따랐다.

미국 재무장관 헨리 모겐소 역시 전후 독일 처리 과정에서 독일의 산업역량을 박살 내 다시는 세계대전을 꿈꿀 수 없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독일을 4분할, 5분할 해야 한다! 독일의 철강 생산량은 3백만 톤으로 제한해야 한다! 1,500개의 주요 공장들을 파괴해야 한다! 온갖 급진적 발언들이 오갔다.

그 와중에 이득을 보는 것은 소련이었다.

연간 생산량 2,500만 톤가량의 독일 철강산업을 300만 톤만 남기고 다 뜯어 간다면? 안 그래도 부족한 소련의 철강 생산량을 2,000만 톤이나 늘릴 수 있었다.

“이… 이걸 가져간다니….”

“제기랄! 끝까지 싸웠어야 했어!”

철강, 화공, 기계, 전기 등 각 분야의 수많은 공장들이 소련군에 의해 점령당했다. 기술자들은 욕설을 내뱉었다.

소련군에게 애걸하며 질질 끌려가기 전까지는. 공장 기숙사 지하층에 있던 노예노동자들은 해방군에게 그들이 저지른 잔학행위들을 즉시 보고했고, 기술자들은 결국 줄줄이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저들입니다! 바로 저들이에요! 저들이 채찍질을 하고 생산량을 유지하라고 철야를 시키면서 식사는….”

“그래? 잡아!”

특히 화공분야는 전체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게파르벤(I.G Farben)을 비롯한 화공기업 총수들은 소련군이 거의 진주하자마자 NKVD에 의해 연행당했다.

“칼 크라우슈? 당신을 반인륜 범죄 및 노예노동과 관련한 혐의로 체포하오.”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화학공학은 국가 전략산업으로서 국가의 관리와 통제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인들은 독점적인 이윤을 제공해 주는 국가의 노선을 철저하게 추종했다.

괴링의 4개년 계획부 고문으로 일했던 이게파르벤 이사회 의장 칼 크라우슈는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로 따라나섰다.

반인륜 범죄, 즉 치클론 B 등 독가스 생산에 관여한 데다가 나치 정권에서 노예노동력 등을 제공받아 막대한 경제적 편익을 편취하였고 독일제국의 전쟁계획에 참여하였으며 범죄집단인 나치 친위대에 가입하였다! 그의 혐의는 일일이 읽어 주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이 무슨 개수작이야! 이게 모두 소련의 수작이다!”

“이 나라의 산업역량을 박살 내려는 건가! 비겁한 작자들. 네놈들은 다 총… 으억!”

몇몇은 별 의미 없는 반발을 했지만 곧 NKVD 요원들의 주먹맛을 보아야만 했다. 아무리 소련의 의도가 독일의 경제적인 해체에 있었다 한들 이들이 범죄에 가담한 것이 아니지는 않았다.

* * *

‘실제 역사에서 대부분 단죄하지 못했지….’

극동으로 물자를 수송하랴, 독일에서 범죄자를 이송하고 산업시설을 뜯어오랴, 크렘린은 전쟁이 끝나기 전보다 끝난 이후 더 바쁜 것 같았다.

이게파르벤, 굳이 번역하자면 일종의 카르텔 집단이었던 이들은 각종 전범 혐의에 깊이 연루되어 있었다. 하지만 소련에 맞서기 위해 미국과 나머지 연합국들은 이들을 풀어주고 카르텔을 해체해 버리는 데 그쳤다.

연합군의 점령지로 구성된 서독의 경제적 해체는 서독을 동구권에 대항하는 선봉대로 키우기 위해 결국 없던 일이 되어 버렸고.

오히려 마셜 플랜으로 막대한 지원을 때려 박아, 미국은 오랜 적수를 경제적으로 부흥시켰으며 재무장까지 허가해 주었다. 55년 서독은 재무장을 허가받고 나토에 가입까지 했다.

소련은 이에 대항할 수단으로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창설했지만 경제력이나 인구규모나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나토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나토의 핵심 멤버가 되어야 할 프랑스는 공산당 주도하에 4공화국의 첫 총선거를 치르고 있었다. 연합군이 점령한 ‘서독’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소련은 독일을 온전히 손에 넣었다.

“독일은 계획한 것처럼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고 세 조각으로 찢어 버리도록 하지.”

“예, 미국의 헐 국무장관은 독일 분할안을 승인하였습니다.”

“추가적으로… 프랑스에게는 알자스-로렌과 자를란트를, 체코슬로바키아에는 주데텐란트, 폴란드에겐 오데르-나이세 동편과 동프로이센을….”

소련과 미국은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합의했다.

독일은 갈가리 찢어 버린다. 국가부터 시작해서 산업 역량과 영토까지. 독일의 미래는 미-소가 합의한 것을 벗어날 수 없었다.

“철강생산량은 3백만 톤으로 제한. 자동차 공업규모는 전쟁 이전 10%로. 이건 그럼 다 우리가 접수하는 것이고… 미국에서 정 원하면 좀 가져가라고 하게.”

“미국은 핵폭탄에 온 관심이 쏠려 있어서 우리가 달라는 것은 다 줄 듯합니다.”

“그래? 그럼 추가적으로 핵물질을 농축했다고 하면서 하나 더 줄 수도 있을 것처럼 굴어보게.”

독일은 이제 농업국가가 될 것이다. 전쟁 이전 독일은 주로 중공업 제품들을 수출했지만, 미국과 소련은 그걸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석탄, 코크스, 피혁제품과 맥주, 와인 등 주류, 여기에 섬유산업 정도?

1차산업에 2차산업은 경공업 위주로 제한해 버리고, 소련이 필요로 하는 경공업 제품을 생산해 싼값에 수출하며 소련이 생산한 중공업 제품을 비싼 값에 수입하는 말 그대로의 하청공장이 우리의 독일 구상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늘 동구권을 뒤흔든 문제는 만성적인 소비재와 식량의 부족이었다. 유럽 최고의 농업대국인 프랑스를 사회주의 블록에 편입시켜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공업대국 독일은 중공업을 거세시켜 경공업 생산 기지로 만들고.

여기에 추가적으로 중국을 둘로 갈라서 중화인민공화국을 농업 생산기지 겸 경공업 제품 생산기지로 만들어 버리면 소련의 고질적인 중공업 편중 문제를 해결해 볼 수 있을 법도 했다.

“아! 그런데 이쪽에서는 미국과 문제가 좀 발생했습니다.”

“음? 뭔가?”

몰로토프는 방금 기억났다는 듯 보고서 하나를 내밀었다. 보고서에는 큼직한 글씨로 제목이 적혀 있었다.

“<크릭스마리네 배상함 처리 협의안>? 허….”

보고서를 집어 들고 허겁지겁 읽자 그동안 서지 않던 그것이 어쩐지 벌떡 일어설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추축국 해군은 자기네들 전함을 다행히도 잃지 않고 끝까지 미국을 막아 내다가 결국 우리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보존한 전함은 스캐파 플로에서처럼 자침하지 않고 소련군의 손에 인도되었다. 물론 우리가 그걸 집어삼킬 생각으로 일부러 공격하지 않기도 했지만.

미국은 이 함대에 탐을 내는지 군침을 흘리며 자기네들 몫을 주장했다.

전함 비스마르크를 개명해서 ‘레닌그라드’라든가, 티르피츠를 개명해서 ‘모스크바’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것도 저것도 다 소련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너무 군침이 도는 선택지였다.

하지만… 하지만… 남자의 로망은 역시 거함거포였지만 시대는 항공모함의 시대가 되었다.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전함… 다 줘도 되니… 잠수함하고 항공모함만큼은 챙겨오게…. 독일에서 이쪽 기술자들도 꼭 데려오고.”

“아… 예, 서기장 동지.”

갑자기 울적해진 듯한 내 모습을 보며 몰로토프는 머뭇거렸지만 곧 고개를 숙였다. 아, 전함이여….

“어차피 전함은 말 그대로 가지기도 버리기도 뭣하니, 그냥 생색이나 내면서 미국한테 줘 버리게. 독일 것도, 프랑스 것도, 이탈리아 것도 그냥 전부!”

“그… 그렇습니까?”

수천 명의 인원을 요구하는 데다가 유지비 잡아먹는 괴물인데 항공모함한테는 결국 약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전함이었다. 아닌 말로 핵무기가 있고, 미사일이 있고, 항공모함이 있으면 대체 왜 전함이 필요한가!

멋있으니까 그렇지만.

“하지만 반드시 항모와 잠수함만은 챙겨 오게. 알겠나?”

“예! 서기장 동지!”

최소한의 억지능력으로 항모를 개발하고, 또 유라시아에 걸쳐 해군과 공군기지를 유지하는 것으로 미국과 우리 간의 공간의 장벽을 둔다. 우리가 괜히 군비증강을 하다간 미국과의 경쟁을 유발할 수 있으니 조용조용히 가는 게 훨씬 낫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브레스트, 독일의 함부르크, 노르웨이 같은 곳. 아시아에서는 제주도나 홋카이도, 베트남의 통킹만 등에 잠수함 기지를 두고 SSBN을 개발하면 최소한의 억지력 정도는 가질 수 있겠지.

우리가 지금 가진 힘에 우쭐하지 말고 철저히 미국과 잘 지내야 한다. 아직 뽑아 먹을 게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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